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실버Quicksilver
the Beast
삭막하고 적막한 도서관 골방 꼭대기는 사람과 사람이 나무 칸막이로 차단된 채 각자의 일 - 대개 취업공부, 자격증 공부, 고시공부 등 - 에만 몰두하도록 만들어진 지극히 기능적인 공간이다. 공간 구성 방식 뿐 아니라 분위기마저도 어찌나 기능적이었던지, 이곳 사람들은 평소 옆자리에 누가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지만 그 사람이 에어컨을 조금만 오래 자기 쪽으로 고정시켜 놓을 경우 바로 그 생면부지의 동지에게 기분나쁜 시선을 보내거나 드물게는 싸우기도 한다(그리고 그런 투닥거림이 길어질 경우 주위 사람들의 면학 분위기에 자기들 슬리퍼 발냄새보다도 더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신경이 안 쓰일 만치 굵은 신경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공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다). 옆자리에서 벌어지는 그런 종류의 소요에 무신경해진 지도 오래인 걸 보면 나 역시 이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는다.
앉자마자 앞을 바라본다. 나무결이 이곳저곳으로 뻗어 짜맞춰진 싸구려 합판 칸막이가 정면과 좌우를 막고 있기에 짐 싸들고 뒤로 돌아 때려치우고 나갈 것이 아니라면 돌진할 곳은 오직 눈앞에 펼쳐진 참고서들과 단권화 노트, 강의테잎 속 뿐이다. <수평적으로 좁을 것.> 합판 칸막이는 시야를 온통 채우고 있다. 설사 그 너머를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어차피 그 너머에는 또다른 누군가의 참고서가 마주 펼쳐져 있을 뿐이었고 그 너머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넘어갈 수 없는 벽이었다. <수직적으로 높을 것.> 배고픈 고학생들은 과외와 알바를 병행하면서 이 짓을 감행한다고 하지만 나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집안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야말로 나갈 때가 지난 캥거루처럼 어미의 배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젖줄도 아닌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할 것.> 농성전의 3대 조건을 갖춘 이상적인 공간이다.
가슴이 약간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앞의 벽에 붙은 포스트잇을 훑어본다. 성실한 휴학생으로서 도강을 감행하기 위해 정리해 둔 관련 과목들의 강의 일정표, 밥값을 어떻게든 아껴보고자 구입할 예정인 학생회관 식당 식권 묶음 사러 가기로 한 시간에 대한 메모(아싸. 5천원 아꼈다), 그리고 나를 채찍질한다는 명목으로 붙여 두긴 했지만 사실 그저 남들 다 하기에 따라서 써붙여 본 것에 불과한 몇 가지의 <백절불굴百絶不屈>, <나를 넘어선 순간 나는 칭기즈 칸이 되었다> 같은 시시껄렁한 격언들. 그리고 그 격언들 중 하나에 끄적거려 둔 작고 빨간 글씨의 메모. <힘내세요!>
... 어?
<힘내세요!>라니? 나는 휑뎅그레한 눈으로 그 메모를 들여다보았다. 이건 내가 쓴 게 아닌데? 우선 나는 이런 것을 쓴 기억이 없지만 술기운이나 잠결에 끄적거렸을 가능성도 있으므로(보통 술 마시고 열람실에 오지는 않지만) 혹시 모른다 싶어 글씨의 필적을 읽어 보았지만 전혀 내 악필과는 거리가 먼, 깔끔하고 동글동글한 여자의 것 같은 글씨체였다. 그리고 내가 이 곳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지인은 드물며 그 중에 여자는 우리 어머니를 포함해 두세 명 뿐이고 그네들은 몸소 이 눅진눅진한 공간까지 왕림하실 분들이 아니다. 얼라리요, 이거 세계의 숨겨진 참모습에 대한 의심이 드는 순간인걸?
