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불서회 독후감(법명) 2024.5.23
숲속 성자들(경전 속 동물 마음 엿보기)
- 이미령 지음(담앤북스)
■ 책 소개
책은 경전 속 동물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붓다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동물에 빗대어 사람을 말하는 동물이야기. 동물의 입을 빌리고, 동물의 지혜를 빌린다. 가장 쉬운 언어로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과 지혜를 깨우쳐 준다.
■ 내용 요약
1부: 작고 여린 동물. 새, 벌, 거북.
· 비둘기의 목숨 무게는 왕의 목숨 무게와 같다. 작고 힘없는 ‘乙’도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다. 새의 지저귐을 듣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근심이 사라진다 →새들의 지저귐은 붓다의 가르침이기 때문.(p.31). 아침 새소리는 탐. 진. 치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지혜를 품으라는 붓다의 가르침(p.33)
· 꿀벌이 꽃으로 날아가 그 빛깔과 향기를 다치지 않고서 달콤한 맛만 취한 뒤 날아가 버리듯이 성자는 마을에서 이렇게 탁발한다.(p.42)
· 거북(5천만년에 걸쳐 갈비뼈가 진화해 딱딱한 등껍질로 됨). “내가 그 무거운 등딱지를 평생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사람들이 평생 집 한 채 장만하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참 닮은꼴입니다.” 집은 안식처. 그러나 애착을 갖게 되면 의지처가 아닌 파멸처가 된다.
※ 거북이 자기 등딱지에 팔다리를 당겨 넣듯 수행자는 생각을 거두어들여야 한다.(사람의 여섯 가지 문을 단속하여, 집착하고 휘둘리지 말라)
2부: 친숙하고 귀여운 애완동물들. 고양이, 강아지, 토끼, 사슴.
· 고양이: 수행자, 당신은 고양이. →아름답다. 지켜보다. 유연하다. 조심스럽다.
※ 말만 하면 논쟁이 벌어지고, 논쟁만 일삼다 정작 우리는 아무도 평상심으로 살지 못하게 된다.(남전 스님의 고양이 일화)
· 개: 인간의 영원한 친구.→ three dog night(개 세 마리의 온기로 인간은 추위를 이겼다). 개는 사람을 자기가 복종해야 하는 주인이 아니라 곁에서 늘 함께 지내며 체온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는 친구(p.72). 사리불의 제자 균제의 전생(개) 인연. 인간의 어리석음. 잘못을 저질러도 진위를 밝혀 내려하지 않고 무조건 약한 자에게 죄인의 프레임을 씌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우두머리 개(석가모니 붓다의 전생)의 눈으로 지적.
· 토끼: "토끼인 내가 맹수처럼 뭇 동물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습니다. 깊고 깊은 지혜를 얻어 현자가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두 다리로 내가 헛짚어 내달려 온 그 길을 되돌아가, 무엇이 나를 끝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날뛰게 했는지 바로 보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본다는 것, 이것은 나약한 중생이 제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첫 번째 시도입니다.(p.93)"
· 사슴: 세상에서 미각에 탐착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을 것이다. “집에 대한 탐착도 있고 교제에 대한 탐착도 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음식에 대한 탐착이다.”(자타카. p.99)
※ 붓다는 우리가 진정을 맛 들여야 할 것으로 참선을 권하고 있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자세를 가다듬고 천천히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사방으로 활짝 열린 감각 기관을 내 안으로 거두어들여 보기를 권합니다.(p.107)
3부: 사람들의 편견으로 고통 받는 동물들. 원숭이. 곰. 여우. 뱀. 나귀
· 원숭이:
※ 심원의마(心猿意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숭이처럼 쉴 새 없이 요리조리 돌아다니고, 뜻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길길이 날뛴다’는 뜻이지요. 마음이란 녀석이 그렇습니다. 수행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기보다. 마음을 제대로 안주시킬 어떤 지점에 잘 놓아두는 연습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들 원숭이도 단단한 나뭇가지를 만나면 그곳에서 쉽니다. 바로 그렇게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 수행이겠지요.(p.115)
