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章 天山劍門의 後裔들
그 서생과도 같은 청년은 물론 남궁청우였다.
남궁청우는 아주 위급한 순간에 배에 있는 노를 던져서 두 사람을 구했으며 이윽고 그들이 이미 너무 지쳐서 장한들을 따돌리고 달아날 수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배에 오를 것을 권한 것이었다.
지금 남궁청우의 용모나 인상도 좋은 것이었지만 그의 주위의 네 명의 인재들의 모습 또한 하나같이 인중용봉(人中龍鳳)과 같은 기재(奇才)들이 있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친근한 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소녀와 소년은 급히 헤엄쳐서 장한들의 포위망을 빠져 나왔으며 이내 주저할 겨를도 없이 남궁청우의 배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이윽고 가까이에 이르러서 겨우 배의 위에 오른 두 사람을 향해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살고 있느냐?"
소녀는 자신의 의복이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물속에서 금방 나왔기 때문에 몸에 바싹 달라붙어서 체형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는 부끄러워서 고개만을 숙인 채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다만 그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少年)이 먼저 입을 열어 대꾸했다.
"예,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가까이에서 보니 소녀의 용모는 약간 햇빛에 그을리기는 했으나 건강미가 넘쳐흐르고 있었고 또한 두 눈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어서 아주 아름답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실로 이와 같은 곳에 그러한 미소녀(美少女)가 있었다고 하니 신기할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년의 얼굴 또한 매우 준수하기 짝이 없었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이 짙고 길게 뻗었으며 두 눈에서 강한 총기(聰氣)가 흐르는 것이 역시 이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총명한 미소년인 것 같았다.
남궁청우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문득 가우왕이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얘야, 너는 혹시 남궁세가에 요사이 새로운 가주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느냐?"
(......?)
소년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즉시 되물었다.
"그렇다면 저분이 바로 신임 남궁가주님이시라는 말입니까?"
가우왕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렇다. 너는 믿기지 않느냐?"
(......)
소년은 잠시 남궁청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믿기지 않는데요? 저분 아저씨는 너무나도 나이가 젊으시고 또한 무공을 익히지 않으신 것 같아요."
가우왕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 가주님은 조금 전에 무공을 펼쳐서 너희들을 구하지 않았느냐?"
(......?)
소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에게 남궁가주시라는 신물(信物)을 보여주시겠어요?"
가우왕은 그 말에 순간 이 꼬마가 맹랑하게도 엉뚱한 요구를 해오는군 하고 생각하며 남궁청우를 바라보았다.
남궁청우는 이에 문득 하나 남은 노를 잡고 일순간 검법(劍法)을 펼쳐보였는데 마치 그물과도 같은 초식(招式)을 펼쳐 보이고 나서 웃으며 물었다.
"너는 이 초식을 알고 있느냐?"
소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일전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펼치는 창궁십이검(蒼窮十二劍)가운데의 하나의 초식이지요. 정말로 당신은 남궁세가의 가주이신가요?"
남궁청우는 이에 품속에서 금검령(金劍令)과 금인(金印), 금시(金匙) 등의 가주의 삼보(三寶)를 직접 꺼내서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래도 믿지 못하겠느냐?"
......!
소년은 잠시 멍하니 그 세 가지의 물건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곧장 배안에서 남궁청우를 향해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천민(賤民)이 삼가 가주님을 뵈옵니다!"
남궁청우는 왠지 삼보를 품속에 거두어들이면서 사양하지도 않고 소년의 큰절을 다 받은 이후에 다시 물었다.
"이제야 나를 인정하겠다는 말이냐?"
소년은 절을 하고 나서 몸을 일으키며 웃으며 대답했다.
"예. 사실은, 아까 처음으로 보았을 때부터 아저씨의 모습이 남궁가주님의 용모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고는 긴가민가했었어요. 그래서 더욱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죠."
남궁청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너는 이미 나를 본적이 있었다는 말이냐?"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사실 이 부근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궁세가를 은인(恩人)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래서 들려오는 가주님의 용모에 대해서 제가 기억해 두었던 것인데 이렇게 정말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그럼 너희는 지금 본가의 전답을 부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이냐?"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저희들은 지금 호숫가에 나가서 매일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고 있지요. 다만 옛날에 저의 선친(先親)께서 이곳에 정착하실 때에 남궁세가의 소작농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기 때문에 돌아가시면서 그 은혜를 갚으라고 하셨지요. 사실은 그래서 오늘도 나서게 되었던 것이예요."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오늘 본가의 소작농가들을 습격한 사람들이 바로 저들이 맞느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 그들은 바로 태호도방의 무리들로서 갑자기 나타나서 논밭을 불태우고 양민들을 마구 학살했으며 나중에는 부녀자들까지 끌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저희 두 남매는 보다 못해서 아까 그 작은 배로 놈들을 추적하였는데, 그들은 저희들을 얕보았는지 아까의 그 큰 배로서 저희들을 추격하게 하였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일단 놈들을 무리들과 떨어지게 유인한 다음에 배의 밑창을 뚫어버렸지요."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바로 그렇게 된 것이었군. 네가 본가의 일에 그렇게 나서준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아까 보니 너희들은 모두 일종의 무공을 가지고 있더구나?"