순간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발칙하지만 탓하진 말아 줬으면 싶은 일련의 상상들.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던 어느 재기발랄한 하지만 모종의 결격사유로 인해 현재 애인은 없는(그렇다면 일단 하이 퀄리티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어느 여인네가 나의 열혈고시생스러운 모습을 보며(물론 하루 1시간씩 꼬박꼬박 퍼질러 주무시다가 가끔 자기 코 고는 소리에 깨곤 하는 모습은 전-혀 열혈스럽지 아니하지만) 그만 연모하는 마음을 품어 버렸지만 유난히 소심했던 그녀는(그렇다면 성격면에서도 결격사유 하나 추가. 평균연령 25세를 자랑하는 이곳의 상주인구로서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대쉬를 못 한단 말인가) 차마 내게 음료수 한 잔을 건네며 나가서 얘기하자는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가슴에 붙은 불에 혼자 애태우다가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만 볼 수는 없다는 마음이 불끈 일어나 이런 식으로나마 나의 공부를 응원하는, 그야말로 기름칠 질질 흐르는 양산형 발라드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의 발생...
... 젠장, 무리수가 너무 많아. 차라리 오늘 공부 마치고 집에 가다가 알 자르카위의 공격을 받아 참수형을 당할 가능성이 더 높겠다. 어쨌든 한국인은 <유일신과 성전>을 비롯한 이슬람 과격단체들의 표적이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지, 나는 대충 평균 15분에 한 번씩은 듣던 강의 테잎을 멈추고 주위 사방의 여성 고학생들을 매서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는 이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아버리겠다는 결의를 되새기면서.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던지 그날 하루 내내 그런 얼빠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꿔 말하면 나는 하루종일 15분에 한 번 꼴로 주변을 돌아보는 미친짓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얼빠진 건 아무래도 내 쪽인 것 같다.
근데 정말, 누구지?
궁금하네.
* * *
며칠이 지났고, 메모의 작성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제발 '그'라곤 말하지 말아다오)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약 5분간 화장실 다녀오는 짧은 순간 동안 후다닥 <할 수 있을 거에요 ^^*> 같은 글을 작성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그것도 지나치게 부산스럽게 움직였다간 인근 5미터 내의 눈총의 십자포화를 맞게 되는 이런 공간에서) 예삿사람의 소행이 아니다. 나는 정말 내가 알 자르카위의 표적이라도 된 것 아닌가 하는 망상마저 품게 되었다. 제발 옆사람에게 물어보라는 식의 조언은 꺼내지 말아 주길 바란다. 이 곳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재채기만 크게 해도 '아이 진짜...' 같은 소리를 듣는 성격파탄자들의 집단수용소라니까.
메모의 내용은 말 그대로의 격려였다. 힘내세요, 할 수 있을 거에요, 지치지 말아요, 화이팅. 간간이 애교성 이모티콘을 섞어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으며, 그리고 필체는 빨갛고 작고 동글동글한, 그 짧은 순간 동안 들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쓰는 글씨 치고는 지나치게 깔끔한 글씨. 이런 필체와 애교의 소유자가 195센티짜리 시커먼 남정네이기라도 하다면 나는 그 친구와 사생결단이라도 내고 싶어질 것 같다. 아무튼 대충 이것들이 내가 알아낸 전부였다.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만 메모의 작성자가 바라는 대로 힘내서 공부를 하는 대신 메모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고픈 욕망에 휩싸여 학업을 방해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것이 메모의 작성자가 노리는 진정한 목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 뭣하러?
