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양식(2007.4.22)
말씀: 누가복음 21:1-38
위대한 사건(재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The day after tomorrow'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지구 이상기온의 닥치는 위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재앙이 너무나 엄청납니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빌딩들을 날려버리고, 해일이 일어나 거대 도시를 삼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영화의 상상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지구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연히 세상에 태어나서 우연히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분명히 세상 역사는 흘러가고 있고, 우리는 흘러가는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와 있으며, 이 시점은 종말을 향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을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시작이 있고 반드시 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끝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의 날입니다. 이 날이 바로 세상 적으로 역사의 종말입니다. 사람들은 재연재해이든 어떻든 지구가 종말이 온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종말이 예수님이 재림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종말이 두려운 것은 단지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 후에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 나라. 백성, 방백 그리고 각 개인들이 다 왕이신 예수님 앞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지막 사건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내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서있는지, 오늘의 이 시점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문제의식을 갖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적인 인생을 살려면 세속 역사의 흐름을 타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역류하는 구속역사를 타고가야 합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조연에 불과 합니다. 자칫 여기서 세속 역사로 이탈 되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히2:1). 우리는 오늘날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오늘 들려주시는 주님의 미래의 메시지를 듣고 마지막 때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멸망의 징조들
제자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며 건물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합니까(막13:1).” 이 성전은 당시 유명한 헤롯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 때 예루살렘의 현관 기둥과 회랑들은 흰 대리석 기둥들로써 높이가 12 m나 되었으며, 그 각 기둥들은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 전면은 큰 무게의 황금 판으로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어촌에서 올라온 제자들이 성전의 외적인 모습에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6).” 그런 일은 종말에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한 제자들은 근심어린 눈으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정말 관심 갖고 경계해야 할 징조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1) 첫째는 거짓 선지자들
약 2000년 전 초대교회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몇 해 안 남은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5세기에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 로마의 멸망은 곧 세계의 종말이라고 기독교는 해석했었습니다. 14세기에 유럽의 큰 전염병이 만연하여 유럽인구 3분의 1이 거의 죽은 참사가 벌어졌을 때 모든 교회는 입을 모아 그때를 지구의 종말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16세기에 전 유럽은 소위 십자군으로 농민 봉기가 일어나 대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에도 교회들은 이제는 정말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18세기에 포르투갈에 대 지진이 일어나 하룻밤 사에 15,000명이 죽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지금은 참으로 지구의 종말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성서 신학자 벵겔도 역시 이 일에 관하여 커다란 오착을 일으켜 1937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명저 "신약성서 지남"은 오랫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은 그 후에도 줄기차게 이어져 구체적으로 햇수까지 예언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었고, 그런 것을 중심으로 교파가 형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제 칠일 재림 안식교에서는 1844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했고 여호와의 증인은 1914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했습니다. 다미선교회는 92년 재림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두 불발로 끝났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하나님이라, 내가 재림 예수라고 한 사람만도 100여 명이 넘습니다. 지금은 이런 류의 이단들은 없는 것 같지만 기성교회에 파고들어서 새로운 말씀해석으로 기존 신자들의 신앙을 흔들며 미혹합니다. 특징은 “내가 그로라 때가 가까왔다” 미혹을 한다는 것입니다(8). 마지막 때에 거짓 선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2) 재난
또 종말이 가까우면 세상에는 난리와 소란의 소문 등 자연재해가 따르게 됩니다. 그 동안 지구촌 곳곳에 전쟁이 일어나고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전쟁, 유고의 민족분쟁, 아프리카의 유혈사태 등 지구상의 분쟁은 끊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납니다(10). 또 처처에는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고 무서운 일과 하늘에 징조가 있게 됩니다. 쓰나미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해일, 이상 기온으로 빙산이 녹아내리고 이로 따르는 기상 변화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또 아직도 휴화산들이 연기를 뿜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정말 자연 재앙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9). 또 12절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핍박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회당과 옥에 넘겨지기도 하고, 임금과 관장들 앞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이때 제자들은 두려워하기 쉽지만 이런 일들은 도리어 증거가 될 것입니다(13).
왜 종말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고 재난과 환난이 따릅니까? 재난 그 자체보다 다른 뜻이 있습니다. 즉 이런 재앙을 시대적 경고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종말의 사건은 이보다도 더욱 참담하고 비극적입니다. 만일 그 때가 되어서 우리 스스로 극복하려한다면 아무도 감당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미리 크고 작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미리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고 깨어 종말을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미 승리를 약속 받았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제와 지혜를 주십니다(15).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죽음에 넘겨지는 고난을 받아도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습니다(18). 다만 시련의 때를 복음을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나 저절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19절에 하나님은 이런 종말의 때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의 영혼을 얻으리라” 하십니다(19).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신앙은 식어집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도 돈을 더 사랑하고, 무자비하고 무정해집니다. 사람들은 음란하고 정욕적이 됩니다. 죄의식이 없어집니다. 주님은 이런 시대에 믿음을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시대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내입니다. 핍박에서 인내가 아니라 믿음을 지키는 인내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니라.”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성도들에게 이러한 여러 가지 환난을 주시는 것은 깨어있도록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고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될 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정금 같이 단련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C. S. 루이스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환난이 있는가?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큰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을 향해서 고통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확성기다.” 세상의 여러 가지에 마음을 빼앗기는 나를 향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도록 늘 불러주십니다.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관심거리가 많습니다. 한시도 손에서 핸드폰, 지상파 DMB, MP3 등 놓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인내는 점점 없어집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쉽게 인생을 포기합니다. 이런 시대에 인내로 믿음을 지키는 자들만이 영혼을 구원받게 됩니다.