소년은 약간 쑥쓰러운 듯이 대답했다.
"사실 그것은 저의 선친께 배운 것이었는데 제대로 배우지를 못해서 아직 엉망이예요. 만일 제대로 배울 수가 있었다고 하면 오늘과 같은 수모는 당하지 않았었을 거예요."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너의 아버지의 성함을 나에게 가르쳐줄 수가 있느냐?"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저의 선친의 함자는 건자(建字) 남자(男字)이온데 강호에서는 그분을 천산일검(天山一劍)이라고 불렀었다고 해요."
남궁청우는 약간 놀란 듯이 다시 물었다.
"천산일검(天山一劍) 증건남(曾建男)이 너의 선친이었다고? 그렇다면 너희들은 천산검문(天山劍門)의 후예였다는 말이냐?"
소년은 일순 약간 우울해지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 사실은 우리 천산검문은 과거에는 천산 일대에서 살았었다고 하지만 저의 할아버지부터 이곳 중원 땅에 내려와서 살게 되었다고 해요. 그것은 세외팔세(世外八勢)의 하나인 일월신교(日月神敎)가 우리 천산검문을 거의 멸문시켰기 때문이래요. 저희 천산검문은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가 없어서 도망치게 되었지요. 그런데...... 저의 아버지께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그 원수를 갚으시느라고 미처 저희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시지 않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희들은 그만 그 무공을 배우지 못하고 말았어요. 저희 천산검문은 저희들의 대에서 끊어지고 말았어요."
......!
과거에 천산(天山) 일대에서 세력을 떨치던 천산검문(天山劍門)이 갑자기 멸망하게 되었다는 얘기는 남궁청우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천산검문의 마지막 후예가 바로 이 소녀와 소년일 줄은 정말로
뜻밖의 일이었다.
(......)
남궁청우는 문득 다시 물었다.
"얘야, 너의 이름을 가르쳐 주겠느냐?"
소년은 이에 웃으며 즉시 대답했다.
"예. 저는 증소보(曾少寶)라고 하고 나이는 이제 열두 살이예요. 그리고 저의 누나는 증유(曾柔)라고 하는데 나이는 지금 열일곱이지요."
소년 증소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나이는 물론이고 누나의 이름과 나이까지 한 순간에 말해버렸다.
본래 처녀의 이름과 나이를 발설하는 것은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금기시되어 있었던 것이었는데 증소보가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는 소녀 증유(曾柔)는 그만 얼굴을 붉히면서 더욱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배의 밑바닥에서 쿵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갑자기 배가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고 증소보가 약간 놀라서 말했다.
"앗, 그들이 배의 밑창을 뚫어버리려고 해요!"
그렇다.
조금 전에 장한들은 남궁청우의 그 무공이 대단한 것을 보고는 그만 질려서 잠시 물러가는 듯 했으나 역시 물속에서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윽고 물속으로 수영을 해와서는 배의 밑창을 뚫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남궁청우는 일단 웃으며 증소보를 안심시킨 다음에 문득 고개를 돌려서 가우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왕, 너와 덕승이 함께 밑으로 내려가서 놈들을 물리치도록 해라. 다만 가급적이면 놈들을 죽이지는 말고 무공만을 폐지시키도록 해라."
(......!)
가우왕은 순간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그는 남궁청우의 내호위이니 물론 그가 지시를 내리면 어떤 일이건 간에 충성을 다해서 이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실 그는 수공(水功)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물을 무서워하는 공포증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가우왕은 일순 안색이 대변하여 어물어물하며 말했다.
"가, 가주. 그, 그것은 저말이고 선비를 보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
남궁청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는 이미 나에게서 조금 전에 수공(水功)의 구결까지 배운 사람이 아닌가? 주저하지 말고 어서 내려가게."
(......!)
가우왕은 남궁청우가 다시 그처럼 지시하자 그만 안색이 거뭇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남궁청우가 두 번씩이나 같은 지시를 내렸는데도 그것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주저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쾅! 하는 소리가 배의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가우왕은 그만 방덕승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
이 태호의 호수는 매우 깊었다.
