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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신랑이 집을 얻어야 하나요 _ 예비 신랑
같이 살 신혼집도 혼수도 반반씩 부담… 예식장 아닌 ‘하우스 웨딩’으로 실속 차리기
장원석 월간중앙 수습기자 [ubiquitous83@joongang.co.kr]
“바로 이거다.”
전세 8000만원. 신축 건물에다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코앞에 있었다. 본격적인 결혼준비를 시작한 6월, 여자 친구의 직장인 수원과 내가 일하는 판교에서 가까운 용인 주변에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친구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오빠 혼자 전세금 다 부담하기 힘들잖아. 내가 도와줄게.”
순간 솔깃했다. 하지만 예의상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대출 조금 받으면 돼.”
그래도 대학 졸업 후, 일찍 취직해 4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5000만원 정도의 예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 친구는 물러서지 않았다.
“빚 내가며 신혼살림 차릴 필요 없잖아. 어차피 결혼하면 같이 갚아야 되는데 있는 걸로 시작하자. 내가 반 정도 낼게.”
더 이상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할 말이 없어서인지 나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럼 혼수도 같이 하자.”
왠지 능력 없는 남자가 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참 야무진 여자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어쨌든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정형화된 결혼방정식에서 조금 벗어난 우리의 결혼 준비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는 청소고, 설거지고 다 괜찮은데 옷 다리는 게 너무 귀찮아.”
“그래? 나는 설거지가 제일 싫은데.”
“그냥 같이 살까?”
“결혼하자는 뜻이야?”
“응. 뭐 그런….”
5월 어느 날, 여자 친구와 나눈 대화다. 그런데 이게 프러포즈가 됐다. 다행히 큰 불만은 없는 듯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여자 친구를 만난 건 2008년 겨울. 그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A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2년 정도를 만났지만 결혼을 생각한 것은 얼마 전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지난해 12월 즈음이었다. 애초부터 나는 직장이 없는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내 연봉이 적은 편은 아니다. 전문직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집도 빨리 사고, 아이도 잘 키우려면 맞벌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둘이 같이 벌면 훨씬 빠르고 편한데 굳이 모든 부담을 나 혼자 떠안기는 싫었다. 여자 친구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놓은 적은 없었지만 그녀도 어렴풋이 내 진심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지나치게 현실적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여자 친구가 직장을, 그것도 상당히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된 후부터 결혼 생각이 확고해진 건 사실이다.
예단·이바지·함·폐백 등 모두 생략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상 준비를 하려니 막막했다. 요즘은 결혼대행업체를 통해 준비한다기에 우리도 그렇게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말 편했다. 웨딩플래너는 상견례 장소부터 결혼식장 예약, 웨딩 촬영, 신혼여행까지 모든 것을 결혼 날짜에 맞춰 세세히 준비해주었다.
어찌나 열심인지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웨딩플래너가 결혼하는 줄 알았다. 상담 과정에서 우리는 예단·이바지·함·폐백 등 적어도 우리 눈에 불필요해 보이는 모든 절차를 생략하기로 했다.
간단히 반지와 시계 그리고 양측 부모님께 드릴 선물 정도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준비기간 내내 웨딩플래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렇게 해도 괜찮으시겠어요?”였다. 혼수도 함께 준비하기로 한 만큼 최대한 비용을 줄이려는 우리의 생각을 부모님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제정신이냐?”
아버지께서는 버럭 화를 내셨다. 순조로웠던 결혼 준비의 첫 번째 난관은 부모님의 반대였다. 결혼한다는 말에 마냥 반기시던 부모님이 우리의 이상한 결혼 계획을 듣고는 말도 안 된다며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는 “집안끼리 할 도리라는 것이 있다”며 우리를 말리려 애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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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젊은 사람들이지만 결혼을 두 사람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양가 부모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뜻은 불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결혼하지 마라”시던 부모님에게 “에휴, 니네 마음대로 해라”라는 말을 듣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다행히 우리 둘 다 장남·장녀가 아니라는 점이 허락을 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는 5년 전 형의 상견례 자리를 기억한다. 양쪽 어머니들 사이에 오가는 사윗감과 며느릿감에 대한 칭찬 릴레이를 보면서 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부모님들이 결혼식은 어디서 할 거며, 혼수는 대충 어느 정도 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형과 형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데 정작 두 사람은 대답만 하고 있었다. 그것도 “네”라는 짧고 건조한 목소리만 들렸다.
