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자아의 인식과 성찰의 서정적 진실 --지상규 시집 『강둑에 어깨를 기대어 두고』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소박한 삶에서 인식한 “나”의 성찰 현대시 창작의 발상이나 동기는 어차피 “나”를 중심으로 해서 나의 삶과 나의 정서가 주축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 자신이 내 삶의 여정에서 생성한 궤적(軌跡)에서 회상하고 재생하는 사유(思惟)의 일단이 중요한 이미지로 창출되는 과정에서 작품이 발현되는 현상을 자주 목도(目睹)하게 된다. “나”라는 개체(個體)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가지 영위한 생존의 과정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칠정(七情)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정신적인 영향을 적시했느냐 하는 문제에서 자아(the ego) 인식의 개념이 성립하게 되고 더욱 발전적인 가치관 형성의 원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지상규 첫시집 『강둑에 어깨를 기대어 두고』을 일별하면서 이러한 경조부박(輕佻浮薄)하게 인지한 필자의 감응은 그가 자신의 소박한 삶에서 인식하는 성찰의 의미가 곧 존재의 가치를 탐색하는 상상의 세계를 유영(遊泳)하면서 “나”의 지향점을 정립하려는 그의 지적인 사유에 접근할 수 있어서 그가 갈구하는 시적인 주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잇는 것이다. 일찌리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면서 그의 철학적인 상징으로 인생의 심오(深奧)한 문제들을 아테네 광장에서 역설한 것을 보면 나 자신의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그의 학문을 이해하게 되고 프랑스의 여류작가 보부아르도 “내가 나로 인해서 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나이다. 완전히 나에게 속한 유일한 현실이란 두말 할 것 없이 나의 행위”라고 그의 글 「인간에 관해서」 중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나”를 의식하는 많은 사유가 철학적인 경지에 까지 치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상규 시인은 이미 <시인의 말>에서 “등진 하늘을 가슴에 안고 쓰디쓴 삶의 여정을 깊은 강물에 담가/ 숨을 헐떡일 때도, 시마詩魔가 찾아오지 않아 밤을 지새우며, 새벽 별을/ 가슴에 얹어 놓고 시詩의 갈증을 풀어 헤쳐 보려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엉덩이를 밀어 나를 대숲의 파노라마에 실어보았다.”는 의미심장한 언지로 “나”에 대한 진솔한 그의 정서에서도 그의 내적인 경지를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아직도 부족하다 내가 무슨 시를 쓴다고, 나뭇잎이 바람에 갈기갈기 찢기는데 나뭇잎의 아픔을 안아주지도 못하고 빗방울이 가슴에 멍이 들어 울화가 치밀어도 빗방울 눈물을 닦아주지도 못하고 접시꽃의 살갗이 햇볕에 에이어 목말라하는데도 에인 살갗에 물 한 모금을 발라 주지도 못하고 비바람이 문풍지를 뚫고 사랑의 속삭임을 뒤틀리게 해도 비바람 옆구리를 쳐서 달래주지도 못하고 순댓국 내장이 펄펄 끓어 아픔을 토해내는데도 돼지의 쓰라림을 엮어 내지도 못하고 밭고랑에서 정신없이 자란 풀들이 예초기에 사정없이 목이 잘려 나가는 데도 목을 보듬어 핏물을 쓸어 모아 장례식도 치루지 못하고 미루나무가 강물을 다 말아 먹어 고기떼들의 살점이 뜯어지는데도 고기떼에게 아까징끼를 발라 쓰다듬어 주지도 못하고 매미들은 나무 그늘을 기둥 삼아 울어 대며 시詩도 못쓰면서 잘 난체 한다고 쓰브렁, 쓰브렁, 나는 무슨 소린지 듣지도 못하고 멍청하니 귀만 빌려주고 있다 아, 그런데 연필이 손끝을 쿡, 쿡, 피가 난다, 아프지도 않다. -- 「아직도 부족하다」 전문 그렇다. 