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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랫만에 들어온 봄노래입니다.
한국에 있는 남편이 건강검진 날짜를 예약했으니 한국에 오라고 해서 한국을 방문한 것이 2011년 4월 3일.
그 이튿날 건강검진센터에 가서 갖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의사와 상담을 하는 중에, 저의 갑상선에 혹이 한개가 더 생겼는데 모양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2년 전에도 조그만 혹이 1개 있다고 들었는데 2년 만에 혹이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0.45미리짜리가. 그래서 세침으로 조직검사를 했습니다.
조직검사 후에는 룰루랄라 남편과 제주도 여행도 하면서 휴가를 보낸 후,
제가 운동을 하다가 무릎 반월상연골 파열(meniscus rupture)로 작년부터 한국에 나가서 침도 2달 맞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던 것 기억하시는 분 계실 꺼예요. 결국은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정형외과에서 무릎내시경 수술로 봉합을 하고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옆 침대에 누워계시던 어깨 수술하신 분께서 자기 언니가 갑상선 암으로 돌아가셨다면서 울면서 그러시는거예요. "아차! 출국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검사결과 안 물어봤구나 ~ "그 때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병원침대에 누워서 검사결과를 알려고 검진기관에 전화를 했는데, 상담원이 검사결과를 전화로는 알려주지 못하겠다고 하네요.
그 순간 불길한 예감~~
가족병력에 암환자는 없었던 터라 눈꼽만큼도 암이라고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가슴이 많이 뛰더군요
의사선생님과 직접 통화를 해보니 암이라고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와서 들으라고 하더군요. 다리 수술을 받아서 걷지를 못한다고 남편이 대신 가서 자세히 듣고 왔습니다.
암이고 유두암(papillary carcinoma)이라고 하더군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야 할 날이 5일밖에 안 남은 시점이지만, 캐나다는 못미더워서 ~ (대기시간도 길고 또 의술이 어떤지 잘 몰라서요. 또 보험도 한개밖에 들어놓지 않아서 병원비가 어찌될지도 모르겠고요. ) 인터넷을 뒤져서 갑상선암으로 유명하신 의사선생님이 계신 여러 병원에 예약을 잡으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의 박정수선생님께 예약을 하려고 하니 5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하고, 또 서울대 병원에 전화를 거니 이 역시 몇달이 걸려야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하기에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예약실에 전화가 왔습니다.
방금 환자가 예약취소를 했다면서 내일 오전 9시에 서울대 암센터로 오라는 것입니다.
서울대 이비인후과 성명훈 선생님께 예약이 되었습니다.- 노태우대통령 수술을 하셨다고 기자회견하는 것이 텔레비젼에서 보도되더군요-
그 분께서 저의 챠트 등등을 조사하시고
예약담당부서로 가서 수술예약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 검사할 검사도 굉장히 많더군요. 4일 후에는 한국을 떠나야 하는데...
몇 십분을 기다려서 예약담당의사와 만나서 수술일정을 잡는데 몹시도 사무적이고 불친절한 태도에 좀 놀랐습니다. 서울대 병원이 국립병원이어서 그런가도 생각했지만 개인의 성향이겠죠.
여러가지 검사를 해야하지만 제 사정 상 , 9월에 다시 한국에 와서 수술전 검사를 받는 것으로 예약을 잡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하여 아이들에게 갑상선 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이 놀라서 걱정을 어찌나 많이 하는지 오히려 제가 아이들을 위로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교회 분들께도 이야기를 하니 많은 분들이 모일때마다 기도해주시고 또 리더목사님께서 특별안수기도회를 갖자며 친한 사람들을 다 초대하라고 하셔서, 지인 이십여분과 이 교회 리더목사님 및 다섯명의 목사님과 장로님들까지 오셔서 이마에 기름을 발라주시며 모두 제 어깨에 손을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어쨋든 한국에 또 나가게 되면, 아이들도 없이 수술을 하는 것도 그렇고 남편의 일정하고도 맞지가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캐나다 의료시술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망설이면서 패밀리 닥터를 만나서 한국에서 가져온 모든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닥터가 앉은 그 자리에서 소견서를 써서 스페샬 암닥터에서 저에 대한 자료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도 안되서 간호사 실에서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면서 암수술 결정여부를 담당하는 의사와의 일정을 알려왔습니다.
이 나라는 급한 환자 - 암, 심장관련 즉 생명과 직접적 관련이 있으면 가장 우선권이 있습니다. 아주 신속하게 대처하더군요.
내분비과 의사선생님이신 닥터 러스가 저의 모든 자료를 넘겨받으시고 저에게 병력과 가족사를 물어보시고 곧 나를 수술한 의사와 연결 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신데 저에 대해서 다 들어서 다 큰 아이가 둘이 있다는 것도 써놓고도 소견서를 나중에 카피해서 읽어보니 " 이 쾌활한 젊은 여성(기분이 좋아서 자랑삼아 쓰는 것입니다. 주책이죠?)이 어쩌구 저쩌구 ", 나중에는 [미스ㅇㅇ]라고 변신되어 있더군요.
동양여자는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외국사람들 눈에는 젊고 미스처럼 보이나봅니다. ^^
그 후 약 열흘 후에 이비인후과 수술담당 의사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검사한 조직검사 샘플을 들고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갖고 간 초음파 스캔 씨디는 열어보려고 해도 프로그램이 맞지 않아서인지 열리지가 않았고 또 조직검사 샘플도 다 망가져서 읽을 수가 없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더라구요.
