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왕자와 함께 보내는 밤
전체적으로는 회색 빛을 띠고 있었다. 아니, 정교하게 배치된 분홍색 위사와 노란색 경사로 인해 언뜻 갈색 느낌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 무심하게 본다면 은빛이 감도는 회갈색 줄무늬로 볼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직물임이 분명한데도 손에 잡히는 부드러운 감촉과 우아한 체크 무늬는 모(毛)가 백프로 들어간 고급 원단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더구나 이 원단은 낯이 익다 못해 아련한 향수까지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 원단이 지금은 없어진 한성모방에서 직조되었을 것이고, 일련번호 A/W 15-…로 나가는 순모 체크가 분명하다고 단정지었다.
경비가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며 이쪽을 힐끔거린다. 아파트 주민들이 버린 헌 옷을 다른 주민이 가져가는 일은 간혹 있는 일이다. 아이들 체육복이라던가 교복 넥타이를 발견한 주부들이 보물이라도 찾은 듯 호들갑을 떨며 가져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버리는 사람도 필요한 주민이 가져갈 수 있도록 깨끗이 빨아 가지런히 개켜두곤 했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그런 정겨운 풍경은 이제 없어졌나 보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체육복도 아니고 보이스카웃 스카프도 아닌 낡은 스커트를 들고 있는 것이다. 눈이 좋지 않은 늙은 경비는 혹시 방석이나 담요를 몰래 버리느라 꾸물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 낡은 체크 스커트를 들고 일어섰다. 버리는 것이 아니고 가져간다는 제스처로 스커트를 두어번 탁탁 털어 보여 경비를 안심시켰다. 경비는 그제서야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딸아이 방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옷들을 개키다 보니 짜증이 났다. 어렸을 때는 제방 옷장 정리도 곧잘 하더니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무슨 벼슬이나 한 듯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던 버릇이 대학생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제 한번 날을 잡아서 따끔하게 야단친다는 것이 저도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 바빴고, 나도 깜빡깜빡 잊곤 했지만 단단히 벼르고는 있는 중이다.
속옷이니 스타킹이니 제멋대로 쑤셔넣은 서랍장 중에서 맨 아래 서랍장 하나만 봐줄만 했다. 핸드백, 향수, 스카프 따위가 함께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 품목별로 정리해놓은 것도 아니다. 소위 명품들만 따로 모아 신주단지 모시듯 정리한 것이다. 한달 동안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샀다는 에트로 선글라스는 포장지까지 곱게 정돈해 놓았다. 그 밖의 옷이나 백 같은 물건들은 침대며 책상 위 여기 저기 어지럽게 널려있어 별 애착이 없다는 것이 한눈에도 보였다.
청바지만 해도 아홉 벌을 개켜 넣었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에 청바지 타령을 하고 나갔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가 있었다. 청바지 하나를 3년 동안 입었다는 그녀.
직포과 안에 들어서기 전에는 크게 심호흡부터 해야 했다. 직물을 짜면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로 인해 탁해진 공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2백 여대의 직기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소리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마치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은 굉음에 과연 내가 숨이나 제대로 쉬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만 할 것 같았다.
직포과 사무실은 현장을 1백 여 미터쯤 지나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무실 문을 닫으면 소리의 크기는 한층 줄어들지만 목소리를 높여야만 사무실 안의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평생을 직포과에서 잔뼈가 굵어온 차장은 가는귀가 먹었는지 조금만 소리를 낮추면 다시 말해보라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평소에도 커졌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떨다 보면 어느새 내 옆구리가 쿡 찔리곤 했다. 내 목소리가 너무 민망하게 크다는 것이다.
사무실 안에서는 큰 소리로 대화해야 했지만 정작 기계가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소리를 지를 필요조차 없었다. 아무리 고함을 쳐도 기계 소리에 묻혀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임을 하듯 손과 발을 움직이고 상대방의 입 모양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점순이와의 대화도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마임이 익숙치 않은 신참내기인 나로서는 주로 글을 써서 이용했다. 점순이 뿐만 아니고 다른 직수(織手)들과의 대화가 그런 식이었기에 내가 들고 다니는 현황판 뒤에는 항상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헤엄치고 다녔다.