어느 평범한 고시생이 귀여운 필체로 메모를 꼬박꼬박 남겨 자신의 경쟁자를 하나둘씩 낙방시킨 끝에 자신의 합격률을 높이려는 음모라도 꾸민다는 건가? 차라리 고시학원 인근 식당에 공급되는 깍두기에 독극물을 푼다는 쪽이 더 개연성이 있겠다. 어쩌면 내가 솔로 생활 3년만에 애인의 포근한 품이 그리워 반쯤 돌아버릴 지경이라는 것을 아는 내 친구들 중 유달리 악마적인 생물 하나가 어디 가슴에 봄바람이라도 한 번 쐬어 보라며 저지른 일일지도 모른다(내 친구놈들 중에 그 정도로 악랄하고도 기발한 인간이라면... 젠장, 용의자가 너무 많다!) 하지만 이런 식은 놈들의 스타일이 아니므로 대상적격에 어긋나는 이 안건은 각하. 제길... 모르겠다, 정말!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고 마침내 나는 메모가 <실은 당신을 예전부터 좋아해 왔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밖에... 미안해요 ㅠ.ㅠ> 같은 소리를 씨부렁거리든 말든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물론 그런 메모가 오지는 않았다. 메모의 내용은 한결같은, 지치지도 않는 격려였다)
하지만 노트 구석이며 포스트잇 한 귀퉁이며에 빨간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은 나름대로 신경을 거스르는 맛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나름의 대책을 고안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저글링에는 마린이나 질럿, 메모에는 메모. 나는 자리를 비울 때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노트 한 쪽을 찢어 익명의 메모쟁이에게 보내는 정중한 항의서한을 작성했다. <일부러 수고해 가면서 매일 격려해 주는 건 고맙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의 격려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으니 자제해 주시든가, 그게 싫으시다면 신원이라도 좀 밝혀 달라>는 내용의. 나는 그 종이를 외출 때마다 책상 위에 펴 놓고 나갔다.
그렇게 몇 번을 자리를 비워 봤지만 이렇다할 응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꽤 고무적인 일이었는데, 더 이상 빨간 메모가 추가되는 일 역시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꽤 흡족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메모쟁이가 나의 편지를 읽고 그만 자책감에 시달리며 의기소침해져 어디 한구석에 처박혀 늘어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정말이지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내딴에는 매서운 눈으로 주위의 책상에 앉은 학생들 중에 그렇게 늘어져 좌절한 모습의 여인이 없는가 하고 둘러보았다. 그러나 별 성과는 없었던 것이, 점심 먹은 뒤였는지라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퍼질러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질감 느껴지는 하지만 식상한 광경을 잠시 훑어보다가, 나는 쌓인 강의자료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료집 중에도 한구석에 <^^)/>이라 쓴 빨간 메모가 도장처럼 찍혀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문득 그 올망졸망한 글자들이 꽤 처량해 보였다. 이모티콘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잘못한 건가요?'
나는 입속으로 이렇게 대답해 주기로 했다.
'그런 건 달라고 하는 사람한테만 주면 되는 거야.'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주고받을 사람 찾기가 힘들지만.'
* * *
3년이란 세월은 나를 사법고시 합격생으로 만들었다. 그 기간 동안 못다 한 것들을 생각하면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니었지만 앞으로 보상받을 것들을 고려한다면 또 그렇게까지 긴 시간도 아니었다. 등용문. 나는 기어올랐고, 이제 윗물을 마시며 노닐 차례다.
하지만 검사시보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상관 검사의 뒤치닥거리는 모조리 우리 몫이었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야근 역시(이 말은 우리끼리 하는 씁쓸한 농담이다. 이틀에 한 번은 야근이고 한 번은 철야라는.)일상이 된 덕분에 주위 사람들 중에서 여자로 보이는 생물을 건지는 일은 심히 곤혹스런 작업이 되었고, 결국 나 역시 '남자가 선 봐서 결혼하는 것은 세상에게 무릎꿇는 일'이라며 주변에서 좋은 사람이랑 화끈하게 연애질해 결혼해 버리겠다는 학부생 시절의 패기는 온데간데 없이 이제는 주위에서 간혹 물어다 주는 선 자리 나가는 일을 주말마다 하는 데이트 일정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시보 자리에 앉은 뒤 생긴 가장 큰 내적인 변화였달까.
어찌됐건 아무리 선을 봐대도 선이란 것 자체가 영 못마땅했던 나였는지라 솔로는 솔로였고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네미가 혼기 놓친 채 노총각 엘리트의 길을 걸어갈까 봐 심히 저어되셨던 모양이다.(손자가 많이 보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서 나는 바람직한 아들네미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그 마뜩찮은 여인네들 몇 명과의 연락을 유지시켜 두고 종종 그네들을 만나는 선에서 '나 역시 좋은 사람 만나기 채널을 가동시키고 있음'을 분명히 해 두었다.
