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어: 유가족 지원, 시민연대, 관행과 부조리 시스템의 개선, 열악한 일터가 재해발생, 원인은 민영화정책과 비정규직. 내가, 우리가 김용균이다.
김미숙님 발표:
산업재해가 이렇게 많은지 놀랍다.
마무도 문제제기 안하고 있다니 그 많은 유족이 원망스럽고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이전 나도 그랬다. 이런 사실은 사회구조의 문제이고, 나의 잘못이 컸다고 생각했다.
사고 당시,
태안 경찰서에서 아침에 전화. 아이인지 확인해 달라. 상태를 말해 줄 수 없단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최악의 상황은 아니기를.
태안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김용균이라는 환자가 없다. 아이의 체형을 이야기 하니 비슷한 사람이 영안실에 있다고 하더라.
영안실에서 용균을 보았다. 얼굴이 탄가루로 까맣게 되어 잘 모르겠다. 피부결과 머리카락을 만져보니 우리 아이 느낌이 든다.99.9%에도 0.1%는 아니기를 하는 바람을 가졌다. 부정하고 싶었다.
경찰조서에서 아이가 맞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관이 화를 내더라.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서 하청회사 관계자가 다가와 용균이는 착하고 성실했다고 하면서, 가지말아야 할 곳을 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고 하더라. 정신 없는 와중에 대응을 못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니 그렇다면 용균이가 잘못했다는 거네...그래서 용균동료들에게 물었다. 잘못이 없단다. 3일간 그 곳에 머물면서 진상규명해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사측과 거리를 두었다. 누구와 연대하나? 공공운수노조 팻말을 단 사람들이 보였다. 그 당시 무엇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제부에게 물어보니(코오롱 노조 간부 출신) 믿을만하다고 하더라. 그들의 모임에 아침,저녁으로 참석했다. 즐임말과 단체 내에서 쓰는 언어때문에 뭔 말인지 모르겠더라. 조금씩 귀가 열렸다. 그리고 믿음이 갔다. 내가 사는 구미가 보수쪽이여서 노조나 민노총에 빨갱이라고 부정적 인식이 많았었다. 이게 다 언론을 통해 우리가 길들여 진 것이다.
3일까지 사측과 노조측 사람들 간에 고성이 오갔다. 민주노총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 같았다. 사측이 우리도 만나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왜 너희만 만나냐한다. 그래서 민주노총에 위임장을 주었다. 전제는 다시는 회사 사람들 내 눈 앞에 보이지 말게 하라고.
용균이가 비정규직 철폐 피켓을 든 것을 처음 보았다. 빈소에서. 문재인시절 비정규직 문제가 화두인 시절, 용균이도 동참했구나 했다. 이런 사실도 엄마가 모르고 있었다니
반값 월급, 핸드랜턴도 없이 핸드폰 불빛으로 조명을 밝히고, 안전교육 제재로 받지도 못하고, 곧바로 현장 투입을 했으나..
3일 후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5층 꼭대기 사고 현장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위험했다. 가는 곳 마다 무덤처럼 낙탄이 쏟아져 있고, 2.1km 구간을 혼자서 일하다가 괴음, 분진, 어두운 곳에서 점검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이렇게 위험한 곳에 자식이 일을 하고 있었다니, 이 것도 모르고 지냈다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부모가 되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너무 자식에게 미안했다.
현장은 물로 씻어져 있다. 증거인멸. 분하고 억울해서 악을 쓰며 울었다. 짐슴의 울음소리였다.
울고 나니 용균이 동료들이 주위애 없었다. 현장에서 1층으로 내려오니 아이들이 있었다. 동료들에게 얼른 이 지역을 떠나라고 했다.
사고 전 날 전화나 문자를 넣었다. 저녁 6~7시에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답장이 없다. 9시까지 문자를 넣었다. 마음이 불길했다. 그러나 구미에서 거기까지 갈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 잠이 들었다.. 사고는 10시30분 경에 났고 연락은 아침 6시에 받았다.
