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3일
연아야 고마워”…‘여왕’
김연아의 고별 무대, 갈라쇼
김연아는 오는 23일 새벽 1시 30분
(이하 한국시각) 진행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메달리스트들의
갈라쇼에 참여한다. 경쟁의 부담을 훨훨
털어낸 편안한 무대다.
김연아는 이번 갈라쇼에서 에이브릴 라빈
이 부른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에
맞춰 연기를 펼친다. 전 세계 피겨 팬들을
위한 '피겨 여왕'의 마지막 선물이자 진짜
고별무대이다.
'이매진'은 지난해 6월 김연아가 선보인 갈
라 프로그램으로, 스케이팅 기술이나 퍼포
먼스 요소보다는 곡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
를 강조했다. 1971년 베트남전쟁 당시 반
전의 메시지를 담아 발표된 이 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연아는 "평화를 소망하는
프로그램의 의미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
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김연아는 21일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흠 잡을 곳 없는 연기를
펼쳤으나 이해하기 힘든 심판 판정으로 인해 144.19점(기술점수(TES) 69.69점, 예술점수
(PCS) 74.50점)을 획득, 아쉬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홈 텃세를 등에 업고 프리에서
149.95점을 받아 합계 224.59점을 받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에게 돌아갔다.
▶2015년서울 하늘 미세먼지, 평소 26배…10톤 트럭 63대
▶2014년갈라쇼 주인공은 김연아…마지막 고별무대
▶2013년중·러 외무장관 회담‥"대북 군사개입 반대
▶2012년한국계 첫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 별세
▶2011년'한국 유도계 대부' 강천수씨 별세
▶2010년‘비실이’ 희극인 배삼룡 타계
2010년 2월 23일 오전 2시 10분 원로코미디언 배삼룡(본명 배창순)이 흡인성 폐렴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 지난 2007년 6월 흡인성 폐렴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4년째 치료를 받아온 배삼룡은 1월 23일부터 중환자실을 오갔다. 고인은 바보연기와 ‘개다리 춤’을 히트시켰으며 ‘몸 개그’의 원조인 슬랩스틱 코미디로 사랑받았던 국내 코미디계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배삼룡씨의 영정.
1926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3세 때 일본 도쿄로 건너가 우에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후 귀국해 20세의 나이로 유랑 악극단 ‘민협’에 입단하면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삼룡이라는 예명도 이때부터 사용했다.
1950년 육군 군예대(KAS)에 입대한 그는 1964년 HLKV 문화방송에서 라디오방송 활동을 시작해 1969년 MBC-TV 개국과 함께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고인은 구봉서, 서영춘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코미디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쇼 반세기’, ‘부부만세’ 등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으며 ‘요절복통007’, ‘형사 배삼룡’ 등의 영화와 ‘사람팔자 시간문제’, ‘양반 인사법’ 등의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1973년 12월에는 MBC와 TBC가 고인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대낮에 납치극을 벌이는 소동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고인은 1980년대 들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1980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음료업체 ‘삼룡사와’가 도산했고, 신군부로부터 ‘연예인 숙청대상 1호’로 지목돼 방송출연 정지를 당했다.
곧 미국으로 건너간 고인은 3년여 뒤 귀국했지만 인기가 예전같지 않고 잇따라 사업에 실패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러다 1997년 악극 ‘눈물의 여왕’이 성공해 악극 스타로 재기한 고인은 ‘그때 그 쑈를 아십니까’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인기도 잠시, 1990년대 중반 흡인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이후 2007년 6월 서울 목동의 한 행사장에서 쓰러져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뒤 줄곧 투병생활을 해왔다.
고인은 문화체육부장관 표창(1996년), ’MBC 명예의 전당’ 코미디언 부문 수상(2001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문화훈장 화관장(2003년),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행사에서 ‘자랑스러운 스승님상’(2009년) 등을 수상했고, 자서전 ‘한 어릿광대의 눈물젖은 웃음’을 남겼다.
▶2010년외국인 수형자 전용 천안교도소 개청
천안교도소 강당에서 외국인 재소자들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4개월 동안 연습한 악기로 동료 재소자들에게 앙상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외국인 수형자를 위한 전담 교정시설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법무부는 23일 주한 외교사절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천안외국인교도소’ 개청식을 갖고 운영에 들어갔다.