지상규 시인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전제를 그의 인생론 첫 구절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 어쩐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실체에서 아직도 너무나 많은 부족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내가 무슨 시를 쓴다고,”라는 단서를 먼저 제시하면서 “못하고”라는 형용사 어미를 붙여서 그 자신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뭇잎의 아픔이나 빗방울의 눈물과 접시꽃의 목마름, 비바람의 사랑의 속삭임 등등 이루어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아픔이나 고통을 쓰다듬거나 치유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애통하게 자성(自省)하고 있어서 그의 삶에서 적응하는 현실적인 상황들과의 괴리(乖離)가 곧 그의 부족함으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심저(心底)에는 “매미들은 나무 그늘을 기둥 삼아 울어 대며 시詩도 / 못쓰면서 잘 난체 한다고 쓰브렁, 쓰브렁,/ 나는 무슨 소린지 듣지도 못하고 멍청하니/ 귀만 빌려주고 있다”는 결론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 들려주는 인간사의 적응에는 많은 난관(難關)이 상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지상규 시인의 자아 인식은 작품 「빈집」 중에서 “빈집의 구들장이 되어 남을 위해 뜨거워지지 못하고/ 혼수상태인 채로 있는 나는 무어라 할까”라거나 「새벽바람」 중에서 “멍든 가슴을 시로/ 노래할 수 없는/ 나,/ 울음을 시 울림으로/ 토해내지 못하는/ 나,/ 내가 죽어 있다,” 그리고 「용서」 중에서도 “내 안의 침묵이 그대를/ 아프게 했고/ 내 안의 고름이 그대의/ 가슴에 피멍으로 물/ 들게 했으니/ 그대에게 한 번의 상처를/ 안아주지 못했습니다”는 어조(語調)는 자신이 진정으로 참회(懺悔)하는 심경을 이해하게 된다. 모두가 떠나고 혼자다 국제선, 국내선 불빛만 방랑객의 발걸음을 지척지척, 삶의 무게를 비행기 바퀴에 매달아 하늘로 날린다 생의 굴레를 구름떼 끝, 창공 속 쉼터에 안착 시킨다 삶의 상흔傷痕을 날개에 얹혀두고 외롭게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제 항로를 따라 혼자인 것을, 이제는 이순, 느리게 가야할 때도 되었는데 生의 미련이 남았는가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도 되는 것을, 스르륵 스르륵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어 비행기 속에 나를 밀어 넣는다 한 마리 떠있는, 아니, 떠도는 새가 되어, 극락極樂을 맴돌고 있다 구름 위 수평선 끈을 붙잡는 뱃사공이 허공을 낚아챈다 -- 「허공」 전문 다시 지상규 시인은 부족한 자신의 위상(位相)에 대해서 상당한 고독감을 감지하고 있다. 그는 “모두가 떠나고 혼자다”라는 자괴감(自愧感)에서 생성하는 고독감이 이순(耳順)의 생애에서도 “생의 굴레를 구름떼 끝,/ 창공 속 쉼터에 안착 시킨다/ 삶의 상흔(傷痕)을 날개에 얹혀두고/ 외롭게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제 항로를 따라 혼자인 것을,”이라는 어조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변전(變轉)에는 “한 마리 떠있는,/ 아니, 떠도는/ 새가 되어,/ 극락(極樂)을 맴돌고 있다”는 자신의 심중에서 궁극적으로 해법을 탐구해야 하는 삶의 상흔이 “구름 위/ 수평선 끈을 붙잡는/ 뱃사공이 허공을/ 낚아챈다”는 상념(想念)을 지울 수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내면 의식은 작품 「강둑에 어깨를 기대어 두고」 중에서 “한 마리 나비 되어 내 몸 구석구석/ 싣고 은빛 비늘과 함께 솟구치고 있구나/ 강둑에 