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三十四 章 경천동지할 혈투
신타 을휴는 천천히 말했다.
『정말이라네. 내가 보는 바에 의하면 저 아이의 장래 성취는 틀림없이 제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네. 생각해 보게.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적군, 그 늙고 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를 계곡 아래로 유인해서 올라오지 못하게 했고 부상까지 입혔다네. 이같은 지혜라면 나중에 장성하게 되었을 때의 성취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주군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정말로 희한한 일이로군요. 만약 전옥린이 이 일을 알았다면 얼마나 기뻐할런지 모르겠군요.』
그는 다시 물었다.
『선배님, 남삼객은 선배님께 전옥린을 어떻게 처치했는지 말을 하지 않던가요?』
신타 을휴는 대답했다.
『전옥린은 이미 그 자가 무정산으로 보냈다고 하더군. 내 생각에는 전옥린 역시 그자의 암산에 넘어간 것 같네.』
주군좌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적군은 정말 이리같은 심보를 가진 놈이로군요. 전옥린은 그를 참다운 지기로 여겼는데 그는 그렇게……』
그 한마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장 뒤쪽에서 따라오던 주군우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질렀다.
『형, 저기 남삼객이 쫓아온다.』
주군좌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산허리에 남색 그림자가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노이, 너는 하소저를 하오(何五)에게 건네주게. 우리 두 사람이 한동안이라도 그를 막도록 하세.』
그는 한 명의 개방제자를 불러 신타 을휴를 그에게 넘겨주며 명령했다.
『저박, 자네는 형제들을 데리고 발이 보이지 않도록 돌아가도록 하게.』
이어서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당부의 말을 했다.
『저박, 자네는 빨리 분타(分舵)로 돌아가서 철 당주에게 보고하여 빨리 분타를 임씨집 화원으로 옮기도록 하게.』
저박이라 불리운 중년의 거지는 신타 을휴를 등에 업더니 물었다.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또 무슨 분부가 있으신지요?』
주군좌는 재빨리 당부를 했다.
『자네는 철 당주에게 빨리 총타에 소식을 보내서 대리 방주(幇主)로 하여금 즉시 개방의 고수들을 모두 모집해서 무창으로 달려오도록 하라고 이르게. 아! 그리고 잊지 말고 남삼객 적군이 본방의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주게나.』
신타 을휴는 당부했다.
『주노대, 조심하게. 부디 조심하고 자네들은 그와 죽기를 다하여 싸울 생각을 하지 말고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게.』
주군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박, 자네들은 우리 두 사람을 오늘 하루만 기다리게. 그리고 만약 우리가 돌아가지 못하게 되거든 즉시 철당주로 하여금 선배님 등 세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도록 하게. 빨리 가보게.』
저박은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나머지 일곱 명의 개방 제자들을 데리고 나는 듯이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주군좌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저만큼 수장 밖에서 달려오고 있는 남삼객 적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노이, 우리가 늙은 목숨을 걸 때가 된 모양일세. 자네가 기운을 좀 내어야겠네.』
주군우는 히히 웃었다.
『우리 형제가 저 자를 상대로 지구전을 펼쳐서 반시진 정도 시간을 끌다가 틈을 타서 도망치면 그만이지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어디 있나? 선배님도 그렇게 당부하셨지 않아?』
주군좌는 호통을 내질렀다.
『네가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싫어한다면 우리가 무슨 재간으로 검신 남삼객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이냐?』
주군우는 허리아래에서 한 자루의 파란 대나무 막대기를 뽑아들더니 한번 휘둘러 보이면서 느릿하게 말했다.
『타구봉(打拘捧)으로 막지. 형은 그것도 몰라?』
주군좌도 소리내어 웃었다.
『비렁뱅이에게 타구봉이 없었다면 벌써 개에게 물렸게?』
그들 형제 두 사람은 마음과 뜻이 서로 통했다. 이 몇마디의 말을 나눈 사이에 어느덧 긴장된 마음을 풀게 되었고 즉시 좌우를 나누어 서서 산길을 막았다. 산위에서 달려내려 오는 사람은 과연 남삼객 적군이었다. 그는 천지이로의 앞 여덟 자쯤 되는 거리에 이르더니 몸을 세우고 물었다.
『주노대, 자네들 왜 나를 막는가?』
주군좌는 찡긋 웃었다.