“주례 없다” 소리에 부모님 넋 잃어
하지만 우리의 상견례는 사뭇 달랐다. 일단 우리의 결혼 계획과 생각에 대해 양가 부모님께 자세히 설명을 드렸다. 자연히 대화는 우리가 주도했다.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셨지만 이미 허락을 하신 내용이라 마지막에는 기분 좋게 웃어주셨다.
특히 장인 어른께서는 “그래. 어떻게 하든 잘살면 되는 거다. 요즘 세상에 온 집안 다 나설 필요 있나. 우리는 밥이나 먹으러 갈게” 하며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그제야 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다만 기준은 우리가 정하고, 준비는 웨딩플래너가 하니 할 일이 없어진 어머니들의 표정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사실 우리가 가장 효율적인 결혼방식을 찾기 위해 애쓴 것은 친구 문규의 영향이 컸다. 파주에 있는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문규는 지난해 결혼했다. 문규는 회사 동료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신혼집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문규가 살고 있던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문규는 굳이 무리해 전세금을 마련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부모님이 빚을 내 도와주려는 것을 안 문규가 아내를 설득했고,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문규와 아내가 근무시간이 다르고, 식사는 보통 회사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신혼집은 거의 잠만 자는 공간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이렇게 결혼 초반에 드는 비용을 아낀 문규는 2년 뒤쯤 아이를 가지면 아파트로 이사할 예정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도 다 문간방에서 시작해 돈 모으고, 자식 키우고 하셨는데 우리도 비슷한 거지. ‘현대식 문간방’이라고 하면 되겠네”라던 문규의 조언. 그리고 “전세금 오빠 혼자 낼 필요 없다”던 여자 친구의 말이 어느덧 따로 또 같이 다가왔다.
특히 우리가 폐백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데는 비용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신랑·신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부모님의 먼 친척들이 폐백 시간에 와서 “결혼이 어떻네” “신부는 어떻네” 하며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식 때 하객을 100명만 초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양가 부모님 모두 반대하지 않으셨다. 물론 이제껏 낸 축의금이 약간 아깝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축의금이 또 다른 형태의 ‘빚’이라는 생각을 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가까운 친척 60명, 친구 40명 정도로 하객 명단을 작성하고 보니 큰 결혼식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자 웨딩플래너는 ‘하우스 웨딩’을 추천했다. 그래서 우리는 말 그대로 집에서 결혼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근사하고, 예쁜 집을 빌려 파티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인데 나도 결혼준비를 하기 전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소규모로 하기에 적당하다는 말에 바로 결정하고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대여료가 조금 비쌌고, 1인당 5만원 정도인 식대도 부담스러웠다. 결혼 비용 아낀다며 그 난리를 쳤는데 정작 결혼식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200만원에 달하는 꽃값(생화)을 아끼기 위해 조화를 쓰기로 했다. 주례가 없는 대신 신부가 서약서를 읽고, 신랑이 축가를 부르기로 해 주례 비용도 아꼈다.
일반적으로 폐백 하는 시간에 하객들이 식사를 마치기 때문에 인사 드릴 시간이 넉넉지 않지만, 폐백을 생략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며 인사도 드릴 수 있게 됐다. 이 정도까지 진행하니 부모님들은 놀라움을 넘어 아예 넋을 놓은 듯했다. 결혼식 날에는 결혼행진곡 대신 다른 음악이 나올 텐데 더 놀라시진 않을까 걱정이다. 사실 결혼행진곡이 싫어 다른 노래 두 곡(팝송)을 이미 골라 뒀다.
피부관리는 당연… 신랑은 피곤해
남다른 결혼관으로 파격적인 결혼을 주도하던 여자 친구도 결혼식 날 가장 예뻐 보여야 한다는 욕심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 덕에 피부관리실만 벌써 네 번을 따라가야 했다. 설상가상 상상도 못 해본 손톱 정리 대열에 나도 합류했다. 사실 나는 조명이 밝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용실·병원·피부관리실…. 그 반짝반짝 빛나는 형광색이 부담스럽다. 두 번째 난관은 여기에 있었다. 주말에 시간을 내 강남역에 있는 피부관리실을 찾았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전신 피부관리를 받겠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 어차피 옷 입을 건데 안 보이는 데까지 해야 돼?”
