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의 교통 중심지로 해발 299미터의 소래산이 위치하여, 소래산 삼림욕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휴양명소로 많은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즐겨 찾는 곳이며, 또한 우리나라 최대 석불조각인 소래산 마애상(2000.12.15일 보물지정)이 있으며, 택지개발사업으로 도시기능이 한층 더 갖추어져 도·농 복합형 동으로서 균형 있게 발전하고 있는 동임.
매화동 마을의 형세가 풍수로 보아 매화꽃이 벌어지는 형국과 같다 하여 매화리(梅花理)라 한 데서 연유.
수인산업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매화, 도창, 금이 3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농 복합형 지역으로 품질 좋은 시흥쌀과 시흥포도가 생산되고 있으며, 동민 모두가 화합 단결하여 쾌적하고 인정이 넘치는 활기찬 고장으로 발전하는 동임.
은행동 마을에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었던 큰 은행나무가있어 은행리(銀杏理)라 한 데서 연유.
농촌지역과 도시지역이 잘 조화되어 있고 교육시설의 밀집지로서, 조선 영조때 영의정을 역임한 향토유적 1호인 김치인 선생의 묘가 있으며, 도시와 농촌, 공업지역이 함께 하는 복합지역으로써, 신구 지역 주민이 서로가 이해와 화합으로 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동임.
연성동 조선초기 문신이자 농학자인 강희맹 선생이 명나라에서 연꽃씨를 가져다가 지금의 관곡지 연못에 심은 후부터 이곳을 연성(蓮城)이라 부른 데서 연유.
연성택지개발지구 입주를 시작으로 최근 인구 유입이 가장 활발한 동으로서 시청이 소재해 있을 뿐 아니라 시흥경찰서가 있는 행정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될 동임.
신천동 조선시대에 인천부 신현면 신촌리와 사천리였다가 1914년에 신촌리의 '신'(新) 자와 사천리의 '천'(川) 자를 따서 '신천'이라 함.
조선 세종조 영의정을 역임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하연 선생과 효자 하우명 선생의 출생지 이기도 하며, 뱀내장터 우시장이 위치하였던 곳으로서, 구획정리사업과 상업지역의 활성화 등으로 지역개발이 활발한 지역으로 동민 전체가 앞서가는 동 구현을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동임.
신현동 포리초등학교 동쪽에 위치한 새우개 마을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천부 신현면 또는 신고개면의 면명은 이 마을과 미산리 구시미 사이에 있는 고개를 '새고개'(新峴)라 부른 데서 연유.
포동 시민운동장이 소재한 동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청자 가마터가 발굴되어 학계의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지역으로 새우개 장승놀이 등 전통풍물놀이가 많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향후 폐염전 등의 개발로 임해관광도시의 중심지로 발전할 개발잠재력이 아주 많은 동임.
목감동 조선 중엽 목암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사찰 경내에 감나무의 개량품종인 단감나무가 유명하였다고 함. 그 후 사찰 인근에 민가가 생기면서 목암사의 '목'(牧) 자와 단감나무의 '감'(甘)자를 따서 목감(牧甘)이라고 함.
안양, 광명, 안산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서울안산간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수인산업도로, 금이 화정간도로 등 교통의 요충지로서 물왕저수지와 조남리 지석묘, 장유선생묘 등 곳곳에 문화유적이 많고 산과 물이 잘 어우러져 있는 살기 좋은 동임.
군자동 군자동주민자치센터는 교통·통신의 발달 등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동사무소의 쇠퇴된 기능과 인력을 대폭 축소하여 민원·복지기능 중심으로 재편하고, 이로 인해 남는 여유시설을 문화·복지·자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의 복리증진과 진정한 자치실현의 장으로 활용하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책입니다.
이제 군자동주민자치센터는 주민 여러분과 늘 함께하는 소중한 생활의 중심이요, 열린 공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함께 군자동주민자치센터를 통하여 자기개발은 물론 이웃과 함께 삶의 여유와 따뜻한 정이 흐르는 군자동을 만들어 갑시다.
정왕동 마을에 있는 산에 봉화대가 있었는데 여기를 왕래하는 사람이 모두 공직자(正) 란 뜻으로 정왕산(正往山)이라 부른 데서 연유.
'99년 9. 27일 정왕동이 정왕1·2동으로. '02. 4. 1일 정왕 1 · 2 · 3 · 4 동으로 분동, 3천2백여개의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시화공단이 위치한 지역으로 서해안시대 경제활동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으며 시화호 인근지역에 수도권 신항만 등 개발잠재력이 풍부하여 국내 최대의 해양공업지역으로 발돋움 하고 있음.
과림동 1914년 모갈(木果)의 '果'자와 중림(重林)의 '林' 자를 따서 果林이라고 함.
주민 대부분 1차산업에 종사하고, 수도작 및 화훼재배를 주 소득원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 시에서 가장 먼저 주민자치세터 시범동으로 선정되어 '99년 9월 개소하였으며, 전원도시로서 동민 전체가 애향심을 바탕으로 이웃간의 화합과 단결이 잘 되고 있는 자부심 넘치는 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