선 본 지 두세 달이 지나서야 연락을 한 불성실하고 싹수없는 내게도 별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순순히 만나 준(모두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여인들을 속물이라며 탓할 생각은 없다. 현실에 발 딛지 않고 떠나 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둥바둥 사는 이들을 속물이라고 비웃고 질타한다. 이것도 가진 자의 횡포랄까. 나는 그건 옳지 못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게는 '참한' 반려가, 그네들에게는 '비전있고도 안정적인' 반려가 필요했기에 만나는 관계였고 어른들은 늘 그렇게 하는 법이었으니까. 서른을 코 앞에 둔 나로서는 익숙해져야 할 세계관의 변화였다. 그렇게 네 명의 여자들과 적정선에서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를 하며 교제하고 지냈지만 아무도 내게 문어발이니 카사노바니 하고 부르지는 않는다. 5년쯤 전이었으면 상종 못할 불상놈이라는 소릴 들으며 매장당했을 텐데 말이다. 어른들은 늘 그렇게 한다.
그래도 역시 본성은 개도 못 주는 것이었는지, 나는 그런 관계들이 영 마뜩찮았다. 남녀가 이끌림 없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그래서 모종의 육체관계라든가 도를 넘어선 스킨십 같은 것은 없었다. 그네들은 내 그런 모습이 더 끌리는 눈치였다. 하긴 그게 점잖아 보이기는 하겠다 싶었다. 본의 아니게 신사가 되었군 싶어 입맛이 썼다.
친한 친구녀석 하나는 '이끌리는 게 발정이지 별거냐. 오히려 발정 안 난 채 서로를 이성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서로에 대해 보다 잘 알게 되고 깊은 교감을 끌어낼 수 있는...' 하는 저글링 19단 구구단 외우는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거기에 대한 내 의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녀석이 논하는 이성적인 탐색이 간질에 걸려 보행 도중 넘어졌느냐는 내용의 육두문자를 외쳐주었기 때문에. 그 뒤의 친구의 견해도 잘 모르겠다. 에라 이 개나리처럼 아름다운 중생아라는 내용을 최대한 험악하게 외치며 날 자빠트렸기 때문에. 그 뒤도 모르겠다. 술이 너무 취해서. 만취상태로 포장마차에서 친구와 난동을 부리다 얼굴 퉁퉁 부어 파출소로 연행된 검사시보라. 일선 경찰관 나으리들께 심히 면목이 없었다.
내가 출근하기 전 챙기던 서류철 사이에서 빨간 글씨의 메모를 발견한 건,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아침, 부어오른 얼굴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하며 고민하던 중이었다.
한 3년 전의 일이었기에 그 빨간 글씨를 보고 곧장 예전의 그 괴상한 스토커의 기억을 곧바로 상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2초 정도 들여다보고서 그 필체가 뭔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바로 그 일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동시에 불가해한 기분을 느꼈다. 이 서류는 내가 간밤에 술이 떡이 되기 전에 이 책상에서 직접 작성한 물건이고 우리 부모님이나 내 형이 아닌 다음에야 간밤에 내 방에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설마 범인이 나 서울에서 혼자 공부하던 당시 고향집에 거주하던 우리 가족이었나 하는 황당무계한 상상까지 하던 나는 그러나 곧이어 공포를 느꼈다. 그럼 아무도 없다는 얘기잖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 비명까지도 메모의 작성자가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떠올리면서.
* * *
치고박은 친구놈과 이번엔 소주 대신 맥주를 놓고 마주앉았다. 왜 소주 먹고 나면 난동이 부리고 싶은데 맥주 먹고 나면 떠들썩하게 놀고 싶은 걸까 하는 잡념이 잠깐 스친다. 친구녀석의 얼굴은 나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생겼음에도 퉁퉁 붓고 여기저기 긁힌 모습이 거울을 보는 느낌을 준다.
"가관이다."
"만만찮군."
"서로 이 지경이니 사과는 생략하지."