『막기는, 당신이 떨어지는 똥무더기도 아닌데 우리가 무슨 재간으로 막겠소? 우리 늙은 거랭뱅이들은 그저 세상에 다시없는 대검객을 모시고서 칼 쓰는 이야기라도 좀 나누어볼까 하고 이렇게 모가지를 빼고 기다리는 중이라오.』
남삼객 적군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은 신타 을휴를 만나 보았군?』
주군좌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맞았소. 적대협, 대협? 그렇지, 대협이구말구. 당신은 혹시 우리 두 거렁뱅이의 모가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오? 말을 확실히 하자면 우리를 죽여서 입을 봉할 작정이 아니냐 이 말이오.』
적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시치미를 뗐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그저 을형님과 약간의 오해가 생겼기 때문에 급히 달려와서 그에게 해명을 하려는 참일세.』
주군좌는 주군우를 한번 바라보더니 히힛! 하고 싯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적대협, 암, 큰대협께서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 먼저 우리들, 빌어먹다가 이렇게 늙은 거렁뱅이에게 한번 설명을 해 보도록 하시구랴.』
적군은 참을 수 있는데까지 참아볼 작정 같았다.
『그 일은 우리들 두 사람 사이의 사사로운 일로서 나는 반드시 을휴형님께 직접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일세.』
주군좌는 히죽히죽 웃었다.
『적대협, 소문에 듣자하니까 당신의 무공은 모두 을휴선배님이 전수해주신 것이라고 하던데 그 이야기가 사실이오?』
남삼객 적군은 안색이 홱 변했다.
『누가 자네에게 그런 말을 하던가?』
주군좌는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옛 사람들도 말씀하지 않았소? 적대협, 당신만 해골이 팽팽 돌아가는 총명한 사람이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바보, 맹추, 청맹과니로 아시는 모양인데, 그건 당신께서 너무나 큰 착각을 하신 것이 아니오?』
남삼객 적군은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흥! 주노대, 자네들은 오늘 나와 기어이 얼굴을 붉힐 작정인가?』
주군좌는 그 말을 받아서 우선 한마디 반문했다.
『얼굴을 붉힐 작정이냐고?』
그는 차갑게 다시 말을 이었다.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니라 회칠이라도 해서 얼굴을 좀 희게 해야 하겠소. 남삼객, 당신은 벌써 천하 무림 정도의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고 들었소만 그래서 얼굴을 붉히자는 게요?』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재차 입을 열었다.
『적대협, 우리는 줄곧 당신을 하늘 아래 떳떳한 협객이며 대협사라고 존경해 마지않았소이다. 그런데 이제 그 정체를 알고보니 전갈의 꼬리에다 독사의 혓바닥, 양의 얼굴에 이리의 마음보를 가지고 세상의 올바른 사람들을 암산이나 하는 소인배로서……』
적군은 호통을 내질러 그 말을 가로 막았다.
『쓸데없는 잔소리 작작해라! 자네들이 기어코 손을 쓰겠다면 내가 상대해 주는 수 밖에 없겠지.』
주군좌는 여전히 여유있는 태도로 이죽거리기를 마지않았다.
『우리는 귀하의 엄청 고명한 수단을 전해 듣고 그렇지 않아도 실지로 가르침을 받아볼 작정을 하고 있었소이다. 그중에도 당신의 암산하는 수단은 어떤 쓰레기나 모리배들도 쫓아올 수가 없고 귀하의 독을 쓰는 수법은 어떠한 독사보다도 훨씬 뛰어나다고 하더구려. 그래서 우리 늙은 거렁뱅이들이 이 타구봉으로 천하의 독물을 한번 잡아보려고……』
적군은 냉랭하게 웃었다.
『좋아 좋아, 그만 주절거리게. 그렇게 원한다면 노부가 자네들의 견문을 넓혀주겠네. 자네들로 하여금 천하무적의 검도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구경시켜 주도록 하겠네.』
그는 길옆으로 가더니 엄지손가락만한 굵기의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손목을 한번 떨쳤다.
나뭇가지 위에 잔가지와 잎들이 모두다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겨우 석 자 남짓한 막대기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손에 들고 있는 나뭇가지로 앞쪽을 가리켰다.
대뜸 한가닥 짙은 살기가 그의 몸에서 넘쳐 나왔다. 남삼객 적군은 과연 일대의 검도 종사(宗師)로서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불과 한대의 나뭇가지일 뿐이었으나 보통사람들이 손에 보검을 든 것보다 더욱더 사람의 마음과 혼백을 압도했다.
그의 안색은 엄숙하기만 했고 손에 들린 나뭇가지는 비스듬히 앞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그는 이미 한가닥의 강렬한 살기를 쏟아내어 천지이로를 일제히 뒤덮어 오는 것이었다.
그가 무겁게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사람을 압박하는 검세는 한 푼씩 더욱 짙어져서 천지이로로 하여금 제대로 발을 딛고 서 있지도 못하도록 조여 왔다.