동료들은 연락이 안되자 궁금해했다.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어 어디서 잠시 쉬겠거니 했다. 계속 안되어 수색을 했다. 현정은 넓고 어두웠다. 3차례 찾다가 발견했다. 응급제동장치인 풀코더가 있었으나 혼자 활동시는 무용지물이다.
아침 7시 119가 왔다. 발견은 3시 넘어. 상급단위에 연락을 취해 결정된 것이다. 처음에는 석탄을 담는 콘백으로 시신을 옮기려 했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산재는 다 그렇게 가고 있다. 원래 나는 마이크를 잡지 못한다.노래방이나 가야..내성적이고 말실수 할까봐 그랬다. 그러나 억울한 작식의 죽음 앞에서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회사와 싸웠지만 나중에 나라와 싸워야했다.
2018,12,25~27일 국회에서 산안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통과 되었다. 올라갔다. 태안에서. 첫날 정의당, 그리고 민주당, 국민의 힘에서 오라고 했다. 안갈 이유가 없지 만났다. 2일차 조용하더라. 안될 것 같더라. 3일차도 소위가 지지부진하더라. 불리하게 진해되는 듯하다. 복도에 시민대책위와 기자들이 모여있었다. 기자에게 마이크 사용 가능하냐고 해서 썼다. 기자가 몰렸다. 얼마나 죽어야 이 법이 통과되느냐고 주장했다. 한 의원이 집에 가서 기다리시라 했다. 믿을 수 없다. 방망이 두드릴 때까지 기다리겠다 했다. 이미자의원이 본회의에서 발언시 여기에도 유족들이 있다고 하더라.
태안의료원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얼굴이 안 좋았다. 용균이법이라고 하지만 기만적인 용균이 법 이란다.
고용노동부에 3차례 갔다. 그 위험한 발전소 컨베이어벨트를 멈춰달라는 행정명령을 내려 달라고.(9,10 호기는 멈춰있었지만, 1-8호기는 운영중이었다) 모양새가 너 네 왔냐. 할라면 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테니 다. 그래서 서류를 찢고 그 앞에 뿌렸다. 그들이 우리들한테 왜 이러느냐고 하더라. 종이야 뿌려봤자 내 다리 앞에 떨어지는 것이지만 공장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당신들이 책임을 못지면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 그러니 그들의 인상이 찌그러지더라.
이후 대통령이 만나주겠다는 신호가 왔다. 그러나 아이가 죽은 마당에 대통령 얼굴 한 번 만났다고 무슨 해결책이 있는가. 대통령 만났으니 뭔가 해결이 났구만 하고 관심이 떨어질 것이다. 그레서 안 만난다. 만나기 전에 해결책을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1개월 되어서 용균이 아빠가 이젠접자고 하더라. 그래서 말했다. 내가 용균이라면 무엇을 원하겠는가? 진상규명이다. 끝까지 해봐야 한다. 용균이를 위해서.
여러 곡절 끝에 합의가 명절 전에 이뤄졌다. 내용이 워낙 광범위해서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으나 어머님이 단식을 시작할 것이다라는 말을 해서 거의 100%도 우리가 원하는대로 받아들여졌다.
특조위에서 용균이 잘못이 없고 회사 잘못이라는 것이 언급되었다. 우리나가 산업구조가 왜 이리 엉망인 것인가? 법을 어기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이구나. 진상규명이 투쟁을 할 수록 더 분노하게 되었다.
경찰조사도 기업들 말만 듣고 용균이 개인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경제 10위인 나라에서 죽는 사고가 이렇게 많은 것에 배신감이 들었다. 사람죽여가며 발전을 이루었구나. 일년에 2400 명이 죽는다. 자식이 죽으면 일터에서 자식 잘못이라 하고 그래서 쉬쉬하며 산다. 내가 아는 사람도 자식이 직장 내 부조리를 밝혀 내다가 따돌림을 당해서 자살을 했다. 부모느 자식의 죽음을 교통사고로 말하고 다닌다.