그러자 여자 친구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내가 하객 보여주려고 관리받는 걸로 보여?”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히 서 있었더니 더 화가 난 모양새였다. 여자 친구가 전신관리를 받으러 들어간 후 곰곰이 생각하다 순간 ‘아!’ 하고 깨달았다. 잠깐 미안했다. 하지만 두 시간이 넘게 기다리니 그 미안함도 사라졌다.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웨딩 촬영 날도 그랬다. 많은 예비부부가 웨딩 촬영 날 그렇게 많이 싸운다기에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안 됐다. 나는 원래 사진과 친하지 않다. 찍는 것도 못 하지만 모델이 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언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이상해서다. 그래서인지 나는 스튜디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지쳐 있었다. 의상·메이크업 준비만 꼬박 세 시간. 장소를 옮겨가며 찍고, 옷 갈아입고 또 찍었다.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 번에 못 찍나?’
애꿎은 사진사 원망도 했다. 그러다 “에휴, 이거 언제 끝나나.”
딱 한마디 했다. 그런데 정확히 3일을 혼났다.
“오빠는 결혼에 진정성이 없다”는 말부터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 결혼해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할거냐”란 말까지 나왔다. 조금 지쳐서 한 말일 뿐인데 이미 배는 떠났고, 나흘 동안 빌고 빌어서야 화가 풀렸다. 피부관리와 웨딩 촬영, 요즘은 안 하는 사람이 없다지만 어쨌든 남자에게는 여전히 고역이다.
물론 피로연도 생략했다. 피곤에 절어 신혼여행지로 출발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친구들의 원성에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사전 피로연’이라고나 할까? 친구 15명과 여자 친구의 지인 15명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장소는 수원의 조그만 술집. 통째로 빌리느라 100만원 정도 대여료가 들긴 했지만 친구들에게 이 정도 성의 표시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30만원에 부른 레크리에이션 강사에게 사회를 맡겼고, 그는 두 시간 동안 유쾌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었다.
“2번 남자분, 5번 여자분을 선택하셨습니다.” 젊은 남녀가 모였으니 당연히 커플 만들기 게임도 진행했다. 실제로 좋은 만남을 갖게 된 커플도 생겼다. 친구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벤트였다. 술은 와인으로 선택했다. 적당히 돌아다니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에는 와인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직접 와인을 가져 온 친구도 있었다. 12시쯤 파티가 끝났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며 우리의 새로운 시도를 칭찬해주었다. 뿌듯했다.
피로연을 끝으로 대부분의 준비가 끝났다. 이사를 하고 신혼집을 꾸미는 일이 남았고, 제일 중요한 결혼식이 남았다. 아직도 잘하는 건지, 부모님들께 괜한 걱정만 끼쳐드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된다. 하지만 ‘결혼 준비’라는 것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 살아갈 결혼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넉 달 동안 티격태격 말다툼도 있었고, 힘든 설득 과정도 있었지만 우리의 힘으로 즐겁게 준비해온 만큼 앞으로의 결혼생활도 행복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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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못 버는 여자는 시집도 못 간다 _ 예비 신부
황금 같은 주말, 혼수 준비에 쓸 여유 없다… 예물 선택, 시어머니보다 내 맘이 중요
유현정 월간중앙 수습기자 [hjy26@joongang.co.kr]
“결혼하면 방바닥에 네 몸을 본떠서 바닥에 구멍을 파줄게. 그리고 TV를 천장에 붙여줄게. 결혼하면 자기는 매일 바닥에 누워서 TV만 봐”라고 연애 시절 남자 친구는 말했다. 나는 결혼을 두 달 앞두고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오빠는 천안이 직장, 나는 서울이라서 출퇴근이 너무 힘들 것 같아. 나 그냥 회사 그만두고, 오빠 따라서 천안에 갈까?”
그러자 남자 친구는 사색이 됐다.
“뭐라고? 정아야, 요즘은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대우받는 시대야. 왜 아까운 실력을 썩히려고 해. 그리고 집에 있으면 심심하기만 할 거야. 그런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 파이팅!”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와 남자 친구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까지 서울에서 보낸 서울토박이다. 우리는 대학교 4학년 때 취업 스터디에서 만나 서로 첫눈에 반했고, 1년6개월의 연애 끝에 결혼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는 천안으로 발령이 나면서 서울을 떠나게 됐다. 지방에 공장을 둔 대기업이 많아 공대 졸업생은 가족과 떨어져 지방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주말데이트’를 하면서 1년이나 헌신했다. 그런데 꼭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는 나를 ‘정신적 동반자’이기 이전에 ‘경제적 동반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인가.