주군좌는 경악해 마지않았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는 남삼객 적군이 얻은 검신이라는 칭호가 정녕 헛되이 붙여진 것이 아니고 검술에 있어서의 조예가 이미 천하무적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는 남삼객 적군이 그 한줄기의 강맹하고도 세찬 기세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게 된다면 그야말로 그의 일격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리라고 내다보았다.
그때 가서는 설사 그들 형제가 금강부동신공(金剛不動神功)을 연성했다 하더라도 심맥이 충격을 받고 터져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원래 좀 시간을 끌어서 신타 을휴 등이 안전한 곳으로 도망 칠 수 있는 시간을 벌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눈으로 직접 형세를 보게 되자, 먼저 공세를 펼치지 않고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그야말로 스스로 죽음을 기다리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똑바로 시력을 모아 상대의 손에 들린 그 나뭇가지를 주시하며 천천히 손에 들고 있는 푸른 대나무막대기를 둥글게 휘둘러 찌를 듯이 몸으로 침입해 오는 살기에 대항하면서 발걸음을 끓임없이 왼쪽으로 이동해갔다.
그들 쌍둥이형제는 마음과 뜻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주군좌의 몸이 왼쪽으로 옮겨지게 되자 주군우 역시 발을 미끄러뜨리듯이 천천히 왼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별안간 남삼객 적군은 나직한 기합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앞으로 한발 내밀면서 손에 든 나뭇가지로 무수한 환영을 그려내며 그들 두 사람을 동시에 공격했다.
그는 이미 천지이로의 마음과 뜻을 투시한 터라 이 일식을 공격 해냄으로써 일거에 그들의 협공하는 형세를 깨뜨리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일초를 뻗쳐내어 두 사람을 나누어 습격하며, 그들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따로이 핍박할 셈이었다.
주군우는 상대의 나뭇가지가 환영을 그려내자 청죽봉으로 막으면서 나직이 휘파람을 불며 마주 나가게 되었고 그의 왼손은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것과 때를 맞추어서 수평으로 쭉 뻗게 되었다.
바로 그가 청죽봉을 휘둘러 적군의 허초를 막는 찰나, 주군좌는 이미 신속하기 이를 데 없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청죽봉을 왼손으로 옮겨 쥐면서 맨손이 된 오른손을 쭉 뻗쳐내었다.
그들은 남삼객 적군의 이번 일초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면 상대의 면면히 이어질 절초에 의해 다시는 손을 합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진력이 서로 토하는 재간을 써야만 되었다. 서로 손을 잡지 않고 각자가 싸우는 형국이 된다면 남삼객 적군의 손아래에서 십초도 견디어내기 어려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벼운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하고 손발을 맞추는 진식을 형성하려는 것이었다.
주군우는 먼저 청죽봉을 휘둘러 공격에 응했지만 그가 취한 것은 수세였다. 손에 들린 청죽봉이 한 차례 웅웅거리며 진동했다.
그 순간 파란 대나무 그림자가 사나운 파도처럼 중첩되면서 어느덧 몸 앞 몇 자 둘레를 일제히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곧이어 남삼객 적군이 찔러낸 검세에 의해 그 파란 대나무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소멸되고 말았다.
순간 팍, 팍, 하는 소리가 일면서 주군우가 펼쳐내었던 그토록 엄밀하고 조심스러운 방어벽도 어느덧 빈틈이 생기면서 한가닥의 날카롭고 뾰족한 기경(氣勁)이 흐트러진 대나무 그림자를 뚫고 들어왔다.
깡총하고 흑회색을 띤 나뭇가지는 마치 민활한 독사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주군우의 목을 찔러오고 있었다. 주군우는 버럭 소리치며 윗몸을 뒤로 젖혀서 피하려고 했으나 이미 때를 놓치고 말았다.
바로 이 위기일발의 순간, 주군좌의 오른손이 어느덧 그의 왼손을 잡고 살짝 힘을 주어 떠밀자 주군우는 한쪽으로 약간 밀려나가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곧이어 주군좌는 왼손으로 청죽봉을 들고 입술을 모아 나직이 휘파람을 불면서 한마디 소리쳤다.
『봉타구두(棒打拘頭)!』
동시에 손에 들고 있는 청죽봉을 맹렬히 내려치면서 남삼객 적군의 정수리를 쪼개려 들었다. 남삼객 적군은 일식이 빗나가는 순간 머리위에서 세찬 바람이 일면서 타구봉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재빨리 발걸음을 미끄러뜨리면서 손에 든 나뭇가지를 비스듬히 들어올렸다.
그 순간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주군좌가 내려쳤던 청죽봉이 나뭇가지에 의해 멈칫 막히고 말았다.