"흐흐. 현명한 새끼. 마치 우리가 매년 서로의 생일선물을 생략하듯이 말이지."
"아침에 출근하니까 너희 검사님은 뭐래?"
"오 시보 어디서 현행범 잡다 왔냐더군. 너희 부장은?"
"그럴 거면 아주 K-1에 나가라더라."
"좋아. 나는 범인을 잡으러 갈테니 너는 K-1에 진출해라."
"빙고."
시시껄렁한 잡담이 오간다. 내 찢어진 입술로 차디찬 호프를 들이키는 일은 상당한 극기를 요했고 친구녀석도 터진 볼 속에 노가리를 넣고 씹는 일이 꽤나 고역이었는지 참으로 볼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 심취한 이가 본다면 방금 격전지에서 생환한 오크 전사 둘이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향유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만한 표정들이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주먹이 오가는 사이가 낫지. 그 가시내들과의 술 탄 물처럼 밍밍한 관계보다는. 나는 무심결에 이런 생각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다가, 찢어진 아랫입술에서 피와 통증을 흘리며 신음했다. 그 꼴을 바라보는 친구놈도 마주 웃는다. 입 안에 노가리를 우물거리다가 웃는 모습이 바보 같다.
반창고와 소독약 자욱을 실룩거리며 나는 마침내 용기를 끌어모았다. 사실 화해 같은 것보다, 오늘 아침의 일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해서 녀석을 부른 것이었다. 친구도 많고 지인도 많지만, 각자의 관계에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어느 놈과는 간밤에 어느 년이랑 잤다느니 하는 속된 이야기만 주고받다가, 또다른 놈과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구원에 관한 부처님 발레 하시는 소리로 밤을 지새우거나 하는 식으로. 그래서 누군가를 더 아끼거나 덜 믿는 것과는 별개로,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적당한 상대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자칫 정신상태를 의심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이런 사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내 인간관계가 좁거나 편중되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 이런 일을 고백할 녀석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친구 뿐이었다. 사람 관계란 게 늘 그런 것 같았다.
"저기, 야."
"왬마."
심드렁한 반응이 미덥다. 용기를 더 얻는다.
"내가 이런 말 한다고 나 이상하게 보지 마라."
용기가 있어도, 확신은 없다.
"왜, 나 사랑하냐?"
... 칵! 김이 팍 샌다.
"이눔자식... 한판 더 뜰까?"
"오호, 감히 K-1 진출 예정자에게 덤비다니 제법인데, 오 시보."
우리는 키득거린다. 키득거림의 끝에서 나는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녀석은 처음에는 왜 갑자기 몇 년 전 얘기를 꺼내냐는 표정으로 심드렁하니 듣더니 점점 관심을 보이면서 급기야 오늘 아침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져 호프잔을 원샷하는 이적을 보였다(그것이 왜 이적이냐면 앞서 말했듯이 나도 녀석도 얼굴 상태가 개판이었기 때문이다. 난 도저히 저렇게 못한다. 그 모든 통증을 이겨내고 단호히 500잔 원샷을 성공시킨 친구녀석의 저 행동은 존경해도 될 업적이다) 얘기를 다 듣더니 놈은 중년탐정 김정일이라도 된 듯한 눈매로(선글라스는 없었다) 우리 상관 검사들이 피의자에게 질의할 때와 비슷한 어조의 질문을 던졌다.
"정말 용의자가 아무도 없는 거지?"
"그렇다니까."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고?"
"맨정신으론. 술김에 필름 끊긴 뒤라면 자신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제는 정말 아무도 접근할 일이 없었단 말이지? 혹시 부모님한텐 여쭤 봤냐? 형한테는?"
"야, 그런 거 물어봤다간 우리 집 사람들은 다들 '얘가 요새 일이 힘들어서 몸이 많이 허해졌나 보네. 보약이라도 좀 지어 줄게' 하는 반응을 보일 거라구. 으으, 두렵다."
"배부른 소리 한다. 여튼... 그 얘기 듣다 보니 뭐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예전에 읽은 내용이지."