제가 떼어간 영문 진단서를 보시더니, 혹들이 아주 작은 상태이고 또 갑상선 암의 진행속도가 느린 것을 생각해서 좀 더 경과를 지켜보고 혹이 자라고 있나를 확인한 다음에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또한 아무리 조직검사를 했다고 하나, 작은 샘플만으로 암이라고 단언하기에도 무리가 있으니 크리스마스까지 좀 기다려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가 6월 초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만약에 암이라면 , 그리고 2년 전에는 없던 암이 갑자기 또 하나 생겼고 또 0.45미리까지 자랐다면 이 녀석은 좀 기분이 나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수술을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조직검사를 한번 더 받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지만, 한국 기술을 믿는다고 말씀드리고 싫다고 했습니다. 초음파 스캔은 다시 받는 것으로 하고 수술 일정은 9월 초로 예상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존 왈샤스키 선생님께서는 수술 후의 부작용 -성대의 마비, 부갑상선의 기능손상으로 인해서 오는 칼슘생산중단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비행기 사고와 같은 확률이라고 극히 드믄 부작용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9월이 되어서 남편은 한국에서 휴가를 내서 왔고 수술 일정은 9월 6일로 결정되었습니다.
수술 당일에 금식을 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대기실에서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챠트를 작성하느라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손목에 이름표를 붙이고 담요를 덮어주는데 무료의료체재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환자복은 왜 그렇게 큰지 게다가 끈도 떨어지고 나달나달 많이 낡은 것들이었습니다.
오후 12시가 되어서 저를 침대차로 끌고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캐내디언 맘이 함께 수술실 앞까지 따라와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수술실 안에는 여러 환자들이 수술용 파란 부직포 모자- 정말 샤워캡같은 것-을 쓰고 퍼런 부직포 양말을 신고 제각각 침대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십분 쯤 후에 저를 수술하실 존 와샤스키 의사선생님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보조원이 저의 침대를 끌고 마취실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취실에 들어가니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서 저를 마취해 주실 의사선생님이 와서 악수를 청했습니다. 걱정이 되냐 물으시고 자기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발에 링거를 꽂고 곧 이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후 정신을 차려보니 온 몸이 저릿저릿하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구역질도 계속 나고 간호사들은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진통제를 주사하는 것 같아서 나는 진통제를 안 맞겠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마음뿐, 목소리는 안나오고 속삭이는 소리만 나옵니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데 목소리는 안 나오고,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이 어지럽고, 간호사들이 오는지 안오는지 귀만 쫑긋세우고 기다렸습니다.
얼마후 토할 것 같이 메슥대더니 구토가 시작됩니다.
간호사들이 종이로 된 일회용 트레이를 제 입에 갖다 대고 저를 운반하여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저는 계속 웩 웩^^
갑자기 저의 눈에 눈이 둥그레 놀라서 크게 떠진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가 아픈 모습을 상상못했는데 충격을 받은 듯 합니다.
병실에 들어온 시간은 거의 6시였습니다.
이번에도 마취에서 잘 깨지를 못해서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더 늦게 제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대기실과는 달리
병실은 호텔처럼 크고 깨끗하고 2인 병실이었습니다.
침대는 에어침대로 규칙적으로 에어가 매트를 돌고 있었습니다.
오래 누워있는 환자들의 등에 신선한 공기와 순환을 시켜주나봅니다.
다리에는 부종을 예방하기 위해서 에어맛사지기를 붙여주었습니다.
침대는 최신식으로 마치 일등석 비행기 의자처럼 전 자동입니다.
계속 꽥꽥대면서 먹은 물과 침등을 토하고 있고, 또 온 몸은 꿇어앉아있다가 일어난 발처럼 아프게 저립니다. 특히 얼굴은 짜리리리 하여 마치 사이다를 먹고 트림을 계속 하는 느낌입니다.
딸아이와 아들아이가 번갈아 맛사지를 해주고 남편은 괴로운지 트레이를 들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습니다.
간호사들이 와서 어찌나 다정하게 말을 걸고 상태를 묻는지 정신없이 토하는 중에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찹니다.
그 사람들이 눈을 뜨라면서 뭐가 보이냐고 묻더군요.
아무래도 몰핀을 주사했으니 환각이 보이는지 확인하나봅니다.
그래서 흐릿하지만 천사들만 보인다고 대답을 하니, 모두들 왁 웃음이 터졌고, 우리 아이들은 토하는 중에도 농담을 하니 어이가 없나봅니다. (친정아버지께 배운 것이 이런 식의 죠크라서 피는 못 속이나봅니다.)
간호사들은 시간마다 와서 피를 뽑아가고 또 혈압을 체크하고 또 수액을 체크하고 제가 토하는 것들을 갖다 버리고....한번은 왁 다 토해서 환자복이 다 젖었습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괜찮다면서 침대시트며 환자복이며 다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새벽녁- --- 여기에는 열시면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가야합니다.
저는 거의 온 몸에 바늘이 돋아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찌르르했습니다.
그러더니 저의 엄지 손가락이 자꾸 검지 쪽으로 붙는거였습니다.
새벽녁에 검지가 엄지가 너무 달라붙고 오그라들기에 간호사를 응급으로 불렀습니다.
깜짝 놀라서 달려온 간호사 칼슘제재 2알과 특수 비타민 디를 제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하루에 네 번씩 칼슘과 특수 비타민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칼슘이 부족해서 즉 부갑상선 부분에서 제 역할을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백조증세(swan syndrome)라고 말하더군요.
엄지가 검지쪽으로 붙어서 마치 백조날개처럼 된다고 그렇게 이름붙였나봐요.