직포과에서 짜여진 직물들은 완제품이 아니다. 그래서 가공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직포 또는 생지(生紙)라고도 한다. 내가 직포과 현장 사무실에서 하는 일은 2백대의 기계에서 현재 짜고있는 직포의 종류와 직수가 몇 야아드나 짰는지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물론 다 짜여진 직포는 검사과로 넘어가 검사원들에 의해 A,B,C급 카드로 작성되고 그 카드는 나에게 넘어오게 된다. 카드를 다시 문서로 기록해서 노무과로 올리면 직수들의 월급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상부 부서에서 가장 많이 질문해 오는 것이 점순이가 속해있는 15조의 직포들이었다. 보통 한 조에 직기가 열대씩 배치되어 있는데 15조의 기계들은 가장 최근에 들여온 새 것이었으며 직수들 또한 모두가 경력 5년 이상씩 되는 베테랑들이었다.
당연히 여기서는 수출품 등 최고급 직포만 짰다. 점순이는 15조 중에서도 5번 직수였다. 1번 직수는 한성모방에서만 15년동안 직기 앞에 서있었다는 40대 여자와 서른 여덟살 노처녀였다. 직기 한대 당 두 명의 직수가 교대로 12시간씩 일을 하는데 점순이 직기의 파트너 또한 서른 살이 다 되가는 노처녀였다. 이들의 특징은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거였다. 점심이나 야참인 식사시간 한시간을 빼고는 하루종일 기계 앞에 서있다 보니 표정이 기계처럼 굳어져버린 것이다.
점순이는 15조 중에서 유일하게 직수 경력이 4년밖에 안되었다. 그녀의 나이가 나와 같은 스무살이니 열여섯살 때부터 직포를 짜온 셈이다. 아무리 유능한 여공이 필요하다지만 국내굴지의 주식회사에 공원으로 취직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그러나 남의 주민등록을 빌린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회사측에서는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갔다. 한창 일을 배워 써먹을만 하면 결혼을 계기로 떠나는 여공들이 아쉽기만 한 회사측으로서는 한참동안 부려먹을 수 있는 어린 나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나이를 속이고 남의 주민등록 등본으로 취직을 하다보니 명절 때 집에 가서 진짜 자기 이름을 들으면 영 생소하다고 한다.
점순이의 진짜 이름은 수정이라고 했다. 점순이라는 이름은 자기보다 세 살 위인 옆집 언니 이름으로 역시 주민등록을 빌린 것이었다. 점순이는 수정이라는 예쁜 자기의 이름으로 불리우길 바랐지만 마침 목에 붙어있는 검은 사마귀 때문에 천상 점순이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점순이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된 것은 직포과의 핵심인 15조에 속해있기도 했지만 다른 직수들과는 다른 그녀의 밝은 성격 때문이었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되면 빼꼼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같이 점심 먹자고 권하곤 했다. 보통 직수들 같으면 사무실 출입 자체를 쑥스러워 하는데도 점순이는 사무실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점순이는 동료 직수들과는 전혀 어울리질 않았다. 다른 직수들은 일을 하면서도 간혹 예의 마임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녀는 항상 혼자였다. 혼자인 정도가 아니라 직수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직포과 사무실에서 유일한 여직원인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 또한 마땅히 얘기할 상대도 없던 차에 상냥하고 붙임성 좋은 점순이를 멀리할 까닭도 없었다. 더군다나 점순이는 갓 입사해 신참인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선배였던 것이다.
점심시간은 마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이다. 2백대의 직기가 일시에 멎는 낮 12시가 되면 마치 온 세상이 휴식기에 들어간 것처럼 조용해졌다. 동시에 기계 앞에 서있던 직수들도 조립되었다가 풀려나는 부품들처럼 직기 앞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녀들이 비로소 독립된 생명체라는 것이 실감나는 시간이다. 생명체들은 간혹 소리내어 웃기도 하면서 마치 마법에서 풀려난 새들처럼 떼를 지어 식당으로 달려가곤 했다.
점순이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점순이는 점심시간이면 사무실로 찾아와 나와 함께 식당으로 가곤 했다. 다른 직수들이 점심시간을 알리는 커다란 벨소리와 함께 삼삼오오 떼를 지어 뛰어가는데 비하면 그녀는 품위 있는 행동을 하는 셈이다. 그런 점을 다른 직수들이 고깝게 여긴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유가 있는지 아무튼 점순이는 동료 직수들과 어울리질 못했다.