결국 우리는 신혼집을 용인에 얻기로 했다. 예비남편의 근무지인 천안과 나의 근무지인 서울 강남, 두 곳 모두 통근이 용이해서다. 이로써 앞으로 그와 나는 출퇴근에 한 시간 이상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유리천장’ 못 뚫을 바에야 차라리 결혼
하지만 함께 직장에 다니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 주말부부를 선택하는 커플도 꽤 많다. 요즘은 배우자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더라도 한쪽이 직업을 포기하고 이동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떨어져 지내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한국가족상담연구소 송마리 소장은 “주말부부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송 소장은 “같이 있는 시간이 적을 경우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다”면서 “그러다 보면 더욱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어, 오히려 매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주변 친구들은 우리의 선택에 대해 “너무 힘들지 않겠어? 그냥 네 회사 근처에 얻어. 너 너무 양보한다”며 핀잔을 줬다.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하기 서너 달 전쯤 남자 친구의 행동이 떠오른다. 남자 친구에게 동료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업무량이 늘어나 힘들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맞장구를 쳐주지 않았다. 도리어 “우리 회사는 더 심하다” 면서 사내 갈등,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이상 등 극단적 사례들만 죽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네가 다니는 직장은 양반”이라고 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둘까봐 두려워 연막을 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사실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나는 2년간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등 완벽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해왔다.
‘100대1’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했다. 회사에서 더 능력을 발휘해 승진도 하고 싶고, 나중에는 외국계 회사 컨설턴트로 이직해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싶다. 공부도, 운동도, 사회활동도, 리더십도 모두 1등인 여학생을 ‘알파걸’이라고 한다. 나 역시 알파걸이라 자부하면서 입사했다.
하지만 알파걸이라고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1년 간의 회사 경험으로 비춰보면 아닌 것 같다. 과장·부장 자리에 오른 선배의 대다수가 남자며, 여성 임원의 수는 남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었다. 한마디로 ‘유리천장’에 부딪힌다는 뜻이다.
물론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사내에서 인정받는 ‘골드 미스(Gold Miss)’ 선배도 있다. 하지만 결혼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혼을 미루다 아직도 혼자인 사람이 많은 편이다.샤넬 정장 요구했다 파혼한 사람도 그런 그들의 일상이 부럽지 않았다. 배우자를 만나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이 온다면 나를 정신적으로 위로해 주고,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가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남편의 경제력에 기대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지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른 많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요즘 남자들은 이런 여자들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직업을 꼭 갖도록 강요하는(?) 내 남자 친구만 봐도 그러니 말이다.
실제로 얼마 전 한 남자 동료에게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했더니 대번에 나온 말이 “직업이 뭐야? 어디 다녀?”였다. 그는 “연애가 아닌 결혼 상대로 돈 안 버는 여자는 못 만나겠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한마디로 혼자 벌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변이다. 요즘 한창 잘나간다는 변리사인 한 대학 동창의 말은 더 구체적이다.
“경제적 효과만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내 신부 될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다’ ‘무슨 출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직업이 없으면 세상 물정에 어두워져 부부 동반 모임의 대화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말 이유도 가지가지다. 여자 직업이 혼수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불어 좋은 신부임을 판단하는 하나의 바로미터로 작용하고 있다.
남자 친구 어머니와 함께 서울 신사동 웨딩타운의 한 한복가게를 찾았다. 내게 이런저런 한복을 입혀보던 시어머니는 세 번째 입은 한복이 맘에 든다면서 “예쁘다. 정말 예쁘죠?”라며 가게 안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모두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한복과는 너무 달랐다. “맘에 드냐”는 예비 시어머니의 물음에 처음에는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싫었다. 그래서 계산대로 향하는 시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 저 이 한복보다는 처음에 입었던 한복이 맘에 들어요. 어머니는 어떠세요?”라고 내 의사를 전했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일순간 붉어졌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결국 내 의견에 따르셨다. 20년의 격세지감이 있는 시어머니와 내 취향이 같을 리 만무하다. 내 사례는 약과다. 요즘 신부들은 시어머니에게 자신이 원하는 예물을 콕 짚어 요구한단다.
