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바~아~다~ 위~이~를 밤~배 저어~ 바~암~배! 무~섭지도~ 않~은~가봐. 한~없~이 흘~러 가~아~아~네.”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이얀~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아~버린 긴~머리 소오~녀야.”
70, 80세대를 풍미했던 ‘밤배’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긴머리 소녀’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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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마른 현대인들의 감성을 릴렉스 시켜주는 안동댐 라이브 카페 '밤배' |
필자의 아련한 기억 한 귀퉁이, 추억이라는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해둔 비 오는듯한 효과의 스크래치 가득한 옛 필름 속 영상이, 젖은 융으로 닦지 않고 턴테이블 위에 올려 아~암 끝에 매달린 카트리지가 내는 찌~직 거리는 옛 LP판의 음악이, 빙글빙글 돌아가던 LP판과 자켓이 새삼 함께 오버랩 되어 다가온다.
청바지와 통기타 포크송, 생맥주가 젊은이들을 대변해주던 시절 통기타 포크 가수들은 가히 우상이었으며, 신적인 존재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시절 포크음악을 우리나라에 처음 보급했다고 전해지는‘물 좀 주소’의 한 대수, '꽃반지 끼고'의 은희, '님은 먼곳에’김추자, '아침이슬'과 현재 라디오 MC로 활동 중인 양희은, ‘새색시 시집가네’이연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한이 멤버였던 트윈 폴리오 양희은, 이수형 임창제의 어니언스, ‘모닥불’ 박인희, 김정호, 이장희, 서유석 등 많은 통키타 가수들은 요즘 댄스가수들과는 그 음악성 자체가 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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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신과도 같았던 기타 대신 요즘은 키보드를 즐긴다는 오세복 사장 |
이렇듯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통키타 음악계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고 감미롭고 주옥같은 음악으로 혜성처럼 나타나 전 국민들의 귀와 내면의 정서를 사로잡은 통키타 듀오가 바로 서두에 언급한 ‘밤배’와 ‘긴머리 소녀’의 주인공 ‘둘 다섯’이다.
포크음악은 사회를 비판하는 프로데스크적인 부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심미안적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둘 다섯이 추구했던 바가 바로 이 심미안적 부분이었다.
1973년 동국대 전산학과 1학년 때 서울 휘문중 고 1년 선배이던 이두진씨와 같은 대학교의 연을 쫒아 뜻을 같이하여 결성, 2년여 계속 가요차트 1위를 지켰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었던 둘 다섯의 멤버 중 한사람인 오세복씨가 안동사람이 되어 안동 문화 속으로 들어왔다.
안동댐 정상 기념탑에서 석동 선착장 방향으로 500여 미터를 가다보면 우측 편에 ‘밤배’라는 피켓 크기의 작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함에서인지 무척이나 아늑하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지형에 마치 옛 고가를 연상 시키는 목조 건물 여러 채가 나무계단너머로 내 비치는 이곳이 바로 둘 다섯 창단멤버 오세복씨가 경영하는 라이브 카페 ‘밤배’다.
한때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령대를 막론한 팬들의 인기몰이를 독차지 했던 둘 다섯의 멤버 오세복씨는 주소지를 안동에 두고, 영업장을 안동에 둔 안동의 한 라이브카페 사장님으로 변신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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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시간 업소를 찾은 손님에게 직접 서빙하는 오세복 사장 |
어느 듯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오 사장은 만화 속 주인공 호빵맨처럼 친숙한 외양과 악의 없이 순수하고 소탈한 웃음으로 필자를 맞아 도자찻잔 속의 가을과 걸 맞는 노오란 국화차 한잔을 손수 대접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06년 심장이 말썽을 일으켜 영국에서 수술을 하려고 수술 날짜까지 잡은 와중에 우연한 기회로 안동을 방문, 이곳을 보게 되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오사장은 서울에서 4대를 눌러 살았었던 서울 토박이 이었던바 평소 전원생활을 동경하며 미래 전원생활의 꿈을 간직해오고 있었다고.
그런 그가 현재의 이곳을 대했을 때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당시 개인사정으로 영업을 하고 있지 않던 소유주를 수소문 하게 되고 일사천리로 매입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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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 애견과 즐거운 한때.. |
매입을 해놓고 보니 장기간 비워놓고 있던 터라 곳곳에 거미줄이 포진하고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던 오사장은 초창기 일머리를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손수 보수공사를 해 지금은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쉼터가 되었노라 며 요즘은 건강도 좋아졌거니와 마당쇠처럼 일도 잘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중학교까지 심한 내성적 성격이었으나 고교시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외향적 성격으로 바뀌어 갔으며, 대학을 진학하고부터 오사장의 본격적인 끼가 발산되기에 이른다.