수술의사가 저의 수술과정을 설명을 해 주러 저에게 왔습니다.
수술부위가 작아서(동양여자니 얼마나 서양사람들의 큰 손에 작았겠어요? 여기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몸집이니) 저의 한쪽 부갑상선을 옆으로 옮기고 갑상선을 떼어냈다고 하더군요.
칼슘이 부족하면 근육이 오그라들고 더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고 하시는 설명을 들으니
우리의 몸은 오묘막측하게 지어졌다는 성경귀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떼어낸 갑상선의 혹을 보니, 작은 혹이 두개 있었는데 정상적으로 보이더라고 말을 던집니다.
그 말을 들었을때 얼마나 저를 혼내주고 싶었는지.....
조금 더 기다리며 경과를 보자고 했었는데 그 말을 안들은 것과
또 조직검사를 한번 더 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한 것과
교회 목사님들과 여러 분들이 특별 안수기도회를 해 주셨는데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는지도 체크 안한 저의 작은 믿음에 대한 후회들이 밀려들어와서....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암이 아니었다면......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이 고생은 다 무엇인가.....날아가버린 나비(갑상선이 나비형태로 생겼대요)를 다시는 돌릴 수도 없는데......
저의 자녀들이 " 엄마...이미 끝난 일이예요. 암이 아니었어도 어쩔 수 없잖아요. 맘 편하게 갖고 계세요....."
저의 몸 상태--칼슘레벨이 너무 낮고 구토와 어지럼증상태가 좋지가 않아서 병원에서 3일을 입원해 있었습니다.---> 한국은 보통 5-6일 입원하지만 여기는 보통 당일이나 이튿날 퇴원을 시킵니다.
입원해서 계속 토하고 - 마취제와 진통제 부작용때문에 전혀 먹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는 중에도 식단주문표가 왔습니다.
저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칼러풀한 그 식단표에는 아침, 점심, 저녁 메뉴들이 빼곡하게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체크하면 내가 주문한대로 식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먹지도 못할 것이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의 주문표같이 재미있어서 아이들하고 이 맛은 어떤 맛일까 의논해서 체크를 다 했습니다.
트레이는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었고 뚜껑이 있고 그 안에는 또 작은 플라스틱 용기안에 주문한 음식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스테이크며 계란요리며 스프며, 빵이며, 쥬스 등등 버터 및 소금 후추는 일회용으로 나왔고 잼이랑....^^ 전형적인 서양식 병원식이었습니다.
또 병실과 화장실에는 휴지며 샴프, 세수하는 물비누, 일회용 스펀지 칫솔, 일회용 치약....
아침마다 배달되는 얼음이 담긴 물컵과 빨대, 언제든지 물을 달라고 하면 배달해 주는 분들
이 모든 것들이 다 갖춰져 있었고 서랍을 열면 많은 용품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인턴간호사들이 제 병실에 와서 실습을 하였습니다.
몸을 닦아주고 이를 닦아주고 제 손처럼 기타 모든 잡일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나이가 지긋하기도 하고 또 외국에서 이민와서 공부를 다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미술학원을 했다고 한 남자분도 있었고
멕시코에서 수학교사를 하던 여자분도 만났습니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 분들이었지만 이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다시 공부를 하는 이 분들의 용기와 결단에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더 있으라고 했지만 복도에 간이커텐을 치고 방이 나기를 기다리는 분들이 여러분 계시더라구요, 레지던트의 권유를 받아들여 퇴원했습니다.
수술 후 사실 수술부위는 별로 아프지가 않아서 내가 수술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있었을때 컨디션이 나빴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수술부위에는 반창고가 붙어있어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가벼운 사워는 할 수 있다고 해서 샤워도 매일 했습니다.
수술 열흘 후에 피검사를 먼저 받고 수술 의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저의 수술자리 실밥을 뽑아주시고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직 피 딱지가 붙어 있었지만 바로 목주름에 있고 아랫쪽이어서 괜찮아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보니 목이 부어있어서 불룩 주머니같이 보이더군요.
우리나라에서 혁신 수술법시행, 이대병원 모 교수....의 무결찰, 무배액관 갑상선 암 수술, 수술 후 2-3일 퇴원가능이라는 아마 이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었나봅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로봇수술 등 다양한 수술은 하지 않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만 - 즉 미용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2주일 후에 또 피검사를 받고 의사선생님과 면담이 있었습니다.
저의 갑상선을 떼어낸 조직검사 결과를 듣으러 가는 날입니다.
저의 조직검사결과, 한개는 95프로 비교적 안정적인 유두암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주 공격적이고 빨리 자라고 전이도 빠른 5프로에 해당하는 다른 종류의 암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암이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톰베이커 암센터의 스페샬 의사와 만나서 방사선치료를 받을 여부를 결정하게 되고, 방사선 동위치료(radial active iodine)를 받으면 바다소금이나 생선 등등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길래 집에 오자마자 식이요법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간도 없이 오직 설탕과 식초와 후추만으로요. 먹을 것이 없어서 암울했습니다.
병원에서 날짜가 통보되어서 보니
10월 25일은 암센터에 있는 세미나에 참석해서 교육을 받고, 10월 26일 - 허거걱 저의 결혼 26주년 기념일입니다-이 바로 암센터 의사와 만나는 날이라고요.
저는 암센터 의사와 만나면 바로 방사선동위원소 치료를 받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받으러 가서 내용을 들어보니, 보통은 의사와 만나서 치료를 결정을 하면 한달이나 그 이후에 그 치료가 시작된다고 하더군요.