응? 나는 이런 반응은 예상치도 못했다. 믿어주는 것만도 감지덕지인 이야기인데.
"어디서 읽어?"
"환상사전이었나... 암튼 예전에 판타지 붐 일 때 쏟아져나온 관련서적 중에서 심심풀이 삼아 서점에 서서 읽어 본 얘기였어. 거기 보면 퀵실버Quicksilver라는 게 나와."
엥?
"퀵실버? 그거 옷 브랜드 이름 아냐? 원래 단어 뜻은 '수은'이었던 걸로 아는데..."
"응. 요샌 망한 브랜드 이름이지. 나 중딩 때 많이 입었는데. 여튼 그거 '수은'이란 뜻에서 파생된 다른 뜻이 있는 모양이야. 영국 전승 민담에 나오는 요정의 이름이지. 오밤중에 나타나서 립스틱으로 크게 Q자를 거울에 그리고 도망가는 여자 요정이 퀵실버야. 거울 뒤에 칠하는 게 수은이잖아? 요즘은 아니라지만."
영국이라. 참 멀리서도 왔다. 그나저나 웬 Q.
"... Q자는 안 썼는데? 거울도 아니고."
"아 내가 꼭 그거랬냐? 그냥 니 얘기 들으니 그 이야기 생각이 나더라는 거지. 낙서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요정. 사람들을 신경질나게 하지만 악의는 없고. 아, 내쫓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화들짝. 내 귓바퀴와 눈구멍이 동시에 1.5배쯤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뭔데!"
"골뱅이."
나는 잠시 녀석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로버트 드 니로가 갱 두목 역에서 연기할 때의 자세를 취하고 거만한 표정을 지은 채 목소리를 좍 까는 놈의 태도에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이 자식, 이런 상황에서 거래를... 나는 녀석의 개그에 호응해주기 위해 알 파치노의 표정을 과장되게 지어 보이며 화답했다.
"흠... 그 정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우선 사실 여부도 불분명하고."
"뭐 그렇긴 한데, 어찌됐건 지금 이 순간에도 네 방에선 또 어떤 중요문서가 빨간 칠을 당하고 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지 않은가?"
나는 그쯤에서 이태리 마피아 보스 놀이를 그만두기로 했다. 녀석의 말이 옳았기에. 나는 더 이상의 허세를 부리는 대신 골뱅이 한 접시를 시켰다. 놈은 조지 클루니 같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 려다 부어오른 얼굴의 고통을 삼키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아, 이 한심한 개그인생들.
* * *
나는 그날 밤, 내 방에 혼자 들어앉아 문까지 걸어잠그고 침대 위에 정좌해 앉았다. 대체 왜 그런 엄숙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잡귀를 쫓는 엑소시즘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사실 그리 틀린 것도 아니지. 요정이면 도깨비잖아.
'퀵실버가 출몰하는 곳에서 이름을 세 번 불러. 퀵실버, 퀵실버, 퀵실버. 그러면 사라진다더군.'
뭔가 긴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꼭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귀신 따위가 어딨다고 그래! 있으면 한 번 나와봐!'라고 외치기 꺼려지는 그런 느낌.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믿으면서도 막상 그렇게 외쳤다가 '정말?' 하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대답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정말 막 뭔가 나타나서 난리를 치면 어떡하지? 에라, 중요문서의 사수를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해주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퀵실버!
"... 퀵실버..."
내 의도와는 달리 막상 나온 목소리는 모기만했다. 아아, 나 이렇게 겁 많은 존재였던가. 뭔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이번엔 배에 힘을 주고 한 번 좀 더 크게 외쳐 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뭔가가 책상 쪽에서 꿈틀 하고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 하지만 호기심이 내 발을 이끌었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펜꽂이에 꽂혀 있던 빨간 플러스펜 하나가 연습장 스프링 노트 위에 깨알 같은 글씨를 써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명을 질러버릴까 하는 생각도 못한 채, 나는 홀린 듯이 그 글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용을 꽤 길게 쓰려는 듯, 글씨는 노트의 하얀 종이 맨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채워져 가고 있었다.
