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상담봉사하며 이웃 고통에 눈떠 장애인 보며, 보고 듣고 말하는 자신에 ‘감사’ 1993년 연화원 설립…장애인 법회 열어 운전·원예교육 등 으로 자활의지 심어 수화용어집, 점자 불교 법요집 발간 “장애인 전용 노인요양시설 만들 것”
천안(天眼)제일이라 불린 아나율 존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유일한 시각장애인이었다. 부처님은 앞을 볼 수 없는 아나율을 위해 바늘귀를 끼워줄 정도로 제자를 아꼈다. 부처님 당시 시각장애인이었던 한 바라문은 부처님께 설법을 요청했다. “부처님, 사람들은 세상에 빛이 있다, 색깔이 있다고 말하는데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부처님께서 빛이 있는지 없는지 말씀해주시고 있다면 제가 알 수 있도록 설명해주십시오.” 그때 부처님은 설법을 하지 않고 지바라는 의사를 불러 바라문의 눈을 치료해주도록 했다. 수술로 시력을 되찾은 바라문은 자기 눈으로 빛과 색이 있음을 확인했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스스로 깨닫게 됐다. 부처님은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사회복지적으로 해결 하려 했다. 만일 다른 종교의 교주라면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 했을까. 바늘귀를 끼워주는 대신, 아나율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또 바라문이 불쌍했다면 위로의 말씀을 하든가 자기 손으로 바라문의 눈을 뜨게 했을지도 모른다.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이사장 해성 스님(서울 광림사 주지)도 부처님과 같이 시각ㆍ청각장애인들이 스스로 삶의 고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20여 년간 조력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불교계 장애인 복지와 포교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한 인물을 꼽으라면 해성 스님을 떠올릴 정도로 스님은 쉴새없이 달려왔다. 스님의 대표적인 활동은 청각장애인의 자활을 돕는 교양강좌와 운전교육, 꽃꽂이 교육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 스님은 〈자비의 수화교실〉 〈불교수화용어집〉 〈야! 쉽다, 운전면허(청각장애인용)〉 등을 펴내고, 불음(佛音) 가요 음반 ‘넌 혼자가 아니야’를 제작했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 혼자서도 법회를 보고 경전을 암송할 수 있도록 〈점자 불교 법요집〉을 발간했다.
수화로 청각장애인들의 세상을 보다 21세 때인 1978년, 스님은 서울 돈암동 보현사에서 출가해 동국대 선학과와 삼선승가대를 졸업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했지만 불교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스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딘지 생각을 하다, 1988년 ‘사랑의 전화’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화 상담을 하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원(願)을 세웠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1년에 한 번 장기자랑을 해요. 발표회에서 보여줄 것이 없을까 하다 도반 스님 몇 분과 함께 노래 한 곡에 맞는 수화를 배워 율동처럼 했는데, 스님들이 해서 그런지 반응이 상당히 좋았어요.” 스님은 수화공연처럼 불교를 알리는 데 좋은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1991년 수화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조계사 원심회를 찾았다. “원심회에서 처음 청각장애인들을 만났어요. 그분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싶은데 수화를 할 수 있는 스님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저를 쳐다보는데 마음이 무거워졌죠. 그래서 그분들과 수화로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서툰 수화였지만 스님은 정성껏 청각장애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전에는 몰랐던 청각장애인들의 고통을 알게 됐다. 특히 가족들과의 갈등이었다. “말을 못하니 부모ㆍ자식 간에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외로움도 많이 느끼고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고요. 세상은 그들에게 꽉 막힌 벽과도 같은 거였어요. 이분들이야 말로 불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해성 스님은 1989년 서울 송파구에 세운 도심포교당 광림사를 1993년 2월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용법회 장소이자 배움터로 만들었다. 요즘에는 일요법회에 참가하는 인원이 30~50여 명에 이르지만, 처음 청각장애인 법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참석 인원이 불과 세 명뿐이었다. 당시에 사찰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법회를 여는 곳이 없기도 했고, 스님과 불자들은 청각장애인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님은 법회를 꾸준히 지속했다. 청각장애인들이 그들의 가정에 진정한 일원이 되도록 직접 집을 방문했다. 또한 국어교육, 한자교육, 서예교실, 컴퓨터 교실 등 교육프로그램과 상담 교실을 열어 청각장애인들이 사회생활에 적응 할 수 있도록 했고, 그들의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봄ㆍ가을 수련법회를 갈 때는 가족들도 동참했다. 그렇게 3년쯤 지나자 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고, 가족 간의 갈등도 조금씩 해소됐다. 매주 일요일 수화로 진행되는 법회에는 서울ㆍ대전ㆍ인천ㆍ동두천 등 전국 각지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참석한다. 연령층도 10대부터 70대 까지 다양하다. 1995년부터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지체장애인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 차량을 준비해 성지순례법회를 실시했다. 여기에 더해 3년 전서부터는 시각장애인 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매월 둘째 주 일요일 법산 스님을 초청해 청각ㆍ시각장애인 합동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수화로 연극을 제작해 공연하고 있다. 매년 수화사랑 음악회에서 발표되는 모든 노래를 수화로 통역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운전면허ㆍ화훼기술…자활의 날개를 달아주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경제난을 겪자, 스님은 직업 재활 차원에서 국내 최초로 청각장애인 운전 교육을 시작했다. 스님의 경제 사정은 아랑곳 않고 수화 운전 교육 교재인 〈야! 쉽다 운전면허(청각장애인용)〉도 발간했다. 청각장애인들은 스님이 만든 교재와 비디오로 이론을 배우고 송파구청의 도움을 받아 탄천 장애인 운전연습소에서 실기를 익혔다. 그렇게 해서 면허증을 딴 사람만 600여 명. 운전을 하는 배달업이나 자영업을 통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2000년에는 여성 청각장애인의 자활을 돕기 위한 꽃꽂이 교실도 열렸다. “원예치료는 우울증ㆍ정서불안 환자에게 효과적인 심리치료 방법으로 알려져 있어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원예기술을 익혀 직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에게 제격이라 생각했죠. 