20을 보십시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예수님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가고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로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게 됩니다.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게 됩니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게 됩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 멸망은 실제로 A.D 70년 로마장수 티토에 의해서 실현되었습니다. 이 예루살렘 멸망의 사건은 장차의 예표입니다. 엄청난 멸망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여기서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멸망의 예언이지만 분명히 여기에는 구원의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그날이 되면 더욱 분명한 징조가 보입니다. “이때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에는 징조가 있겠고.”(25)
마태복음에서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그 빛을 발하지 않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마24:29). 이로 인해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게 되고,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여 기절까지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25,26).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는 것은 우주적 파괴현상입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자연에 기현상이 일어나 조화가 깨어집니다. 수많은 별들의 파편이 지구에 떨어지고, 상상 못할 해일이 일어나 지구를 덮칩니다. 이는 상상하기도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십시오. 이 때에 사람들이 무엇을 봅니까?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우리는 여기서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이 동시적임을 보게 됩니다. 종말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심판이요 두려움의 때입니다. 불의를 행하며 산 자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무서운 날이지만 신자들에게는 회복의 때입니다. 그 동안 신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받고, 많은 고난을 겪고, 손해를 보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28절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머리를 들라”는 말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참 신자라면 세상에서 머리 한번 제대로 들고 살았겠습니까? 돈이 있어야지요? 빽이 있어야지요? 권력이 있어야지요? 세상에서 양보하고 주고 베풀며 살아왔으니 무엇으로 머리를 들겠습니까? 그러나 이 때는 확실하게 머리를 들게 됩니다. 불신자들은 머리를 땅에 처박고 통곡할 때 믿음의 사람들은 머리를 들고 기쁨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살이 어렵고 힘들어도 소망을 품고 참아야합니다. 세상 가치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잘 살아야 밤의 한 경점뿐이며 못 살아도 잠시 잠깐뿐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0-13).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합니다. 비록 우리는 세상이 악하다고 해도 깨끗해야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몸의 구속을 받아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뿐 아니라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이 결코 먼 훗 날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의 싹이 나면 사람들은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압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기롱합니다(벧후3:4).
종말의 때에 정말 어려운 것은 외적인 핍박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 문제입니다. 말세의 세상을 살다보면 가치관이 흐려지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육체의 쾌락을 좇아 방탕한 삶을 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34).” 주님은 우리가 마음이 둔해질 것을 염려하십니다. ‘둔하여지다(βαρηθωσιν)’는 것은 종교적 감수성이 세상적 관심 때문에 무디어진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무뎌지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증상들이 나타나도 둔해져서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와 불신자의 행동이 구별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재림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되면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35)? 그러므로 이 날에 덫처럼 걸리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36절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결국 종말 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비결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는 것입니다.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37, 38절).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전서를 쓰면서 성도들에게 재림 준비를 이렇게 시켰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렇게 항상 깨어 기도하며 살 수 있습니까? 항상 깨어 주의 음성을 들으며 살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는 한시도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 길은 주님과 멍에를 메고 끊임없이 주님으로(by the Lord)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순간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을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고 세상에서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한 상황을 보면 역시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산으로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어있는 이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은 성전으로 몰려들었고 안 하던 기도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전으로 모였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요새프스에 의하면 이때 로마인에 의해서 살해된 유대인은 무려 110만 명이나 되었고 포로 된 자들의 수가 9만 7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거나 로마제국의 영토에 흩어졌으며 원형 경기장 맹수들에게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예루살렘 성은 로마, 헬라, 사라센, 터어키 등 이방인들에 의해서 짓밟혀 왔습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예루살렘 멸망 사건이 주는 교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 공부하는 것을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할지라도 한 말씀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주님(성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 길은 성령(주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과 보조를 맞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5장 25절로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결론적으로 주님의 재림은 이류 역사 가운데 마지막 남은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아무리 과학 문명은 발달하고, 의학계는 유전자 지도를 발견하여 무병 장수 할 수 있는 꿈을 심고 최고층 건물을 짓고 세계가 발전해도 때가 되면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그 날은 온 인류는 심판 주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실지라도 기쁨과 감격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깨어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롬13:11).”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