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슈니츨러 (Arthur Schnitzler) - 1862~1931. 19세기 말 헤르만 바르 등과 함께 '청년 빈파'의 대표작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내과전문의가 되었다. 그는 당시 빈에서 활동하고 있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프트 등과 겨룰 만한 대표적인 문화 예술인이자, 호프만스탈, 헤르만 바아 등과 교류했다. 프로이트로부터는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1895년 희곡 '아나톨'에 이어 '연애 장난'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극작가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히게 되자 아예 의사직을 그만두고 작품활동에만 전념했다. 같은 해 소설 60여 편과 연극 30여 편, 작품 노트, 잠언록, 자서전, 일기 등을 남겼다. '바우오른펠트상', '그릴파르처상'을 수상하였다. 빈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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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니츨러와 큐브릭의 만남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953년 25세의 나이로 '공포와 욕망'를 발표한 이래 단 13편의 극영화를 제작했다. 느와르영화부터 공상과학영화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은
단 한편으로서 각각의 장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을 정도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사에 미친 영향은 크다. 스탠리 감독은 '아이즈 와이드 셧'을 제작 중이던 지난 1999년 71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다. 큐브릭 감독의 유작이 된 '아이즈 와이드 셧'은 그가 일생에 꼭 영화화하고 싶은 문학작품으로 꼽았던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를 원작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작 초기부터 화제가 되었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젊은 시절 이 작품에 크게 매료된 것으로 전해진다. 큐브릭 감독은 예정한 제작 기간을 훨씬 넘기며 이 영화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또한 당시 실제 부부였던 탐 크루즈, 니콜 키드먼이 캐스팅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큐브릭 감독의 사망 이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후반 편집 작업에 참여하여 완성되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흥행에 참패하면서 큐브릭 감독에 의해 편집되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꿈의 노벨레
'꿈의 노벨레'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노벨레(novelle)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노벨레는 '신기하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예술적 구성으로 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로 재현한 비교적 짧은 산문 또는 운문 작품'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노벨레가 산문 또는 운문으로 표현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노벨레에 함축된 의미가 많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 의미를 알았을 때 비로소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스물네 명의 구릿빛 노예들이 호화찬란한 갈레선의 노를 저었습니다. 이 배는 암기아트 왕자님을 모시고 고향, 칼리프(회교 국가의 전제적인 왕)의 궁전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왕자님께서는 진홍빛 망토로 몸을 감싸고 갑판 위에 홀로 누워 계셨습니다. 검푸른 저녁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그리고 왕자님의 시선이...'
- 본문 첫머리 -
이는 주인공 부부(프리돌린, 알베르티네)의 딸이 잠에 들기 전 읽는 동화책의 일부이다. 여기서 '스물네 명'은 하루 24시간을, '노예들'은 알 수 없는 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왕자님이 입은 '진홍빛 망토'는 감춰진 성적 욕망, 저녁 하늘에 박힌 '별'들은 이룰 수 없는 꿈을 의미한다. 성적 욕망과 꿈은 '꿈의 노벨레'를 구성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이 동화가 끝부분은 읽다가 만 것으로 아이는 이 때 잠이 든다. 슈니츨러는 의도적으로 여기서 동화를 끝낸다.
알베르티네와 프리돌린, 꿈과 현실
노벨레는 '인간이 무엇이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를 문제로 삼는 소설(roman)과 달리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다 더 중요시 여긴다. 때문에 대체로 노벨레의 주인공은 기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한결같이 '새롭고 진귀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충족되기에는 너무나 비도덕적이거나 관습에 위배되는 일인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좌절과 절망을 체험하거나, 죽음으로 치닫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깜짝 놀랄만한 획기적인 행운을 맞이한다.
새롭고 진기한 것을 추구하다 보니 노벨레 작가들은 꿈의 모티브를 통해 테마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슈니츨러는 아이가 읽던 동화를 아이의 엄마인 알베르티네의 꿈으로 연결시킨다.
'...어느 순간 갑자기 당신이 창밖에 서 있더군요. 갈레선의 노예들이 당신을 이곳까지 모셔왔는데 어둠 속으로 막 사라지는 것이 보였어요. 당신은 매우 비싼 옷을 입었더군요. 금과 은으로 장식된 옷 말이에요. 그리고 은 수술이 달린 단도를 옆에 차고서 날 번쩍 안아서 창문 밖으로 내려줬어요. 저도 그때만큼은 공주님처럼 화사하게 차려입었고요...'
- 본문 내용 中 -
꿈의 노벨레에서 꿈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성적 욕망이 발현되는 곳으로 그려진다.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과 닿아있는 부분이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억압된 소망과 그것을 억압하는 심적 힘과의 갈등이 극화돼 이미지로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 알베르티네의 꿈에는 그녀가 평소 느꼈던 욕구들이 투영돼 있다. 지난 여름 강렬한 유혹을 느꼈던 해군 장교가 등장하고 그녀의 남편 프리돌린은 그녀를 대신해 십자가형을 받는다.
알베르티네의 꿈은 프리돌린의 실제 체험과 이중 구조를 형성한다. 프리돌린은 알베르티네의 충격적인 고백(지난 여름 해군 장교에게 사랑을 느껴 모든 것을 버릴 결심까지 했었다는 것)으로 방황한다. 정숙한 여자로 알았던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혐오가 교차하면서 하룻밤을 밖에서 지낸 프리돌린은 그동안 우연히 알게 된 비밀 연회에 참석한다. 비밀 연회는 사람들이 실제로 성적 욕망을 분출하는 혼음의 장소였다.
아이즈 와이드 셧 다시 보기
아이즈 와이드 셧은 앨리스(니콜 키드먼)의 꿈이 부각되지 않고 빌(탐 크루즈)이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반면 원작은 알베르티네 위주로 전개되며 그녀의 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영화는 앨리스가 꿈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을 축소시켜 이해를 어렵게 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아이즈 와이드 셧은 익숙하지 않은 문학 장르인 노벨레와 유명한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를 만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슈니츨러가 말하고자 한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끝에 닿아있는 죽음을 화려한 영상미로 표현했다. 전체적 내용이 난해한 측면이 있지만 원작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충분히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흥행 성적과 상관없이 훌륭한 예술 영화 한 편을 감상해 보는 것이 어떨까.
Digital Ewha World / 최영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