악......난 그런줄도 모르고 벌써부터 뼈를 깎는 식이요법을 하고 있었는데.....
의사의 이름은 콘부름(Cornbrum)
간호사가 몸무게를 재고 혈압을 재면서 저더러 한국인이냐고 묻더군요.
얼마동안 캐나다에 살고 있냐고 물으시면서 당신의 딸이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할때 한국인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는데 저와 똑같은 성이라고 하더군요. 2명의 손녀 사진도 보여주면서 자기가 한국에도 몇번 나갔다 왔다가 하시더군요.
참 아름답고 날씬한 할머니 간호사분이셨습니다.
저에게 커피를 마시겠냐면서 직접 커피를 들고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키가 크고 얼굴이 좀 붉으신 Dr. Cornbrum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가 커피 마시면서 담소를 하는 것을 보더니, 아니 내 방에서 뭘 하느냐면서 간호사더러 빨리 나가라고 눈을 찡끗하시면서 과장스럽게 몸짓을 하시는거예요.
우리 모두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려는 제스추어겠지요.
하여튼 이 분께서 저더러 레디알엑티브아이오다인(RAI) 치료를 하게되면 따르게되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설명하셨습니다.
삼십년 후에 또 다른 암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그렇지만 이 치료를 안받았을때 다른 장기에 전이될 가능성보다는 확률이 적다라는 말씀도 하시면서, 하겠냐 안하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당연히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렸죠.
식이요법---저요오드식사에 대한 설명과 또 우리 집에 내가 혼자서 잘 방과 화장실의 여유가 있냐고 물으시면서 병원에 입원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난 병원에 있는 것이 좋은데 식사염려도 없고 토하면 간호사들이 다 도와줄테니까.
3일동안은 공공장소에 나서지 말고, 5일간은 가임 여자하고 가까이 하지말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말씀 등등...
그 분이 한국사람들에게 김치를 안먹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본인도 김치를 좋아해서 매일 김치를 먹고 집에서 담가 잡수시기까지 하신대요.
유대인(이스라엘)출신인데도요.
나더러 김치를 담글 줄 아냐고 물으면서 내가 담근 김치 맛을 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 검진 갈때 갖다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소개하신 RAI 치료에 관련되어서 알아보려고 한국의 갑상선암 카페에 가입해서 다른분들의 경험을 읽어보니 모두들 수술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경험담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수술에도 그렇게 요란법석을 떨면서 토했던 내가, 치료 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울렁거리고 어지러워서 구토한다면 나는 얼마나 더 심할까....저질체력 주제를 알고 있으니 눈 앞이 까매집니다.
저요오드식사도 그렇게 쉽지는 않더군요.
소금도 특별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 우유제품 달걀제품 못 먹는 것이 너무 많더군요.
모두들 체력을 길러야 방사선 치료를 (RAI) 견딜 수 있다고 하길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개 데리고 산보를 나가고 집에 와서는 트레드밀에서 아픈 다리(많이 회복되었지만 )로 한시간씩 걸었습니다.
많은 염려를 안고 가끔은 울기도 했습니다
----> 먹을 것 염려때문에요. ㅋㅋ
누가 내 시중을 들어줄까? 하는 자기 연민때문에 혹은 남편과 자녀들에 대한 기대불만족 때문에요.----역시 아프면 자식도 남편도 내 맘 같지 않다? 뭐 그런 것일까요. ^^
남편은 염려하지말아라, 내가 식사준비도 물론 다 할 꺼고 아이들은 다 컷으니 각자 알아서 식사를 챙길테니...
그러면 다른 염려
----> 울렁거리고 머리도 아프고 구토증때문에 괴로우면 어떻게 하나.
침샘이 망가져서 평생 고생하면 어떻게 하나
아픈 것이 오래가면 어떻게 하나
남편에게 요것조것 세밀하게 지시사항을 주지시키고 ㅋㅋㅋ(제 남편 노릇하기 참 힘들겠죠? 치사하고...)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이래저래 힘들테니 어떻게 도와줄지 또 각자가 자기 도시락도 챙기고 할 것과 가끔은 솜씨를 발휘해서 엄마한테 특별 요리를 해 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아빠의 솜씨를 못 믿는다는 것을 말하면서 - 이것은 사실입니다. 몇 년동안이나 기러기생활을 했으면서도 남편의 요리 솜씨는 발전이 없습니다. ^^
치료받기 전에 식재료도 다 준비해 놓았고 일회용 식기등도 준비했고
방도 다 치워놓고 옷도 아래층에 지하 방에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밑반찬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추장도 새로 담그었습니다. 울렁증이 다 나으면 밥에 싹싹 비벼 먹으려고요.
지레 주눅이 들어있는 나에게 갑자기 여러군데서 전화가 옵니다.
큰언니, 미국사는 친구, 캘거리에서 만난 초등동창, 캐내디언 친구들!
그 분들은 궁금해서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저에게 주시는 큰 위로였습니다.
미국에 사는 친구의 메일에 답신을 쓰는 동안, 제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식이요법의 힘든 과정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제 마음 속에서 아프리카에서 식량부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먹고 있는 과일, 채소, 밥, 약간의 고기들....뭐가 부족하다가 불평을 하는가? 하는 죄책감과 함께 아프리카 사람들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얼른 회개를 하니 마음이 감사로 바꾸었습니다.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를 받으면 올 수 있다는 부작용에 대해서 친구에게 징징대면서 쓰고 있다가 ,
메슥거리고 구토와 두통과 갖가지 신체적인 고통을 늘 겪고 있는 여러 환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담담하고 침착해졌습니다.