그들의 마음 한구석 응어리를 풀면서 자활을 돕고 싶었어요.” 스님은 직접 건국대 평생교육원에서 원예치료사 과정을 수료해 청각장애인들을 가르쳤다. 1~2년 교육과정을 수료한 수강생들은 전문가 못지않은 꽃꽂이의 달인이 됐고, 스님은 2003년부터 ‘꽃사랑 소리사랑’이라는 꽃가게를 열어 그들이 직접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이후 2008년에는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연화 직업재활원’을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청각장애인들과 발달장애인(자폐장애인)들이 화훼기술 및 압화(꽃누름) 기술을 배워 전국 꽃배달 서비스 및 압화 생활용품을 보급ㆍ판매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연화 직업재활원’은 2009년 2월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로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돼 장애인들이 고용을 보장받으며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했다. 2009년 10월에는 국내 230개 우수 중소기업체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화집ㆍ점자법요집으로 신심 고취시켜 스님은 청각장애인들이 활력을 찾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지만 또 한가지 고민이 있었다. 사실 수화로 법문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수화교재에는 불교 관련 용어가 3~5개정도만 표기돼 있었고, 그 마저도 타종교인이 중심이 돼 만들다 보니 불교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불교수화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교교리를 공부하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다. 해성 스님은 불자청각장애인들과 함께 불교수화연구 위원회를 구성했다. 장애인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교단어를 취합하고 기존에 없던 불교단어 100여 개를 만들어 1999년 〈자비의 수화교실〉 〈불교수화 용어집〉을 발간했다. “용어를 정리해서 발간하는데 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특히 책을 만드는데 재정적인 부담이 컸죠. 그런데 우연히 제 이야기를 들은 보덕학회 관계자 분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어려움 끝에 열게 된 〈자비의 수화교실〉 출판회에는 동국대 손짓사랑회, 삼선승가대 학인 스님, 광림사 청각장애인 불자회, 삼소수화회 등이 참여해 수화찬불가와 수화노래를 선보여 참석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고, 청각장애인에 대한 불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노력으로 해성 스님은 2008년 국립국어원 표준수화제정추진위원회에서 불교수화연구위원으로 선임됐다. 그동안 만든 100여개의 불교수화단어를 검토ㆍ확대했고, 국립국어원에서는 불교용어 1127개를 수록한 〈불교 표준 수화집〉을 발간해 수화통역사들이 불교를 더욱 쉽게 이해하고 통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3년 전 시각장애인 법회를 열면서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스님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옆에서 음성으로 경전을 읽어주지 않는 이상 전부 외워서 독경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집에서 따로 독송을 하고 싶다는 신심이 깊은 불자들도 많았구요. 그래서 이분들을 위한 법요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동안 몇몇 장애인 불자모임에서 점자로 된 불서와 법요집을 간행하기는 했지만,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스님은 또 한번 불사를 시작했다. 일반 도서에 비해 제작비용이 2~3배 가량 많이 들긴 했지만, 주변의 관심있는 불자들과 보덕학회의 재정적 후원으로 〈점자 불교 법요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스님은 점자 법요집 발간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법요집과 불교서적을 제작할 계획이다. 또한 음성녹음을 통한 불서보급도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 전용 노양시설 세우고파 20여 년간 장애인들을 위하 분주하게 움직인 스님에게 마지막 꿈이 있다. 장애인 전용 노인요양시설을 건립하는 것이다. 함께 한 청각장애인들을 받아 줄 마땅한 요양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인 전용 문화회관 건립도 발원하고 있다. “이분들은 아플 때 제일 괴롭다고 합니다. 병원에 수화통역사가 상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디가 아픈지 설명을 할 수가 없대요. 이들이 마음 편히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요양시설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스님은 2005년서부터 수화 호스피스 과정을 개설하고, 수화 호스피스 봉사단인 파드마 봉사단을 발족해 전문적인 이론교육과 실습을 제공하고 있다. 스님의 쉼없는 활동은 장애인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과 비장애인들의 참여를 늘게 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욱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해성 스님은 강조했다. “우리는 예비장애인 이잖아요.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로 장애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장애인들도 모두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배려했으면 좋겠어요. 모두 부처님 제자인데 그들 스스로가 죄인으로 생각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 아닌가요? 스님과 불자들 모두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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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성 스님은 매년 수화사랑 음악회에서 발표되는 모든 노래를 수화로 통역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는 해성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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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성 스님은 매주 일요일 청각장애인 법회를 열고 둘째 주 일요일에는 청각·시각장애인 합동법회를 연다. 또한 매년 2~3회 장애ㆍ비장애인을 위한 합동 성지순례를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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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은 2008년 연화 직업재활원을 설립해 청각·발달장애인들이 화훼 및 압화(꽃누름) 기술을 배워 전국 꽃배달 서비스와 함께 압화 생활용품을 보급ㆍ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