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5월 시단베이다제(西单北大街), 중학생이 인도에서 컬러풀한 옷을 입고 스쿨버스를 기다린다.
1977년5월, 두 명의 여학생이 의자를 들고 등교하고 있다.
전문(前門)은 고대 베이징 성곽의 남문이자 베이징으로 진입하는 정문이다. 맞은편 쌍둥이 건물은 ‘정양문(正陽門) 전루(箭樓)’로 원형의 기와로 만든 옹성으로 두 개의 성루를 연결시켰으나 후일 개조되면서 옹성을 철거하고 지금은 성문만 남겨져 있다. 20세기 70년대 두 개의 성문(城門) 사이의 공터는 버스정류장으로 사용됐었다.
1977년 봄의 아침, 여학생4명의 등굣길
기차역 부근, 시민들이 매일 아침체조와 태극권을 한다.
1977년5월 베이징 자금성, 장사꾼들이 임시 매표소에서 안내지도와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1977년5월, 고궁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다. 당시 고궁의 입장권은 몇 마오(毛, 10마오=1위안)로 매우 저렴했다.
1976년 4월29일 서우두(首都)공항 대합실, 국내선 탑승객들이 러시아산 프로펠러식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다른 지방에서 온 중국인들이다.
1977년4월 충원먼네이다제(崇文門內大街)
1979년 시단의 자전거 가게. 가게 앞에 점원과 손님들이 모여 새로 나온 오토바이에 대해 이야기 중이다.
1977년4월, 둥창안제(東長安街)에 자동차는 거의 없고 주로 자전거가 다녔다.
1979년4월 해발50m의 베이하이(北海)공원에서 베이징을 바라보면 자금성의 지붕과 도시의 제일 높은 건물이었던 베이징 호텔이 보였다.
1977년5월, 마오저둥(毛澤東)이 별세한 그 해에 출생한 아이다. 그때는 출산계획정책이 없었다. 노동절 휴일, 엄마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할머니는 뜨개질을 하며 할아버지는 옷을 입고 계신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톈탄(天壇)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약속했다.
1979년5월, 수레 바구니에서 방금 뽑은 다른 굵기의 신선한 국수면을 담고 있고, 옆에서 아이는 어른을 도와 수레를 지키고 있다.
1976년 4월 말 이탈리아 청년 Madaro는 생전 처음 베이징을 찾았다. 이후 그의 39년 인생 속 190차례나 되는 중국 방문의 서막을 연 것이다. 그는 중국 개혁개방 전 개인 신분으로 중국을 방문한 첫번째서양 기자였다. 최근 인터넷에 그가 찍은 옛날 사진들이 공개되었는데 70년대 말 형형색색의 사람들과 베이징의 생활 모습들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