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일) 핸드폰 촬영.
페르시아의 세밀화
페르시아 세밀화는 문학, 미술, 서예가 결합한 페르시아 고유의 장르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이슬람 왕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다방면의 문화와 미술을 발전시켰다.
페르시아 세밀화는 일반적으로 문학작품 필사본의 삽화였으나, 초상화와 같이 독립된 주제가 그려지기도 했다.
지배자, 상인이나 부유한 시민의 주문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판매를 위한 상업용으로도 제작되었다.
11세기 초에서 14세기 중반에 걸쳐 세밀화의 제작 기법과 양식이 크게 발전했고, 이후 사파비 왕조(1501~1736)에 이르러
궁정 공방 체계가 갖춰져 뛰어난 필사본 삽화들이 많이 그려졌다. 양식적으로는 1360~70년대에 인물 묘사나 색채 사용 등에서
고유의 양식이 확립되었는데, 바위나 산과 같은 풍경 묘사에 있어서는 중국 송(宋) 대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페르시아 세밀화에서 그림만큼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내용을 적은 글이다.
페르시아 문자의 서체 중 하나인 나스탈릭체로 그림이 그려진 앞면 일부와 뒷면 전체에 글을 썼다. 그림에 화가의 이름은 없어도
서예가의 이름은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서예가들이 전통적으로 엘리트였다는 점에서 서예를 그림보다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 세밀화는 인도 세밀화의 제작과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무굴 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재위 1530~1540)이 잠시 권력을 잃고 사파비 왕실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왕실 도서관과
궁정 공방 체계를 직접 보았고, 훗날 다시 무굴 제국의 황제로 복귀하면서 페르시아 궁정의 세밀화가 두 명을 데리고 와
세밀화를 제작하도록 했다. 이러한 이유로 무굴 제국 초기 세밀화는 페르시아 세밀도와 구도, 인물 표현, 양식 면에서 많은 유사점이 있다.
가젤을 사냥하는 바흐람 구르 / 1580~1585년,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이란, 쉬라즈, 종이에 불투명 수채와 금.
10~11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아불 카셈 피우다우시가 집피한 <샤나메>는 고대 페르시아의 시작부터 사산 왕조가 끝나는 642년까지의
역사를 위대한 왕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은 대서사시이다.
이 그림은 사산 왕조의 왕 바흐람 5세(재위 420~438)가 뛰어난 가젤 사냥 솜씨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그는 이로 인해 '바흐람구르(얼룩말 종류를 가리키는 페르시아어)'라고 부리기도 한다.
보라색으로 칠한 산을 배경으로 말을 타고 다양한 동물을 사냥 중인 바흐람 구르와 그의 수행원들을 그렸다.
화면 중앙에 빨간색 상의를 입고 활을 든 인물이 바흐람 구르이며, 그보다 조금 앞쪽에는 그가 쏜 화살에 맞아 쓰러져 있는
가젤 한 마리가 있다. 화면 바깥쪽은 각종 식물과 구름 사이에 불사조 시무르그와 사슴 등을 단색으로 그려 장식했다.
이처럼 그림 테두리와 바깥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 또한 페르시아 세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로마 황제 앞에서 폴로 경기를 하는 구쉬타습 / 16세기 후반,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이란, 쉬라즈, 종이에 불투명 수채와 금.
<샤나메>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구쉬타습은 사산 왕조의 왕자로, 로마의 공주와 정략결혼 후 볼모로 잡혀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의 부하 중 한 명이 로마 황제의 두 번째 사위가 되려 하자, 황제는 용과 늑대를 죽이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하여
구쉬타습이 용과 늑대를 몸소 물리치고 이를 부하의 공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구쉬타습 왕자와 그의 부하가 황제가 연 폴로 경기에서 실력을 뽐내는 장면이다.
왼쪽 아랫부분에 3개의 깃털로 장식한 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구쉬타습이고, 오른쪽 윗부분에 4개의 깃털이 꽂힌 관을 쓰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인물이 로마 황제이다. 말과 인물의 역동적인 자세와 구도가 폴로 경기의 긴장감을 잘 전달한다.
화면 상단에 경기를 구경하는 인물과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 일부가 그림 틀 바깥으로 벗어나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그림은 세밀화의 오랜 중심지였던 쉬라즈에서 상업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면에 금색을 아낌없이 사용하였고,
우아하고 화려한 의복과 각종 기물을 정교하게 묘사했는데, 이는 당시 쉬라즈에서 제작된 세밀화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준다.