다른 사유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된 것은 15조에서 짜던 수출품 한 필 전체가 불량이 나오면서였다. 점순이의 파트너인 30대 노처녀 직수가 시말서를 제출하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잘못은 점순이가 했는데 왜 자기 혼자 시말서를 써야 하느냐고 반장에게 항변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사무실에는 차장을 비롯한 몇 명되지 않는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고 나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참이라 시말서를 제출하러 함께 들어왔던 두 사람의 불만을 고스란히 듣게 되었다.
“그래도 네가 참아. 점순이 걔야 특별한 애잖아.”
“창녀 같은 년!”
내가 놀란 얼굴로 둘을 쳐다보자 그녀들은 마치 나보고 더 들으라는 식으로 까발렸다.
“실력도 없는 게 어떻게 15조에 꿰차 앉아있겠어.”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마침 남자직원이 들어오는 바람에 두 사람의 고발 아닌 고발은 중단되었지만 나는 궁금해서 나중에 남자직원에게 묻게 되었다.
“15조에는 실력있는 사람들만 들어가냐구? 글세, 그 실력이라는게 어떤 실력을 말하느냐 그게 문제지.”
남자직원은 흐흐거리며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성능이 좋은 새 직기에서는 누가 짜든 좋은 직포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경력이 오래된 직수들이 좋은 직기를 차지하는 것은 선임자 우선인 셈이었다. 이번처럼 불량 실이 섞여 짜여지는 것을 미리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오랜 경력자들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15조에 배정되려면 그런 점이 자격이라면 자격이 될 것이다.
15조의 불량품 시말서 사건이후 나는 점순이를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되었다. 노처녀 직수와 반장과의 대화에서 왠지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점순이도 나의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더 이상 가까이 오질 않았다.
서먹해진 점순이와 함께 밤을 새는 일이 생겼다. 점순이가 야간을 할 때였다. 나는 미처 마치지 못한 월말 결산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밤 열시쯤 되어 예고도 없이 정전이 된 것이다. 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직포과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일시에 멎어버렸다.
무서움도 잠시, 당장 일을 마치지도 못했는데 집에 돌아갈 일이 요원했다. 아침에 일찍 노무부로 자료를 넘기려면 아직 한시간 정도는 더 일을 해야만 끝낼 수가 있는데 전기는 다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직포과에는 비상전등이 들어와 희미하게나마 사위를 분간할 수는 있지만 모든 직기는 멈춰버려 직수들과 기사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반장도 사무실로 들어와 공무부로 전화를 한다 비상연락을 한다하면서 혼을 빼놓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직수들이 모두 검사실로 들어간 것이다. 직포를 검사하는 검사실은 장판이 깔려있어 신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백평 쯤 되는 검사실은 순식간에 넓은 방이 되어 직수들이 여기저기 드러누웠고 검사를 기다리는 직포는 직수들의 이불이 되어버렸다.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막간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려는 것이다.
집에 갈 것을 포기하고 나니까 오히려 여유가 있어졌다. 어차피 다른 일도 밀려있어 사무실에서 밤을 새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지만 희미한 비상등이 너무 답답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회사 뿐 아니고 서울시 전체가 정전이 된 듯 온 세상이 암흑천지였다. 불빛이 사라지니 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유난히 반짝거려 보였다. 평소에는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밤하늘이 저렇게도 아름다울 줄이야… 나는 어느덧 반짝이는 별들 속으로 빠져들었다.
“달이 똥을 싼거야.”
나지막한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점순이가 어느새 옆에 와 앉으며 쿡쿡거렸다.
“달 옆에 있는 저 별 말이야. 달이 싼 똥이래. 내 동생이 어렸을 때 그랬다. 그 애가 지금은 고등학생이야.”
점순이는 “동생이 보고싶다…”면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동안 그 자세로 있는 걸로 보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점순이는 이럴 때 다른 직수들처럼 검사실로 가서 피곤에 지친 몸을 눕히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달빛에 점순이의 목덜미가 하얗게 드러났다. 그러고 보니 점순이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햇빛을 보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뜬 다른 직수들과 달리 피부도 희었고 적당히 살집이 있고 탄력이 있는 몸매는 꽤나 육감적이었다.