원숭이같이 한순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시여! 번뇌의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마음이 날뛴다지만 그 나뭇가지에 의지해 하룻밤 편히 쉬는 원숭이처럼, 번뇌 속에서 번뇌를 딛고 서서 평화로우시기를!(p.119)
· 여우: 여우가 제석천에 법문하다. “태어나면 죽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저 살기만 탐하고 어떤 이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생에 집착하지 않고 목숨이 다하여 생을 마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죠. 왜냐하면 복덕을 쌓았기에 다음 생이 두렵지 않은 까닭입니다. 착한 사람이 죽는 것은 죄수가 감옥을 벗어나는 것과 같고, 악한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죄지은 자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p.123)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살로서 실천해야 할 수행을 쌓으면 됩니다.(육바라밀 수행) 지혜와 방편을 키우는 것이지요.”(p.126)
· 곰: 개가 실제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라면 곰은 상상의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다.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동물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의 숭배를 받고 경애의 대상이었던 곰은 중세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위상이 추락했다. 특히 서양 중세교회에서 거론한 7대 제악은 자만, 탐욕, 음욕, 분노, 탐식, 시기, 게으름인데 이 7 가지를 각각의 동물에 비유하고 있지요. 곰은 여기에서 음욕 이하 다섯 가지 상징적 동물에 다 등장합니다. 곰은 알맹이 없는 난해한 세속의 학설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뱀: 붓다의 법문을 맨 처음 들은 ‘행복’
(법문)
“진리를 배운 자, 보는 자, 만족한 자에게는 멀리 떠남이 행복이고, 생명을 향해 자제할 줄 알고 이 세상에서 생명을 향해 폭력을 떠나는 것이 행복이다. 살아가면서 탐욕을 떠나고 뛰어넘는 것이 행복이며, ‘나야!’라는 교만을 마음에서 없애는 것, 이것은 가장 큰 행복이다.”( p.154 -마하박가-. )
· 나귀: 후기 이집트 역사에서 세트(Seth) 신의 동물로 여겨지다가 불명예스러운 인간의 평가로 전락. 경전을 비방한 자가 받게 되는 과보(나귀의 노역). 경거망동해서 귀한 것을 부수는 존재. 생긴 모습 때문에 외설스러운 행위자를 빗대어 비난 받는다.
4부: ‘동물, 그 이상의 존재’
말, 소, 사자, 호랑이, 코끼리 같이 불교를 상징하는 동물들이 소개된다. 붓다는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선명한 가르침을, 호랑이의 용맹, 사자의 위엄, 코끼리의 우직함으로 비유를 들어 깨우침.
· 말: 명마의 조건
네 부류가 있습니다.
조련사에게 잘 길들여진 명마는 마부가 들고 있는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려 나갑니다. 물론 마부와 한 몸이 되어 있기에 어느 곳으로 달려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채찍이 털에 닿아야 마부의 뜻을 알아차리고 달려 나갑니다. 세 번째 부류는 마부가 휘두른 채찍이 살갗에 닿아야 달려 나갑니다. 다시 이보다 더 못한 네 번째 말은 살갗뿐만 아니라 뼈까지 때려야 달려 나가지요.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겠다는 바람을 품는다면 그에게는 이제 혹독한 조련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의 시간이며, 그 조련을 거쳐야 최고의 명마(수행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 소: 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동물. 쟁기를 끌고 밭을 갈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년 이전. 우유와 고기까지 사람들에게 준다. ‘나의 것’이라는 재산의 대표 격.
‘중생에게 배고픔은 가장 무서운 병’이고 ‘나의 것’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충격인지 재산을 잃어본 사람은 압니다.(사람의 소는 부동산, 자동차, 자식, 명예, 권력 등 일생을 쏟아 붓고 찾아 헤매는 사람마다 다양.)