가족들이 매일 모여서 드리는 가정예배시간 교재인 오늘의 양식(Daily Bread)을 읽는 중에
하나님께서 너희와 늘 함께 하신다라는 말씀이
---단지 은유법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실존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라는
글귀가 제 가슴에 큰 용기를 주셨습니다.
(When life becomes a heavy load, an upward climb, a winding road,
In daily tasks, Lord, let me see that with me You will always be.
우리가 인생의 무거운 짐, 가파른 길이나 바람을 거스르며 걸어야 할때
주여~주께서 모든 일상사를 항상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시는 것을 알게 하소서
Only God knows where the path will take us, but we have our Lord's assurance,
" I am with you always".
우리가 우리의 인생길을 모르나 오직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나이다.
오직 우리가 아는 바는 이것이오니, 주께서 약속하신 말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다"를 확신하고 나가옵니다.
This is not a metaphor or other figure of speech.
He is real company.
이 말씀이 은휴법이나 비유법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주께서는 나의 인생길의 실제 동반자이십니다.
There is not one hour without His presence, not one mile without His companionship.
---->정말 일분일초, 매걸음마다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이 말씀에 눈물감동폭풍 용기얻었습니다.
Knowing He is with us makes the journey lighter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우리의 인생여정을 확신을 갖고 기쁘고 홀가분하게 사는 길은 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
맞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
아이들과 남편 앞에서 약간의 눈물을 찔금 흘리면서
그동안 내가 미처 감사하지 못하고 모든 촛점을 나에게만 맞춰서 염려하고 불평했던 것을
스스로 인민재판을 하고 ^^
가족들과 눈물로 대화하고 (우리 딸과 남편은 내가 울면 같이 울거든요, 우리 아들은 진지하게 듣지만)
"엄마한테 맛있는 것 해 줘야 돼?" 이 말도 잊지 않고 하고...^^
참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치료 당일 아침 8시에(11월 18일)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톰베이커 병원 방사선과에서 금식을 했는지, 집에 임신한 사람은 없는지, 3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 공간과 개별 화장실, 여유방이 있는지, 질문사항은 없는지 확인하러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치료 부작용에 대해서 물어보니, 저는 저용량의 치료라서 침샘파괴나 기타 부작용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해줬습니다.
어찌나 용기가 나던지....
금식을 하고 병원에 갔더니 차트를 작성하고
방사선 방으로 가족들과 함께 들어갔습니다.
텔레비젼을 통해서 어떻게 마시는지를 설명듣고
가족들이 모두 방을 나간 후에
방사선과 직원이 들어와서 특수 철제 컵 속에 담긴 약물을 스트로우로 빨아 마시라고 했습니다.
맛은 약간 쓴 아몬드 맛이라고 했습니다.
물을 두 세번 첨가해서 바닥까지 한방울도 남기지 말고 마시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조그만 컵에 담긴 물로 입안을 헹궈서 마시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요.
2시간 후에 물과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에는 열흘 후에 스캔을 받으러 오라고 시간표를 주었고
또 여행허가서도 주었습니다.
혹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이나 기타 다른 곳으로 이동할때 방사선치료를 받았으니까 검색대를 그냥 패스하라는 일종의 교통패스권이랄까요.
또 혹시 경찰이나 누가 우리 차를 멈추면 이 통행권을 보여주라고 하더군요.
여기에서는 2개월 - 6개월이내까지 그 통행권을 보여주면 아마 프리패스를 하게 되나봅니다.
그 이후부터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혹시 갑상선문제가 계신 분을 위해서 캘거리 톰베이커 암센터에서 받은 지침서를 올려봅니다.
방사선동위원소 치료 전 주의사항
1. 신디로이드 호르몬 약을 4주간 끊을것
2. 필요하면 치료전 1-3일 임신여부 피검사를 할 것
3. 치료 전 최소한 4시간은 금식할 것
4. 치료끝나고 집으로는 혼자서 돌아갈 것
방사선약을 투여한 후 주의사항
1. 약물투여 후 2시간 이상 계속 금식할 것
2. 하루동안에 장운동이 없으면 설사유도제를 마실 것
3. 하루동안은 모든 사람들과 3미터 거리를 유지할 것
4. 5일동안 하루에 6-8잔의 음료를 마실 것
5. 5일동안 화장실을 사용후 두번이나 세번 물을 내리고 특히 남자는 앉아서 용무를 볼 것
6. 5일동안 가래(phlegm)는 번기에 뱉어서 물을 내릴 것
7. 청결을 유지할 것. 화장실을 사용한 후 손을 비누와 물로 깨끗하게 씻을 것
8. 5일간 사회활동을 제한하고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하는 시간을 일분이내로 줄일 것
9. 만약 생리중이면 탐폰을 사용하고 변기에 버릴 것
10. 5일간 식기를 따로 사용하거나 일회용 용기를 사용할 것
11. 5일간 빨래를 분류하여 따로 세탁할 것
12. 5일간 실내화를 신고 매일 샤워할 것
13. 5일간 혼자 잠을 잘 것
14. 가임여성과 어린이와 5일간 접촉을 피할 것
15. 2달간은 임신계획을 미룰 것
16. 6개월간은 수유를 중단할 것
일반적인 부작용
증세
목이 아프고 부어 오른다 ----> 소염제(에드빌, 모트린)나 일반 진통제, 해열제(타이레놀 같은 것) 약을 먹으면 된다
어지럼증, 구토 -----> 항히스타민제 (그레볼)
침샘의 보호------> 물을 많이 마식 신사탕을 먹는다. 껌은 씹지말것(우리나라와 다른 것 같아요)
응급상황
- 토한 것이나 소변 등에 오염된 액채가 쏟아졌을때
그 부근에 가지 말고 창문을 열고 맨손으로 더러워진 것을 만지지 말고
만약 몸에 묻었으면 비누와 물로 닦고 상처가 있는 부위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놀랍게도 아무런 구토증이나 입이 마르는 증세가 울렁거림이 없습니다.