달빛에 드러난 그녀의 하얀 목덜미는 손이 저절로 가져서 만져보고 싶을 만큼 고혹적이었다. 얼굴 앞쪽에서 보면 콩알만한 검은 사마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었는데 사마귀가 없는 하얀 뒷목덜미는 점순이가 아니라 수정이로 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우리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먼저 점순이가 입을 열었다.
“미스 유는 왜 대학엘 안 갔어?”
뜻밖의 질문에 내가 머뭇거리자 점순이는 내 대답은 애초에 들을 생각이 아니었던 듯 자기 형제들 얘기를 했다. 지방대에 다니는 오빠와 고등학생인 남동생, 그리고 새엄마가 낳은 동생 둘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얼마되지 않는 농사를 지으면서 아들을 대학 보내기가 젊은 후처에게 눈치가 보였는지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점순이를 서울의 방직공장에 취직시켰다. 점순이는 월급을 타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꼬박꼬박 시골로 돈을 보내 오빠의 등록금을 대주었다.
숙식은 기숙사에서 해결하니까 생활비는 거의 나갈 것이 없었다. 이즈음에 와서야 옷을 좀 사 입었을 뿐이다. 그것도 오빠가 한 학기를 남기고 군대를 갔기 때문에 한숨 돌린 덕분이었다. 이제 오빠가 군대에 가있는 동안 돈을 모아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내년이면 대학에 가는 동생은 공부를 잘해 어쩌면 서울대학을 갈지 모른다는 기대도 털어놓았다. 서울대는 등록금이 사립 대학의 절반도 안된다고 하니 점순이로서는 동생의 성적에 온 신경이 다 쏠릴 만도 했다.
동생 이야기를 하며 점순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고된 일상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나 보다.
“요즘처럼 힘이 들 때는 오빠와 동생 생각을 하면 되겠네.”
내가 점순이의 말에 동조하듯이 그렇게 말했는데 점순이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난 아라비아 왕자를 생각해.”
“아라비아 왕자라니?”
“지금 내가 짜고있는 직포 말이야. 아라비아 왕국에 들어갈 거잖아.”
점순이를 비롯한 15조에서는 이 달 들어 이란 왕실에서 주문한 모직을 짜고 있는 중이었다.
중동 붐을 타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기업들이 중동의 건설현장에 많이 진출하고 있었다. 섬유업계 또한 그 쪽에서 주문해오는 원단이 늘어났다. 이란이나 이라크 등 중동 쪽에서 들어오는 오더는 주로 영국의 유명회사에서 의뢰하는 것들로 자기네의 직사(織絲)를 대주어 직물만 짜게 하는 일종의 OEM방식이었다. 주로 왕실에 들여가는 원단이기에 최고급품들이었다. 당연히 최신 기계와 능력있는 직수들로 구성된 15조에서 짜고 있었다.
“기계 앞에서 밤을 새면서 ‘난 지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왕자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야. 상상만 해도 멋지잖아.”
나는 풋- 헛웃음을 날렸지만 그녀의 천진하게 웃는 얼굴에서 까닭없는 울분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오빠, 그녀의 남동생에 대한 적의도 함께 차 올랐다.
언젠가 모 신문 칼럼에 50대의 어느 대학교수가 쓴 글이 떠올랐다. 내용은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앞당긴 것은 새마을 운동을 벌인 박정희는 물론 아니요,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 박종철이나 이한열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선진화의 주역은 70년대 이른바 공순이로 지칭되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오빠와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골에서 올라와 방직공장·청계천 피복공장·전자제품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해 수출한 덕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것이다. 열악한 환경과 형편없는 임금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한 몸 희생했던 그때의 우리 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며 다소 감상적인 결말을 맺는 글이었다.
한성모방 입사 당시의 나는 생산직 공원으로 등록되었다. 먼 친척 아저씨인 한성모방 인사과장은 내 이력서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상업고등학교였으면 좋은 자리가 많은데…, 주산이나 부기는 전혀 할 줄 모르지?”
고개를 끄덕이자 인사과장은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해 잠깐 통화하더니 “됐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는 직포과로 출근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월급은 함께 입사한 다른 사무직 여사원들보다 훨씬 많았다. 생산직 여공들은 하루 2교대로 12시간씩 일을 했는데, 법정 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을 초과한 4시간은 잔업수당 형식으로 지급되었다.