천안외국인교도소는 기존의 천안소년교도소를 개보수한 시설로, 연면적 41만3257㎡ 규모에 49개 건물을 갖춰 1230명을 수용할 수 있다. 27개국 출신 외국인 재소자 591명, 내국인 재소자 263명 등 854명이 현재 수감돼 있으며, 내국인은 음식과 청소 등을 전담하는 기결수들이다. 외국인 수형자들은 국적별, 종교별로 나뉘어 수용됐다.
교도소는 외국인 재소자를 위해 한식과 별도로 빵과 샐러드 같은 외국인 식단을 제공하고, 위성방송 시설을 갖춰 영어·중국어·러시아어·아랍어 등 4개국어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했다.
외국인 재소자들이 언어 문제로 겪는 불편을 덜기 위해 중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교도관 9명도 배치했다. 외국인 재소자들의 한국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원예, 배관 등 직업훈련 기회도 제공할 방침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120만명에 달하며,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외국인 범죄자 수도 1500명을 넘어섰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인 전담 교도소는 세계 처음” 이라며 “외국인 수형자들의 인권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2007년국사 교과서에 한반도 청동기시대 '기원전 20세기부터' 명시
▶2007년엄기영 앵커 프리랜서로
▶2006년한국,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올림픽 4연패
▶2006년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 경신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이 경신됐다. 2006년 2월 23일 열린 서울옥션의 100회 경매에서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철화백자운룡문호(鐵畵白磁雲龍文壺.37.6×48.5㎝)’가 16억2000만원(수수료 별도)에 낙찰돼 이전까지 국내 경매 최고가 기록이었던 고려청자 매병(梅甁) ‘청자상감매죽조문매병’의 10억9000만원을 깼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철화백자문룡문호.
철화백자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까지 제작됐던 도자기의 한 종류. 그릇 표면에 염료 대신 철가루를 써서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 출품된 철화백자에는 왕실에서 사용했음을 상징하는 삼족룡(三足龍)이 그려져 있고, 항아리 입구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S자형 곡선과 용 무늬가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날 경매에서는 또 박수근(朴壽根.1914~1965)이 1960년대에 그린 유화 ‘시장의 여인들’이 9억1000만원에 낙찰돼, 작년 12월 9억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 기록을 두 달 만에 또 경신하며 근현대미술 부문에서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2006년유공자 가족 10% 가산점 위헌 결정
▶2006년집권20년 우간다 요웨리 무세베니, 또 당선
▶2006년진선유·안현수 한국 첫 올림픽 3관왕
▶2006년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레바논 깜짝방문 반시리아 지도자들만 만나
▶2001년하춘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수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1998년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이라크와 유엔무기사찰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바그다드)
코피 아난(왼쪽) 유엔 사무총장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1998년교수, 변호사, 종교인 등 각계인사 123명,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123인 선언` 발표
▶ 1998년 오늘,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모든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한 지하드(성전) 선포 1957년 3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출생~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에서 사망
▶1997년복제양 돌리 탄생 공식발표/영국 에든버러 로슬린 연구소의 I. 윌머트 연구팀이 다 자란 암양에게서 채취한 체세포를 이용하여, 복제기술로 세포를 제공한 암양과 똑같은 유전정보를 지닌 새끼 양 돌리를 1996년 7월 5일 탄생시켰다고 발표
▶1997년서봉수 9단, 제5회 진로배세계바둑대회
9연승 ‘신화’ 달성
서봉수 9단.
▶1996년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주5일제 수업 시범운영
▶1991년국문학자 정한모 사망
▶1990년호세 나폴레온 두아르테, 엘살바도르 대통령 사망
▶1981년미국, 신형X선 레이저무기 발사실험 성공
▶1981년스페인 민병대 의사당 점령 군정수립 요구
▶1980년서울대병원 의공학과팀 인공췌장 개발에 성공
▶1976년`한국미술5천년전` 일본 교토서 개막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한국미술 5천년전`이
개최돼 많은 미국인의 관심을 끌었다.
▶1973년월남파병 백마부대 본진 개선
▶1971년대학교련을 필수로 한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1970년김재원 국립박물관장 25년 만에 퇴임
▶1960년한국-말레이시아, 국교수립
▶1957년필리핀 외상, SEATO 한국가입 제의
▶1955년프랑스 시인 끌로델 사망
▶1954년판문점 휴전회의 종결 선언
▶1945년미 해병대, 일본 유황도의 스리바치산 함락
1945년 미 해병대, 일본 유황도의 스리바치산 함락
ㆍ로젠탈이 찍은 사진으로 더욱 유명
1945년 2월23일 오전 10시35분 일본 도쿄 남쪽 해상 오가사와라 제도에 있는 화산섬 이오지마의 수리바치산 정상에 미국 성조기가 게양됐다. 미 해병 5사단 28연대가 이 섬에 내려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지 나흘 만이다.