게다가 호수의 가운데이기 때문에 일단 아래로 내려가자 뛰어든 무게 때문에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
가우왕은 원래부터 물에 대해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저 얕은 시냇물이라고 해도 안색이 파랗게 질리는 판이었는데 느닷없이 그렇게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그만 전신이 뻣뻣하게 일시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가우왕은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이미 자신이 물속의 깊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전신에 물의 압력이 느껴지면서 숨이 막혀오는 것이 아닌가?
가우왕은 이미 두어 모금이나 엉겁결에 물을 들이마셨기 때문에 코끝이 찡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고 있는 상태였다.
만일 호흡이 그렇게 가쁘지 않았다면 가우왕은 정말로 혼절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우왕은 공력이 깊어서인지 쉽게 혼절하지 않았고 대신에 극심한 질식의 고통을 느꼈고 또한 죽음의 공포를 아울러서 느끼게 되었다. 가우왕은 그러한 공포감속에서 더욱 미친 듯이 손발을 허우적 거리다가 그만 너무나도 놀라서 전신이 굳어져 버렸는지 갑자기 전신이 정말로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일시적인 주화입마(走火入魔)의 현상이었다. 그는 한 순간에 너무나도 극심한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그만 자신도 모르게 공력을 끌어올렸는데 그것이 그만 다른 경락으로 스며들어간 것이었다.
헌데 우연의 일치였을까?
바로 그러한 절박한 순간에 갑자기 가우왕의 뇌리에는 아까 남궁청우가 조용히 낭송해준 그 구결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었다.
(......!)
워낙에 다급한 상황이라 그것이 정확한지의 여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가우왕은 즉시 구결에 실려 있는 대로 귀식지법(龜息之法)과 흡사한 수공의 호흡법을 하기 시작했다.
남궁청우의 구결에 의하면 만일 그러한 호흡법에 익숙해지게 되면 절정의 공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하루 종일이라도 물속에서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가우왕이 너무나도 다급하고 절박한 심정속에서 그러한 것을 운용했기 때문에 효과가 더욱 빠르게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가우왕은 점차로 시간이 흐르자 고통스러운 질식상태에서 점차로 전신의 기혈(氣穴)이 순조롭게 풀려 나가면서 고통이 감소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의 공력이 이미 절정의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되었으나 기실은 그것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고 이내 가우왕은 눈을 떴다.
일단 물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도 상당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신형(身形)이 다시 위로 떠올라 왔는지 주위가 희뿌연 기운으로 가득차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전면에서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그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날이 시퍼런 분수자(分水子)를 휘둘러서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
가우왕은 그저 멍하니 있다가 느닷없이 분수자에 의해서 한쪽 어깨의 살이 갈라지면서 피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알고 보니 그 검은 그림자는 바로 아까의 그 태호도방의 사람들이었다.
밖에서는 그들의 무공이 형편없다고 생각하여 멸시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그들이 이렇게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일 줄은 몰랐었다. 가우왕은 그만 경악하여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연이은 장한의 공격에 다시 다른 쪽의 어깨가 갈라지면서 피가 새어나오고 말았다.
가우왕은 그리고 나서 다시 공격해 들어오는 그자의 얼굴을 보자 일순 마음속에 다시 한번 공포스러운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물속에서의 그는 우둔한 굼벵이나 다름이 없었고 상대방은 날쌘 제비와도 같으니 상대가 되지 않았고 이내 그의 가슴은 저자의 날카로운 분수자에 의해 꿰뚫리게 될 것이 뻔해 보였다.
가우왕은 순간적으로 다시 한번 남궁청우의 구결의 내용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내심으로 침착해지기 위해서 이빨을 꽉 다물었다.
파악!
어느새 다가온 그자의 분수자에 의해서 가우왕의 옆구리가 깊은 상처를 내면서 피를 다시 내뿜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피를 많이 흘린다면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우왕은 그것을 지혈할 사이도 없이 즉시 구결의 내용대로 내공을 끌어올려서 우선 몸의 균형을 잡았으며 뒤를 이어서 거의 필사적(必死的)으로 구결의 내용에 따라서 신형을 움직였다.
상대방인 장한은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서 공격을 하다가 느닷없이 가우왕의 신형이 빠르게 옆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고는 그만 헛손질을 했으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과연 남궁청우가 가르쳐준 구결의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다.
가우왕은 일단 물속에서 호흡을 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내심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다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장한을 주시했다.
가우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직 장검도 뽑아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내심으로 실소했다.
가우왕은 즉시 허리춤의 장검을 뽑아들었으며 이번에는 피하기만 하지 않고 오히려 장한을 공격하리라고 생각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느닷없이 뒷머리가 서늘한 것을 느껴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뒤에서 한명의 장한이 빠르게 분수자를 휘둘러서 자신의 머리를 베어오는 것이 아닌가?
