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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하 사도요한 신부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오 9,35-10,1.6-8
날씨가 추워지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가 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무엇을 할까, 어떤 일이 있을까?
벌써부터 생각하시고, 계획을 짜시는 분도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탄생을 맞이하여 주님께 드릴 선물도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도 어떨까요?
오늘 주님께서 좋아하실 선물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하십니다.
우리 주위를 한번 잘 둘러 보시면 목자없이 길 잃고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군중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군중들을 보시고, 참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하느님의 다스림 안으로 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당신 혼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도와줄 협조자가 필요했고, 사도를 뽑았습니다.
그래도 추수할 일꾼들이 많이 필요했기에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바로 추수할 일꾼, 주님의 일을 도와줄 협조자가 여러분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지금 청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길 잃은 당신의 자식들을 찾아가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길 잃은 자식들이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우리 가정의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미사 참례하지 않고, 주님의 몸을 영하지 않는 그 사람이
지금 길 잃은 양일 수 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주님과 함께 살아보자고 청하는 것도 주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친구나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고, 남에게 피해만 주고, 자기 입을 더렵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지금 길 잃은 양 일 수 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같이 성당에 한번 가보자고, 성당에 있는 십자가를 한번 보자고
권해보는 것도 주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내 자신일 수 있습니다.
성당에는 나오지만, 근성으로 미사를 드리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가정 안에서 믿음을 저버리고, 신자라고 하지만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내 자신이
길 잃은 양일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통회하고, 고해 성사를 본 다음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세상의 유혹에 놓여 있기에 방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자신부터 본래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나와 같이 길 잃은 사람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것이 추수할 일꾼, 주님의 일꾼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각박하고, 삭막한 일도 많습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젊고 유능한 청년 사업가가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벽돌 한 장이 날아와서 그의 고급 승용차를 때렸습니다.
화가 난 그는 차에서 내려 벽돌을 던진 한 소년의 멱살을 잡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짓이냐? 변상을 받아야겠으니 너희 부모님께 가자"
그러자 소년이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제가 벽돌을 던지지 않았다면 아무도 차를 세우지 않았을 거예요.
저기 제 형이 휠체어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청년 사업가는 목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소년의 형을 휠체어에 올려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그 사업가는 차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상처 난 차를 볼 때마다 그를 향해 도움을 청해오는 사람을
외면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위의 얘기는 각박한 세상을 대변해 주는 이야기이며,
우리에게 무언가 느끼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자신은 지금 어떠합니까?
주님으로부터 벽돌을 맞기 전에 나의 이웃을 먼저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도와주고 치유해 주어야할 사람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나에게 무슨 힘이 있느냐고 말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자그마한 나의 관심이,
자그마한 나의 손길이 큰일을 이루시는 주님께서 분명히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일을 도와줄 일꾼들을 찾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분의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목마름을 달래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아픔을 낫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다 이루지 못한 일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때입니다.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 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부산교구 김대하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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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신부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오 9,35-10,1.6-8
일꾼은 적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말씀하신다.
수확할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이미 모든 곡식은 영글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처음부터 씨를 뿌리고 모를 내는 일꾼이 아니라
이미 주인이 다 해 놓으셨고 다만 수확할 것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수확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일꾼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일꾼은 처음부터 자기가 무엇을 시작해서 어떤 결실을 맺게 하고
그 결실을 거둬서 주인님께 갖다 바치는 일꾼이 아니다.
씨를 뿌려서 수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일은 이미 예수님이 다 해놓으셨다.
일꾼이 해야할 일은 예수님이 이미 다 해놓으신 것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항상 예수님이 시작하신다.
또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다.
아버지는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고 그 일을 할 일꾼으로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기까지 순명하시면서
인류 구원의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바로 목전에 두고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
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이라는 구원사업을 완수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누군가가 예수님이 완성해 놓은 구원 사업을 계승해서 일 할 일꾼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완성해 놓으신 인류 구원의 일을 계속할 열 두 사도들을 뽑으셨고,
교육시키셨고, 파견하셨다.
제자들은 인류 구원을 위해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에 의해 완성시켜 놓은 구원의 열매를 거두워 들이는 일만 하면 된다.