이오지마는 면적이 20㎢인 작은 섬이지만 도쿄까지 거리가 1045㎞에 불과해 미국이 일본 본토를 공습하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 해병 7만5000여명은 나흘 전인 2월19일 이 섬에 상륙해 일본군 토벌을 시작했다. 일본군은 쉽게 사진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른바 ‘이오지마의 깃발’이라 불리는 이 사진 속에서 성조기를 꽂고 있는 해병들은 미국의 전쟁 영웅이 됐다. 로젠탈은 같은 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오지마 전투의 실상은 흑백사진이 전해주는 정취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 해병이 일본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하는 3월26일까지 일본군 2만여명이 사망했고 미군도 6000여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약 2만5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현장을 취재한 종군기자들은 미군과 일본군을 가릴 것 없이 사지가 온전한 시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당시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이오지마 전투는 태평양전쟁 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투 중 하나였다. 실제 전투의 참상과 사진 한 장이 만들어 낸 영웅담 간의 괴리는 후일 영화의 소재로도 쓰였다. 미국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오지마 전투를 일본군과 미군의 입장에서 바라본 두 편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아버지의 깃발>을 2006년과 2007년 각각 선보였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오지마는 미국의 공군기지로 사용되다 68년 일본에 반환됐다. 현재는 일본 항공자위대의 기지가 이 섬에 남아 있다.
▶1934년`위풍당당한 진영`을 작곡한 영국의 엘가 사망
▶1909년출판법 공포(원고사전검열제)
▶1907년소설가 이효석 출생
▶1905년국제로터리클럽 창설
▶1904년한일의정서 강제 조인
한일의정서 - 1904 한국의 대일협력을 강요, 협박하기위한 조약
일본과 대한제국 간에 한국 식민지화의 첫 단계인 한일의정서가 1904년 2월 23일 강제 체결됐다. 대한제국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자 `엄정중립`을 선언했으나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으려는 본색을 드러냈다.
이미 한반도에 군대를 진주시킨 일본의 강요에 의해 대한제국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과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6개 조항의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일본은 의정서 체결에 반대해 온 탁지부 대신 겸 내장원경 이용익을 납치해 일본으로 압송하고, 보부상의 핵심인 길영수, 육군참장 이학균, 육군참령 현상건 등을 연금한 뒤 이날 체결을 강행했다.
의정서 내용은 1. 한국정부는 일본을 신임하여 `시설개선`에 관한 충고를 받아들일 것 2.일본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전을 도모할 것 3. 일본은 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보장할 것 4. 제3국의 침략으로 한국에 위험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은 이에 신속히 대처하며 5. 한국정부는 이와 같은 일본의 행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고 일본정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 6. 한국과 일본은 상호간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서는 협정의 취지에 위배되는 협약을 제3국과 맺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일의정서는 대한제국이 본격적으로 국권상실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했다. 3월 8일자 관보를 통해 의정서 내용이 알려져 여기에 서명한 이지용과 참서관 구완희의 집이 폭탄세례를 받는 등 민중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일제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3월 17일 이토를 서울에 파견해 의정서 실천을 조선 정부에 강요했다. 의정서에 따라 일본이 일본군 주둔 목적으로 헐값에 강제매수한 300만 평의 땅이 오늘날의 용산 미군기지다.
▶ 1903년 오늘,
쿠바가 미국에 영구적으로 관타나모를 임대
▶1899년독일 작가 캐스트너 출생
▶1883년독일 철학자 야스퍼스 출생
▶1870년친일반민족 행위자 배정자 출생
▶1848년미국의 제6대 대통령(1825~29) 존 퀸시 애덤스 사망
▶1821년영국 시인 존 키츠 사망
▶1744년유대계 국제 금융자본의 상징인 로스차일드 가(家)의 실질적 비조(鼻祖) 암셸 로트실트 출생
▶1685년독일 작곡가 헨델 출생
▶1468년독일의 활자인쇄 발명가 구텐베르크 사망
https://youtu.be/Fe9jQgghUYE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반가운의hi스토리, 솦트리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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