- 이제는 나를 쫓아버릴 방법을 찾아왔나 보네요. 뭐 그런다고 우리가 내쫓기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까지 우리를 꺼리는 사람들 곁에 남아 있는 것도 미안해서 떠나곤 하거든요. 사실 반겨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비명을 지를 거라고까진 생각 못 했지요. 사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아요. 우리가 왜 글씨를 쓰고 물잔의 물을 비우고 하는 장난질로만 당신들한테 다가가는지, 당신들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서요. 옛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가 부리는 장난에 신경질을 내고 우리가 그려 놓은 낙서를 지우며 투덜거려도 요정이란 것들은 어련히들 그러는 거라면서 정겹게 굴고 그랬는데.
"이젠 안 그래."
부지불식간에 입이 열렸다. 각각 필담과 구술로 이루어지는 대화.
- 네. 우리 얘기를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더군요. 하지만 그것보다 신기했던 건 사람들이 우리가 요정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접근에 화들짝 놀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이상하죠? 사람들은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아졌지만 동시에 훨씬 더 외로워졌는데. 저마다 어두운 방구석에 박혀 자기 일만 하다가 어쩌다 만나는 친구들에게서 맡는 사람 냄새에 그렇게 기뻐하고, 그러면서도 먼저 손 내밀 줄은 모르고. 당신도 그렇게 외로워 보였는데. 하지만 아무에게도 먼저 다가가려 하지는 못하고. 거리를 재고. 그래서 더 우울하고. 술독에 빠지고.
파라락. 한 쪽이 가득 찼고, 페이지가 넘어갔다. 그래서 나는 말할 틈을 얻었다. 내가 입을 열자 펜은 공중에 멈추어 있었다.
"두렵거든... 이젠 옛날처럼 사람 아닌 것이 두려워서 사람을 찾는 세상이 아니거든. 우리는 사람이 두려워서 사람 아닌 것을 무서워해. 옛날엔 밤길에 누군갈 만나면 귀신이나 호랑이 아닌 것이 기뻤겠지만 이제는 그 사람이 강도이거나 불량배이거나 강간범일까 무서워 발길을 바삐 옮기지."
- 맞아요. 그래서 우리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해요. 하지만 공부하느라 힘들어하는 당신 같은 이들을 보면, 우리는 그냥 가만 있기도 힘들어요. 우리가 당신들 같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럴까요? 그래서 우리는 먼저 손을 내밀지만, 사람들은 화를 내죠. 편지를 쓴 당신 같은 경우에는 점잖은 편이었지요. 어떤 놈이냐며 짜증을 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딴 장난 때려치우라며 신경질을 내고, 심지어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더군요. 나는 묻고 싶어요. 다가오는 손이 그렇게 무서운가요?
빠르게 움직이던 - 그렇다. 거의 속기가의 것만큼 빠르면서도 또박또박한 글씨체였다. 사람은 그렇게 글을 빨리 쓰지 못할 것이다 - 펜이 딱 멈추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양해와 허락이 필요해."
펜은 가만히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지 보충설명을 요구하는 듯했다. 나는 설명해야 했다. 요정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철 출입구 같은 곳에서 전단지와 함께 꽃이니 사탕이니를 나눠 주는 사람들이 있어. 심리적으로 그런 선물과 함께 건네지는 물건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나름의 심리적인 부채를 느껴서 한 번 더 전단지의 내용을 훑어 보게 된다더군.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생전 들여다보지도 않던 꽃들을 한아름씩 안고 애타는 마음을 고백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어찌 보면 횡포야."
입안이 말라 왔다. 달포 전 함께 드라이브를 갔다가 한적한 곳에서 차를 세우고 옆에 앉은 여자의 눈을 들여다볼 때처럼. 그때 뭔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그게 내가 찾던 '이끌림'인지, 아니면 친구녀석의 말대로 '발정'인지, 어쩌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여자가 뭔가를 애타게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끝내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 여자는 기분이 꽤 상한 모양이었다.
