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정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복사금지를 해제해놨습니다(...;;) 현대자동차 해당 직무 분야에 지원하게 된 이유와 선택 직무에 본인이 적합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 및 근거를 제시해 주십시오. (3000자 이내)
1993년 중국이 무역개방을 하던 초기, 북경에서 생활하며 성장했습니다. 자유로운 교육환경 속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며 막 발전하기 시작한 중국 속에서 수많은 외국 기업이 어떻게 뿌리내리는지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타고 다녔던 중국 택시는 ‘미엔빠오’라는 노란 미니 봉고로, 바람이 불면 문짝이 잘 닫히지 않고, 바닥에 구멍이 뚫려 굴러가는 바퀴가 훤히 보이던 폐차 직전의 자동차였습니다. 터덜거리는 택시를 탈 때마다 불안에 떨며 문 손잡이를 놓지 못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 비좁고 불편한 중고차를 연상시키던 낡은 택시는, 중국의 낙후한 단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초 현지에서 생산된 한국 소나타와 함께 도시는 활력을 띠기 시작했고, 안전한 현대차로 바뀌면서 한국의 경제 발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택시에 대한 경험은 지금도 한국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현지생활 동안 매년 한국기업이 늘어나며 도심 곳곳에 한국 제품 광고판이 세워지며, 중국인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간의 10년이 넘는 중국 현지 경험은, 미국 대학생활과 한국 군대에 적응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재학시절에는 혼다사의 마케팅 프로젝트의 하나로 “혼다 시빅 마케팅 챌린지”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최신형 시빅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팀원들과 Output Agency라는 새로운 회사를 창립했습니다. 이곳에서 신형 시빅의 다양한 편의기능과 업그레이드된 디자인을 알리기 위해 차량 스펙을 나열하는 기존의 광고보다는, ‘즐겁고 역동적인 운전을 할 수 있는 차’라는 젊은 감각에 어필하는 홍보 전략을 기획했습니다. 더 날렵해진 외형과 내부를 부각하기 위해선, 기존의 자동차 시승회 형식을 버리고,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길거리파티(블록파티)의 분위기로 콘셉트를 정했습니다. 행사 장소를 정하고, 주변 경찰서의 협조를 얻어 일정 블록 내에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차량 통제를 얻어냈으며, 파티 홍보물을 만들어 지역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혼다사에서는 당일 시승회에 쓰일 신형 시빅 쿠페와 세단 등 차량 3대를 확보했고, 길거리를 지나며 우연히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기념품까지 꼼꼼히 챙겼으며, 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비보이 공연을 섭외했습니다. 이런 사전 준비로 당일 거리에는 지역 라디오국의 야외 부스가 설치됐고, 흥겨운 거리파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누구나 새 차에 시승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준 전문요원들을 배치했습니다. 결과는, 예전의 그저 ‘무난’하다는 이미지를 바꿔놓는 기회가 되었고, 시빅의 장점인 “Energetic, Sleek, and Aerodynamic”를 제대로 홍보했습니다. 참가자들로부터 시빅에 앉는 순간 현대적이면서 심플한 디자인에 매료되었다는 평과 함께 행사 후, 실시한 설문에서는 시빅의 브랜드 인지도가 11% 이상 올라가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젊고 신선한 감각의 거리파티 이벤트는 신형 시빅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며, 세련된 시빅의 매력을 젊은 층의 감성에 맞게 어필한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지역 한인들을 위한 월간지 CU 타임즈에서 학생회 회장을 맡아 초대 하우징페어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보통은 제한된 지역광고나 부동산을 통해 잘못하면 속거나 가격 비교에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어바나와 샴페인에 있는 많은 학생의 수요를 조사하여 정확한 정보를 모아 하우징페어를 계획하게 된 것입니다. 장소 섭외부터 포스터 제작,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홍보 전략까지, 신용 있는 부동산 업체들과 연계하여 개최한 것도 큰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때 성공한 초대 박람회는 하나의 선례가 되어 이후에도 개선점과 홍보를 보완해 유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매년 지역의 큰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한국식당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각국의 사람들과 음식으로 소통하는 노하우도 쌓았습니다. 늘어나는 중국 학생들을 위해 새로운 메뉴판을 만들기 위해 두 달 동안 북경 내에 있는 한식 메뉴판을 사진으로 찍어 수집하고, 한국 음식의 중국식 표기를 비교, 현지 중국 친구들의 수정을 거쳐 가장 정확한 중국어 요리명을 만들었습니다. 일례로, 한국어로 감자탕을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한 “투토우탕”을 본 친구가 “감자탕에 왜 감자보다 뼈가 더 많이 들어 있지?”라는 질문을 했고, 사실은 돼지의 등뼈인 감자뼈가 들어간 데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아내고 명칭을 고쳤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메뉴판은 입소문이 나면서 더 많은 중국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었고, 차별화된 한국식당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뜻밖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학교 축구팀 팀의 주장으로 여러 번의 원정경기를 우승으로 이끈 경험도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좋았지만, 새로운 회원들을 모집하여 사기를 북돋았던 일, 프로팀처럼 격식을 갖추기 위해 팀 로고와 유니폼을 만들었던 일은 뿌듯한 성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사람들과 친화력 있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외국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긍정적인 에너지와 적극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이런 해외에서의 경험은 어떤 어려운 환경이라도 적응할 수 있는 강점으로, 단순한 언어 소통자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체화하는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현대 자동차가 새로운 브랜드를 알리며 지금의 한류열풍에 기여했듯이, 세계 어디에서든 기업의 우수성과 기술을 홍보하며 도전적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
첫댓글 첨삭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