어깨를 기대어 두고/ 나 혼자만 남아 있다”라는 고독을 「뱅갈고무나무가 나를 집어 삼키고 있다」 중에서 이젠 “외롭지 않으리/ 이제는 애처롭게 손을 뻗지 않아도/ 어느 가을날 병들어 낙엽 되어 썩어가는/ 흙무덤 되어도 얼마나 다행이랴/ 그대 푸르름을 간직한 고무나무 되어/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라는 어조로 명민(明敏)하게 고독한 상황을 해갈(解渴)하는 조화의 해법을 적시하고 있어서 사유의 변화가 가독성(可讀性)으로 현현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2. 계절의 섭리와 춘하추동의 이미지 지상규 시인은 자아의 탐구에서 자애(自愛)의 심층적인 깊이를 심도(深度)있게 발현하였으나 이는 삶의 여정에서 창출하는 사유의 지향이 인생행로에서 새로운 가치관이나 인생관 형성에 폭넓게 사려(思慮)의 정감적인 메시지로 해법을 정리하였으나 이러한 삶과의 동행에는 시간성, 즉 세월이 동반하는 사계절의 섭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사계절의 섭리에 대한 다채로운 변화의 현장에서 착목(着目)하는 사물들의 언어가 그의 의식에서는 사계절마다 감지하는 이미지가 서로 다른 차이의 언어로 또는 그림으로 들려주거나(telling) 보여주고(showing) 있다. 일찍이 장자(莊子)도 “밤과 낮은 생과 사와 같고 춘하추동 사계절은 사람의 일생과 같아서 삶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으며 옛날 정도전의 「삼봉집」에서는 “봄이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은 봄의 성장이며 가을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은 봄의 수장(收藏)이다”라는 언지로 계절의 특성을 논한 바 있어서 계절의 순환에서 흭득하는 우리 인간들의 심리적인 변화는 필설(筆舌)로 형언키 어려울 것이다. 불꽃으로 물들여지는 세상에 피지도 못한 너는 용쓰고 참살이 삶을 다시 꿈꾸고 있는 것인가 뒤집기 하여 구겨진 삶을 지피기 위해, 겁도 없다, 겁도 없다 하나, 하나, 하나, ……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내미는 것을 보면, 저 어린 새순도 짝짓기 하여 이 봄을 살찌우러 나오는 것이라고나 할까 쳐다보아도, 쳐다보아도 온 몸의 털들이 일어서고 있네 나도, 높고, 하찮지만 따뜻한 삶을 살찌우는 산수유나무 되고 싶다 메마른 땅에서 봄이 오는 소리 들린다 --「봄이 오는 소리」 중에서 우선 “봄이 오는 소리”에서 들리는 청각적인 이미지는 “참살이 삶을 다시 꿈꾸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하여 “구겨진 삶을 지피기 위해,” 겁도 없이 뒤집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인식에는 만물의 희망이 피아니시모(pianissimo)로 여리게 들리고 있다. 봄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희망의 계절이며 새로운 출발로 비상(飛上)하려는 활력의 계절이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봄철의 숲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인간에게 도덕상의 악과 선에 대하여 어떠한 현자(賢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지상규 시인도 참살이 삶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나도,/ 높고, 하찮지만 따뜻한 삶을/ 살찌우는 산수유나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애끓는 내 마음을/ 치렁치렁 허공에 띄워/ 붉은 상흔傷痕 한 아름 담아/ 그대에게 백지 편지 보낸다(「봄의 소리」 중에서)”는 어조로 봄이 전해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봄에 관한 작품 「봄내음의 시기」 「봄을 싣고 왔습니다」 등에서도 봄이 풍기는 향훈과 더불어 