남삼객 적군은 그 한자루 청죽봉에서 전해져오는 강맹하고도 세찬 힘이 마치 태산처럼 내리누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흠칫 놀라 감히 그 힘에 맞겨룰 생각을 하지 않고 손목을 한번 부르르 떨면서 나뭇가지를 거둬들이고 어느덧 다섯 자 뒤로 쓱 물러났다.
그의 몸이 급히 뒤로 물러서게 되었을 때, 어느덧 주군우가 몸을 솟구쳐 오르며 주군좌의 어깻죽지 위에 올라앉았다. 그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굳게 움켜쥐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데 포개지자 그 모습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괴인처럼 보였다. 남삼객 적군은 오래 전부터 천지이로가 손을 잡고 펼쳐내는 합박지술(合搏之術)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수십 년 동안 그들과 싸울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이는 물론 그가 예전에는 순전히 남삼객의 모습으로 강호에 출현했기 때문이었다.
천지이로는 비록 성질이 괴팍하고 하는 짓이 좀 엉뚱했지만 정통 정파의 인물이고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어서 자연히 손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남삼객 적군의 가면이 벗겨지고 이제 정체를 드러내게 되자 그는 곧 천지이로가 손을 맞잡고 싸우는 특이한 무공을 상대하게 되었고 그제서야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그들 두 사람의 진력이 서로 소통이 되자마자 그들이 수십 년 닦은 내공 수위(修爲)는 하나로 융합하였고 그와같은 융합된 내력을 쏟아내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가를 것만 같았으니 그 웅혼함과 심후함은 천하의 그 누구도 혼자 힘으로 대항하기가 어려웠다.
남삼객 적군은 조금전에 한번 시험해 본 끝에 이같은 점을 깨닫게 되었고 감히 내력으로 맞서지 못하고 재빨리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시 물러난 것은 결코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강맹하고 세차며 웅혼한 기세는 털끝만큼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의 공격 수비는 하늘과 땅의 지리(至理)와 융합된 듯 했다. 이는 마치 해가 떠오르고 또 떨어지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질서가 있어서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주군좌는 주군우를 떠메고서 앞으로 두 걸음 내딛었으며 남삼객 적군이 뒤로 물러서는 찰나를 틈타서 선기를 제압하고 건곤일척으로 승부를 가늠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금방 남삼객 적군의 그같이 물러서는 동작 속에는 매우 오묘한 이치와 함정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재빨리 발걸음을 멈추고서 감히 계속해서 전진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들 세 사람은 호시탐탐 상대방을 노려보며 묵묵히 서 있었으며 대략 반잔의 차를 마실 동안 대치했다.
돌연 주군좌가 휘이 하고 크게 기합을 터뜨리며 몸을 왼쪽으로 번쩍이다가 곧이어 오른쪽으로 둥실 날으며 손에 든 청죽봉을 잘게 쪼개듯 휘둘러댔다. 그의 입에서 한소리 부리짖음이 터져나왔다.
『전타구퇴(專打拘腿)!』
휘젓던 청죽봉을 기이한 각도로 아래로 뻗치면서 그는 남삼객 적군의 두 발목을 다다다닥 쳐왔다. 그가 손을 쓰는 그 찰나 주군우도 한 호흡으로 부르짖었다.
『당두봉갈(當頭棒喝)!』
일초이식을 펼쳐 청죽봉의 푸른 그림자를 두 갈래로 나누더니 놀랍게도 남삼객 적군의 콧잔등과 머리통을 딱딱딱 하는 연속타법으로 후려쳐 갔다.
그들이 펼치는 이 이초의 진기한 봉법은 모두 다 개방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전의 타구봉법(打拘棒法)이었다. 이와같은 타구봉법은 모두 다 합쳐봤자 구초밖에 되지 않지만 매일초가 모두 정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많은 개방의 선배고수와 역대의 방주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지혜를 짜낸데다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정을 가한 끝에 완성한 독보적 타법이었다.
청죽봉은 길이가 겨우 석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거리 공격에는 불리했다.
따라서 이 구초의 봉법은 그야말로 완전히 근접한 거리에서 육박전을 펼치게 되었을 때에 사용하는 초식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점(點), 타(打), 구(勾), 점(粘), 고(敲), 침(沈)의 비결이 내포되어 있고 매 일식의 수법이 모두 다 변화가 무궁무진했으며 공격과 수비를 겸비하고 있었다.
천지이로가 이 이초를 동시에 쏟아내게 된 순간에 두 가닥의 대나무 그림자가 번쩍 일면서 어느덧 남삼객 적군의 전신을 뒤덮는 것 같았다.
