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는 대로 살게 되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원숭이 패거리 본능에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원숭이 패거리 본능이란 바로
원숭이들이 짝짓기 철이 되면 숫컷들끼리 대혈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절대적 강자 (즉 상위 5프로 내위)가 암컷을 독점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나머지 숫컷들은 그 절대적 강자인 숫컷에게 스스로 엎드리며 충성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란 이 자연의 순리라는 그 과정이 숫컷을 최대한 비율로 잡아도 5프로만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릴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며
나머지 최소 95프로의 숫컷은 암컷의 손목은 커녕 냄새도 맡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칩니다.
그에 따른 최소 95프로 숫컷들의 절대적 강자에게 대한 충성을 바로 원숭이 패거리 본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애써 원숭이와 다르다고 부인하고 싶겠지만
인간 또한 그대로 살게 되면 그 누구도 예외없이 무조건 원숭이 패거리 본능에 빠져 살게됩니다.
그러기에 수천 년을 이어온 귀족 사회라고 하는 시스템이 그렇게도 견고한 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하며 지금 또한 원숭이 패거리 본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민주주의는 망상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구조는
인간이란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 이성을 개발할 수 있는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다수가 찬성하는 쪽은 언제나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망상입니다.
이 말이 인간의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숭이 패거리 본능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원숭이 패거리 본능을 벗어던지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인간 중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삶의 과정에서 원숭이 패거리 본능을 벗어던질 수 있습니다.
수련과 각성을 통해서 그것도 꾸준한 매일매일의 정신적 육체적 수련을 통해서만
인간은 겨우 원숭이 패거리 본능을 놓을 수 있습니다.
각 개인들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인간 대다수가 원숭이 패거리 본능을 벗어던진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그러기에 투표철만 되면
흙수저 계층들이 강남구 청담동 빌딩 주인의 세금을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의 처지가 비참해도
인간들의 대부분은 청담동의 빌딩 주인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 유지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스딸린이 인민들을 대량 살육한 이유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약자들의 이익을 위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 그 사상을 현실로 실행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절망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절망일까요?
기득권 세력들이 무너지지 않아서?
부르주아 세력들이 철통같아서?
귀족들이 계속 자신의 혈통을 유지할려고해서?
아닙니다.
스딸린을 위시한 그 공산주의자들이 절망한 이유는
바로 민중이 원숭이 패거리 본능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민중들이 먼저
부르주아들의 걱정
귀족들의 걱정
기득권 세력들의 걱정을
민중들 자신들이 먼저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굶어 죽어도
부르주아들의 배가 고플까봐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스딸린을 위시한 공산주의자들은 절망하여 민중을 대량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어떠한 교육도
어떠한 강연도
그 어떠한 시스템적 개선도
민중의 원숭이 패거리 본능은 도저히 제거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 이것과 아주 비슷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네 바로 중세 기독교가 벌였던 피의 살육이 있습니다.
그들 또한
민중들이 각성하고 깨어나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신의 목소리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수없는 교육과
수없는 강연과
수없는 고행을 했지만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민중의 신에 대한 불신은 도저히 개선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중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 인류 역사의 모든 살육과 학살의 근본에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선량했고
그 어떤 누구보다도 민중을 위했고
그 어떤 누구보다도 지성적인 인간들이
그 민중의 원숭이 패거리 본능이
결코 제거되지 않자
절망하여 그 민중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딸린이 민중을 학살한 이유입니다.
스딸린 뿐만 아니라
폴토트
모택동 또한
이들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중세의 기독교 리더들이
그렇게도 민중을 대량 학살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지요.
자 어디에 정답이 있는 것인가요?
과연
인간의 원숭이 패거리 본능은 제거가 가능할까요?
과거에 민중을 대량 학살한
기독교 리더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원숭이 패거리 본능이
노력을 통해 제거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민중을 대량 살육했습니다.
그들은 민중을 과도하게 사랑했기 때문에
민중이 그 사랑을 받아주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하자
절망하여 민중을 살육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현재의 민주주의자들은 과연 다를까요?
우리는 민주주의가 망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그 모든 것 또한 전부다 망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우리 인간이라는 이 비참한 속세의 존재 앞에
오직 자연의 순리만이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노자의 도덕경이
유일한 진리를 말했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투표는 망상입니다.
민주주의는 망상입니다.
자본주의는 망상입니다.
망삼임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을 믿을 때
바로 중세의 기독교주의자들
그리고 근현대의 공산주의자들이
벌렸던
피의 살육이
다시 재현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 계속하여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첫댓글 이 지구별 인간들 세상은 아무리 작은 단체에도 권력자가 생기니까요.
문제는 스탈린 같은 부조리한 권력자에게 맞서 싸워 이길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지요.
항상 분명 승자편에 빌붙은 역사였으니까요.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고 노자의 도덕경을 실천하며 우주 만물과 삶에 겸손해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올리시는 글 늘 잘 보고 배우고 익히고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스탈린을 위시한 공산주의자들은 약자의 이익의 편에 서서 약자들을 위한 즉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려고 했지만
그들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약자들은
결국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본능인 원숭이 패거리 본능을 결코 벗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스탈린은 약자를 그렇게도 사랑했지만 결국 그 약자는 스탈린의 사랑을 받아줄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아무리 교육을 해도 계몽을 해도 선전을 해도 결국에는 원숭이 패거리 본능대로
강자를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스탈린을 위시한 공산주의자들이 결국에는 인간의 살육의 길로 걸어간 이유는 인간에 대한 절망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역사에서 수도 없이 목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세의 기독교주의자들이 그러했고
동양의 수도 없는 종교주의자들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님이 말씀하신대로 결코 부조리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누구보다도 지성인이었고 그 어떤 누구보다도 명석했으며
그리고 그 어떤 누구보다도 선했습니다.
왜 그러한 사람들이 결국 인간 대량 살육의 길로 걸어갈 수 밖에 없었는가
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지상 나그네 다시 생각케 하는 답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