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 49장 12절 ~ 22절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그 잔을 마시지 않는 것이 자기들의 심판인 사람들이 분명히 마셔 버렸으니 네가 전혀 벌을 받지 않고 가겠느냐? 네가 벌을 받지 않고서는 가지 못할 것이나 네가 반드시 그것을 마실 것이니라. 12)
For thus saith the LORD; Behold, they whose judgment was not to drink of the cup have assuredly drunken; and art thou he that shall altogether go unpunished? thou shalt not go unpunished, but thou shalt surely drink of it. 12)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심판을 받아 그 잔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자들이 확실히 마셨거늘 네가 전혀 벌을 받지 아니한 채 가겠느냐? 네가 벌을 받지 아니한 채 가지 못하며 반드시 그 잔을 마시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이 잔을 마시지 않을 자도 마시지 않지 못하겠거늘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고 반드시 마시리라.
흠정역 / 개역개정 예레미야 49장 12절
예레미야 49장 12절은 내용이 어렵습니다. 위 말씀의 대상은 에서, 에돔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으로 장자의 권리를 팥죽에 넘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원래의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다가 그들이 심판의 대상으로 나오게된 에서의 후손들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모압은 크모스와 같은 우상숭배와 인신제사에 대해서 책망하시고 멸망됨을 선언하셨고, 암몬은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에 대해서 말씀하셨으며, 에돔에 대해서는 그들이 받지 않아도 될 심판을 그들이 선택하였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징계, 심판의 다른 점으로 그것이 징계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암몬의 경우 빈땅에 살고 있다고 재앙을 받을 수는 없어보입니다. 그들의 모두가 가지고 있었던 우상과 인신제사의 문화에 더불어 가지고 있었던 문제에 대한 지적이라고 보여집니다.
한국만 보아도 일본의 음란한 성문화에 영향을 받아 닮아가고 있고, 중국의 천박한 배금주의에 영향을 받아 닮아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집단의 문화가 개인까지 모두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음란한 성문화가 일본인 모두를 증거하지 않고, 중국의 천박한 배금주의가 중국인 모두를 대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내용의 말씀은 흠정역과 개역개정을 함께 읽으면 그 어감이 다르지만 함께 읽으면 그 어감이 더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에돔에게 그 잔을 마시지 않음이 심판이었다면, 아담에게는 선악과름 먹지않음이 심판이며, 우리에게는 짐승의 표를 거부함이 심판이 됩니다.
짐승의 표가 나타난 시대에는 다른 것은 다 필요없고 우리에게 닥친 짐승의 표만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의 조건은 짐승의 표가 나와야 그 조건이 성립이 됩니다. 지금 아무리 그것을 거절하겠다고 다짐을 한들 아무 의미없이 허공을 휘두르는 것이 될 뿐입니다.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조건을 모두 통합하여 본질의 율법이 완성되어져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서, 에돔이 결국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것의 의미는 정해진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의 시각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알수 없는 것,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에돔이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심판받음이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로 맹세하나니 보스라가 폐허가 비난거리와 황폐와 저주가 될 것이요, 또 그 모든 성읍들이 영속적으로 황폐케 되리라. 13)
For I have sworn by myself, saith the LORD, that Bozrah shall become a desolation, a reproach, a waste, and a curse; and all the cities thereof shall be perpetual wastes. 13)
주께서 에서, 에돔의 대표도시인 보스라가 멸망하게 될 것임을 맹세하시고 선언하시고 있습니다. 이는 미래를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압, 암몬, 에돔 모두가 불순종함으로 멸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가 우리에게도 있어서 우리에게는 마지막때의 환난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앞으로 일어날 환난을 우리가 막을 수도 없고, 일루미나티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루미나티는 우리를 파괴하고 그들만의 안락한 삶의 터전을 만들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도 이뤄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요한 계시록의 기록된 말씀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다만 마지막때의 환난은 우리에게는 지나가는 징계의 환난이지만, 일루미나티와 같은 사탄을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의 도시들이 영속적으로 황폐화됨(be perpetaul wastes)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이는 에돔의 성읍들에 대한 말씀으로 그 지역이 황폐화된 이후로 회복이 되지 못하고 마지막을 맞게 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황폐화된 그 지역은 바빌론의 침공으로 황폐화되어서 심판때까지 폐허로 영원한 심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로부터 오는 소문을 들었노라. 한 대사글 이방에 보내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함께 모여 그녀를 치러와서 싸움터로 올라가라." 하시더라. 14)
I have heard a rumor from the LORD, and an ambassador is sent unto the heathen, saying, Gather ye together, and come against her, and rise up to the battle. 14)
보라, 내가 너를 이방 가운데서 작게 만들고, 사람들 가운데서 멸시 받게 하리라. 15)
For, lo, I will make thee small among the heathen, and despised among men. 15)
heathen ① 이방인 ② 이단자 ③ 이교도