온 가족들이 엄마가 무사해서 너무 기뻐하고 아들은 밖에서도 엄마 어떤지 확인 전화를 합니다.
오늘은 딸이 차려준 식사를 했습니다.
내일은 아들녀석이 식사 준비를 할 것이랍니다.
그리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여러가지 간식거리들을 사다놓았어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주의를 단단히 줄꺼예요.
모두 엄마꺼다~
남편과 떨어져서 낯선 곳에서 아이들과 생활한지 4년도 채 되지 않아서 발생한 갑상선 암~
별로 달가운 경험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이 쓴 경험을 통해서 연단하시고 감사를 아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고 좀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계기로 사용해 주시기를
또 받은 것들을 제발 갚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캐나다에서 받은 극진한 의료혜택과 사랑을 만나는 캐나다 사람에게 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길게 쓰는데 재주가 있지요? ^^
이 긴 글을 읽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캘거리에서 봄노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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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아아... 다 읽고보니 엄청 긴 글이었네요. 모르고 읽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감사할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다시 사신것 축하드립니다. 할렐루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브리스카님도 주 안에서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완전한 건강 찾으셔서 가족들을 변함없이 챙기는 봄노래님 되시길 바랍니다. 무척 놀라고 긴장되어서 읽다보니 다 읽었네요... 식이요법도 잘 하시구요...
감사드려요.
충청댁님도 온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시고 나날이 더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요즘들어 눈팅만 하다 봄노래님 글에 그냥 지나칠수가 없네요~
모쪼록 몸조리 잘 하시길 빌면서.
자신하고 싸움에서 승리 하십시요~화~이~~~~~~~~~~~~팅
소들님~
정말 오랫만이예요.
소들님께서 올려주시는 유머와 윗트 넘치는 글들을 얼마나 제가 좋아하는데요~~
네~우리 아이들이 엄마는 강박증세 - 일중독이 있다고 하더군요.
가만히 쉬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대요.
몸조리를 잘해서 꼭 승리할줄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들님.
소들님, 미워랑....... ㅜㅜ 같이 좀 놀면안되요?ㅎㅎ
처음엔 귀여운산딸기님이 올린글인가? 생각하고 다시 확인해보니 봄노래님이 맞네요? 하여간에 유별나셔어~~ㅎㅎ 이렇게 겪어보지않고는 알수없는 경험담을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울 봄노래님, 이번 힘든기간을 지내먄서 본인은 아직 못느낄테지만 아주 많은 성장을 하신거지요. 그럼 현재도 치료중이신가요? 보통 6개월은 기본으로 하는것같던제 남은 기간도 잘 이겨나가길 빕니다. 봄노래님, 사랑해요~
거의 70세 된 저의 큰언니가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에게 저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이메일을 보낸 것을 읽어보니,
제가 어렷을때부터 sickly baby sister 라고 표현을 했더라구요. 큰언니랑 나이차이가 많으니까 언니가 저보다 저의 어린시절을 더 잘알고 있겠죠. ^^
스캔을 하는 일이 남았고 그 이후에 의사가 나의 상태를 판단하겠죠.아주 초기에 발견하고 수술했기때문에 의사말로는 꽤 안전하다고 하던데....꿈동산님, 감사해요.
아이쿠 우리동갑내기 친구 잃을뻔 했구먼. 그만하기다행이여 쩝. 난 벤쿠버에서 바틀디포샵운영하며 잘 정착하고 있씀메.
굳맨님, 버틀디포운영하세요? 정착을 잘 하셔서 기뻐요.
네~ 그만그만 한 것 다행이고 잃은것- 갑상선 ^^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애요.
벤쿠버에 가서 싱싱한 생선들을 먹을 수 있을까 해서 수산정보를 서칭했더니, 온통 연어에 관련된 것이랑 또 호수물고기, 또 조개류, 낚시에 관련된 자료들만 있어서 좀 실망했어요.
한국에서 먹던 여러가지 생선들을 젓갈도 담고 막 그러고 싶어요. ^^
건강하시고 사업번창하세요. 벤쿠버에 또 가고 싶어요. 나나이모 섬에도 가고 싶고.
얍 츄와슨에서 있습니다. 바틀디포한지 1년 됐슈 다음에 오면 연락주삼
바틀디포가 뭔가요? 그동안 조용하시다했더니 역시나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네요~ 가족들은 온건가요?
캐나다는 음료수종류는 다 디포짓이 포함되어 있어서 캔이나 병이나 쥬스 등등 케이스를 모았다가 버틀디포 bottle depot에 가요.
그러면 일하시는 분들이 일일이 세서 우리가 낸 디포짓을 다시 돈으로 환산해서 돌려줘요.
여기에는 네티브피플, 홈리스, 어떤 경우에는 중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스레기통을 뒤져서 캔 등등을 주워서 용돈을 벌기도 하지요.
한국에 갔었는데 물병, 주스캔 등을 재활용하는데 집어넣는 것을 보면서, 저것 캐나다에 가면 다 돈인데...하면서 실소했어요.