생동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햇살을 삼키고 있는 향나무 가지가 시끄럽다 여기 저기 여름을 삼켜보려고 가을의 펜 끝을 그리는 멧새 두 마리가 내 귀를 붙잡고 있다 그대를 달래주지 못한 마음을 몰골로 침침해지고 있는 나무 가지 위에 걸어 두고 칭얼대 고 있는 것일까 그대 가슴에 대못질 하던 나를 가지 끝에 내 귀를 매달아 두고 쪼아대며 당신의 눈물을 말아 넣으려 하고 있는 것일까 당신의 심장에 냉가슴을 앓게 해 놓고 떠나 버린 구름의 치맛자락 속에 내 가슴을 감아 두고 당신을 치유하려는 것일까 낙동강 모래밭에서 한 점, 한 점, 조개껍질을 묶은 목걸이를 내동댕이 치고 끝내는 사랑을 묻어버린 새들의 부리를 들이대고 있는가 -- 「가을 소묘」 전문 지상규 시인의 계절 감응은 「여름 사랑」과 「매미 울음 그치는 날」을 제외하고는 가을의 이미지가 많이 발현되고 겨울 이미지도 「겨울 연가」 「겨울밤」에서 머물지만 가을에 다한 그의 숙성한 풍요의 이미지가 다수 생성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가을에 대한 이미지나 상징은 대체로 오곡백과가 무르익어서 풍요로움이어서 모두가 풍성한 생활에서 넉넉한 정신으로 발현되지만 낙엽이나 엷어지는 햇살에서는 어쩐지 고독하고 애련(哀憐)의 심정이 가득 차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는 이 가을에서도 “나”를 중심축에 놓고 저기 가을 햇살을 받고 있는 향나무 가지에 앉은 멧새 두 마리의 요란한 지저귐에서 그는 “그대”라는 화자를 대칭적으로 내세우고 “당신의 심장에 냉가슴을 앓게 해/ 놓고 떠나 버린 구름의 치맛자락/ 속에 내 가슴을 감아 두고 당신을/ 치유하려는 것일까”라는 의문의 어조로 가을 정경을 자신의 가슴속으로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이니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니 황국(黃菊)단풍(丹楓) 그리고 추풍낙엽(秋風落葉) 등의 어휘로 가을을 장식하면서 우리 시인들은 자신의 정서와 사유의 정점(頂點)에서 가을을 노래한다. 지상규 시인도 작품 「가을밤」 「가을바람 거두는 강둑」에서 계절적 서정이 넘치는 그의 어조를 들을 수 있게 한다. 3. 향수와 사모곡, 그 그리움의 진원지 지상규 시인의 뇌리(腦裏)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불망(不忘)의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그의 상상력이 재생하는 처처(處處)마다 그의 시적 모티브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동시에 현현되는 시법을 선호(選好)하고 있다. 이처럼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와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은 보편적인 사고(思考)의 범주(範疇)에서도 지워질 수 없는 영원성을 가지지만 지상규 시인의 사고에서는 아스라한 추억에서 그리움의 진원지가 되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진 세월의 날을 세우던 삽으로/ 골을 다듬어 가난한 슬픔을 동여맨다/ 한 고랑, 한 고랑 땀구멍에서 솟아오르는 냄새가/ 거름 되어 고랑마다 뿌려지고 있다/ 수런거리며 피어나던 연분홍 옷고름/ 담긴 막걸리 빚던 어매의 핑경소리,”라는 옛 농촌의 애환이 깃든 밭고랑에 뿌려지는 “어매의 핑경소리”에서 그는 어머니의 목소리들 듣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아직도 밭고랑// 치고 있는 겨’ //방창方暢한 햇살이 머물러 노오란 민들레/ 꽃과 정분精分으로 희락喜樂하고 있던 나비/ 한 마리 밭고랑을 총총걸음으로 하나하나 세고,/ 서설瑞雪이 가득했던 어머니의 수심愁心이/ 가득 차 고랑고랑에 누워 있다(이상 「밭고랑 치는 날」 중에서)라는 어조는 참으로 눈물겹게 여한(餘恨)으로 생성하는 시법이다. 