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하늘빛이 깊은 가을을 느끼게 한다. 다소 쌀쌀하지만 오천원(백일장 참가비)으로 즐기기엔 과분한 날씨다. 높이 떠 오른 애드벌룬 '제 28회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 글귀가 보이지 않음은 바람의 장난이다.
글제가 주어졌다. 행사위원이 뽑은 출근, 아파트, 이별, 글제가 딱딱하고 상투적이라 생각했는지, 사회자 권한으로 백일장 참가자에게 글제 하나를 더 뽑으라고 했다, 그래서 외갓집이 추가됐다.
반짝이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로 글쓰기에 몰입한 이가 있는가, 하면 어느 글제를 바탕으로 써야 할까? 잠시 생각하는 로뎅이 된 이들도 있고.
문학의 향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른다, 작은 깔개, 신문지 위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저들의 성실함을 보는 것으로 나는 오늘을 즐기려고 한다.
산책을 나오신 듯, 벤취에 몸을 기댄 저 아저씨의 색다른 출근? 잠시 가슴이 뻐근함을 느낀다, 내가 갖고 있는 뻔한 정서다. 주어진 시간에 야문글을 쓸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하여 오늘 내게 주어진 이시간을 즐기는 행복을 저축하고자한다. 먼 훗날 내게도 이런 저런 행복한 날이 있었노라고, 추억하고 싶어서다, 나는 언제나 출근을 연상하면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사랑스런 아내의 눈빛을 뒤로하고 출근하는 신사의 모습만 상기된다. 3D 업종에 종사하는 용맹무쌍(?)한 남자와 살면서도 내가 출근을 서두른 적이 별반없는 이력인데, 돌맹이 가슴팍에 풍덩 내던져 저 밑바닥에 가라앉은 크고 작은 아픔을 끄집어 내는 것도 식상 할 테고,...
자전적 소설을 쓰라하면 모를까? 외갓집에 대한 추억을 서리서리 끄집에 낸다 한들, 역시, 심사위원님들 눈에 여지없이 빗나갈 것이다. 외갓집을 주제로 생각해 낸것이 기껏, 다문화 가정의 애환이다. 언제 누군가에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생각나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생각이 모자라는 아내를 둔,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 앞장세워 처갓집을 가게 되었단다, 장난기가 발동한 남편이 아내에게 이르기를 "당신은 친정집으로 가라, 나는 처갓집으로 갈 것이니, 아이는 외갓집으로 보내라' 라고 했단다. 그러자, 생각모자라는( 아내요 어미인데 차마, 바보라고 칭할 수 없으니) 아내가 깜짝 놀라서 하는 말이 '세 식구가 헤어져서 어떻게 살아요." 라고 눈물을 흘리더란다. 이와 대비되는 다문화가정의 아픔을 동화로 쓸까? 생각했지만 주어진 시간에 모양 갖춘 동화를 빚을 자신이 없다. 바로 포기했다. 얼개만 잡아서 동시라고 뭉뚱그렸다. 이리저리 귀가 나서 각이 맞지 않다는 건, 알겠는게 수리를 할 장비(문장)를 어디가가 두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알맞는 문장을 찾느라고 저장창고를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는 게 신통칭 않다. 그냥 제출을 했다. 참가비 오천원을 냈으니 이익을 창출하려면 별수 없다. 형편없는 작품이지만 제출하고 주최측에서 주는 상품을 받는 손이 덜 미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모태로 동화를 쓸거다. 나름대로 큰 수확이다. 또, 하나, 외갓집 그림을 시대별로 변화를 그렸다, 더없이 식상한 내용이지만 내 정서가 그 뿐이니 어쩌랴, 외할머니가 그리는 외갓집 그림, 엄마가 그리는 외갓집 그림과 손주가 그린 외갓집 그림,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글로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손녀가 말하길, '할머니는 제목은 그런대로 잘 짓는데, 글(습작한 동화)을 읽고 나면 그림이 선명하지 않단다. 요즘 아이들은 재밌거나, 무서운 동화를 좋아한단다.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면 예쁜 그림이라도 그려지는 동화를 써 보란다. 할미가 쓴 동화을 읽어주는 유일한 독자, 손녀가 읽고나서 재밌거나, 무섭거나, 이쁜 그림이 그려졌다고 하는 동화 한편을 쓰고 싶은데. 손녀의 생각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숙녀가 되어간다.
