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룡사길을 빠져나와 5번 국도를 타고 현풍으로 향합니다 ~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현풍읍내를 뚫고서 내비아가씨가 가르쳐 주는대로 비슬산을 바라보며 유가사를 찾아 갑니다.
20여년전 처음 찾았을때, 건축과 자연이 만나서 이룰수 있는 최선의 형태라 여겨졌던 절간의 모습은 기대까지는 않했지만
입구부터 너무도 낯설게 변해버린 절간의 모습에 씁쓸하지만, "세상은 변해간다~"는 석가의 말씀을 되내이며 그러려니 합니다...
비슬산의 바위는 변치않고 있어 그나마 위안 삼으며, 저 산위에서 오래전 벌어졌던 관기와 도성의 신화적인 삶들을 적은
일연의 <삼국유사> 이야기로 약팔이를 시작해 유가사의 '유가/요가'와 밀교와 유식론으로 번지다가 끊고서,
옛날의 절간다웠던 기억들을 들려 줍니다 ~
지금과 옛적의 유가사를 같이 봅니다 ~
아래의 유가사 옛그림은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관조스님께서 찍으신 것이랍니다...
지금의 절 입구에는, <삼국유사>의 비슬산 관련 이야기를 큰 돌에다 잔뜩 새겨서 절앞 이정표로 삼고 있는데 ~
일연이 그의 반평생을 이 산 기슭에 살아 이곳의 많은 이야기들을 모우고 확인했던게 지금은 이렇게 사용되고 있네요..
대웅전과 나한전 사이로 진입축을 내어 대웅전 아닌 뒷산 비슬산을 정점으로 삼아 자연 속으로 사라지게하여,
비슬산이 배경이 아닌 주인공이 되어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최선의 관계를 보여주던 멋진 진입로는 ~
지금은 대웅전 옆의 사잇길이 되어 그냥 통로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변했고 ~
나한전 뒤로 삼각점의 꼭지점에 자리해, 점점 작아지며 투시도적 원근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앉아서
역동적으로 건물 서로간의 관계와 독립성을 동시에 보여주던 명품 용화전과 산신각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또, 대웅전의 앞마당은 쌍탑형으로 만들고 있고, 그 앞에는 '십방루' 건물이 호사스런 기와를 잔뜩 이고서 버티고 있습니다 ~
절간 한켠에는 예전에는 못보던 고려시대 석불이 보호각 속에 앉아있어 눈요기가 되고요 ~
이렇게 흐르는 시간속에 사람도 변하고 절간도 변하고... 세상도 변해가는 게지요 ~
잘 다듬어져 좋은 절간으로 거듭 나기를 바래보며 유가사를 나섭니다...
다시 현풍읍내를 가로질러 낙동강가의 대니산을 향해 달리며 지금까지 본 절 셋의 느낌들을 속으로 정리하면서,
지금 만나러 가는, 이땅 유교건축의 FM-도동서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아직도 변치않은 다람재 좁고 급한 오르막을 올라서니 낙동강물에 흘러가다 멈춘듯 도동서원이 강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에는 없었던 한훤당의 시빗돌이 고개마루를 지키고 섰길래 ~ 내친김에 김종직 선생의 점필재,정여창선생의 일두,
이곳 주인 김굉필선생의 한훤당이란 호들의 의미에 대해 소개하며, 또 끝말잇기 처럼 따르는 동방 5현 - 18현 - 조선조 14현....
답날인들은 괜시리 찬바람 부는 고갯마루에 서서 어쩌지도 못하고 '공부고문'(?)을 당합니다 ㅎㅎ..
서원 앞에 내려서니 한강선생이 서원을 설립할 때 심었다는 예의 은행나무(굉필나무)가
일직선으로 강조된 건축 축선에 맞춰 힘겹게 서있습니다.
아래는 2013년 5월 중순경 찾았을때 찍은것이고요.... 이처럼 곧, 연두의 새잎이 올라오겠지요 ~
수월루 아랫문을 지나 서원의 진짜 대문인 환주문이 1인용 계단에 맞게 1인용 문의 위용(?)을 보이고 있는데 ~
저 안쪽의 주인을 부르던, 내 마음의 주인을 불러내던... 깊은 의미를 생각케 하는 문임은 확실합니다.