남삼객 적군은 나직이 휘파람을 불어내면서 손에 들고 있는 나뭇가지로 커다란 반원을 그리면서 쉭 하고 한무리의 강대한 기운을 일으키더니 어느덧 위로 아래로 교차하여 공격해 들어오는 두 자루의 대나무 막대기를 왼쪽으로 미끄러뜨렸다.
곧이어 그는 손목을 내려뜨리며 나뭇가지 끝으로 한가닥 한가닥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검기를 쏘아내어 주군좌의 미간과 주군우의 아랫배 쪽을 찔렀다.
그의 이 일식은 도가(道家)의 태청검법(太淸劍法) 중의 일초 수미개자(須彌芥子)였다. 온 누리를 포용할 수도 있고 적게는 겨자씨 안에 천하를 담을 수도 있는, 진정으로 신묘하기 이를 데 없는 검초였다.
주군좌는 손에 들린 청죽봉이 선회하고, 강인한 기운에 이끌리어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자 즉각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고 상반신을 번개같이 기울이면서 허공에서 재주를 넘으며 어깨위의 주군우를 내던졌다.
주군우는 몸뚱이가 허공에 솟구쳐 오르자 청죽봉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황구흘시(黃拘吃屎)!』
그 바람으로 그는 남삼객 적군의 왼쪽 옆구리를 후려쳐갔다. 주군좌는 이때 땅바닥에 수평으로 누워서 대나무 지팡이를 땅에 깔아 휘두르며 여전히 남삼객 적군의 발목을 후리쳤다.
그들 세 사람이 이같이 손을 쓰게 되자 비구름이 모이고 뇌성벽력이 치듯이 눈이 어지러웠다.
남삼객 적군은 연속으로 몇 초를 펼쳐내었는데 태청검법 가운데 정묘한 절초를 여지없이 발휘하자 천지가 개벽하는 듯 하였다.
비록 그는 한자루의 나뭇가지를 들고 있었으나 검기는 종횡으로 난무하여 사방을 뒤덮어 그 위세가 늠름한 것이 천하의 어느 누구라도 견디어낼 것 같지가 않았다.
천지이로 역시 절초와 괴이한 초식을 번갈아 펼쳐내었는데 그들 역시 상대에 비해 추호도 손색이 없었다.
그들 두 사람이 때로는 포개지고 때로는 나누어지며 때로는 땅바닥에 눕고 때로는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며 손에 들고 있는 청죽봉으로 펼치는 초식은 하나같이 타구봉법에 속하는 절초로서 공격과 수비의 변화가 무궁무진하고 오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순식간에 그들 세 사람은 이미 삼십여 초를 싸웠으나 여전히 승부를 낼 수가 없었다.
남삼객 적군은 천지이로가 이토록 상대하기 까다로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였다. 그는 태청검법을 끝까지 펼쳤으나 여전히 상대를 제압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두 사람의 괴이한 신법과 신기한 봉법에 말려들어 몇 번이나 청죽봉에 발목을 맞아 나가떨어질 뻔하였다.
그는 속에 노기가 끓어오르게 되었고 살기는 이미 눈가까지 치밀어 올랐다. 더 이상 싸움을 질질 끌어나가다가는 득을 보기 힘들 것 같았고 아차하면 오늘 바로 천지이로의 두 자루 청죽봉 아래 일패도지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식의 허초를 펼쳐 두 사람을 떨쳐버리고 곧이어 벼락같이 뒤로 일곱 자 물러섰다.
그가 이와같이 물러나는 순간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갑자기 몇 토막으로 분질러지면서 그의 진력의 조종을 받고 마치 몇 자루의 예리한 화살처럼 천지이로를 향해 쏘아져갔다.
천지이로는 남삼객 적군이 어째서 싸우는 도중 갑자기 뒤로 물러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막 그 몇 토막의 쾌속히 쏘아져오는 나뭇가지를 가까스로 막아내게 되었을 때, 어느덧 남삼객 적군이 몸에 걸치고 있는 남색 장삼을 떨치자 허리에 감고 있는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 두 사람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불룩하게 나와 있는 남삼객 적군의 배에 붙어있는 물건은 놀랍게도 정교하게 만든 용머리였다.
적군은 손을 뻗쳐서 그 용머리 앞으로 뻗쳐나온 한쪽 용의 발톱을 거머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용의 아가리를 누르더니 오른손을 바깥쪽으로 홱 잡아 뽑았다.
그 순간 용트림과 같은 나직한 파공성이 일면서 그의 손에는 이미 붉은 빛이 번쩍하며 검날이 좁고 긴, 괴이한 연검이 들려졌다.
그 장검은 보통 검과는 크게 다른 바가 있었으니 검신(劍身)의 폭은 좁고 길이가 길었다. 뿐만 아니라 전체가 불타는 듯이 시뻘겠다.