장작불 아궁이 속의 촉촉한 고구마 껍질이 벗겨지듯 창문 너머 파르르 입술을 떨고 있는 선홍빛 장미꽃 속에 스며든 얼굴이 멈추어, 낙엽이 머물다 간 빈자리 채우고 찬 공기의 빛깔들을 구워내고 있다 꽃술의 단술에 취해 성긴 벌떼들의 신음소리 벌겋게 익어가는 구름의 색깔을 더듬고 산등성이를 휘감아 피어나고 있는 소나무의 웅웅거림이 칭얼대고 있다 지난한 가마솥을 불태우던 어머니의 불어 터진 젖 몽우리 비추며 삶을 엮어가는 해 질 녘, 내 고향이 머물러 있다 -- 「해 질 녘 창문 너머로」 전문 지상규 시인의 향수는 그의 시야에 펼쳐진 파노라마(pnorama)로 서정적인 절창(絶唱)으로 우리들에게 고향과 어머니의 추억이 삶의 아련한 지표(指標)로 남아 있어서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해질녘의 산촌 정경이 서정적인 이미지로 전개하다가 “지난한 가마솥을 불태우던 어머니”와 “장작불 아궁이 속의 촉촉한/ 고구마 껍질”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내 고향”의 그리움이 동시에 현현되는 이 시법은 그가 평소에 간직한 시혼(詩魂)의 원류가 바로 고향과 어머니라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작품 「「어매 국시」」 중에서 “어매의 울퉁불퉁한 손등 냄새도 수평선 끝이 되어, 외롭고, 높게,/ 날아온 그리움, 치렁치렁 국시다발을 내다 걸고 있다”라거나 「조개 꽃」 중에서도 “달구리에/ 가난의 치맛자락/ 도려내는 어머니 한(恨)/ 숨소리 묻어내는/ 외로움을 씻어/ 지열을 뚫고 펼쳐/ 진다,”는 “어머니의 한”의 숨소리는 그의 인생에서 깊이 잠재해 있는 그리움의 발원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의 귀때기를 대고 있으면 어매의 숨소리 가슴에 묻는다 발가벗은 등걸이 붙잡으면 피의 고름이 배어 있는 치맛자락 자늑자늑 흔들리고 있다 개똥이 부르는 목소리 밥을 짓다 눈물 자국이 굴뚝 따라 피어오른다 길이 아닌 곳을 가기 위해 서 있던 골목 어귀 발걸음, 해거름을 감고 있는 속살의 멍든 무늬를 수繡놓고 있다 타박타박 어매의 가난한 발자국 소리 아직도 길이 끝나지 않은 곳에 서 있다. -- 「그리움」 전문 지상규 시인의 진정한 그리움의 정수(精髓)는 “어매의 숨소리”와 “눈물 자국”과 “멍든 무늬” 그리고 “어매의 가난한 발자국 소리”에서 정리되고 있다. 이는 그가 고향에서 어머니에게서 듣고 본 어머니의 행적에서 재생한 하나의 효심(孝心)에서 발원한 시적인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김남조 시인이 어느 글에서 어머니하고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내 몸에 흐르는데 이는 아픈 전기라고 했다. 아프고 뜨거워서 견딜 수 없는 전류가 내 온몸에 흘러내린다는 말로 어머니의 진한 사랑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작품 「어매 무덤」 전문에서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귓불이 따갑다/ 학교 사택 안/ 등골이 다 패였지만/ 생기가 돋아나는/ 모과나무 가지 끝에/ 울퉁불퉁한 모과 한 개/ 대롱대롱,/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내리치는 붉은 공복에/ 새하얀 피를 토하며/ 가지를 끝까지/ 붙잡고 있다”라는 애통해 하는 그이 시심을 엿보게 하고 있다. 4. 자연에서 탐미하는 서정적 자아 지상규 시인은 자연 정서에도 흠뻑 몰입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과 들, 물과 꽃 등 지천으로 깔려있는 만유(萬有)의 자연현장에서 그가 감응하는 자연의 이미지는 그 섭리와의 순응에서 발흥하는 시적인 메시지가 우리들에게 다양한 생명력을 흡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찍이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요산요수(樂山樂水)에 심취했는지(“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인자한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인자한 사람은 장수한다.”