로스차일드, 일루미나티는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저주받아서 그들의 저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며, 사람들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서 대신 부를 쌓아서 우리에게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위 14절의 말씀은 그 당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배우들을 정치지도자로 만들고, 방송을 장악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뱀과 같은 자들은 괴멸적으로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들이 피를 흘리게 한 만큼 그 피의 값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그 고통은 기만으로 이땅에서 잠시 누린 영화와는 반대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오 너 바위틈에서 거하고 산의 높은 곳을 차지한 자야, 너의 무서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너의 보금자리를 독수리처럼 높게 지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16)
Thy terribleness hath deceived thee, and the pride of thine heart, O thou that dwellest in the clefts of the rock, that holdest the height of the hill: though thou shouldest make thy nest as high as the eagle, I will bring thee down from thence, saith the LORD. 16)
이 말씀은 앞으로 일어날 일로 느껴집니다. 그 당시는 부유한 자들이 바위틈에 거하고 산의 높은 곳에서 거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쟁시에는 산의 높은 곳에 잠시 머물수는 있으나 기거하기에는 힘듭니다. 왜냐면 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설비가 되어 높은 곳에 부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벙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폐허로 만들면서, 동시에 자신들은 살기 위하여 바위틈에 숨어서 보호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땅의 왕들과 위대한 자들과 부자들과 대장들과 힘 있는 자들과 모든 종과 모든 자유인이 각자 토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서
And the kings of the earth, and the great men, and the rich men, and the chief captains, and the mighty men, and every bondman, and every free man, hid themselves in the dens and in the rocks of the mountains;
산들과 바위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위에 떨어져서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기라.
이는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임하였음이니 누가 감히 설 수 있으리요?" 하더라.
요한계시록 6장 15절 16절
에돔은 그 정체성이 마지막때까지 남아서 그들의 멸망이 그때까지도 이어지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 일루미나티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일루미나티에 반기를 들면 모든 기반을 그들이 무너뜨려버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테러를 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반기를 들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반기를 들면 그들이 우리를 죽일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계시록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반드시 일루미나티를 적으로 돌려서 우리는 어린양의 진노앞에 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잠시요, 영원한 것은 심판이니 이 땅의 임시 권세자인 일루미나티에게 굴복하여 어린양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엄청난 실수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에돔 역시 폐허가 되리니 거기로 지나가는 자는 누구나 놀라며, 그곳의 재앙들을 경멸하리라. 17)
Also Edom shall be a desolation: every one that goeth by it shall be astonished, and shall hiss at all the plagues thereof. 17)
주가 말하노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멸망당한 것같이, 아무도 거기에 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거기에 거할 사람의 아들도 없으리라. 18)
As in the overthrow of Sodom and Gomorrah and the neighbour cities thereof, saith the LORD, no man shall abide there, neither shall a son of man dwell in it. 18)
에돔이 황폐화됨은 곧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위 말씀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때 이웃 성읍들도 멸망당한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인근도시들도 에돔과 같은 죄를 범했다는 것이며, 이는 도시의 문화는 주변에 영향을 주어 동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음란문화와 중국의 천박한 배금주의가 우리에게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들의 죄로 인하여 재앙이 일어남이 우리 모두에게 합당하며, 다만 그 안에서 롯처럼 구별됨이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보라, 사자가 요단의 굽이침에서 나옴같이 , 그가 견고한 처소를 치러 올라오리라. 그러나 내가 곧 그를 그녀에게서 도망하게 하리라. 내가 그 땅위에 세울 선택받은 자가 누구인가? 나와 같은 이가 누구인가? 또 내게 그 때를 정해 줄 자가 누구인가? 내앞에 설 그 목자가 누구인가? 19)
Behold, he shall come up like a lion from the swelling of Jordan against the habitation of the strong: but I will suddenly make him run away from her: and who is like me? and who will appoint me the time? and who is that shepherd that will stand before me? 19)
이 말씀도 위의 12절 처럼 매우 어렵습니다.
보라, 그가 요르단의 범람한 곳으로부터 사자같이 올라와 강한 자의 처소를 치리라. 그러나 내가 갑자기 그로 하여금 그녀를 떠나 달아나게 하리라. 내가 그녀를 다스릴 자로 정하여 택한 자가 누구냐? 누가 나와 같으냐? 누가 내게 때를 정해 주겠느냐? 내 앞에 설 그 목자가 누구냐?