도대체 무엇으로 주조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 이같은 장검을 만든 사람은 틀림없이 야검대사(冶劍大師)였을 것 같았다. 검을 예리하게 주조했을 뿐만 아니라 손으로 쥐는 검악(劍鍔)마저 지극히 정교해서 완연히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흔들어대는 용머리 모양새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장검은 면철(緬鐵)로 주조된 듯 했고 그래서 허리에 두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한번 뽑게 되자 검날이 끊임없이 흔들거리면서 불타는 듯한 시뻘건 광채가 끊임없이 날름거리며 뻗치고 움츠러들고 하는 것이 마치 한 마리의 조그만 화룡(火龍)의 혓바닥처럼 보는 사람의 마음과 혼백을 으스스하게 압도했다.
주군좌는 안색이 일변해서 오른쪽 켠에 서있는 주군우를 한번 바라보며 부르짖었다.
『화룡검(火龍劍)이다!』
남삼객 적군은 흉칙한 웃음을 띄웠다.
『맞았네. 이것이 바로 화룡검일세!』
천지이로가 마음속으로 받은 충격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쳐다보는 그 순간 물러서야 한다는 뜻이 통했다.
이 한자루 화룡검은 바로 점창(點蒼)파의 진산지보(眞山至寶)로써 점창파 제 칠대 장문인 화룡진인(火龍眞人)이 친히 주조했다고 전해졌다. 화룡검은 무림 병기보(兵器譜)에서 서열 첫째로 꼽혔으니 살짝 떨치면 무쇠를 무 자르듯 한다고 했다.
그 옛날 화룡진인은 이 신병이기(神兵利器)에 의지해서 혼자 힘으로 새외사흉(塞外四凶)을 섬멸했으며 그리하여 일약 점창파가 오대검파의 우두머리에 올라서도록 만들었다.
화룡진인이 죽고 난 이후에 이 화룡검은 종적 없이 사라지게 되었는데 점창파 사람들은 이 보검을 위해 많은 제자들을 강호에 내보내 수색을 벌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후 점창파는 위세를 잃고 말았으며 문하제자들도 모두 운남(雲南) 일대에 국한되어 활동했으며 그 후 어느 한 사람도 중원으로 들어와 명성을 떨치지 못했다.
이는 화룡진인이 평생동안 심혈을 기울여 창안해낸 용화검법(龍火劍法)을 모두 다 화룡검의 용머리 안에 숨겼으며 문하제자에게 전수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화룡검을 잃게 되자 점창파는 가장 중요한 진산검법(眞山劍法)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다른 검파와 다시는 자웅을 겨룰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이와같은 신병이기와 양심신공 같은 신공비급을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신검이든 비급이든 간에 일단 어느 하나를 손에 넣게 되면 강호에 명성을 떨칠 수 있고 심지어는 그 문파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관계로 매번 신병이기가 나타나거나 혹은 비급이 출현했다는 소문이 일단 퍼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쟁탈전을 벌이게 되었고 시체가 온 들판을 뒤덮고 즐비하게 나뒹구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
천지이로는 그 실종된 지 수십년이나 되는 화룡검이 갑자기 남삼객 적군의 손에 출현하는 것을 보자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남삼객 적군과 같은 검도의 대종사는 손에 나뭇가지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보검을 쥐고 있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인데 만약 그 손에 무쇠를 무 베듯 하는 신병이기를 쥐게 된다면 호랑이에게 날개가 돋힌 격으로 그 위력이 무궁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들 두 사람이 조금전에 남삼객 적군과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이고 약간의 우세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그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합박지술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사실 적군이 손에 오직 나뭇가지 하나만 들고 있을 경우라면 무기에서 우세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에 검술의 재간을 극한까지 발휘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적군이 손에 신병이기를 들게 된다면 그들의 청죽봉으로는 우선 상대의 무기와 부딪치며 막기가 어려워지는 이치이니 무기에 있어 이미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그 괴이하기 이를 데 없는 타구봉법도 쓰임새에 제한을 받게 되어 초식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이쪽은 약화되고 저쪽은 강해지는 정세하에서 계속 싸울 경우 그들 두 사람이 적군의 화룡검 아래서 목숨을 건질 기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마음과 뜻이 서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번 형세를 가늠해 보는 즉시 자기네들이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싸워나갈 수 없다는 것을 같이 느꼈다.
남삼객 적군은 그들의 표정과 태도를 보고 냉소를 흘렸다.