(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산수(山水)와 거기에서 자생하는 초목(草木)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산, 멈춰버린 새들의 지저귐, 돌 틈새로 피어나는 야생화 세상을 잠재우려 몸부림 치고 있는 허탈한 마음과 그대의 아픔을 송골 송골 맺힌 땀방울을 이마에 삭히고 꽉 찬 나무들 틈새 비춰 오는 한 줄기 빛 떠가는 구름에 못 다한 노래 가락 띄워 보내고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메아리 되어 개암나무 끝에 매달려 웅크리고 있다 처절하게, 피 울림으로 서녘 하늘에 나를 파묻어 삼키고 떠나갈 듯이 -- 「산을 오르며」 전문 그는 산행(山行)에서 먼저 각종 멧새들의 지저귐과 “돌 틈새로 피어나는/ 야생화 세상”에서 그가 깊이 은닉(隱匿)해 두었던 자연 서정의 감도(感度)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처럼 “산을 오르며” 정감적으로 소통하는 메시지는 마지막 연을 장식한 “처절하게, 피 울림으로 서녘 하늘에 나를/ 파묻어 삼키고 떠나갈 듯이”라는 어조에서 몸부림과 허탈과 아픔이 농축된 자신의 속내를 지금까지 “못 다한 노래 가락”으로 한 줄기 떠가는 구름에 띄워 보내면서도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메아리”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낙산사 소나무」 중에서 “포효하는 바다 포말泡沫을 감싸 안아/ 천년의 한恨을 수액으로 빨아들이고,/ 불타는 잿더미 속에서도 / 부처님의 자비가 물관부에 / 스며들어 뿌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낙산사에 뿌리내린 소나무와의 교감은 무엇인가 우리들 가슴에 한을 용해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밖에도 작품 「노을」 「무릉 갈대 신음 소리」 「모과나무 아래서」 「낙엽」 「초암사 가느 길」 「마라도 가는 길」 등등에서 그가 탐미하는 서정이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부새※ 부는 그 어느 날, 가파른 길을 돌고 돌아 바위 틈새 몸을 깎아 비틀고 있는 꽃입니다. 마음을 붙들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삶을 바위에 기대어, 기다림에 지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신 손을 멀어져가는 구름에 묶어 보내야만 했습니다 시들어 떨어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울먹이던 나뭇잎들은 출혈로 가득 찬 당신 가슴을 보듬어 안고 괴로워했습니다. 휘몰아치는 싹쓸바람※※에도 가냘픈 허리를 감싸 안으며 당신과 함께 걸어야 할 꽃이었기에 세월의 가시에 피 흘림을 쏟아내었습니다 너울지는 기다림을 참아내었던 시간들, 잡아도 잡아도 그리움의 끈은 멀어져만 갑니다 또 다시 비틀거리며 낡아가는 몸을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 「상사화」 전문 이 상사화는 꽃전설에 따라서 서로 사랑을 대면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꽃이다. 지상규 시인은 다양한 화훼류에서 미적(美的)인 이미지를 탐구하고 있는데 “마음을 붙들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삶을 바위에 기대어,/ 기다림에 지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신 손을 멀어져가는/ 구름에 묶어 보내야만 했습니다”라는 비감(悲感)의 어조에 읽을 수 있듯이 상사화가 던져주는 언어는 “세월의 가시에 피흘림”이나 “너울지는 기다림을 참아내었던 시간들” 그리고 “잡아도 잡아도 그리움의 끈은 멀어져만” 가는 비련(悲戀)의 메시지가 가슴 뭉클하게 전류로 흐르는 의식을 이해하게 한다. 지상규 시인의 자연 서정은 그에게 닿는 시야 어디서나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다. 