열두 제자들에 의해 이 일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이어져야 하고
또 열 두 사도들에 이어서 계속해서 그 일을 할 일꾼이 필요한 것이다.
이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는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방법에 의해 수확을 거두워 드려야 한다.
그 일에 불리움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예수님이 하신 방법대로 수확을 거두워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꾼은 많지만 각자 자기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워 드리려고만 하지
예수님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워 드리는 일꾼은 많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예수님의 일꾼들이지만 정말 믿을만할 일꾼은 많지 않다.
수확할 것을 거두워 드리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것만 챙기기 위해 일을 하려는 경향이 많다.
수확할 일꾼이란 어떤 일꾼인가?
첫째, 무엇보다 군중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엾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모성애를 느끼는 마음이다.
마치 자식이 병들어 아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마음에 더 큰 고통을 느끼는 마음이다.
목자 없이 헤메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목자를 찾아 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다.
둘째,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모든 고을과 마을들을 두루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수확을 거둘 일꾼은 자기 말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려면 하늘 나라의 복음을 알아야 한다.
복음을 먼저 읽고 묵상한 사람만이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
셋째, 모든 아픔과 질병을 고쳐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늘 나라의 복음만 선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 내어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모든 질병을 고쳐 줄 수 있는가?
목자 없는 양들이기 때문에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해서 병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고쳐 주려면 무엇보다 양들이 먹고 마실 것을 주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단지 말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면서 먹고 마실 것을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은 사제 수도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한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해야 할 사람들이고
그 일을 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꾼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찾으시는 추수할 일꾼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처음으로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은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 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3, 14-15)
즉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게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엾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지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야 수확할 힘을 길러내고, 수확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는 것이요,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성무 일도서에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고 싶어서 이 내 눈은 밤새도록 떠 있나이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이시며, 나의 구원이 되셨나이다.
그분은 나의 하느님이시니 어찌 찬양하지 않겠으며,
나의 선조의 하느님이시니 어찌 우러러 영광 드리지 않으랴."
(시편 118 과 출애굽 15,2)고 찬양하고 있다.
성 바오로회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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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태 신부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오 9,35-10,1.6-8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매일의 생활
오늘 복음(마태 9,35-38)에서 보면,
예수님은 평범한 일반 남여 군중들을 보셨을 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 표현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부터 동정과 자비를 드러내는 말씀이다.
마태 14, 14에서는 예수님은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마태 20, 34에서는 소경을,
마르 9, 22에서는 마귀 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다.
루카 7, 13에서보면, 나인 이라는 곳에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실 만큼,
과부의 정경을 불쌍히 여겨 그 아들을 살려 주시는가 하면,
마태 15, 32에서는 군중들의 배고픔을 염려하시어 빵의 기적을 베푸시는가 하면,
마르 1, 41에서는, 친구와 친척들의 품으로부터 추방당하고, 홀로 죽음과 고독 속에서
병고에 시달리며 삶을 포기하여 절망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문둥병자의 아픔을 동정하시어
완치시키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여기시고 함께하시는 모습이다.
그들의 고통을 보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말로만 위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한 일반 대중을 보는 눈은 달랐다.
바리사이인들은 : 일반 대중이란, 없애 버리고, 태워버릴 겨와 같은 것으로 보았으나,
예수님은 : 그들을 베어들이고, 구원 받아야 하는 추수할 것으로 보셨다.''
바리사이 인들은 자기들만이 제대로 율법을 지키고 살기에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교만에 차,
일반 대중을 죄인 시 하여 죄인들의 파멸을 바랐으나,
예수께서는 바로 그러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신다는 것이다.
추수는 추수할 일꾼이 있어서 제때에 베어들이지 아니하면, 추수가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인 우리의 협조와 참여를 필요로 하시며 바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분의 음성은 아주 적은 지역에밖에는 미치지 못했다.
팔레스티나 지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온 세상 모든 사람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고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학생들이 배울 수가 없듯이
누군가가 바다와 산을 건너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지 않으면, 그 소식을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사람이 '나는 매일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라고 할 때, 힘이 없다.
또한 우리가 헌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인도해야할 사람들을
맡겨 주시고 계시기에,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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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