시, 산문, 아동문학(동시, 동화) 3개 장르, 입상자는 30명으로 제한 되어있다. 수백명 참가인원이 30명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생각의 소용돌이가 치열하다. 얼마전 소설가 전상국님이 하시는 말씀을 위로삼는다. 글쟁이도 제 각각이란다. 백일장에 유능한 글쟁이가 있는가 하면 공모전에 유력한 글쟁이가 있으니, 백일장에서, 공모전에서 입상권에 들지 않았다해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말라던, 둘 다 안되는 아마추어 글쟁이라도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이 아름답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오늘, 이시간을 즐긴다.
괜히 왔어, 차라리 집으로 그냥 가버릴까? 혼자 외롭게 서 있는 저 여인의 생각을 투시해 본다.
배속이 든든해야 글이 잘 써질 것 같아서 아침밥도 든든히 먹고 갔는데, 뭐 한 거 있다고 배가 고플까? 쓸데없는 생각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게, 여실하게 증명되었다. 속물근성이긴 하지만 스스로 참가상이라고 여기는 선물( 동아제약 협찬으로 어림짐작 이만원상당 상품을 받으니까) 분식집에 가서 쌈직한 점심을 먹으면 오늘 수지계산이 맞을 것 같다. 구로 근리공원, 구로 아트벨리 예술극장. 바로 뒤 뒷골목 풍경이다. 초가집을 면하고 스트레 집에서 살았던 내 유년시절 고향집과 너무 흡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칠 벗겨진 철대문까지도 우리 집과 닮았다. 지금은 도시화로 흔적조차 없어진 고향이라 눈을 감아도 잘 떠오르지 않은 고향집을 만났다. 하마터라면 대문을 열고 들어갈 뻔 했다. 저 집에 사는 이들은 가슴이 무진 따뜻할 것 같다.
방금전까지 계산하던 수지계산이 완전히 빗나갔다. 가히 대박이 났다고 해도 좋은 귀한 시간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님의 구수한 강연은 아마추어 글쟁이에게 이보다 저 좋을 수 없는 시간이다. 선생님께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하시는데,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엄청난 독서량, 끓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사랑, 숱한 습작과(일기장이 라면 박스로 몇 박스나 되었다니) 사물 자세히 보기등, 예로 들려준 이야기 하나, 한그루의 나무를 일년동안 과찰해 보라, 아침에 보는, 낮에 보는, 저녁에 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혹은 내 기분에 따라, 낯설게 보이는 것들을 일기처럼 쓰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이 되셨다는데..... 선생님이 하신 여러 정황들 중에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니 몇번의 백일장을 기웃거리며 내심 딴심을 품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좀더 발전하는 내가 되도록 작은 노력이나마 아까지 않으려는 다짐을 해 본다.
시종, 구수한 언변으로 수백명 여자들에게 작은 행복을 툭툭 던져준다. 말씀 도중, 혀를 살짝 문, 저 표정으로 웃음을 선사하니 복받으실 분이다. 나이(63세라고 밝혔음)를 초월한 옷차림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 역시 정장으로 두루 갖출 형편이 안 되는지라 저 비슷한 차림으로 다닌다. 때론 모임 성격에 따리 예의에 어긋난다는 시선을 받을 때도 있어 불행하지만, 속내까지 가난한 나에게 청바지만큼 유용한 의상은 없을 줄로 안다.
