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역사는 크게 영광스럽지는 않지만 그리 부끄럽지도 않다. 영웅과 위인을 위주로 한 그리고 선조들의 업적만을 나열한 역사 책으로만 배웠기 때문이다.
조선역사 글을 쓰면서 조선시대를 알아 가고 있다. 조선시대 자랑스러운 부분보다는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잘못된 역사를 통해 반성해보고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역사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만 자랑할만한 새역사를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선은 ‘15% 양반’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지켜주는 나라였다. 로마나 서양의 귀족들이 병역, 납세, 공공기부(노블리스 오블리제)에 철저했던 반면 조선의 양반들은 군역, 납세, 노동 어느 하나도 책임지지 않았다. 50%의 양인과 35%의 노비들이 그 몫을 대신했을 뿐이다. 천한 상업에 양반이 종사하는 것도 법으로 금지했을 정도다.
조선의 역사를 알면 알아갈수록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와는 너무 달랐다. 잘못되고 부끄러운 역사가 조선 오백년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계속된 조선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글에 어느 분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조선역사500 년을 민중의착취 라고 단편적으로 말하는 님이 참 위험한 생각 가지고 있어요. 어떻게 그런 글만을 쓸수 있습니까? 단편적인 사실로 전체를 다 덮고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조선 500년 역사는 자랑스런 우리 민족과 조상의 역사입니다 . 돌아가신 아버지 욕 하는사람 하나도 잘된사람 못봤습니다"
필자는 그 분의 댓글에 다음과 같이 답글을 달았다.
"님의 생각은 저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저는 님과 다른 생각에 대해 논쟁은 할 수 있지만 님의 생각은 존중합니다. 님은 내가 조선 오백년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는데 부정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조선오백년을 지배했던 사람들이 나라나 백성들보다 자기들의 안위만을 위해 너무나 많은 잘못된 행위를 하고 결국에 나라까지 빼앗겼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댓글을 단 분의 말처럼 그동안 내가 조선 왕과 조선사대부들에 대해서 너무 비판적으로만 써왔다.
그러나 조선에도 그 분의 말처럼 자랑거리가 꽤 많다. 우선 애민정신에 투철한 세종, 광해, 영조, 정조 등 왕들이 꽤 있었고 백성들의 조금이나마 안락한 삶을 위해 대동법 실시를 평생 숙원으로 삼았던 김육이나 호포론을 주장한 박문수같은 사대부, 목민심서의 정약용 등 국가나 백성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정책을 펼치려는 인물과 그런 시대도 있었다.
특히 조선의 기록문화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 하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상세하게 적혀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이외에도 승정원일기, 일성록, 용비어천가등등이 있고, 개인들도 난중일기,징비록,미암일기,한중록 등등 수를 헤아리기 없도록 많이 남겨져있다. 조선의 기록문화는 진짜 천년 만년 앞을 바라본 우리 선조들의 선물이다.
나는 조선의 가장 위대한 일은 오백년동안 왕조를 유지하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진시황릉, 인도의 타지마할,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트등 무덤이나 신전등 거대한 쓸데없는 건축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것이 남아있다면 지금 살고 있는 후손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문화유적이나 관광상품이 되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를 사는 선조들의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수십년동안 온 나라 백성을 노예적으로 동원시켜 만든 건축구조물에 나라가 망할정도윽 국력을 쏟아부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런데 조선은 그러한 일은 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경복궁 궁궐도 광해 때 어렵사리 복구하고 수백년이 지난 대원군때 와서야 완전하게 복구된다.
조선의 또 하나 자랑거리는 세계 역사상 그 어떤 왕조보다 언론기관이 특화되어 있었고 트여있었다는 것이다. 홍문관, 사간원이라는 정식 관청이 있었고 그 관직의 장은 청요직이라고해서 정승급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일은 중국은 물론 세계왕조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물론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이 유교의 영향으로 현세지향적인 경향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유교적인 현세지향적인 경향을 조선사대부 그들을 위해서만 아니라 백성과 함께하려는 생각으로 정책을 펴 나갔다면 조선 오백년의 자랑꺼리는 훨씬 풍부해졌을 것이다.
첫댓글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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