가우왕은 그것을 보고 경악하여 안색이 변했다.
(아, 내가 오늘 여기에서 그만 죽는구나!)
뒤에서 공격해오고 있는 장한의 분수자는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어서 도무지 피할 수가 없었고 또한 그것을 막아낼 수가 없다는 것도 물론이었다. 게다가 지금 바로 지척에는 앞쪽의 장한이 다시 흉악한 기세(氣勢)로 자신을 향해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가우왕은 그야말로 절대절명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서 두 눈을 있는 대로
부릅떴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뒤에서 공격해 오던 장한과 앞에서 공격해오던 장한의 목이 마치 거짓말처럼 썩뚝 잘려져 나가면서 그곳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와서 주위를 시뻘겋게 물들이는 것이 아닌가?
(......?)
가우왕은 그것을 보자 마치 자신의 목이 그렇게 잘려나간 것 같아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기실 그의 목은 아직 온전하게 붙어 있었다. 뒤의 장한의 그 분수자는 아직 그의 목을 베지 못하고 그저 살짝 그의 목부위에 닿아 있었던 것이었다.
가우왕은 섬뜩한 느낌이 싫어서 즉시 그 시체를 뒤로 밀어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바로 다름 아닌 방덕승이었다.
그는 손에 장검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바로 조금 전에 가우왕의 목숨을 구
하기 위해서 두 명의 장한의 목을 베었던 것이었다.
가우왕은 내심으로 그것을 알자 욕을 하며 중얼거렸다.
(우라질! 내가 저 녀석의 구명지은(救命之恩)을 받게 되다니!)
방덕승은 그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는 그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앞쪽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지금 방덕승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남궁청우의 구결을 이미 터득한 듯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에 못지 않게 빠른 것 같았다.
가우왕은 평소에 거의 방덕승에게 부러워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물속에서 여러 번이나 속이 상하게 되는 것을 느끼면서 즉시 구결의 내용을 뇌리에 떠올렸다.
남궁청우가 가르쳐준 구결의 내용은 정말로 신기했다. 어느새 그는 알고 보니 호흡도 안정이 되어서 마치 지상에서처럼 호흡이 가쁘지 않고 있었고 점차로 상하좌우(上下左右), 그리고 앞뒤로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워졌다.
가우왕은 실험해 볼수록 더욱 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문득 어느새 자신이 물속에서도 공포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기랄, 나쁘지는 않군!)
가우왕은 내심으로 중얼거리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즉시 신형을 움직여서 배의 아래쪽을 찾아갔다.
거기에서는 방덕승이 이제 마악 마지막 상대인 세 명의 장한과 마주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우왕은 그것을 보자 신형을 빨리하여 방덕승의 뒤를 공격하고 있는 그 장한을 빈손으로 공격했다.
(......)
그 장한은 가우왕이 그다지 능숙하지 않은 몸놀림으로 다가오면서 빈손으로 자신을 공격해오자 그만 만만하게 보였는지 즉시 그를 향해 방향을 바꾸어서 대들었다.
휙!
그자의 분수자는 아까의 그 장한들보다 더욱 위력적인 것 같았다. 아마도 이제 남은 세 명이라서 가장 무공이 고강한 자들이었던 모양이었다.
가우왕은 어느 정도 자신을 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그자의 공격에 다시 한번 옆구리가 길게 베일 뻔했다.
그러나 가우왕은 순간적으로 공력을 강하게 일으켜서 좀더 좌측으로 움직였고 아차 하는 순간에 이미 그자의 앞으로 다가들어서 손목을 후려치고 이어서 기해혈(氣海穴)을 누를 수가 있었다. 그자의 날이 시퍼런 분수자는 이미 가우왕의 옆구리 사이에 끼어져 있었다.
일단 기해혈이 파괴당한 사람은 무공이 전폐되는 것이었다.
가우왕의 섬전지(閃電指)의 수법에 의해서 기해혈이 파괴당한 그 장한은 이내 맥없이 물위로 떠올랐고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는 비록 물에 빠져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다시는 물속에서 남을 해칠 수
는 없게 될 것이었다.
가우왕이 분수자를 내던져 버리자 어느새 방덕승은 그 두 명의 장한들의 무공을 폐지시키고 나서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축하하네, 우왕!"
가우왕도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가 일순 방덕승의 말소리가 자신의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을 알고 놀라서 내심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 녀석이 벌써 물속에서 말하는 것까지 터득했단 말인가?)
다음 순간에 가우왕은 즉시 남궁청우가 말해주었던 구결의 내용을 다시 떠올리면서 다급하게 수중전음(水中傳音)을 발했다.
"자네도 수고했네."
그러자 방덕승도 다소 놀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