항상, 중정당 강당은 당당하게 위엄있고 시원하게 앉아 너른 품으로 우리를 맞아 줍니다.
기단부의 재미스러움도 여전하고요 ~
동방 5현의 수(首)현임을 내세우는 기둥위의 흰띠('상지/上紙')가 이곳이 만만찮지 않은 곳임을 알리고..
강당마루 한복판 교장샘 자리에 길눈이는 버티고 앉아서 답날인들을 불러앉히고 좀 쎈 약을 팔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그걸 눈치 챘는지 전부 머뭇머뭇 오르지 않고 있다가 ~ 이곳 안내 16년차인 해설사에게 손님을 다~ 뺏기고 맙니다...ㅎㅎ
해박한 지식을 갖춘 그 분이 도와주는(?) 바람에 길눈이는 혼자서 서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합니다 ~
간혹 돌아와서 해설사분께 질문을 던져 서운하지 않게 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요...ㅎ
퇴계선생의 글씨를 집자해 만든 현판과 그 사연을 적은 한강의 안내판이 강당 앞쪽으로 걸려있고,
선조임금이 내린 사액현판은 마루 제일 안쪽에 걸려 있습니다.
만력 35년이라 적혀 있어 1607년임을 압니다 ~
이 두개의 현판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꺼리와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낼수 있었지만 약팔이가 금지되어 속으로만 삼키고요 ㅎㅎ
다람재서 부터 심상찮던 하늘이, 갑자기 바람이 세차지고 오싹해져 비를 흩뿌리다 햇살이 나오고를 반복합니다.
비바람을 피해 삼삼오오 쪼그려 서서도 해설사분의 안내에 귀기울여 경청하는 우리의 답날인들이 참 뿌듯합니다...
길눈이는 서원안을 헤엄치는 한마리 생선 마냥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느끼며 담아 봅니다 ~
정성을 다한 기단돌과 정료대와 화재 지키려 앙팡지게 부릅뜬 자라머리하며 ~
건물 옆면도 그냥 두지 못하고 돌로써 툇마루를 갖다붙히고, 옆마당의 생단과 굴뚝도 그리 쉽게 볼수있는 것은 아닐지니 ~
강당을 돌아서면 사당을 오르는 1인용 굽은 계단과 화계로 만든 축대가 정겹고, 때마침 진달래-참꽃이 피어 눈을 붙들고 ~
계단 소맷돌에는 언제나 처럼 태극이 돌고 있습니다..
사당 안벽에 그려져있다는 '설로장송'과 '강심월일주' 벽화는 이번에도 당연(?) 친견할 기회가 없었고요,
그걸 소재로 한훤당이 소장했다 그의 손자가 다시찾아 남명에게 발문을 부탁했다는 안견의 그림 이야기를 할려했었고 ~
그렇게 도동서원을 나섭니다...
길눈이가 마무리 멘트를 할려니 춥다고 빨리 출발을 재촉 합니다. 이제는 약빨이 듣지를 않나 봅니다 ㅎㅎ
또다시 와야만할 건덕지를 만들면서 낙동강변을 따라 달립니다 ~
팔만대장경이 한양에서 실려와 해인사로 옮겨갔다는 개포나루터를 지나며 무심한 세월의 모습을 보면서요..
내비아가씨도 헷갈려 하는 이로정을 찾아내 내려서니 빗줄기가 굵어지며 맘을 급하게 몰아 세웁니다.
앞에 있는 낙동강으로 건너와 서로 만나 회포를 풀던 일두와 한훤당을 기리려 후대에 지은 이로당은,
그 두 인물이 있어 제일강산으로 이름되는 성리학적 사고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인간이 있어 인간에 의해 해석되야만 하는.... 도동서원이 북향하고 앉았지만 남향으로 인식하듯 ~
두 노인을 위해 정확히 대칭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두사람의 시(소학과 악양루 시)도 하나씩 주련으로 걸려있고,
후학 회당 장석영이 써붙힌 대단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제일강산정기'가 작은 건물을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망우당의 묘역을 간다하니 이 비오고 춥고 바람불고 날저무는데 귀신놀이 할꺼냐고 모두 난리도 아닙니다~
오늘 약팔이가 자꾸 헛발질을 하게되는건 하늘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여 묘역은 힐끔 째려만보면서 지나치고 ~
다시 5번 국도를 달려 우포늪도 지나고 창녕도 지나 곽재우가 말년을 지내다 마지막을 함께한 망우정에 이릅니다..