연회 장면 / 16세기 후반,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이란, 부하라 혹은 카즈빈, 종이에 불투명 수채와 금.
죽어가는 황제 다라를 돌보는 이스칸다르 / 1580년,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이란 바쉬타트, 종이에 불투명 수채화 금.
이스칸타르는 페르시아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리키던 말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실제 역사에서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인물이지만,
페르시아의 이야기나 세밀화에서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돌아온 정당한 왕위 계승자이자 완벽한 영웅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은 이스칸다르가 부하에게 배신당해 죽어가는 페르시아의 황제 다라를 돌보는 장면이다. 다라가 이스칸다르에게 결혼 동맹을
제안했지만 이스칸다르는 이를 거절하며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했고, 이에 이스칸다르가 두려웠던 다라의 부하들이
다라를 살해했다. 이스칸다르는 비록 적이지만 다라의 용맹함을 존경했기 때문에 이 소식을 듣고 다라를 찾아가 비통해 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1580년에 완성된 24장으로 이루어진 필사본의 하나이다. 이 시기는 샤 타흐마습 1세(재위 1524~1576)의 사망 후
정치적 혼란기가 이어지면서 왕실 후원이 줄어 화가들이 지방으로 떠돌던 시기로, 특별히 주문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후원자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과장된 긴 팔다리를 가진 인물, 평면적인 색감, 굵은 선으로 표현한 이목구비 등 전체적으로 매너리즘이 드러난다.
파르하드를 방문하는 쉬린 / 16세기 중반,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이란, 쉬라즈, 종이에 불투명 수채와 금.
12세기의 시인 네자비 간자비가 지은 로맨스인 <호스로와 쉬린>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아르메니아의 공주 쉬린은 사산 왕조의 왕 호스로 아누쉬르반과 사랑에 빠졌지만, 둘의 사랑은 바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조각가 파르하드가 쉬린을 사랑하게 되고,
이를 안 호스로는 파르하드를 거대한 바위산인 비소툰으로 보내며 조각을 완성하면 쉬린을 주겠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림의 장면은 호스로 왕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쉬린이 비소툰에 있는 조각가 파르하드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화면 왼쪽에는 쉬린과 파르하드의 만남, 아래쪽에는 파르하드가 쉬린을 위해 만든 우유가 흐르는 수로,
산 중턱에는 파르하드가 만든 조각을 표현했다.
같은 주제의 그림 가운데에는 파르하드가 사용한 연장을 하나만 묘사한 경우가 많으나, 이 그림은 여러 연장을 그린 점이 독특하다.
색채의 사용이 생동감 있고 산의 모습이 양식화되어 있지 않으며, 특히 서체가 단정하고 우아하여 궁정 공방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레일리의 부족을 공격하는 노펠 /1560-70년경,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이란, 쉬라즈, 종이에 불투명 수채와 금.
12세기의 시인 네자미 간자비가 지은 비극적 로맨스인 <레일리와 마즈눈>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레일리와 마즈눈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헤어져야만 했다.
레일리에 대한 사랑으로 미치광이가 된 미즈눈을 위해 그의 친구 노펠이 레일리의 부족을 공격하고 레일리를 마즈눈에게 달라고 하였으나,
레일리의 아버지는 집안에 불명예를 안겨준 마주눈을 비난하며 끝내 요청을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화면 왼쪽에 낙타를 탄 노펠이 있고 오른쪽에는 레일리의 아버지 일행이 손을 들어 거절의 뜻을 보이고 있다.
분홍색과 밝은색을 선호하는 쉬라즈 세밀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페르시아 세밀화의 오랜 중심지인 쉬라즈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보인다.
또한 쉬라즈에서는 일찍이 판매용 세밀화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특히 수피 사원에서는 이러한 그림을 판 수익금으로
사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판매된 그림은 인도나 터키 등 가까운 이슬람 국가에도 전해졌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문화
이 전시실에서 소개하는 '인도'는 현재의 인도 공화국을 비롯하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를 포함한 남아시아를
가리킨다. 동남아시아는 인도차이나반도와 이를 둘러싼 섬들을 가리키며,
현재의 국가로는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포함한다.
삼각형 모양의 북부 지역과 역삼각형 모양의 남부 지역을 포개 놓은 듯한 모습의 인도아대륙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해 왔다.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한 북서부 지역은 아리아인, 그리스인,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침략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외래문화의 유입이 가장 활발했다.