직포과 전직원의 이름이 기록된 형식적인 잔업일지는 내가 매일 올리는 결재서류 중에 하나였다. 잔업일지에는 내 이름도 아예 같이 인쇄되어 있어 매일 12시간씩 일을 하는 다른 직수들과 같은 월급이 나왔다. 또한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프리미엄으로 고과는 A급이었고 사무수당 이라는 것까지 보태어져 10년 이상 근무한 직수들 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다.
내가 한번 그 이상한 계산에 이의 아닌 이의를 제기하자 남자직원은 이제껏 있어온 관례라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포과에서 근무한지 몇 년 째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보다 배나 많은 월급을 받았는데 그것은 남자라는 프리미엄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노동자들의 권리에 얹혀 그들과 함께 혜택을 누린 셈이었다. 사실 남자직원 말대로 열악한 환경인 직포과에 근무하면서 쾌적한 본사 사무실과 같은 월급을 받는다면 누가 이런 데서 일을 하겠는가 하는 생각에는 동조했지만 직수들에게는 웬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직수를 직녀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포장한 시인 호사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직수라는 이름을 모독하는 일종의 횡포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직수는, 여름에는 40도를 훨씬 넘는 공장 안에서 엄청난 소음과 함께 하루를 보내야 하는 기계의 일부분이었다. 12시간동안 한군데 서 있다보니 발은 무좀과 습진으로 성한 날이 없고, 기계가 돌아가면서 뿜어내는 먼지를 그대로 마시게 되어 폐렴이나 폐결핵으로 죽어나가기도 하는, 직수는 엄연한 직수였다.
한성모방을 다닌 지 일년도 채 안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당시 나는 알 수 없는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대학입시 실패로 인해 일찌감치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있었고, 그런 내 실패가 오히려 집안 사정을 위해 다행이라는 가족들의 눈초리, 이미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점차 기울어지는 가세는 불안한 미래만을 안겨주었다.
이제 교대를 갓 졸업해 초등학교 교사가 된 언니나 대학 졸업반인 오빠의 미래는 나와는 무관했다. 한성모방의 인사과장인 친척 아저씨가 열악하지만 월급이 많은 직포과로 나를 밀어넣은 것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고깝게 생각되었다. 나는 우리 집안의 총알받이가 되기 싫었다.
월급을 타면 집에는 한푼도 내놓지 않았다. 아버지의 병원비 등 여러 가지로 써야 할 돈이 급한 엄마였지만 차마 나에게 돈을 좀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월급을 봉투째 내놓으며 징징거리는 언 니에게는 푸념이라도 하던 엄마였다. 내 월급은 고스란히 은행에 저금했다.
나는 가족들의 무언의 요구에 시위라도 하듯이 어떤 때는 모아놓은 돈을 몽땅 들고 나가 명동을 쏘다녔다. 닥치는 대로 옷을 사고 친구들에게 생맥주를 사줬으며 명동에서 영등포에 있는 우리집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내렸다. 한 달 월급을 하루동안에 다 써버린 내 행동에 오빠가 화를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고 하자 엄마가 극구 말렸다. 오빠는 입도 한번 벙긋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훗날 언니는 그때 내 눈빛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이글거려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때 오빠하고 부딪쳤다면 나는 아마 내 몸을 부숴서라도 그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여행을 준비했다. 일년동안 모아놓은 돈은 한참동안 나를 지켜줄 것이었다. 회사에는 후임자를 구할 수 있도록 미리 얘기해 두었다.
그날, 퇴근 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사무실에 무언가 두고 온 것이 생각나 다시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쇠부터 꽂았다.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점순이의 목덜미에 있는 커다란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점순이가 내 책상 의자에 거꾸로 걸터앉아 문 쪽을 정면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순이는 남자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색 작업복은 단추가 열려있어 탐스런 가슴이 그대로 출렁거렸고 허연 다리는 의자 위에 걸쳐있었다. 점순이는 내 의자에 앉은 것이 아니라 남자를 타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황망히 돌아 나오면서도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푸른색 유니폼은 사무실 직원이나 현장 기사들이나 똑같이 입는 옷이기 때문에 점순이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가진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갑자기 내 앞에서 그려진 그 광경은 오래도록 지워지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하게 덧칠되었다.
점순이는 아라비아 왕자와 함께 밤을 보낸 대가로 내 후임자가 되었다. 점순이는 이제 직기 앞에서 힘들여 직포를 짜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사무수당을 포함해 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인계인수를 하는 날, 점순이는 그날 밤 거꾸로 걸터앉았던 내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내가 하던 일을 인수받았다.