보라 사자가 요단의 수풀에서 올라 오는것 같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서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로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목자가 누구뇨
흠정역 / 개역개정 예레미야 49장 19절
흠정역과 개역개정 모두를 다 종합하여 보면 바빌론이 에돔을 공격하러 왔다가 잠시 물러나는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예는 예루살렘이 바빌론의 침략당할 때에도 일어났었습니다. 에돔과 달리 예루살렘의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바빌론 군대는 이집트의 군대가 출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포위했던 예루살렘에서 철수합니다.
그때에 파라오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나오니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칼데아인들이 그들의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을 떠났더라.
예레미야 37장 5절
이런 변곡점은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백신에서나 짐승의 표에서도 이런 변곡점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희망을 간직하다가 그것이 사라졌을때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이 틀리고 사람이 예측이 잠시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커다란 시험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자가 요단에서 굽이침같이, a lion from the swelling of Jordan 은 이러한 잠시의 요동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백신에서 잠시 부작용도 없어진 것처럼 보이고 무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짐승의 표도 잠시 독한 헌데가 생기지 않고,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백신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것은 유해한 것임이 결국 드러났고, 짐승의 표도 기록된 성경 말씀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파라오의 군대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될 것이며, 다시 바빌론이 돌아와 예루살렘을 함락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같은 상황의 에돔에는 예레미야와 같이 그들에게 때에 맞는 메시지를 전달할 목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더디 오심과 같은 지금의 상황에서 누군가는 예레미야와 같이 지금의 상황을 알려줄 목자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코로나 백신 사기극이 이제는 끝나고 예전의 삶으로 회복되어 다시 정상적인 삶이 계속이어질 것같나요? 이스라엘과 에돔에 다시 바빌론의 군대가 돌아온 것처럼 우리에게도 백신보다 더 참혹한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각자 살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목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예레미야와 같은 목자의 역할을 할 사람은 저와 당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요구하시기 위하여 위 말씀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에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메시지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받는 메시지는 우리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백신 사기극에서 핍박속에서 진실을 외쳤듯이 짐승의 표의 과정에서도 똑같이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외쳐야 합니다. 믿음은 곧 천국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보물이 숨겨진 밭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가 에돔에 대하여 취한 그의 계획과 테만의 거민들에 대하여 의도한 그의 의도를 들으라. 양떼의 가장 작은 것이 반드시 그들을 끌어내고, 그가 반드시 그들의 처소들을 그들과 더불어 황폐케 하리라. 20)
Therefore hear the counsel of the LORD, that he hath taken against Edom; and his purpose, that he hath against the inhabitants of Teman: Surely the least of the flock shall draw them out: surely he shall make their habitations desolate with them. 20)
이스라엘과 같이 에돔도 잠시 물러갔던 바빌론의 군대가 다시 쳐들어 오는 결과를 맞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들으라고 하신 위의 기록된 말씀은 당신을 위한 말씀입니다. 에돔 사람들과 테만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에돔과 테만의 멸망의 결과를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쓰러지는 소리에 땅이 움직이고,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홍해에 들렸도다. 21)
The earth is moved at the noise of their fall, at the cry the noise thereof was heard in the Red sea. 21)
보스라와 테만은 남쪽지역으로 홍해에 비교적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라, 그가 독수리처럼 올라와서 날며, 그의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펼 것이라. 그 날에 에돔의 용사의 마음이 진통중에 있는 여인의 마음과 같으리라. 22)
Behold, he shall come up and fly as the eagle, and spread his wings over Bozrah: and at that day shall the heart of the mighty men of Edom be as the heart of a woman in her pangs. 22)
pang ① 격통 ② 양심의 가책 ③ 고통
에돔의 멸망을 보고 있습니다. 기록된 이 말씀으로 저와 당신이 얻어야만 하는 교훈은 이 전쟁은 바빌론대 에돔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빌론은 장기의 말처럼 사용되어지는 것이며, 승부도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의 결정적인 순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순간으로 이 때 승패가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에돔의 용사들이나 파라오의 원군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며 백신 사태나 짐승의 표에서도 일루미나티를 우리가 막아서 그들의 계획을 포기시키는 것이 승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뿐입니다. 일루미나티는 바빌론과 같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장기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순종을 검증하는 도구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재앙들이 곧 검증이며, 우리의 승리는 검증을 잘 통과하여 합당한 순종으로 인내와 믿음을 인정받는 것이지 검증을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