갠지스강 유역은 비옥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를 바탕으로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 인도의 대표적 종교가 흥기했다.
데칸고원을 중심으로 한 서인도 지역은 해안가를 따라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했고, 산악지대에는 많은 석굴사원이 개착되었다.
인도아대륙 남쪽은 북쪽의 아리안계와는 구별되는 드라비다계 문화의 중심지로, 독특한 불교, 힌두교 문화를 꽃피웠다.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토착적인 전통위에 양자의 영향을 선별적으로 수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탄생시켰다. 10세기 전후로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동남아시아의 지역적 특성이 분명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베트남 중부의 참파 왕국, 캄보디아의 크메르 왕국, 타이의 수코타이 왕국, 인도네시아의 사일렌드라 왕국, 미얀마의 파간 왕국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번영과 수준 높은 문화를 잘 보여 준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술에서 인간을 닮은 신상(神像)의 출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 형상의 신은 사람들에게 친숙함과 함께 종교적 신앙심을 고취시켰고, 그들 삶의 일부가 되었다.
간다라 미술
넓은 의미의 간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에 속하는 페샤와르 분지, 스와트, 탁실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분지와 잘랄라바드 일대를 포괄한다. 이 지역은 서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러 왕조의 진출과 교역 활동을 통해 일찍부터 다양한 문화가 소개되었다.
이 지역에서 1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제작된 미술을 '간다라 미술'이라고 한다.
간다라는 미투라 지역과 더불어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으로 제작된 곳이라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동서 문화 교류의 중심지답게 이 지역의 불교미술은 인도, 헬레니즘, 로마, 파르티아적인 요소가 복합된 양상을 보인다.
꽃줄을 든 동자 / 간다라, 2~3세기, 녹색편암.
꽃줄을 든 동자 / 간다라, 2~3세기, 녹색편암.
세 명의 여인 / 간다라, 2~3세기, 회색 편암.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 남자 / 간다라, 2~3세기, 회색 편암.
트리톤 / 간다라 2~3세기, 회색 편암.
간다라 미술에는 인간 모습의 상반신에 물고기 꼬리를 지닌 그리스계 신 트리톤이나 디오니소스 계열의 모티브인
술이 담긴 가죽 보따리를 든 젊은이, 꽃줄을 든 동자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다양한 문화를 수용한 이 지역 미술의 특징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 남자'와 '세 명의 여인'의 경우 신체 표현, 자세, 복식에서 고대 지중해 미술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보살과 숭배자 / 인도 마투라, 3~4세기, 사암.
마투라는 간다라와 함께 초기 불상의 탄생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담황색 반점이 있는 붉은 사암이 조각의 재료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부조는 스투파 등의 표면을 장식하는 판석으로 추정된다. 장방형의 판석 사방에 구획선을 도드라지게 조각했다.
원래는 보살을 중심으로 양측에 공양자와 천인(天人)이 대칭으로 배치되었을 것이다.
미륵보살 /간다라 2~3세기, 석조.
간다라 지역에서 제작된 여러 유형의 보살상 중에서 미륵보살은 판별하기가 가장 쉽다.
미륵보살은 머리카락을 리본 모양이나 커다란 상투 모양으로 묶고 왼손에는 물병을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보살상은 왼손이 파손되어 물병을 확인할 수 없지만, 미륵보살의 전형적인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보살의 뚜렷한 이목구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옷자락, 사실적으로 표현된 장신구는 간다라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공양자 / 간다라 스와트, 3세기, 회색 편암,
스와트 출토 불상 중에는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에 눈을 크게 뜨고, 홍채와 눈동자가 또렷이 표현된 예가 많다.
이 공양자상 역시 얼굴 윤곽과 눈의 표현에서 스와트 불상의 특징이 확인된다. 오른손에 연꽃 봉오리를 들고 왼손은 허리에 댄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불, 보살이 입는 하의인 군의(裙衣)를 입고 상반신의 숄은 걷어 모아서 오른쪽 어깨에 걸쳤다.
머리 중앙에 큰 장식이 있는 터번을 하고 있으며, 단순하게 표현된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다.
부처의 머리 / 간다라, 2~3세기, 회색 판암.
보살의 머리 / 간다라, 2~3세기, 회색 판암.
1세기 무렵 간다라 지역에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 나타났다. 동일한 시기에 등장한 마투라 지역 불상과는 달리, 간다라 불상은 헬레니즘
미술의 자연 주의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불상은 법의 만 입은 모습으로, 보살상은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세속인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간다라의 불상은 대부분 석가모니를 나타내 것이며, 보살상의 경우 싯다르타, 미륵보살, 관음보살 상이 제작되었다.