『자네들이 오늘 살아서 노부의 손아귀에서 도망치기만 한다면 노부는……』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주군좌가 어느덧 일성을 대갈하더니 허공에서 한번 재주를 넘으며 이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몸을 날리는 그 바람에 오른손으로 꽉 잡고 있었던 주군우를 휘둘러 내던졌다. 주군우는 발이 땅에 닿는 그 순간 아직도 허공에 떠있는 주군좌를 휘둘러 내던지게 되었고 그 자신도 재주를 넘으면서 같이 몸을 날렸다.
그들 두 사람이 손을 붙이고 이렇게 한번 몸을 날리고 한번 내려서는 등, 번갈아 가며 서로를 던져 보내게 되자 마치 네발을 가진 괴인이 허공을 향해 빙글빙글 도는 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장 밖으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남삼객 적군은 천지이로가 이토록 약삭빠르게 자기가 화룡검을 뽑아들자마자 다짜고짜 도망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지이로는 그야말로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올린 자기네들의 명성도 돌보지 않고 화룡검을 상대로 손 한번 써보지도 않고 꽁지야 빠져라하고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적군은 일성을 대갈하여 몸을 솟구쳐 불문(佛門)의 축지술, 축척성촌(縮尺成寸)을 펼쳐서 급히 쫓아갔다.
그는 한 몸에 불가(佛家)와 도가(道家) 두 집안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고 공력이 절세적이며 검법이 무쌍했으니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사악한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일반적으로 두 발을 가진 사람이 네 발을 가진 동물을 쫓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남삼객 적군이 축척성촌의 경신법을 일단 펼치게 되자 수십 장을 한걸음에 내달을 수 있었고 천지이로가 네 발을 일제히 사용해서 수레바퀴가 구르듯 도망쳤으나 그들이 막 팔괘산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을 때 어느덧 남삼객 적군은 바짝 그들을 뒤쫓아 오고 있었다.
남삼객 적군은 천지이로가 만약 거리 쪽으로 달려 내려가서 민가로 찾아들어 숨어버리게 된다면 좀처럼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는 이미 높이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고수이기 때문에 만약 큰 거리에서 사람을 죽이면 즉시 그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이고 그의 이중신분 역시 즉각 밝혀지게 될 염려가 있었다.
주변 정세를 한눈에 살펴본 그는 길게 휘파람을 내불며 전신을 높이 솟구치면서 검과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앞으로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가 지금 펼치는 것은 바로 검도에서 가장 심오한 경지라고 하는 어검비공(馭劍飛空)의 기술이었다. 순간 한가닥 불타는 듯 새빨간 검의 광채가 허공을 가로질러서 어느덧 천지이로의 등 뒤까지 쏜살같이 덮쳐갔다.
『악……!』
『으아악……!』
두 마디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려퍼졌다.
온 하늘을 눈부시게 뒤덮은 붉은 광채가 번쩍 하고 빛났다가 사라지면서 한 폭의 피비(血雨)가 자욱하게 뿌려졌다.
남삼객 적군이 사뿐 내려서는데 그 옆으로 허벅지로부터 잘려져 나간 두 다리와 팔 하나가 뿌려지는 혈우 속에서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그 팔은 어깻죽지에서부터 잘려져 나갔으며 손에는 아직도 한 자루의 청죽봉이 꼭 쥐어져 있는 그 모양새로 보아 바로 주군좌의 왼손인 것 같았다.
주군좌는 왼팔이 그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검광에 잘려지게 되었고 그 고통에 처참한 소리를 내지르며 하마터면 땅바닥에 쓰러질 뻔하였다. 주군우는 바로 그때 그의 머리위에 있었다.
주군좌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그 찰나에 온 멀리와 온 몸에 핏물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던졌을 때 그는 이미 주군우의 두 다리가 허벅지로부터 썽둥 잘려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남삼객 적군이 도대체 어떤 검법을 펼쳐서 그들 두 사람이 피할 겨를도 없이 주군우의 두 다리를 자르고 그 자신의 왼팔을 자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생사간일발의 위기에 처한 것을 알았다. 만약 자기가 이대로 땅바닥에 쓰러지게 된다면 틀림없이 형제 두 사람이 일제히 남삼객 적군의 화룡검 아래 속절없이 목숨을 잃게 된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맹렬히 앞쪽에 있는 한 채의 민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음 순간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 두 사람은 일제히 집안으로 떨어졌다.
그들 민가는 모두 다 산자락을 끼고 지어졌으며 모두 합쳐 이십여 호나 되었고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농사꾼들이었다. 천지이로가 지붕을 뚫고 집 안으로 떨어졌을 때 그 안에서는 두 명의 부인이 베를 짜고 있었다.
그녀들은 지붕위에서 두 핏덩이 같은 사람들이 뚝 떨어지게 되자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으며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게 되었다.