붓다가 사람들에게 찾기를 권하는 소는 ‘사람들의 참다운 성품’ 본래성품, 즉 본성(本性)
(p.191-192)
십우도: 진정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내 본래 성품[소]을 찾아야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소’를 잃어버린 지 오래이건만 사람들은 정작 잃어버린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찾아 나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지요.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를 찾아야겠다고 나서는 일입니다[尋牛]. 소는 어디로 갔을까요? 찬찬히 주변을 살피며 소의 발자국을 찾아봐야 합니다[見跡]. 발자국을 찾아서 따라가다 보면 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見牛]. 발견했다면 조심스레 다가가서 대번에 소를 붙잡아야 합니다. 자칫 놓칠 수가 있으니 온 마음을 다 쏟고 지혜를 짜내서 붙잡아야 합니다[得牛]. 그런데 자유로이 노닐던 소가 고분고분 말을 들을 리 없습니다. 어르고 달래어서 소를 길들여야 합니다[牧牛]. 그렇게 해서 길들여진 소는 자신의 등을 내어줍니다. 이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騎牛歸家]. 소를 우리에 넣으니 그 소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습니다[忘牛存人].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소도 사람도 사라집니다[人牛俱忘]. 날이 밝으면 사람은 다시 소를 몰고 밭을 갈며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잡니다[返本還源].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번화한 시장 통으로 가서 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소 찾는 방법을 일러줍니다[入纏垂手].
세상은 소를 많이 가진 사람이 최고라 하지만 사람은 남이 가진 소를 세기만 할 뿐 자기 소를 헤아릴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자기 삶을 남과 비교하고 세상의 가치기준에 맹목적으로 휘둘립니다. 세상이 부의 기준으로 삼는 소가 진짜 우리가 찾아 헤매야 하는 소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정말로 찾아야 하는 소인지를 생각하고, 그 소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찾아야합니다.
· 사자:
사자답게 만드는 두 가지 덕목
그 첫 번째 마음가짐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향해서나 한결같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마음가짐은 대상을 정확히 꿰뚫는다는 점입니다.
세속의 재물을 상징하는 소는 우리에게 “참다운 성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안겨 주고, 백수의 왕 사자가 벌레 한 마리에 잡아먹힐 수 있다는 사실은 “교만에 사로잡혀 마음공부에 게을러지면 끝내 무너지고 만다.”는 경고를 전한다.
· 코끼리: 코끼리는 온몸을 돌려서 앞을 보고 곧바로 보며, 목을 돌려 여기저기를 흘깃 보지 않는다. 그처럼 수행자는 온몸을 기울여서 앞을 보아야 하고 좌우를 흘깃거리거나 고개를 쳐들어 위를 보거나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아서는 안 되고 멍에의 폭만큼의 앞을 보며 걸어야 한다. 《밀린다 왕문경》 중에서
- 숲 속에서 붓다와 호젓하게 지낸 코끼리. 마음에 맞는 친구를 얻지 못했다면 세상을 비관하지 말고 주눅 들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한동안 숲속 생활을 즐기던 붓다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려갔고 나 역시 무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붓다는 사람 속에 있어야 하는 존재이고 나는 그들을 거느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p.223-224)
산다는 것은 관계 속에서 지내는 일입니다. 관계는 나를 살게 해주는 힘이 되고 내가 기댈 언덕이 되지만 자주 나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무리지어 다니는 코끼리조차도 이렇게 숲속으로 홀로 들어와 여유를 되찾고, 사람들에게 온전한 기쁨과 해탈의 경지를 들려주고자 원을 세운 붓다조차도 이렇게 숲 속에서 홀로 한가한 경지에서 노닙니다. 이따금 관계에서 과감히 벗어나도 괜찮습니다.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면 그렇게 해야지요. 그래야 힘을 얻어 다시 세상 속에서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붓다가 이 세상에 출현한 이유는 딱 하나이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이 붓다 자신과 똑같은 붓다가 되도록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붓다의 구제를 받기 위해 불교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되기 위해 마음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묘법연화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강조하는 경입니다. 당신은 중생으로 끝날 운명이 아니라 부처가 될 운명이라고!
■ 책을 읽고 나서
▲ 모든 존재는 하늘 아래 동등하다.