저는 제가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 상상을 못 했다. 사회는 이런저런 일을 알려주지 않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당해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에 유족이 나서야 한다. 나는 회사원이고 가정주부다. 조사권한도 없다. 왜 국가기관이 나서주지 않는 것인가? 약자를 위해서 제대로 작동되는 국가기관이 없다. 한 익스프레스라는 회사 작업장에서 화재로 40명이 죽었다. 그 이후 38명이 죽었다. 기업이 낸 벌금은 2천만원이다. 사망사고시 기업이 내는 벌금이 평균 445만원이다. 벌금내면 기업은 처벌을 면한다. 유족과 상의도 안한다. 왜 죽음값을 지 들 맘대로 책정하느냐 관료들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모든게 의심이 들더라.
법이란게 그렇다. 당장 눈 앞의 이익만을 쫓는다. 불리함면이 있는 것을 알면서 법을 통과 시킨다. 의원들이. 이를 국민들이 지켜 볼 줄 모르고 비정규직이 처음에 늘어날 때..이게 뭐지 했다. 근데 이게 너무 확산되고 나니까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기업들 이윤은 늘어나 버리고...대기업은 경영하기 편하게 되었고....
평택항 실습생 이선호군 수영 익사사고 도 그렇다. 뱃선창에 붙어 있는 딱개비를 따라고 내보냈으니 수영도 못 하는 아이가...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미치겠다. 안전장치 하나도 없이 실습생 아이를 사지로 내보내다니.
큰 회사는 사고가 별로 없다. 50인 미만의 작업장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80% 난다. 10만 입법 발의하고 시민들이 중대처벌법을 만들어 냈다. 기업과 정부는 막았다. 생명안전 관련법의 인식이 재고된 것은 세월호가 깃점이 되고 구의역 김군사망사건도 큰 역할 했다.
중처법 29일 동안 단식에 가담했다. 시작전 단식을 해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겁이 났다. 진짜 제대로 해냘 수 있을까. 남편은 몰래 먹으라 했다. 그 것도 기가 막히지만 이해도 되더라. 국민의 72%가 중처법을 찬성했다. 국민의 힘도 1명만 빼고 찬성했다.
50인 미난 작업장 유예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죽으면 용균이에게 말할거다. 용균아..너의 죽음을 보고만 있지 않았단다..
사회가 안전해야 내가 우리가 안전하다 행복은 사람가치를 앞에 내 세울때 가능하다. 물신 돈숭배 세상은 사람가치를 우습게 본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 결국 누가 해야지, 우리가 해야한다.
그래도 성과는 있다. 대기업 오너도 산재 사고에 내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단다. 작업 현장에도 안전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5년 동안 달려 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지금은 지역연대, 비정규직 양산 문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국제강 산재에 연대회의 가 참여했는데 원인이 원청이 하청을 잘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비정규직 1000 명을 정규직화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이냐에 따라 내 처지가 확 달라질 수 있다. ㅡ나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부모가 아껴 주고 사랑해 줘서 자존감있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저를 보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나도 언젠가는 문제에 대면하게 되면 무엇인가 할 수있다는 것을.
재판결과는 그렇다. 16명 기소. 원청 사장 무죄, 하청 업체 간부 낮은 형량으로 처벌. 윤석열정부가 나쁜 방향으로 관여를 했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더 강한 중처법 지켜 내겠다.
내 평생의 작업은 '죽음이 줄어드는 것'이다.
김종성- 발전사 근무 35년차. 지난 5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안환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조기 교육이 필요할 듯하다. 하임리히법칙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은 아차사고등을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에 근거하여 산업안전 대책의 효능성을 부각시켜야겠다.
첫댓글 대전시립도서관????
정리해 주심 감사합니다. 늘 감동을 주는 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