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하여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2020년 10월 이후로 만 2년 5개월여 만인 오늘, 그러니까 2023년 3월 20일 부터, 국내의 모든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할 경우에도 마스크 착용을 종전의 의무화에서 권고 수준으로 낮춘다는 정부의 시행이 적용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지하철 승객들의 마스크 착용 상태를 취재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마스크를 벗고 있는 승객들이 그저 한두명 수준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렇게 할 신뢰감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과연 괜찮을까?'하는 의구심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표일 것입니다.
그리고 2년 넘게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 되었기 때문에 특히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할 경우에는 당연히, 또는 습관적으로 몸에 배인대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그런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중 교통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출 할 때에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아직도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를 불신한다기 보다는 내 몸, 내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자기 보호에 대한 의무감이나 애착이 더 클것입니다.
이 세상의 재난이나 재앙을 살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왜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과연 깨달아 알고 있을까 둘러 보고 계실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주된 이유는 사람들이 입으로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독을 품기 일쑤이지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야고보서3:8).
말을 만들어 내는 혀는 그것이 악한 말을 뱉어내게 되는 경우에는 그 세력이 사르는 불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 합니다. 그리고 그 불의 출처는 지옥이라고 하십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야고보서3:6).
말은 혀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말이 생성되는 곳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지적하셨지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태복음15:18).
나부터 마음을 잘 지켜서 내 입의 혀로 부터 순전하고 유순한 말들이 만들어지도록 해야겠습니다. 덕이 되는 말이 나오게 해야지요.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도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험하고 투박한 말들을 뱉어내기도 합니다.
혀를 불의하게 사용하는 대표적인 것은 거짓말과 비난일 것입니다. 비난이나 비방 같은 의미이겠지요. 마귀는 거짓의 왕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으니 거짓말을 지어내는 행위는 분명 마귀에게 속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위로는 하나님께 범죄한 마귀의 자식이며, 이 세상에서도 법과 정의를 무시한 불법과 불의의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지요. 세상에서도 마땅한 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도 문제이지만 비방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한 사람의 마음을 죽이게 되고 그 사람의 인생마져도 파괴시킬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근거도 없고 그 근거도 빈약한데도 불구하고 무작정의 비난과 비방이 문제이지요.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남을 헐뜯는 음해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를 혼란에 빠뜰릴수 있지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더러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지 말아야지요. 이제는 쓰지 않을 권리가 당연히 부여되었으므로 시비거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벗은 사람이 쓴 사람을 시비해서도 안되지요. 권고 사항은 곧 자율의 권한을 의미하므로 자신의 마음에 내키는대로 쓸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자신에게 합당한 행동을 하면 될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브리서10:24).
자율적인 마스크 착용 규제 조치로 국민 각 사람이 마스크를 쓸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데 조화를 잘 이루어 코로나19의 감염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기뻐해야지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립보서2:4).
하나님께서는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남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비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사회의 소금의 역할을 하는거지요. 모범이 되어 사회의 맛을 내는 소금이자 이 사회를 밝히는 빛의 역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9디도서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에베소서4:31).
가장 두렵게 여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일입니다. 근본적으로 살아계신 구원의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원죄를 지은 아담으로 하여금 숙명적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 죄인의 상태로는 세상 끝날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사함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인류 속죄의 희생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죄와 전혀 관계 없으신 예수님이 죄 있는 몸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갚으셨습니다.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셔서 속죄의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에베소서1:7).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됩니다.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영생하는 복락을 유업으로 받는 그 자녀의 권리와 자격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그 자비하심과 긍휼의 은혜를 끝까지 저버리는 불신의 사람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끝내 하나님을 비방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최대의 비극입니다.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요한계시록16:11).
코로나19는 죄로 가득찬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회개케 하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자 기회이십니다. 코로나19는 호흡기 전염병이지만 인류의 죄가 더욱 악해질수록 하나님의 진노는 커질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대접이란 하나님의 진노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일곱 대접이란 하나님의 진노 중 하나가 바로 위의 말씀입니다. 몸에 종기가 생기고 병으로 몸이 심한 고통 가운데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코로나 다음에 나타날 재앙이 과연 어떠할까 두렵기도 합니다. 이럴수록 교회들이 회개하고 갱신하고 개혁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교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참된 성화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받았거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주저하거나 피하지 말고 어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피흘려 세우신 참된 교회에 나오셔서 예수님이 몸이 되시는 그 교회의 한 부분으로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갈 때, 예수님의 얼굴을 뵈옵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