작품 「모과나무꽃 아래 나를 놔두고」 중에서 “젖가슴이 쭈그렁 해진 어매와/ 나의 멍든 손마디를/ 노을 지는 모과나무꽃 아래 놔두고 있다“거나 「철쭉꽃」 중에서도 “그 옛날,/ 동구 밖 엷은 살갗을 드러낸 살구나무 밑 첫/ 사랑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못내 서러움을 빚어내는 절구통에 쿡쿡 가슴을/ 도려내어 삼월의 눈 속에 나를 밀어 넣고 있다“는 그의 친자연적인 시상(詩想)은 서정적 자아의 창출을 위해서 찬양할만한 시법이라고 느껴진다. 5. 결(結)-이상향을 위한 지향 의식 지상규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자아의 인식은 물론, 자아 성찰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론과 가치관 정립을 위한 예각(豫覺)의 단계를 설정하는 출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무상무념인 밧줄에/ 모가지가 걸린 채로,/ 몸을 깎아/ 세월을 낚고 있는/ 절벽만 바라보며/ 하염없다,(「무릉(武陵)에서」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옛 도연명의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아 인식과 성찰 과정에서 수긍(首肯)한 삶의 질(quality life)에서 궁극적으로 섭취(攝取)한 진실이 무엇인가를 사계절의 시간성과 여기에서 회귀한 향수와 사모곡 그리고 자연 서정에의 동화(同化) 등이 균질화(均質化)한 인생관으로 정립하는 시적인 창조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세파(世波)의 다변적인 유혹에 인내하면서도 낭만이 동행하는 술과의 정감을 통한 인생론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다음과 같이 현현되고 있다, -- 거무스름한 저녁을 뚫고 던지는/ 별빛 줄기들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소주 한 잔 들 이키며 트림하고 있다 (「검은 쇠 몰고 오는 저녁」 중에서) -- 끝 모퉁이는 너와 나의/ 사랑을 묻어 두고/ 병어 살점을 한 점, 두 점,/ 허공에 소주 한 잔 띄워/ 너의 가슴을 풀어 헤친다 (「천사대교」 중에서) -- 소주잔은 이슬 맞으며 점점 어두워/ 지는 새벽별 속에서 하얀 살갗을/ 드러내는 진주들을 (「거리가 취해서」 중에서) -- 막걸리 잔은/ 한 잔 한 잔/ 고향의 향기를 내뿜으며/ 자신을 채워간다 (「막걸리를 마시 며」 중에서) -- 정상주頂上酒 한 잔은 풀잎들의 지저귐을/ 고즈넉하게 만들고 산 넘어 피눈물로 / 오물을 뱉어내는 굴뚝에는 어둠에/ 지친 별들이 이취泥醉에 타들어 갑니다. (「이취(泥醉)한 별들」 중에서) -- 가슴에 다 못 새긴/ 그리움을 소주잔에 담그고/ 뿌연 공기를 품은 바닷물을/ 들이마신다 (「하얀 밤바다」 중에서) -- 들풀이 입김을 불어 강가 실내포장마차에/ 삶의 고름으로 얼룩진 시간의 끈을 풀어 헤친 다/ -이모, 오늘은 소주 말고 다른 거/ -위는 청주淸酒고/ 아래는 농주農酒고/ -무슨 차 이/ -위는 맑아 윗분들이 마시는 것/ 아래는 흐려서 아랫분들이 마시는 것/ 섞어 마시면 막걸리, 잡부들이 마시는 것/ 그대는 안 어울려, 청주淸酒가 좋아/ 너덜너덜한 서러움을 말아먹던 막걸리 잔에 (「명정(酩酊)한 하회탈들의 웃음」 중에서) 지상규 시인은 전형적인 서정시인이다. 그의 시적인 진정성은 이러한 소탈한 실생활의 현장에서 발현하는 인간의 진실이 그의 작품에서 감동을 유발하는 동인(動因)이 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시는 우리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하는 패턴(pattern)을 유념하게 되는데 지상규 시인도 이러한 존재의 개념에 충만한 지향점을 소유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욱 활력 넘치는 시정신의 함양으로 확고한 시세계를 구축할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 그의 서정적인 사유는 영원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