알버타에도 보틀디포가 있다고 들었어요. 비씨주가 좀더 활성화된듯합니다. 여기는 주민이 다 분류하고 용기에 담아와야합니다. 저희는 단지 카운트해서 환불만해주지요 비씨주 엔 보틀디포가 170여곳 되는데 한인이 100곳 운영하고 있습니다. 쓰시집다음에 많이 하고 스몰비지니스론 최고인끼가 있지요. 수입도 좋고 안정적이거든요. 단 공휴일 빼고 350일이상 오픈해야합니다.아직 다오지않고 자근넘만 대학마치고 이번 7월에 들어왔어요
곧 암투병기 책으로 발간될것 을 기대하면서 저 완치됐어요.^^라는 글을 먼저 볼수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병은 우리의무절제한 식습관과 남용되는 과잉영양공급등으로 발생되는듯합니다.많은 스트레스속에 사는 우리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면역역 높이는 자연식품을 위주로 골고루 많이 드셔야합니다. 저는 요즘 조용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사람입니다. ㅎㅎㅎ 다음에 알려드릴것을 약속드립니다. 삼년전에 저역시 시한부 판정을 받은적이 있었지요. 이제 멀정합니다. ㅎㅎㅎ 부디 으랏샤......................화이링~~~~~~하시기 바랍니다.^^
뭉크맨님께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단지 가정적이시고---사모님이 인정하셔야만 진짜지만! ㅎㅎ 요리도 잘하시고 멋을 아시는 분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요.
근심은 뼈를 상하게 한다는 성경말씀대로 남편과 떨어져살면서 이런저런 책임을 나 혼자---하나님께 맡겨야하는데도--> 다하고자 행위 중심으로 자유롭지 못하게 살다보니 몸은 힘들고 영도 곤고해지고요. 회개합니다. 네....화이팅이요. 감사합니다.
각시한텐 이미 빵점 따구요.ㅎㅎㅎ 요리는 이제 여자가 필요 없을 정도라 ㅎㅎ 이제부터 홀애비생활 즐기면서 삽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하는일이 생로열제리 한티스픈 먹고 맹물 반컵마신후 10여분지난뒤 콩불 한컵에 바나나 한개를 믹서에넣고 잡곡 미싯가루 한스픈 인삼가루 한티스픈 넣고 빡..갈아서 마십니다. 일주일에 두어번정도 밥을 먹지요..가끔은 야채도 많이먹구요... 그리고 이제부터 고민을 모두 던지려고 노력중이랍니다. 내것이 아닌것은 모두 미련없이 던지기로 했지요. ㅎㅎ
백점짜리는 절대로 없죠. 오십점 만점에 부부가 합치면 백점...어떤 남편은 삼십점, 그러면 아내가 칠십점이 되려고 노력하면 되고, 아내가 이십점이면 남편은 팔십점이 되려고 애쓰면 되는데....제 이론입니다. 요리때문에 아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싹싹 비세요. 이제부터 점수를 올리겠다고 ~ㅠㅠ
음, 생로얄, 콩물, 바나나, 미싯가루, 인삼가루....우리 셋째 언니한테 야단맞았거든요. 남편한테 보약한번 안해준다구요.
전 이 세상에서 밥이랑 김이 제일 맛있어요.
오늘의 양식이 전세계로 보내지고 있다는건 알고 있는데 이렇게 구독하시는 분을 만나니 참 반갑네요.
저희 교회에서 한글로 번역출판한지 이제 30년이 넘었지요
봄노래님의 불평이 감사로 변하셨다는것을 읽고 마음이 뭉컬 했어요.
해마다 가는 의료선교, 특별히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볼때마다 나 스스로 부끄러웠지요
내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고 또 너무 낭비하고 있음을 깨닳고 말예요
힘든 치료 잘 받으시고 승리하세요. 녜....분명히 이기실겁니다. 화이팅!!!!!
오, 한글로 번역출판을 하시는 교회군요?
저는 몇년동안 이메일을 통해서 오늘의 양식을 받고 있었는데 번역부분의 도움에 감사드려요.
캘거리 교회의 안내테이블에는 데일리브레드 책자가 항상 놓여있어서 교인들이 몇권이든 집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물론 헌금상자도.
이 나라는 초등학생때부터 가족단위로 어찌나 많이 제 3국으로 섬기러 떠나는지 ,
그동안 경쟁위주로 살아왔던 저의 삶의 가치관이 기독교인이라는 허울만 있었지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깊은 회개를 늘 합니다.
저도 때가 되면 주님의 쓰임을 받고 불러주시고 감동을 주시겠죠?
화이팅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님의 따슨손에서 항상 능력이 나오시길.
그럼요.!
오늘도 삶속에서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시고 즐거움과 감동을 주시니 사실 쓰여지고 있는거죠.
보내는 사람 가는 사람, 그곳에 계시는 분 모두 섬기고 있지만 지금있는 이곳에서 오늘 하루도
섬김으로 기쁨과 즐거움 만끽 하세요.
봄노래님이 긴 시간을 드려서 좋은 경험담을 올리신것도 어떤분에겐 귀한정보로 , 지금 그길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겐 많은 위로와 희망을 주신거니까 귀한 쓰임을 받으신거죠.
더욱 건강에 유의하시고 곧 완전히 깨끗하게 되셨다는 봄노래님의 노래를 들려 주시길 기대할께요
시선에서 자유로와지고 또 약한 모습 못난 모습 그대로 마리아처럼 주님 발치에 앉아 주님은혜만 사모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전화 번호가 제가 가지고 있는것과 다르면 쪽지 주셔요.