음악적 자질이 출중하여 주위로부터 가수 해보라는 권유를 수 없이 받은 터라 자의 반 타의 반 당시 3대 음반사 중 하나인 오아시스 레코드사에 오디션을 받았지만 고배를 마시고 대학축제 때 직접 작사한 긴머리 소녀를 불렀고 마침 지구레코드사 최경식 상무의 눈에 띄어 졸업 때까지 모든 일체를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대우에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고.
제 1집 앨범에 ‘긴머리 소녀’와 ‘밤배’두 곡이 들어가 있던 당시 많은 레코드 판매고와 함께 가요 챠트 1위를 계속 고수하는 등 승승장구, 그야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막힘없는 전진으로 인기의 급물살을 타고 있을 즈음 모 방송국 PD의 촌지요구가 오사장 심경에 회의의 변화를 가져오게 했고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한 채 미국 조지아 아틀란타에 있는 미션스쿨 톤 데프니스에서 3년간의 음악공부를 통해 소위 음치교정법을 익히게 된다.
19명 정원에 19등으로 입학하여 7등으로 졸업한 오사장은 한국으로 귀국해 공항에서 그 유명한 말 ‘음치는 없다.’를 세상에 퍼뜨렸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음치교정센터와 주부노래교실을 운영, 대치동 송파구 압구정 등 1만2천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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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보드와 함께 자신의 노래를 손님들에게 서비스 한다. |
따라 하기식 모방, 변질된 음치교정센터가 난립함에 사업을 접고 98년 이벤트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으나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이 역시 얼마 전 그만두었다고 한다.
독서와 낙서가 취미인 오사장은 낙서를 하다보면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 가슴에 와 닿는 건이 하나쯤은 있다고 말하고 그 낙서를 모티브로 작사도 하고 생활의 문제점도 해결한다고.
음악을 좋아하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로 젊고 건강한 것만 믿고 함부로 몸을 혹사해서는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어내지 못할 뿐 더러 반드시 후회하게 되며, 좋아하는 음악과도 빠른 이별을 고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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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 또한 오사장이 직접 구상해 제작했다. |
진정한 가수상을 물었을 때는 자기 음악성만을 고집하며 자신위주의 음악을 팬들에게 주입하려 들지 말며, 여유를 가지고 팬들과 같이 호흡하는 가수가 진정한 가수라고 말하는 오세복 사장이다.
결성당시 ‘둘 다섯’이라는 듀오명은 멤버였던 이두진의 성 ‘이’와 오세복의 성 ‘오’를 형상화 하여 지었으며, 현재까지 5집 앨범을 출반 하였고, 내년 1월경 팬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의 고별음반인 6집 앨범은 더블음반으로 메모리 곡과 신곡 70여곡을 동시 출반한다고 한다.
이어 고별 이벤트를 기획, 전국을 돌며 팬들에게 자신을 음악을 선사하는 전국투어 콘서트를 안동의 영업장인 ‘밤배’에서 시작해 출발한다고 밝혀 2년여 안동사랑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듯 했으며, 내년 3월에는 미국과 캐나다 등 현지교민들을 위한 해외공연도 기획 막바지 단계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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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늑하고 포근한 감이 넘쳐나는 실내전경! 멀리 주방과 우측엔 벽난로가.. |
가수 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는 화면에 얼굴이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점도 있었지만 요즘같이 생방송 시절이 아니라 모두 녹화방송이었으므로 방송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녹화에 매달려야 해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마음 편히 미팅이나 여행을 갈 생각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자기 시간을 못 가지기에 방송출연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긴머리 소녀’제작의도가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일하는 아가씨들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노래가 퍼진 당시 구로공단의 근로자아가씨들이 모두 길게 머리를 길러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며 지금은 중년의 아줌마들로 변했을 그들의 아픈 심정을 노래로 어루만져주었던 때가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그와 관련 구로공단 내에 노래비와 기념탑 조성을 위한 움직임이 있다고 했으며, 오는 14일은 두 사람이 남해 금산 보리암에 머물 때 캄캄한 바다에 작은 불빛이 외롭게 떠가는 것을 보고 노랫말 지은 것을 기념하고 노래의 배경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남해군 상주면 은모래 비치 해수욕장 야영장에서 '밤배' 노래비 제막식을 가지기에 두진씨와 관계자들이 참석하기로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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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채로 들어가는 입구쪽엔 옛날 풍금이 추억에 잠기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