언감생심, 유능하신 작가선생님들께서 심사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기실 잠시 빌었던 적을 깊이 반성했다. 아니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을 손가락으로 세어보라고 해도 망설임이 없는 형편없는 독서, 전혀 노력하지 않고, 마치 감나무밑에서 누워서 홍시가 내 입으로 똑 떨어지길 바랐던 사행심을 흔적도 없이 지웠다. 문학을 짝사랑하는 순한 마음은 차마 지을 수 없다, 이 가을 내내 가슴앓이를 할 것 같다. |
첫댓글 이 가을에 사진과 함께 정감어린 글들 잘 읽고 갑니다. 고운 하루 보내세요...공주님
주어진 시간을 분배하다보니 이런 날도 있던 걸요.
그렇게 열심히 발품을 파시니 조만간 꼭 큰상을 움켜지시리라 여깁니다. 이기대 축제기간이면 가게 바로 건너편 공원에서 백일장이 열리는데도 전 아직 백일장 행사장을 한번도 못가봤어요.그런 현장의 열기가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만큼 문학에 대한 열망이 모자란 탓일까요? 공주님 화이팅~~
역마살이 끼었나봐요, 그냥 돌아다니는 게 좋아요.
마로니에 공원은 우리집에서 젤 가까울 듯...백일장 열리는 줄도 몰랐어요. 물론 알았어도 실력없는 저와는 상관없다 생각되지만요. 공주님 문학을 즐기고 사랑하는 그 열정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음엔 꼭 맛있는 홍시를 한 입에 쏘옥~드시고 완전한 이익창출을 기대할께요!
2008년까지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실시하던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 행사를 작년부터 구로 아트벨리 예술극장에서 실시해요. 대림역 근처에요.
작은 일상도 공주님에게는 재미있고 감칠맛 나는 글감이 됩니다. 멀지 않아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습니다. 날이 쌀쌀하네요. 이렇게 가을이 깊어가나 봅니다.
그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ㅎㅎ
ㅎㅎ 하여간 재밌습니다. 비록 백일장에서 미끄러지긴 했지만 이렇게 현장감 넘치는 글을 맛깔스럽게 쓰는 것도 큰 재주입니다. 언감생심, 저 유능한 작가 선생님들이 심사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기를 잠시 빌었다는 대목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백일장에 몇 번 가본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는 마음, 또 딴엔 오류를 범할까 봐 겁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못난 글 상 받으면 어디다 내 놓을까 하고요. ㅋㅋㅋ
인터넷접수만 받는다더니 마지막날 현장 접수도 한다고 했대나 어쨌대나, 암튼 젊은 아짐씨들이 진을 쳤고, 장원한 수장자 인터뷰하는데, 문창과 내지 국문과 갓 졸업한 유능한 젊은 작가지망생들이었답니다. ㅎㅎㅎ 앞으로 라디오시대나 기웃대야 할 까봐요, 미애씨 고마워요. 내맘 알지요? ㅎㅎㅎ
문학을 향한 열정이 백살공주님을 잠시도 가만히 내 버려두질 않는군요. 비록 수상권엔 못들어도(심사오류^^) 오천원에 그토록 청아한 가을 한장 사가지고 오셨으니, 본전은 충분히 뽑은 셈 아닌가요^^ 수고하셨습니다^^
ㅎㅎㅎ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학의 대통령도 똑똑한 이 하나면 충분한가요? 고은씨도 노벨문학상 근사치에 세번 오르고 뜻을 못 이뤘는데, ㅠㅠ마로니에 여성백일장 세 번 참가해서 쓴잔 마신 게 대순가요. ㅎㅎ
저도 몇해 전 백일장 두 번 참석했었는데 글이 안 써지더군요.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했지요. ㅎㅎ 꽃이 제각각 피고 지듯이 사람도 자신만의 개성대로 피고 지리라고 생각해요. 공주님 설아와 세대차이가 거의 50년 정도 돼죠? 그런데 그런 손녀의 지적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손녀가 뭐라고 하던 공주님 방식대로 꾸준히 쓰세요. 제가 보기엔 5천원 투자 하시고 건진 건 5백만원 수준인 거 같은걸요. ㅎㅎ 암튼 공주님 홧팅입니다. 언제가 심사오류가 아닌 심사숙고로 당선 될 날 기다려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