(좌) 보살 / 간다라, 3~4세기, 스투코,
(우) 부처의 머리 / 간다라, 3~4세기, 스투코.
스투코는 석회, 모래, 물을 섞은 조각 재료이다.
먼저 돌과 점토로 심을 만들고 그 위에 스투코를 씌우거나, 스투코만으로 형태를 만든다.
그다음 표면에 얇게 회칠을 한 뒤, 그 위에 채색해 완성한다.
현존하는 간다라의 스투코 상은 4~5세기에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탁실라 지역에서는 3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예가 발견되기도 했다.
1세기 무렵 간다라 지역에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 나타났다. 동일한 시기에 등장한 마투라 지역 불상과는 달리, 간다라 불상은 헬레니즘
미술의 자연 주의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불상은 법의 만 입은 모습으로, 보살상은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세속인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간다라의 불상은 대부분 석가모니를 나타내 것이며, 보살상의 경우 싯다르타, 미륵보살, 관음보살 상이 제작되었다.
(좌) 아이들을 수호하는 모신
(중) 미투나, 사랑을 나누는 남녀
(우) 시바와 파르바티
아이들을 수호하는 모신 / 인도, 마디야 프라데시 또는 라자스탄, 굽타 왕조, 6~7세기, 사암.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부조의 중앙에는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인이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모습은 불교의 하리티나 자이나교의 암비카와 같은 여신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리티는 원래 아이들을 잡아먹는 악귀였으나 부처에게 감화된 후 불교의 신이 되었고,
암비카는 자이나교에서 풍요의 여신인 약시 중 하나로 여겨졌다. 두 여신 모두 아이들을 수호하는 모신(母神)의 역할을 담당한다.
미투나, 사랑을 나누는 남녀 / 인도, 라자스탄 또는 우타르프라데시, 11~12세기, 사암.
한 쌍의 남녀가 에로틱한 자세로 표현된 '미투나' 상은 인도 미술에서 인기 있는 모티브 중 하나로, 풍요와 길상의 의미를 지닌다.
원래 사원 벽을 장식했던 이 조각에서 남성은 여성의 허리 끈을 풀고 있고 여성은 남성의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당기고 있다.
남녀 모두 도티를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과 긴 눈매가 인상적이다.
시바와 파르바티 / 인도 라자스탄, 9~10세기, 사암.
굽타 시대 이후 북인도에서 유행한 시바 형식 중 하나로, 시바 사원의 외벽에 마련된 독립된 성소에 묘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시바의 숭물인 황소 난디를 탄 시바와 파르바티를 중심으로, 기단 양측에는 이들의 아들인 가네샤와 카르티케야가 앉아 있고,
윗부분에는 브라흐마, 비슈누 그리고 브라흐마니를 비롯한 7명의 모신(母神)이 등장한다.
인간을 닮은 신들
인도 미술에서 인간의 형상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 미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많은 신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들은 종종 감각적이고 에로틱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상당히 '세속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표현이
종교적 맥락에 등장하는 현상은 인도의 미술뿐만 아니라 신화, 문학, 음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신체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신성(神性)의 고귀함과 초월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여겨졌고,
신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신성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성스러운 커플이 즐겁게 사랑을 나누는 신상(神像)을 보면서 신도들은 자신들도 그러한 축복을 받기를 희망했다.
보살 / 간다라 2~3세기, 회색 편암.
'보살'은 원래 깨달음을 얻기 전의 석가모니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대승 불교가 널리 세력을 떨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며 다른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를 가리키게 되었다.
보살은 세속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차림새를 한 왕공 귀족의 모습을 모델로 한다.
이 상은 '도티(dhotl)'라고 불리는 하의를 걸치고, 상반신에는 숄을 두르고 여러 가지 장신구를 착용했다.
크메르 미술.
크메르 제국은 자야바르만 2세(재위 802~834)에 의해 세워졌으며,
전성기에는 지금의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크메르의 왕은 스스로를 시바신이나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 간주했고, 숭배하는 신을 위해 사원을 건립했다.
특정한 신에 대한 숭배를 통해 왕의 권위를 부여받고 자신을 신격화하는 이러한 의례를 데바라자라고 불렀다.
크메르의 수도였던 앙코르에는 저수지, 운하, 힌두교와 불교 사원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유적은 앙코르와트이다.
