#추억팔이
#마지막승부를보다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농구로 유명한 학교였다.
모든 학생들이 농구에 미쳐 있었다.
학교 선배 중에 당시 수퍼스타였던 허재가 있었는데 그가 한번 학교에 오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싸인을 받으려고 환장했다.
그 아이들은 모두 허재를 동경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농구가 싫었다.
농구를 싫어하게 된 계기는 초딩때 애들이랑 게임을 하다가 손가락이 삔 적이 있는데 그 고통이 너무나 강렬해서 이후 농구공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고로 이노무 게임이 거의 국기화 되다시피한 고딩 생활은 무척이나 짜증나고 피곤했다.
정말 헤비메탈과 하드락이 없었다면 그 피곤한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싶다.
나같은 경우는 허재같은 사람에겐 관심이 1도 없었고 오히려 당시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치시던 강기영이 모교 출신이라는 것에 매우 뿌듯함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시나위가 한참 잘 나가던 그 시절에도 강기영 형님이 모교에 들린 적은 없었다.
만약 형님이 오셨다면 극진하게 대접해 드렸을텐데 꺼이 꺼이~
암튼 이 놈의 농구~~!!!!!!
지금도 잊을수가 없는게 고 1 때 체육 중간고사였다.
선생님은 고1 중간고사 시험으로 농구를 선택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환장하는 농구로 시험 보겠다는 것은 뭐 짜장면 시킬때 단무지 많이 달라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 할 수 있겠다.
쉬는 시간만 되면 농구공 가지고 방방 뛰어오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이어폰으로 머틀리 크루나 래트나 처듣던 나는 정말 짜증이 나고 피곤했다.
1분 안에 자유투로 몇 개나 처넣나로 점수를 맥이는 거였는데,
나는 연습은 커녕 농구공을 잡기도 싫었다.
당시 다른 아이들은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재미를 위해 미친듯이 농구를 했는데 난 전혀 연습하지 않았다.
그냥 꼴리는대로 던지면 몇 개 들어가겠지 이런 심보로 연습 1도 안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운명의 그 날이 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1분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ㅋ 이런 제기랄 ㅋ
엄청나게 쪽팔리더군...
다른 놈들은 기본 대여섯개에 키 큰 놈들은 스무개 이상까지 집어넣던데...
1도 못 넣다니
하지만 뭐 농구 따윈 별로 관심 없으니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근데 이 날 체육 선생님이 이상하게 예민했다.
항상 밝게 웃고 재밌는 농담 많이 하시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별것도 아닌 걸로 화를 내시더니만 애들을 다 엎드리게 하고 빠따세례를 미친듯이 퍼부었다.
지금도 기억 나는데 그때 제법 아팠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무렵 그 선생님 아들이 무슨 연유로 세상을 떠났다.
그분이 당시 서른을 갓 넘겼으니까 아들은 무척이나 어린 아이였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보니 충분히 그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체육시간이 다시 돌아오고,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를 호명했다.
예전과 다름 없이 밝은 표정으로 그는 나를 바라보며 껄껄거렸다.
'야 이 새끼야~
전교에서 너만 한골도 못 넣었거든
특별히 기회를 한번 준다.
이번에도 못 넣으면 넌 진짜 병신이다.'
선생님이 두번째 기회를 주셨을때 생각보다 잘했다.
또 다시 1도 못 넣으면 어쩌나 하고 고심을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많이 넣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아도 그때 어떻게 그렇게 잘 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맨 처음 시험을 봤을때나 재시험을 봤을때나 나는 농구공이라는 걸 거의 만져보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 넣는 족족 푹푹 잘 들어갔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들을 잃은 선생님의 우울한 심경을 위로하기 위하여 정신적으로 긴장하여 순간 알 수 없는 집중력이 가해져 갑자기 농구를 잘하게 된 건 아닐까??
암튼 그때의 재시험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5년후.....
스물 살, 대학생이 되어 써클룸(요즘 말로 동아리방이라고들 하지)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속해있던 써클룸은 지하 건물에 있는 탁구장 옆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창고였는데~
그 탁구장에서 체대 학생들이 탁구 강의를 자주 했다.
보통 이럴때는 정숙을 기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강의 중이니까.....
그런데 가끔 삘 받으면 그런 걸 무시하고 걍 노래를 하고 싶고 연주를 하고 싶을때가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옆에서 체대 학생들이 탁구 수업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걍 미친듯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발칵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와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조용히 하지 못해!!!!!
지금 강의 중이잖아~'
뭐 간혹 있는 상황이기에 그다지 놀랍진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살짝 뒤돌아서 해맑게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한번만 봐주세요 ^^'
이런 식으로 넘어가곤 했는데.....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5년전 고딩 시절 체육 선생님이셨다.
'어..... 선생님~~'
선생님은 맨 처음에 나를 보고 못 알아보셨다.
'뭐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핫!!!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만남이라 쪼까 당혹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여쭈어보았다.
'저 선생님~~
예전에 Y고에서 체육 선생님 아니셨나요??
저 1학년때 선생님에게 배웠는데~~'
선생님은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만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가만 너 이 새끼~~
그때 전교에서 자유투 한 골도 못 넣었던 그 새끼 아니냐??'
'네 맞아요~~
선생님이 그래서 한번 더 기회를 주셨던...... ㅋㅋㅋ'
ㅋ
고딩 시절 선생님을 대학교에서 교수로 만나게 된 건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인듯 싶었다.
선생님도 고딩 시절 제자를 대학에서 본 건 처음이신듯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이후 그와의 친분 덕분으로 선생님이 강의하시는 탁구 시간에는 마음껏 노래를 부르는 특혜를 받곤 했다 ㅋㅋㅋㅋㅋ
대학 졸업 이후 거의 생각이 나지 않았던 이 선생님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라 구글에 검색해보니 요즘 모교에서 체육학부 학장으로 계셨다.
요즘 사진도 보았는데 많이 늙으셨다.
대딩 시절 보았을때만 해도 상당히 멋있으셨는데~~
선생님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니 그 유명한 수영 선수 박태환이 이 선생님 제자였다.
그가 중국 올림픽 나갔을때 선생님의 인솔 아래 모교 학생들이 단체로 중국에 응원갔다는 기사도 보았다.
암튼 선생님이 잘 지내고 계신것 같아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91f5ekH_hcY
한스밴드 - 선생님 사랑해요#한스밴드 #선생님사랑해요www.youtube.com
https://youtu.be/DLd3IoNvIAE
마지막 승부 OST / MV 가사 (장동건 심은하) 리즈시절 / 김민교 마지막 승부 노래 가사www.youtube.com
PS - 마지막 승부에 나오는 '박재훈' 이 알고보니 내 고딩 후배더군요 ㅋㅋㅋ
생일은 나보다 더 빠르던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