그녀들이 부르짖는 소리는 즉시 부근 주민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고 집집마다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 나왔다. 그 사람들은 태반이 농사꾼들이었으며 집 앞에는 하나같이 곡식을 말리는 마당이 있었으며 그 마당에는 농기구들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오게 된 만큼 모두들 닥치는 대로 농기구를 집어 들었으니 곡괭이, 쇠스랑, 낫 등을 마구 휘두르며 고함을 질려대었는데 그 소리가 수마장 밖까지 들릴 정도로 왁자지껄했다.
이것이 바로 농사꾼들끼리 자기의 고장을 서로 도와가며 지키는 훌륭한 미풍양속이었다. 일단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모든 이웃사람들이 다 달려나와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었다.
남삼객 적군은 천지이로가 이미 몸에 중상을 입고도 여전히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막 뒤쫓아 가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으려고 할 때 천지이로가 몸으로 부딪쳐서 한 칸 민가의 지붕을 뚫고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곧이어 그는 두 마디의 뾰족하고도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그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고 두 여인이 달려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천지이로를 죽여야 하는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수십 명의 농사꾼들이 손에 손에 농기구를 들고 모여들었다.
지금 그가 만약 집안으로 들어가서 천지이로를 죽이게 된다면 이 기세로 미루어보아 필시 그 농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들이 떼 지어 일어나 공격해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 그가 만약 스스로의 만행을 은폐하려고 한다면 부근에 있는 모든 농민들을 죽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무림의 절정고수인데 어찌 손을 써서 전혀 반항할 능력이 없는 농사꾼들을 여러 명 죽여서 고약한 이름이 강호에 퍼져나가도록 할 수가 있겠는가?
다시 생각해 본 이후 그는 살그머니 산자락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는 천지이로가 이미 참담한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만약 한시진안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면 그대로 죽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사 두 사람이 죽음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몸에 그토록 심한 상해를 입은 이상 무공에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이제부터는 강호에 껍죽거리고 다니면서 그 누구와 자웅을 다툴 수도 없게 될 것 같았다.
남삼객 적군에게는 무엇보다 신타 을휴와 전모백을 찾는 일이 더 중요했다. 을휴와 전모백 두 사람을 잡고 있으면 그들을 인질삼아 전옥린을 위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쌍선까지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천하를 둘러보아도 그 세 사람이 일단 남삼객 적군에게 이용당하게 된다면 그 후에는 어떠한 사람도 그에게 항거하지 못하게 되리라. 남삼객 적군은 사태의 가볍고 무거운 점을 가늠해본 끝에 먼저 신타 을휴를 찾는 것이 급하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는 나무 뒤에 숨은 채 화룡검을 허리에 두르고 몸에 걸치고 있는 남색 장포를 벗어서 뒤집었다.
이 남색 장포의 안은 황갈색이었으니 뒤집어서 입게 된다면 대뜸 갈포(葛布)로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옷을 뒤집어 입자 다시 품속에서 하나의 인피면구를 꺼내 얼굴에 썼다. 그리고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듬고 갈색 허리띠를 둘렀다.
삽시간에 그의 모습은 수염 없는 중년인으로 바뀌어져 있었으며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도 훨씬 줄어들었다.
그의 몸은 커다란 머리통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위가 이미 바뀌어진 것이었다.
신타 을휴가 이곳에 있다 하더라도 그가 바로 남삼객 적군이라고는 믿지 못할 것 같았다.
남산객 적군의 동작은 매우 빨랐다. 반잔의 차를 마실 시간도 지나지 않는 사이에 그는 이미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바꾼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종종 자기의 모양새를 바꾸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다면 이와같이 정교하게 제작된 인피면구를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을 터였다.
그는 변장을 한 후 품속에서 손바닥 크기 정도의 거울을 꺼내서 자기 자신을 한번 비추어보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거울을 갈무리하고 산을 내려갔다.
그가 막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을 때 별안간 등 뒤에서 나직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약간 놀라서 후딱 고개를 돌려보니 두 왜소한 그림자가 대나무숲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대나무 숲은 산비탈을 따라 심어진 것으로 퍽이나 무성했다. 그러나 그 두 어린애의 모습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남삼객 적군은 몸을 움직여 어느덧 대나무 숲을 가로질러서 그 두 어린아이의 앞을 막아서게 되었다.
그 두 어린아이는 모두 열 살 정도의 나이였고 맨발에 머리카락을 하늘로 향하도록 띠로 묶어 놓고 있었으며 몸에는 짧은 장삼을 걸쳤는데 그 옷에 기운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 아래 농가집의 자녀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아마 대나무숲속에서 놀다가 산 아래에서 한 차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호기심에 못 이겨 달려나와 살펴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고개를 내밀게 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남삼객 적군이 변장하는 것을 보게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