먼저 결혼한 내 친구들 말을 들어봐도, 평소 자신들이 갖고 싶었던 명품 브랜드 가방을 예물로 당당히 요구한단다. 친구들이 내게도 꼭 그렇게 하라면서 “지금이 기회야. 아줌마 되면 명품 가방 하나 사기가 쉬운 줄 아니?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라고 부추겼다. ‘현금 선호파’도 있다. 내가 알아서 살 테니 돈만 달라는 식이다. 또 현금으로 주는 게 편하다는 생각에 아예 시어머니가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의껏 챙겨 줘도 며느리가 싫어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에서란다. 예물과 혼수 문제로 파혼에 이른 커플도 흔하다. 어떤 신부는 예물로 시어머니께 샤넬 정장 한 벌을 요구했다가 결국 이것이 화근이 돼 파혼했다. 다음은 내가 미용실에서 들은 파혼사 한 토막.
“(신랑) 집안이 꽤 사는 편인데 그 정도도 못 사주는 게 말이나 돼요. 난 교육도 받을 만큼 받았고 우리 집도 잘 나간단 말이에요. 날 존중한다면 그 정도는 해줘야죠. 벌써부터 이렇게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살겠어요?” 좀 극단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시댁 식구들에게 ‘좋고 싫은’ 내 의사를 분명히 내보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에게 주말은 황금 같은 시간이다. 주말까지 가구·가전제품 등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가구단지와 전자제품 전문매장을 다니면서 보다 저렴한 상품을 찾는 그 시간에 차라리 쉬고 싶었다. 친구들 중에 그렇게 했다가 몸살났다는 증언도 내 이런 결정에 한몫을 했다.
내 선택지는 백화점이었다. 잘나가는 ‘신상(최신 제품)’ 을 한눈에 보고, 한 번에 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백화점의 경우 대부분 결혼을 앞둔 신부를 대상으로 ‘웨딩 마일리지’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구매 금액별로 포인트를 정립해 백화점 상품권을 주는 것이다.20만원짜리 상품권을 받고 나니 좀 싸게 샀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미끼상품’에 현혹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어쨋든 나는 세탁기·냉장고·공기청정기 등 가전제품을 단 1시간 만에 모두 살 수 있었다. 그 덕에 주말에는 푹 쉴 수 있었다
주판알 튕기는 남자 친구에게 화 나기도
결혼 준비를 하면서 화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결혼에 대해 한참 고민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청첩장도 돌렸는데,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비용 문제가 그랬다. 우리는 각자가 부담할 결혼비용을 철저하게 나눴다. 함께 부담하기로 한 비용은 스튜디오와 예식장 비용뿐이었다.
“우리 호텔에서 결혼식 하자. 난 호텔에서 근사하게 치르고 싶어.”
하지만 남자 친구는 “너무 비싸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
비용을 반반씩 내야 하므로 내 주장만 끝까지 고집할 수 는 없어 서울의 적당한 예식장을 물색하기로 했다. 남자친구가 천안에 있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짬을 내 나 혼자 예식장 계약에 나섰다. 1000만원 정도 예식비용이 드는 곳이었고, 나는 계약금 30만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에게 문자를 발송했다.
“예식장 계약했어. 앞으로 나는 470만원, 오빠는 500만원 더 내면 돼.”
그러자 너무나도 황당하고, 화가 나는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너는 왜 나보다 30만원이 적냐?”
당장 전화해 화를 냈다. “바쁜 업무시간에 짬을 내서 대신 계약했는데 사람을 믿지 못하고 돈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는 거야?”라고 말한 뒤 ‘이제 끝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것만은 뺐다. 남자 친구의 태도가 정말 싫었다. 아름답기만 해도 모자랄 ‘신성한 결혼식’에 이렇게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슬펐다. 아니 비참한 기분이었다. 결혼 준비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니 갈등도 깊어졌다. 웨딩 촬영 때 입을 드레스와 ‘티아라(왕관:웨딩용 장신구)’를 고르러 하루 종일 남자 친구와 돌아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 예뻐 보여 선택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일주일 내내 잠자리에 들기 직전 그날 본 드레스와 왕관이 떠올랐다. ‘무엇을 해야 좀 예쁜 신부가 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압박했다. 청첩장도 예쁜 것이 많아서 2주일째 고민 중이다. 꼭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모두 맘에 드니 콕 짚어 선택할 수가 없다. 남자 친구에게 무엇이 좋은지 물어볼 때마다 “네가 맘에 드는 것으로 해”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 왔다. 이런 비협조적인 말투에 이제 지칠 정도다. 결혼 준비과정은 여자의 일방적인 노동이란 생각이 든다. 신부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 결혼은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준비과정은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복잡하고 짜증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섭섭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혼을 엎을 만큼 큰일이 아니기에 나는 시집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