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왕은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골천(結川) 사람의 딸 화희(禾姬)와 한인(漢人)의 딸 치희(雉姬)를 계실(繼室)로 얻었다. 이들이 서로 총애를 다투어 불화하므로, 왕이 양곡(涼谷)이란 곳에 동서(東西) 양 궁(宮)을 짓고 그들을 각각 두었다. 그후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 궁을 비운 사이에 둘이 다투게 되었다.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가(漢家)의 비첩(婢妾)일 뿐인데, 무례함이 어찌 이리 심한가?”라고 꾸짖으니, 치희가 부끄러워 원한을 품고 도망쳐 돌아갔다. 왕이 이를 듣고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일찍이 나무 밑에 쉬면서 꾀꼬리가 날아 모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이에 느껴 <황조가>를 지었다. 내용은 ‘펄펄 나니는 저 꾀꼴새는 수놈과 암놈이 저리 정다운데 나의 외로움을 생각함이여 그 뉘와곰 함께 갈거나(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이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1 유리왕(瑠璃王)
첫댓글 옛사람의 사랑과 그에 대한 노래를 듣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