위는 답날 때의 모습이고~
아래는 2월 사전 답사때 혼자 찾은 더 늦은 시간때의 모습입니다 ~
'열혈남아' 곽망우당은 임진왜란 미증유의 환란과 격변기의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맞딱드려 뜨겁게 부딪쳐 삶을 태우고는
세상의 인심이 부질없고 허망함에 실망해 비슬산에서 솔잎으로 지내다 1602년 이곳을 마지막 거처로 삼고
지금도 흐르고 있는 낙동강을 보며 잊고 또 잊으려 애쓰다 15년후 이 세상을 떠납니다...
인간으로 인해 생길 수 밖에 없는 갈등과 욕심과 슬픔과 미련과 후회와 분노와.....
그 모든 것을 " 근심으로써 근심이 잊어지기를 ~"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
태백에서 흘러온 1300리 저 낙동강은,
영남의 거의 모든 물길을 받아내어 합하여 영남 그 자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고대에는 신라와 가야로 나뉘어 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야합(?)으로 합쳐진 이후 ~
고려에는 경주와 상주로 나눠져 경상도로 이름하고 ~ 조선에는 낙동강을 마주하며 좌도와 우도가 되어
좌안동의 남인(퇴계파)와 우함양(진주)의 북인(남명파)로 되었다가 ~ 근대 이후 북도와 남도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
지금은 TK파니 PK파니 하면서 같은듯 다른듯 이 시대의 권력을 나누기 하고 있습니다....
저 강물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할진데 그냥 모른척 무심히 흐르고 있네요 ~~~
'무던한 아름다움'을 봅니다..... !
사전답사 왔을때 찍어둔 망우정에 걸린 '여현정기' 입니다.
처음에는 '창암정'이라 했다 '망우정'이라 바꾸고 망우당이 외손자에게 잘~ 물려주었다고 '여현정'이라 했답니다.
글 말미에는 <기락편방>발문을 쓴 조임도의 이름이 보이고 ~
화장실이 급하다는데도 원망스럽게 화장실도 없는 악양루에 내려 놓습니다.
그래서 후다닥 악양루에 오른듯 만듯 남강의 낙조는 왜이리 빨리 안지는지 투덜이다가~
바로 근처에 있는 '처녀뱃사공' 노래비는 자동으로 패쓰하고 함안 휴게소로 달려갑니다 ~
두보의 '등악양루'는 머할꺼며 악양루를 여기다 머할라꼬 세웠는지.....ㅎㅎ
그래쓰~
차안에서, 그 와중에도 관룡사에서 부터 이어져온 "물/쌩 고메~" 타령을 저지시켜가며 콩볶아 먹듯 들려준,
노래와 노래비의 애닯은 사연과 이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좀더 그림글을 보충해서 여기에 올립니다 ㅎㅎ~
사연과는 좀은 안어울리는 인어아가씨 닮은 처녀조각이 어설퍼 실소가 나지만,
애닮음을 아름다움으로 노래한 것이라 좋게 봐주고 ~
아래 설명문에 보이고 윗그림에 배젓는 두처녀는 (원래 이 배를 젓다 6.25전쟁 나가 전사한 박기준의)
여동생 박말순(당시23세)와 조카 박정숙(18세)이고,
전쟁이 끝나고 박기준의 남동생 박기종은 서울 농대 농경제학과를 나온 인재였지만 형의 나룻배를 이어받아 저었고,
기종의 아들 길석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를 젓다 1997년 악양교 다리가 생겨 사공질을 그만두고
악양루 입구에서 봤던 '악양루 가든' 횟집을 지금도 하고 있답니다.