인간이 지상의 최상위 포식자,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만심을 낮추고 연기론에 입각해서 이 세상을 살펴보면,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서로서로 돕고 먹이사슬로 돌고 도는 순환 시스템으로 보인다. 지구 역사 45억 년, 생물 탄생 역사 37억 년 이래 지금 존재하는 위대한 생존능력은 똑같다고 인정해야 한다. 나름대로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생존을 이어왔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신의 자비가 아닐 것이다. 2,600여 년 전 붓다의 깨달음과 경전의 가르침이 전해져 오면서 그중 동물 이야기가 예화로 섞여 있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친근하게 설명하기 위해, 동물 그들의 입을 빌리고 지혜를 빌려 비유로 쓰고 있을 뿐이다. 전적으로 인간의 눈, 인간의 수준에서 보는 동물들 모습이다.
▲ 경전 속 동물들의 깨우침.
동화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쉽게 읽혀졌다. 그러나 씹어볼수록 동물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깊고 절절하다. 이솝우화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 내 마음, 원숭이 마음.
가장 친하고 가까운 사이, 아내와는 자주 다툰다. 心猿意馬! 마음이란 녀석이 하는 짓거리에 나도, 아내도 순간순간 따라서 춤춘다. 며칠전,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걱정되는 노년 삶이 자식들도 신경씌이는가 보다. 아내는 한사코 번듯한 집에서 때깔 나게 살고 싶단다. “아파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당신은 빠져!” 틀린 말은 아니다. 허나, 아내가 한 말에 울컥 화나고 분한 마음이 일어났다.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멘 붕이 오는 성질머리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
먹던 저녁 밥상에서 거칠게 일어서 나왔다.
그날 밤은 길었다.
그런데도 시간은 술술 손가락 사이로 흘러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작년 초,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 언덕 위에 앉아 한 움큼 모래를 쥐었다. 그냥 스르르 흘러 내렸다. 모래시계!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화내고 분하게 여기며 낭비하다니…….탐. 진. 치 어둔 마음, 빨리빨리 버리지 않으면 나만 괴롭다. “난 이래서 화나고 분하다!”거기까지만 해야 한다. ‘너’를 시비하면 그건 싸움이고 남의 영역 침범이다. 겨우 수습하고서야 잠이 든다. 일희일비, 마음은 요물이다.
▲ 나, 명마의 기준에서 따져보니 꼴찌!
곧 75세가 된다.
75세, 생존확률 54%!
100명을 기준으로 보면 살아있는 사람이 54명일 확률이라는 것.
벌써 6.25전쟁 통에 태어난 내 또래는 절반 만 살아남았다는 통계다.
30%, 5%! 80대, 90대에 들어서면 생존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믿기지 않으나 과학이고 사실이니 어쩌랴.
지난 일요일, 텃밭에서 열심히 풀 뽑고, 말뚝 박아 지줏대 세우고, 진딧물 약 뿌리며 허둥대다가 카톡을 보니, 가까운 지인(선배)이 갑자기 죽었다는 부고. 80 갓 넘었을 터였다. 눈 앞이 멍해졌다.
7년 차이 세월은 멀리 있게 느껴졌고 90, 100세 되는 어른이 집안에 아직 살아계시니, 남의 일 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게 살고있었다.
근데, 덜컥 뒷덜미를 움켜쥐듯 느낌이 왔다. 어? 가까이 왔구나! 내 지금 뭘 하고 있지?!
정신없이 살 때가 아닌데……. 사자, 저승사자가 저기 어디엔가 오고 있다!
(p.181)
붓다는 길들이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영원할 줄 아는 세상 사람들. 그러나 어떤 이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저 먼 곳 사람들의 생로병사 소식을 듣기만 해도 스스로의 문제로 여기고 깊이 사유합니다. 첫 번째 명마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지요. 두 번째 사람들은 다른 이의 생로병사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가 그들의 늙고 죽음을 목격하면 비로소 자신의 생사 문제라 여기며 사유합니다. 세 번째 사람들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을 보고서야 자신의 문제라 여기고 사유하며, 네 번째 사람들은 제 자신이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 덧없구나.”라며 사유합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파토다경’인용.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세 번 째는 틀림없고, 네 번째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日暮途遠! 해는 저물어 가는데, 갈 길은 멀기만 하구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