이는 수리아바르만 2세(재위 1113~1150)가 비슈누신을 위해 세운 힌두교 사원으로,
왕이 죽은 후에는 비슈누신과 하나가 된 왕을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크메르의 많은 건축물은
다양한 신상과 조각으로 장식되었는데, 온화함과 활기가 조화를 이룬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가네샤 /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10세기 후반, 사암.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인 가네샤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숭배의 대상이며, 인간의 몸에 코끼리 머리인 것이 특징이다.
신도들은 가네샤가 장애물을 없애 주고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 이전 시기부터 가네샤를 숭배했다.
비슈누와 락슈미 /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12세기, 사암.
비슈누는 여러 화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 재난에 처한 세계를 구제하는 우주의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다.
흔히 하나의 얼굴에 네 개의 팔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비슈누의 배우자인 락슈미도 비슈누와 마찬가지로 정적인 자세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위엄 있는 신의 모습을 전달한다.
비슈누
우마 /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12세기 말~13세기 초, 사암,
우마는 시바의 배우자로 파르바티라고도 불리는 여신이다.
힌두교의 여신 중 우마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정숙한 부인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이 상은 특히 감은 눈과 살짝 올라간 입술이 만들어내는 온화한 미소가 매력적인데, 이러한 얼굴 표현은 바욘 양식 조각상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바욘 양식은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를 이룬 자야바르만 7세(재위 1181~1218년) 시대의 미술과 건축을
일컫는 말로, 그가 세운 대표적인 사원인 바욘 사원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히말라야 지역의 불교조각
히말라야산맥 주변에 위치한 카슈미르, 라다크, 네팔, 티베트, 부탄에서는 금속으로 된 밀교계 불상이나 보살상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 지역들에서는 인도 후기 불교의 신앙과 미술 양식이 지역 전통과 융합된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티베트와 인도 사이의 카트만두 분지에 위치한 네팔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교역과 미술의 중심지였으며, 오랫동안 힌두교와 불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양식과 도상에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티베트에는 7세기에 불교가 전래하여 8세기 말에 국교가 되었으며,
10세기 후반부터 급속히 발전하였다. 이에 00라 인도 후기 불교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불교미술이 펼쳐졌으며,
후대 00는 중국과도 교류하여 중국에서 티베트 양식이 널리 유행하기도 하였다.
문수보살 / 티베트, 14세기, 황동.
14세기 티베트에서 만든 문수 보살상이다. 문수보살은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며 수많은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 상은 그중 하나인 아라파차나를 표현했다.
'아라파차나'라는 이름은 불교의 다섯 가지 기본 가르침에 해당하는 다섯 음절인 '아, 라, 파, 차, 나를 나타낸다.
오른손엔 무지(無知)를 끊어내어 절대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 칼을 들고 있고, 왼손으로는 솟아오른 연꽃 줄기를 잡고 있다.
연꽃 위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경전이 올려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관세음보살 / 네팔, 14세기, 금동.
14세기 네팔에서 만든 관세음 보살상이다.
오른쪽 엉덩이를 살짝 내민 유연한 삼 곡(三曲) 자세에 오른손 바닥을 밖으로 향하는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다.
왼손에는 원래 연꽃 줄기를 잡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두껍게 금박을 입히고 목걸이, 팔찌, 허리띠 등 장신구에 색색의 보석을 박은 것은 이 시기 네팔 불교 조각의 특징이다.
부처 / 티베트, 15세기, 황동.
15세기 티베트 양식을 잘 보여 주는 황동 불상이다.
부처가 마왕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모습에서 유래한 손 모양인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탄탄하게 살집이 오른 몸과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며, 정수리에는 둥근 구슬 모양의 계주가 올려진 육계를 뚜렷이 묘사한 나발이 덮고 있다.
문수보살 / 인도, 팔라 왕조, 12세기, 흑암.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이 비상(碑像)에서는 한쪽 다리를 내린 유희자의 자세로 사자 위에 앉아 있고
손으로는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문수보살의 양측에는 협시보살이, 위쪽에는 5명의 작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다.
기단의 중심에는 코끼리 머리가, 측면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신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비슈누 / 인도, 팔라왕조, 11~12세기, 흑암.