생각해보니 점순이는 오래 전부터 내 일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짬짬이 내가 하는 일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점순이는 물론 나도 그 날 밤의 일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어느새 그날 점순이는 아라비아 왕자와 함께 밤을 보낸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 둔 후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내 계획은 취소되었다. 애초에 내가 여행을 떠나려는 목적은 여기 저기 떠돌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내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었다. 가방 안에는 오래 전에 써둔 유서도 함께 들어있었다. 그러나 사직서를 내면서 나는 이미 머나먼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되었다.
일년 동안 모은 돈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는 물끄러미 돈 봉투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나를 놓질 않았다. 엄마의 야윈 어깨가 가늘게 떨려왔다.
“엄마, 미안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나는 엄마 품에 안겨 평생동안 흘릴 만큼 많은 눈물을 쏟으며 엉엉 울었다. 실컷 눈물을 쏟으며 울고 나자 정신이 개운해졌다. 다음날 나는 기차표를 끊으러 가는 대신 재수학원으로 가서 등록을 했다.
“이게 왜 여기 와 있어?”
수영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차나 한 잔 하자며 같이 들어온 옆집 여자가 소파 위에 있는 체크 스커트를 보고 한 말이었다.
“그 집에서 버린 거였어?”
“응, 내가 대학 다닐 때 입던 건데 참 오래도 가지고 있었지? 이번에 옷 정리하면서 버린 건 데… 이건 뭐하려구?”
“보기 드문 원단 같아서.”
“역시- 알아보는 눈은 따로 있군. 하긴 이게 보통 원단이 아니지. 내가 맞지도 않는 옷을 왜 몇 십년씩이나 가지고 있었게. 사실은 내가 입던 게 아니고 친구가 준거야. 같은 과에 친한 애가 있었는데 한성모방 집 딸이었거든. 거 왜 낙타표 한성모방이라고 한참 광고도 많이 했잖아. 그건 자기네 제품이 아니고 수입원단으로 맞춘 투피스인데 색깔이 칙칙하다면서 입겠다면 준다길래 얼른 받아놨지. 우리같은 서민이 재벌이나 고관집 여자들만 상대하던 앙드레김 의상실에서 맞춘 옷 구경이나 하겠어? 욕심에 받긴 했지만 이게 나한테 잘 맞질 않는 거야. 결혼할 때는 옷 정리하면서 윗도리는 버리고 유행을 안 타는 스커트는 아무래도 아까워서 놔둔 건데…. 조금만 더 살 빼면 입어야지 하다가 영영 못 입고 만 셈이지.”
그러고 보니 말로만 듣던 앙드레김 숍의 라벨이 선명했다.
저녁에 들어온 딸아이는 단박에 명품 스커트를 알아보았다. ‘추억의 명품’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옛날의 앙드레김 라벨을 안다고 했다. 명품 스커트는 맞춘 듯이 딸아이의 몸에 꼭 맞았다. 오래된 것임에도 역시 명품은 고급스러운 태가 난다며 신기해하는 딸아이의 표정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문득 내 눈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물기가 어려왔다. 왜 그 순간에 점순이가 생각난 것일까? 똑같은 나이였던 내 얼굴도 아니고 점순이가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돈을 보내 공부하고있는 점순이의 오빠와 동생들이 함께 떠올랐다.
아라비아의 왕자가 입었어야 할 ‘A/W 15-****’는 팔레비 왕조의 붕괴와 함께 호메이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갈 길을 잃고 대한민국 어느 공주의 투피스가 되었던 것이다. A/W은 all/wool의 약자였고 15-는 점순이가 속해있는 15조에서 짰다는 일련번호였다.
직포과에서 다 짜여진 직포는 검사과에서 그러한 상품번호를 달고 가공과로 넘겨졌다. 시중에는 나갈 수 없는 특별한 그 원단은 쉽게 사장의 딸 몫으로도 남겨졌을 것이고, 사장 딸이 맞춰 입은 투피스는 금방 실증이 나 친구에게 넘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렇게 내 앞에 와 있다.