목소리 듣고 싶어요.
오병이어님~ 오랫만이예요. 기도를 부탁하기만 하고 감사전화도 못했습니다.
이 힘든 중에도 해외에서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죽을 쑤어다주는 분, 책과 음악을 갖다 주시는 분, 알라스카 여행 중에도 전화를 걸어주시는 분...
또 초등동창은 김치를 떨어지지 않게 담아다주었고요, 무엇보다 기도를 해주시는 분이 많이 계셔서 형제자매하고는 떨어져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크게 경험하면서 견디고 있습니다.
오병이어님, 아직까지 약속을 안 지킨 적은 거의 없습니다. 시기가 늦을 수는 있어도 ~~
결혼기념일에 인사동에서 사찰음식을 먹었는데 정말 깔끔하더군요.
거기에서 꼭 같이 먹자구요.
내년 1월에 피검사, 검진면담이 있어요.
그것이 끝나고 컨디션이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면, 또 안정적이라고 여행해도 된다고 하면 ^^
한국에 나가서 꽃게랑- 이나라에서는 맛보기 힘든- 생선들을 먹고 또 굴비도 좀 사고 친척들도 만나고 중국에 둘째 언니만나러도 가려고요.
나가면 꼭 오병이어님께 연락을 할께요. 전화번호는 같아요. 한국나갈때 쓰는 핸펀이니까요.
오병이어님은 자기몸 안돌보고 다른사람을 더 챙기는 분이시니까 걱정되요.
잘 관리하는 것은 우리 책임이니까 오병이어님 몸 소홀히 하지 말고요~~ 아셨죠?
참 며느리보신 것 축하해요. 손주도 생겼겠죠? 주가 주시는 평안함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힘으로 화이팅!
손녀가 2돌 지났어요.
말을 엄청 잘 해요.
못하는 말이 없답니다.
성경구절도 외우구요.
영어도 많은 단어들을 알고있어요.
2월에는 사위도 본답니다.
빨리 건강해 지셔서 한국 오시면 해외방 벙개해야지요.ㅎㅎ
전화 드릴께요.
고맙습니다.
와~ 부러워요.
제가 자식을 기르면서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이랑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었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자기 아이들 가정교육시켜달라고 ^^ 부탁하더라구요.
그래서 도우미를 붙여주면 봐주겠다고 했어요.
혹시 능력이 되면 내가 도우미 도움을 받아서 우리 손주들은 꼭 내 손으로 봐주고 싶어요.
축하하고요.
손주들 재롱이 얼마나 예쁠까 생각만 해도 흐믓해집니다.
저의 핸폰은 제가 해외에 있으니까 아마 신호만 가고 통화는 못할꺼예요.
간만에 들어온 해외방 봄노래님의 투병기를봅니다.
그동안 힘든병원생활(수술)과 항암치료를 잘견디신 봄노래님
하루빨리 최상의켠디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셨어요?
좋은 소식을 올려야하는데....^^
위로 감사드리고
대운산님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받으시고 너무 무리하지마세요.
한편에 드라마을 구경하고 심심한 경외심을 느끼네요
이좋은조국산천을 떠나서이억만리 타향에서 ~~~~~~~~~~~~
그러나 사람살이는 어디나비슷하담니다
빠른괘차을 고국에서 기원함니다 당신에 친구가 ~~~~~~~
빠른 쾌차를 기원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저희들에게 실천해 보여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
네~ 저도 조국의 산천이 너무 그립고 일가친척의 손길이 사무칩니다. ~
파란눈의 캐내디언맘께서 야채와 과일을 한주도 빠짐없이 썰어서 날라다 주시고
요즈음에는 내 입맛에 맞추시려고 연어를 간장에 조림해서 갖다주시지만,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더욱 그립습니다.
위로해 주시니 힘이 불끈~
주예수님의 평강이 바오로님 나의 친구와 늘 함께 하시기를~~~~~
봄노래님 여러가지로 고생이 많으셨네요 .
사람이 제일 약해질때가 자신의 몸에 병이 생겼을때라고 한다죠 .
그때에는 세상의 별별신들에게 다 매달려 본다고 하더군요 .
봄노래님 그제인가 텔레비젼에서 스티브최라는 분이 이야기 하는것을 들었습니다 .
으분도 두번의 암에 걸려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고 한것 같더군요 .
갑상선 암과 후두암과설암이 같이와서 방사선치료도 받았다고 하더군요 .
그런데 이분은 연어를 드시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것 같더군요 .
수술과 동위원소 치료를 받고 미각을 잃고 아무런 음식의 맛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연어고기를 먹고서 미각도 찾고 건강도 찾았다고 하더군요.
스티브최의 별난요
스티브최의 별난요리를 검색해 보세요 .
빠른쾌유를 바랍니다 .늘 건강 하세요.
낙낙장송님~
연어고기가 그렇게 좋은 요리인가봐요~
여기에서 제일 흔한 생선이 연어인데, 스티브최의 별난요리를 검색해 보고
한번 시도해볼께요.
전, 한국에서 결혼하고나서 여러번 먹어본 청국장(저희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어서 청국장을 많이 먹어본 적이 없어요)의 소박한 맛이 그렇게 그리웠답니다.
그래서 콩을 불려서 삶아서 3일동안 청국장을 띄워서 오늘 끓여먹었어요.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지만 정말 담백하고 탑탑하면서도 개운한 기분을 맛보았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