어쩌겠는가. 입밖에 나오지 않은 것들은,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은데. 친한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때도 과연 내 말을 믿어 줄까 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는 게 우리네 사는 법인데 말이다. 내가 어떻게 당신 속을 알겠는가. 그러니 말을 해. 말을 하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겉으로는 예의있고 가식적인, 별 맥아리 없는 겉핥기식 대화를 나누면서 말이다.
"횡포... 그래, 횡포지. 내가 남이 될 수 없고 남이 내가 될 수 없으니, 뜬금없이 뭔가 선물을 떠넘기는 건 지독한 횡포이고 어린애 같은 짓이야. 네 말대로 우리는 끊임없이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있거든. 얘가 나한테 준 선물이 우정에 의한 걸까 사랑에 의한 걸까 이도저도 아니면 리포트 한 개만 써 달라고 주는 걸까 하면서. 상대의 의도를 모르면 불안해지고, 그건 무서워. 친구건, 애인이건, 뭐건간에."
펜이 살짝 움직였다.
- ......
천천히 규칙적으로 점을 딱 여섯 개 찍고, 펜은 멈추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침묵은 표현될 테지만, 요정은 뭔가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녀석도 어쩌면 인간을 배우며 닮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별로 좋은 건 아닌데. 나는 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그리고 가끔은 평생을 이어 가며 지내는 그런 관계들 속에서 일일이 주고받는 것들을 계산하고 재가면서 산다는 건 너무 피곤하고 서글픈 일이야. 간혹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안 그래. 우리도 힘들지. 그래서 우리는 몇몇에게는, 그러니까 오늘 만난 친구 같은 녀석들에게는 약간씩 터놓지. 그리고 그런 친구니 애인이니를 만들려면 과정이 필요해. 조금씩 터놓는 과정이... 우리에겐 그 과정이 무척이나 필요해."
- 그랬군요.
펜은 그 한 마디를 써 놓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서 있어서 다리가 좀 아팠다. 어느 순간, 빨간 글씨가 다시 이어졌다.
- 당신들이 차리는 예의라는 것이 사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자기방어였다는 걸 깨달은 지는 몇백 년 됐지만, 왜 그런 자기방어가 필요한지는 아무도 대답해 주질 않았어요. 우리는 관계로 서로를 묶고 살지 않는 자유로운 요정이니까 이해하기 힘들었지요. 대답을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별 말씀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아닌 존재와 감사와 겸양을 나누려니 왠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요정은 그 웃음을 보았는지, 아니면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한 마디를 더 썼다.
- 이런 게 그 '터놓는 과정'인가요?
강조의 의미로 쓰인 작은따옴표가 또박또박 찍히는 것을 보며 나는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 * *
결국 나는 퀵실버의 이름을 두 번 더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요정은 그 날 이후 다시 빨간 메모를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요정은 관계짓는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과 요정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의 유무 여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간에 뭔가 작지만 중요한 영향 같은 것을 준 것 같다. 요정은 내 서투른 이야기에서 사람에 대한 것을 배웠을 터였고, 나 역시 뭔가 느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요정이 마지막으로 남긴 기나긴 필담의 내용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보관해 놓고 있다. 그 내용을 본 것은 예의 그 친구녀석 뿐이다. 우리 친형에게도 보여줄까 생각해 봤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늘 그렇지만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은 상대마다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좀전에 말한 그 드라이브 갔다가 아무 일도 없이 돌아와 삐지게 만든 그 여인과 1년간의 열애 끝에 3만원짜리 장미 다발이라는 흉기를 빼들고 결혼 승낙을 강탈하는 만행을 바로 엊그제 저질렀다.
그래, 뭔가 변한 것도 같다.
모의고사 결과 보고 충격 받아서 쓴 글.
중앙도서관 4층 전산실에서 장장 3시간만에 완성되었-_-
음, 퀵실버에 대한 내용은 대충 영국 전승 맞는데,
마지막에 구축법에 대한 건 그냥 제가 지어낸 것.
아웅 눈아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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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쓰십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글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다!
으음. 재미있었습니다. 굉장히 흡입력 있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