점순이에게 이 옷감은 아라비아 왕자였다. 시골에 있는 오빠와 동생의 학비를 보낼 수 있게 해준 존재이기도 했다. 그녀가 기꺼이 내 의자에 거꾸로 걸터앉을 수 있었던 것은 오빠와 동생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파트 놀이터에서 나는 아라비아 왕자를 태워버렸다. 헌옷함에 다시 넣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면 어쩐지 점순이를 한번 더 유린하는 것만 같아 나름대로 예우를 차린 것이다. 다 타고 남은 재를 모래에 묻어버리면서 잠깐 딸아이가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같다.
소설 심사평
제재의 다양성
모두 55편의 응모 작품을 읽으면서 첫째로 느낀 것은 작품의 제재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소설이 허구의 세계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모방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응모자들은 나름대로 특이한 체험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 민박집 운영자·정신병자·경마 중독자·장의사·언어 장애자·미혼모·음악가·화가·작가·방위병·경찰·아파트 경비원·선원·무당·야시장 기획사 직원·방직회사 직원·병원 사무원·로봇 등 다양한 직업인들이 그들대로의 전문 지식을 동원하면서 주인공으로, 혹은 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리얼리즘 문학이 극히 평범한 일상을 제재로 실행되었지만 소설이 단순한 모방이 아닌 허구의 세계라면 우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하여 좀 별난 인물이나 사건을 다룰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그 방면에 상당한 지식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응모 작품의 상당수가 이에 부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미자의 ‘아라비아 왕자와 함께 보내는 밤’과 김성기의 ‘핸드폰 무덤’이 마지막까지 경합하여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나 결국 전자를 당선작으로 하기로 했다. 만일 가작이 있다면 후자를 이에 추천했으면 싶다.
전자를 뽑은 이유는 이가 후자보다 좀더 서사성이 있고 함께 투고한 또 다른 작품 역시 수준급이어서 전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사성이란 내면보다 사건, 사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인 제재와 이야기의 성격을 일컫는 용어로 썼다.
‘핸드폰 무덤’은 불륜의 매개체인 핸드폰을 끝내 장사지내고 가정으로 복귀하는 어느 가장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취한 것은 무엇보다도 재치 있는 문장이다. “실업자와 소주와 새우깡은 아주 잘 어울리는 친구다” “과장된 이야기에 몸이 달아오르고, 달아오른 육체가 술을 마시고, 고, 고, 고…” “구두로 벌레 으깨는 표정을 지었었던 얼굴이 햇볕 좋은 날 양산처럼 활짝 펴진다” “칸나가 피고 조선일보가 오지 않는 오늘” “남녀관계란 환불이 까다로운 쇼핑” 등은 몇 개 골라본 예이다. 그리고 마지막 파묻은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얻은 결론 “나는 늘 부재중이다”의 아이러닉한 플롯이 여러 의미를 복합시킨다.
‘아라비아 왕자와 함께 보내는 밤’은 제목부터가 흥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는 방직공장에서 짠 옷감과 함께 보내는 고된 밤의 아이러니이다. 오빠와 동생을 위하여 어린 나이를 속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상사에게 몸을 맡기면서까지 일하는 점순이의 꿈과 현실에 조응하는 아이러니다.
여기에 같은 나이이고, 같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가 아닌 대학입시의 실패 때문에 인맥을 이용하여 이 공장에 취직, 직공이 아닌 사무원으로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있는 시점과 화자가 대칭점에 놓이는 아이러니가 있다. 갈등은 이 둘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 인물 자체의 성격이 빚어낸다. 점순은 현실에 순응하지만 화자는 이에 저항한다.
이제 결혼하여 딸이 대학에 다니고 있는 화자는 당시 점순이가 짰던 원단으로 앙드레 김이 만든 체크 스커트를 쓰레기통에서 주워 명품을 알아보는 딸에게 주지만 점순이를 유린하는 것 같아 다음날 태워버린다. 딸의 허영을 충족시키기보다 점순이의 현실을 태우는 것이다.
“다 타고 남은 재를 모래에 묻어버리면서 잠깐 딸아이가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같다”의 마지막 문장의 마지막 어휘 ‘같다’에서 짙게 배어있는 휴머니즘의 승리를 보는 것 같다. 현실에서 낡아빠질 대로 낡아빠진 이 휴머니즘이 여기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응모된 몇몇 작품에 대한 평도 하고 싶지만 이는 독자보다 개개의 응모자 한 사람을 상대하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생략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들 작품에만 국한하여 몇 마디 썼다
<소설가 라대곤·오하근 원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