비슈누는 힌두교의 3대 주신(主神) 중 하나이자 비슈누파의 숭배 대상이다. 이 비상(碑像)의 중심에는 비슈누가 서 있고, 양측에는
부인인 락슈미와 하천의 여신 사라스와티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비슈누는 높은 보관을 쓰고, 목걸이, 팔찌, 발찌, 귀걸이 등
각종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며, 네 개의 손에는 곤봉, 연꽃, 차크라(원반), 고동을 들고 있다.
보관을 쓴 부처 /인도, 팔라 왕조, 10 -11세기, 석조.
인도에서 보관을 쓴 모습의 부처는 6세기경에 등장하여 10세기 이후 보편적인 도상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엄숙하고 육중한 느낌을 주는 얼굴과 섬세하게 묘사된 장신구의 조화에서 팔라 시대 조각가의 뛰어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부처의 생애를 나타낸 불비상(佛碑像) / 인도, 팔라 왕조, 10세기, 석조.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중요한 8가지 사건(八相)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의 부처는 항마촉지인의 자세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주위로 왼쪽 하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탄생,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열반, 성난 코끼리를 다스린 사건,
사위성에서 기적을 일으킨 장면, 원숭이가 꿀을 바치는 장면이 배치되었다. 광배에는 연기법송이, 기단에는 발원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소마스칸다 / 인도, 촐라 왕조, 11세기, 청동.
소마스칸다는 촐라 왕조 때 특히 유행한 도상으로서,
시바와 그의 배우자인 파르바티, 그리고 둘 사이의 아들이자 전쟁의 신인 스칸다로 이루어진다.
보통 4개의 팔을 가진 시바가 가장 크게 표현되고 그 옆에 그보다 작게 표현된 파르바티가 있으며, 가운데에 스칸다가 가장 작게 자리 잡는다.
현재 이 상에서는 시바와 파르바티 상만이 남아 있고, 스칸다 상은 사라진 채 중앙에 작은 방석만이 남아 있다.
파르바티 /인도, 촐라 왕조, 13세기, 청동.
파르바티는 힌두교에서 이상적인 여성상과 생산력을 상징하는 여신이며, 시바의 배우자이다.
이 상은 왼팔을 우아하게 내려뜨려 몸이 만들어 내는 삼 곡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파르바티의 아름다움과 관능미, 생식력은
단지 육체적인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차원에서 신의 본질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정신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팔라의 신상
팔라 왕조는 8`12세기 동안 동인도에 위치한 비하르 주와 서뱅갈 주, 방글라데시 일대를 지배했다.
팔라 왕조는 같은 지역에서 11~13세기에 번성했던 세나 왕조와 함께 팔라~세나 왕조라고도 한다.
이 시기에는 불교와 힌두교가 크게 융성했다. 팔라가 지배한 동인도 지역은 오래전부터 불교의 중심지였다.
석가모니가 생전에 주로 활동했던 마가다 왕국과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불교 교학의 중심지인 날란다 사원이 위치한 곳이다.
힌두교의 경우 팔라 시기 전반에 걸쳐 비슈누 숭배가 유행했다. 팔라 시대 신상은 인도 조각사의 고전기로 꼽히는 굽타 시대의 조각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형식화되고 경직된 느낌이다. 그러나 기교가 뛰어나며, 복잡한 모티브와 과장된 장식은 독특한 생동감을 전해 준다.
촐라의 신상
촐라 왕조는 인도의 타밀족이 세운 나라로, 북부의 팔라 왕조와 동시대인 9~13세기에 번영했다.
인도 남부의 탄조루와 마두라이 등을 포함하여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까지 영향력을 미쳤고, 해상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했다.
촐라 시대에는 힌두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드라비다 형식의 힌두교 신전이 조성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앞선 주조 기술이 반영된 예술적으로 훌륭한 청동상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만물의 생동을 조형적으로 구현한
춤추는 시바가 힌두교 신상의 대표적인 예다. 시바의 춤은 세계와 존재의 창조, 존속, 파괴를 의미하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성을 떠나다 / 간다라, 2~3세기, 회색 편암.
사냥꾼과 옷을 바꾸다 / 간다라, 2~3세기, 녹색편암.
부처와 선인 / 간다라, 2~3세기, 녹색편암.
간다라 지역에서 발견된 이야기 부조는 원래 불교 사원의 성소(聖所)와 스투파의 표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현존하는 유물에서는 대략 10가지의 본생(本生)과 70가지의 불전(佛傳)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부조들은 부처의 가르침과 보살행의 중요성을 신도들에게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첫댓글 소중한 정보 고맙습니다
인도의 다양한 문화
스투파 간다라 등
국립중앙박물관 탐방 가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