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뿌리를 찾아서 2008.6.5.목
본관별 종류- 강(姜)씨 편
강(姜)씨의 본관은 문헌상으로 114본이 전한다. 그 중 조선씨족통보에는 진주, 금천, 안동, 배천, 해미, 동복, 광주 등 7본의 시조가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강씨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姜以式)을 도시조로 삼으며 현존하는 강씨는 대부분 진주강씨에서 갈라진 것이 확실하다.
◇ 금천강씨(衿川姜氏)의 시조는 인헌공 강감찬 장군이다. 진주강씨 인헌공파를 금천강씨로 부른다.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서울 금천구)이므로 금천강씨로 부른다. 금천(衿川)은 현재 시흥·과천·광명·군포시 일대를 통괄하는 옛 지명이다.
금천강씨의 인물로는 조선 인조 때 우의정을 지냈고 예학에 정통한 강석기를 들 수 있다. 그의 딸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빈이다. 소현세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자 세자빈은 인조로 부터 사약을 받고 죽었다.
선조 때의 석학인 강항 은 공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지내고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왜군의 포로로 일본으로 잡혀가 일본 학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쳐 주는 한편, 적의 군사정보 등을 고국에 전했다. 일본 성리학의 원조로 일컬어진다. 조선시대에 모두 2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 진주강씨(晋州姜氏)의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 도원수를 지내며 많은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597년(고구려 영양왕 8년)에 수문제가 침략할 야욕으로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왕은 군신을 모아 놓고 이에 회답할 것을 논의 할 때 그는 이와 같은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이 이에 수긍하고 싸울 것을 명하자 군사 정병 5만을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수나라 군사 30만을 단번에 격퇴하고, 603년에 수양제가 군사 100만으로 다시 침략할 때 중신회의에서 요동성 일부를 떼어주고 강화할 것을 논의 했으나 이에 반대하고 싸울 것을 주장하여 을지문덕과 함께 요동성 살수(청천강) 등의 싸움에서 수군을 대파하는 등 공을 많이 세웠다. 그의 후손인 강진이 진양(진주)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
강이식 묘소는 만주 봉길선 원수림 역 앞에 있으며, 음력 4월 10일에 경남 진주시 상봉서동 봉산사에서 제사를 지낸다.
중시조 국자박사(國子博士) 강계용은 1274년(고려 원종 15년) 통신사서상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손자 강사첨의 5세손 중 첫째 아들 강회백의 후손을 통정공파(通亭公派), 둘째 아들 강회중의 후손을 통계공파(通溪公派)로 구분한다. 이들의 후손에서 가장 많은 인물이 나왔다.
통정공파의 통정 강회백은 고려 말에 대사헌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동북면도순문사에 올랐으며, 성리학에도 밝았다. 그의 아들 강석덕은 세종의 둘째 부인 영빈강씨의 아버지로서 개성유수, 지돈령부지사 등을 지냈으며, 시와 글씨에 능했다.
강석덕의 아들 강희안, 강희맹 형제는 통정공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는다. 강희안은 세종 23년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직제학이 되어 정인지, 성삼문 등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뒤에 단종복위에 연루되었으나 "참으로 현사(賢士)이니 죽이지 말고 중용하라"는 성삼문의 변호로 화를 면하고 뒤에 호조참의를 지냈다. 그는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이라 불려질 정도로 이 방면에 있어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강구손은 그의 아들이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강맹경은 강희안의 4촌 형이다. 강희안의 동생 강희맹 또한 당대의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고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다.
통계공파에서는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강사상과 역시 선조 때 평난공신에 오르고 이조, 병조판서를 거쳐 중추원판사를 지낸 진흥군 강신 과 왕자사부를 거쳐 임진왜란 때 호성공신에 오르고, 진창군에 봉해진 강인 형제가 빼어났다. 정묘호란의 주역으로 불리는 강홍립도 강신의 아들이다. 특히 강인의 후손은 고종 때에 와서 강준흠, 강시영, 강문형, 강난형, 강우형, 강국형 등 판서급 인물을 배출해서 명가로 꼽힌다. 이 밖에 인조 때 화포술을 전한 강홍중이 있다.
조선시대에 모두 90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23명, 무과 144명, 사마시 512명, 역과 16명, 의과 8명, 음양과 3명, 주학 1명이다.
조선시대에 ◇경주강씨(慶州姜氏) 2명 ◇광주강씨(光州姜氏) 2명 ◇나주강씨(羅州姜氏) 2명 ◇수원강씨(水原姜氏) 5명 ◇순흥강씨(順興姜氏) 1명 ◇ 시흥강씨(始興姜氏) 1명 ◇ 전주강씨(全州姜氏) 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강씨는 총 33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1,044,386명이다.
( 본관별 인구 ) 가나다순
▲강릉 11,974명 ▲경주 9,120명 ▲곡성 3,418명 ▲광주 1,459명▲금천
2,064명 ▲김해 2,418명 ▲나주 3,935명 ▲남양 691명 ▲대전 478명 ▲동래
592명 ▲밀양 1,925명 ▲배천(白川) 554명 ▲보주 194명 ▲보천 207명 ▲부산 324명 ▲불갑 222명 ▲성주 881명 ▲수산 159명 ▲수원 688명 ▲순흥 1,370명 ▲시흥 426명 ▲안동 1,257 ▲여천 452명 ▲연일 609명 ▲원주 824명 ▲인동 789명 ▲전주 17,579명 ▲제주 4,798명 ▲진주(진양) 966,710명 ▲충주 1,192명 ▲평양 5,953명 ▲해미 223명
( 정복규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