저 배젓던 두 처녀도 이제는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요 ~
이 노래비 제막식 때는 작사자 '부길부길 유랑쑈 단장" 윤부길의 아들 윤항기가 참석했다지요 ~
그런.... <처녀뱃사공> 가사와 곡조가 다시 불려집니다....
이번 답날의 주어로 차용한 <기락편방>을 이야기하며 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앞' 답날 입니다 ~
답날자료에 소상히 올려 놓았지만 가지않으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그리고, 사전답사는 했지만 찾아가는 길이 넘 험하고 위험해 일정에서 뺀 "용화산 下 동범 之圖"의 정자들도 덧붙힙니다.
1607년과 1634년 두 차례 이곳의 이름께나 행사하는 이들이 모여서 뱃놀이와 소풍한 사실을 참석자의 후손들이 후대에
기록.정리하고 그림도 더해 목판으로 찍어 간행하면서 "기락편방 - 낙동강변에 있었던 아름다운 사연들을 모아서~" 라 이름했지요..
그걸 길눈이가 앞에 '신'자만 붙혀 주어로 삼았답니다 ~
위는 책으로 찍어낸 것이고 아래는 목판인데, 비교삼아 같이 올립니다.
지금의 남강과 낙동강이 합치는 두물머리-기강 근처 부터 망우정 까지의 빼어난 경치를 8경으로 구분하고,
1경은 용화암(합강정)으로 시작하여 8경은 창암사(망우정)로 이름하여 각각 그림에다 용.화.산.하.동.범.지.도.~라 해놓았고요~
그 중에 사전답사 때 찾아갔던 두물머리 기강과 ~
그곳을 바라보고 지은 합강정의 모습이고...
합강정에서 산길 절벽을 타고 2경 청송사(지금의 반구정)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남지의 낙동강 전경과 ~
느티나무가 참 좋은 반구정에는 함안 조씨의 후손 조성도옹이 산다고 했는데 길눈이가 갔을때는 아무도 없는 빈집이였고,
혹 이 세상 분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2003년에 80세 였다하니요...
아래는 그 조옹이 만든 '망두암'이란 시비로 원래 반구정이 있었던 '두암'을 바라보는 자리란 의미랍니다..
그리고 ~
답날을 갔다온 후 며칠전 진주성의 촉석루와 의암과 남강의 아침 모습입니다...
벌써 마음은 답날#94.를 꿈꾸면서요 ~ ㅎㅎ..
첫댓글 새록새록 그 날을 생각나게 하는 멋진 후기에 감사드립니다.
시간의 흐름도 쉽게 기억하기 힘들 만큼 빡빡한 일정이었는데.
만어사, 작원관, 관룡사, 유가사, 도동서원, 이로정, 망우정, 악양루...
처음 답날 오셔서 힘들고 답답했을 꺼인데~ 예쁘게 봐줘 고맙수다 ~
이렇게 다른 이들은 아무도 기척도 없이 말손들을 꼭~닫고있는데,
혼자서 글말들을 챙겨줘서 더 고맙고 힘이 나네요 ~ㅎㅎ
항상 건강.행운 같이 하시길.....
정말 다시 읽어보니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군요.
혼탁한 세상에 잘못 떨어져
백발만 온통 드리웠다는
곽재우의 歸江亭을
이제 마지막으로 읽어봅니다.
꾸니샘 삐끼지 마이소🤗
아는만큼 보는게 즐겁다쿠더만
알아가는 것 또한 즐거움이라
한번 읽어 볼께요
즐길꺼리 즐거움을 찾아서 다시시는게 보기가 좋네요
좋은 말씀입니다~
우쩨보면~ 사람은 아는대로 보고 사는거 아니것습니까...
일케라도 답날을 같이해주니 고맙꼬 힘이납니다...ㅎㅎ
발로꾸니샘! 그 날 고생하셨고, 오랫만에 만난 이르미따지, 젊은여자샘도 그렇고, 누님들도 만나 반가웠습니다.
올간만에~같이해서 참 좋았답니다~
안시킷는데 노래 불러조서 더 좋았고요ㅎㅎ..
답날 분위기 업시키게 종종 발걸음 기달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