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회] 그리스 여행 3

[결락]

-델포이, 메테오라, 다시 아테네

델포이 가는 길에서 한 컷, 먼 뒤쪽에 있는 마을은 '아라호바' 마을이다. 마을의 오른쪽에 파르나소스 산이 보인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타락하고 방탕한 인간들의 꼴에 분노하여 벼락과 천둥을 이용하여 엄청난 폭우를 쏟아 붓는다. 이 때 유일하게 잠기지 않는 산이 바로 파르나소스 산이다. 성경의 노아처럼 살아남은 한 쌍의 남녀가 있었으니,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의 아들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의 딸이었다. 아들의 이름은 데우칼리온, 딸의 이름은 퓌르라였다. 퓌르라는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한 인류 최초의 여인 판도라의 딸이기도 하다. 단 둘이서 살아 갈 방법이 난망하여 부부는 신들에게 하소연을 한다. 이 때 신탁에 의하여 죄 없는 인간들이 만들어지는데, 파르나소스 산의 돌멩이를 등 뒤로 던지면 돌멩이가 인간이 되었다. 데우칼리온의 돌은 남자, 퓌르라의 돌은 여자가 되었다.

홍수 후에 데우칼리온과 퓌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헬렌' 그리스 인들의 조상이 된다. Greek, Greece로 통칭되는 국가이름은 그리스 인들는 쓰지 않고 헬레닉Hellenic을 사용한다. 헬렌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말이다. 그리스 문화를 일컽는 헬레니즘도 조상의 이름에서 파생되었다.

마을 입구에 유명한 종탑이 있다는데, 출입금지란다. 그리스 당국의 허가를 받아 태양의 무슨 드라마의 키스 신을 촬영했다고 가이드에게 설명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관심이 사라졌다. 패스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여느 그리스 마을과는 다른 유럽풍의 마을이란다. 유럽을 못 가봐서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베이지 톤의 상가와 집들이 산토리니와는 많이 달랐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감이 흐르는 따스한 느낌이랄까.

-델포이 신전에서

델포이 신전 입구 매표소

델포이 신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신전에서의 신탁 덕에 그리스 철학이 발현되고 부흥이 있었다. 신전도 신전이지만, 소크라테스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대지의 자궁 델피, 또는 델포이는 파르나소스 산 남쪽 절벽에 있다. 제우스는 세상의 중심을 찾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동쪽과 서쪽의 끝에서 날려 보낸다. 독수리 두 마리가 하늘에서 만난 지점이 파르나소스 산 정상이다. 제우스는 왜 세상의 중심을 찾았을까.

피톤Python은 해악을 일삼던 용이었다. 티탄 족 여신 레토는 제우스의 꼬임에 뻐져 임신을 한다. 헤라는 질투심에 사로 잡혀 세상의 모든 땅들에게 명령하여 해산할 장소를 내어주지 못 하게 하고, 열불이 나서 '해가 비치는 어떤 곳에서도 해산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다. 또한 피톤을 보내 끊임없이 레토를 협박한다. 슬픔에 방황하던 레토는 바다를 떠다니던 불모의 섬 '오르티기아'에서 쌍둥이를 출산하게 된다. 이 때 높은 파도가 일어 햇볕을 가려주었다. 그 쌍둥이가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다. 이 때문에 불모의 섬 오르티기아는 빛 나는 섬 '델로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뀐다.

아폴론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어머니를 괴롭히던 용, 피톤을 쫒아 복수하기 위해 나선다. 이 때 대지의 자식, 피톤은 파르나소스 산의 발치에 있는 델포이에서 성역을 만들어 사람과 짐승을 마구 해치며 신탁까지 하고 있었다. 아폴론은 수천 발의 화살을 퍼부으며 결국 피톤을 죽인다. 아폴론은 피톤의 시신을 수습하여 세상의 배꼽 '옴팔로스' 밑에 묻었다. 피톤의 성역 델포이는 아폴론의 성역으로 바뀌었고 예언의 신으로 새로이 등극한다. 신탁을 전하는 아폴론의 여사제는 피톤의 이름을 따 피티아Pythia라고 불린다.

신탁/까밀로 미올라Camillo Miola, 1880년 작.

삼각대 위에 피티아가 무아지경에 빠져있다. 왼쪽에 신성한 돌 옴팔로스가 놓여있다.

삼각대가 놓여있던 돌판, 왼쪽에 삼각형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있다. 오른쪽 구멍에서 유황이 피어 올라 여사제는 늘 연기에 취해 있었다.

신전은 여섯 개의 기둥만 남았다. 신전 입구의 돌들과 기둥 밑에 돌판에는 많은 경구들이 새겨져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경구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 낸 아폴론의 두 가지 맹서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아폴론의 맹서 중 또 하나 '모든 것은 과하지 않게'였다. 이 맹서는 현재까지도 그리스 인들의 문화와 정서에 녹아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물이나 조각상을 보면 딱 알맞다는 느낌이다.

출입금지, 신전에서 관광객이 꼭 지켜야 할 덕목이다. 저기 어딘가에 삼각대가 놓여 있었고 사제와 시인들의 거처가 있었다. 외부 손님을 위한 숙소도 있었다는데, 멀리서 쳐다 볼 수 밖에 없는 게 관광객의 덕목이다. 아쉽다.

델포이 극장은 천 명 정도가 입장할 수 있었다. 특별히 보조장치가 없어도 무대에서 관람석의 저쪽 끝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아 연극이나 연주회가 공연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무대에 서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는 하늘에서 거꾸로 떨어져 줄기가 땅에 박혔다고 한다. 신전의 기둥들이 꼭 바오밥나무 같다.

파르나소스 산에 얽힌 또 다른 신화은 아폴론과 무사Mousa 여신들이 함께 머무르며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시를 짓던 곳이기도 하다. 무사 여신의 영어 식 표현은 뮤즈Muse다.

세상의 배꼽 옴팔로스 앞에서. 로마제국 시절에 만들어 놓은 가품이다. 잔짜가 사라졌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해 레아가 아이들을 낳는 족족 삼켜 버렸다. 처음에 헤스티아를, 다음에 데메테르와 헤라를, 하데스, 포세이돈을 순서대로 삼켰다. 레아는 분노했고 세 번째 아들 제우스 대신 보자기에 쌓인 돌덩이를 준다. 크로노스는 의심 없이 삼키고, 나중에 레아는 복수를 위해 크로노스에게 벌꿀이라고 속이며 구토제를 먹인다. 그 때 제일 처음 토해 놓은 게 돌덩이이고 삼킨 역순으로 자식들을 토해낸다.

후에 크로노스와 전쟁에서 승리한 제우스는 토해 놓은 돌덩이를 어딘가에 갖다 두었는데, 그 곳이 대지의 중심 델포이였고 돌덩이는 세계의 배꼽 옴팔로스다. '인간들은 돌에다가 성스러운 기름을 계속해서 발랐으며 풀어진 양모가닥으로 덮어 두었다.'고 신화는 전한다. 독수리를 날린 제우스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신화의 절반은 제우스가 손수 수작업을 하여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위키피디아 출처/델피 박물관 소장 옴팔로스. 물론 가품이다. 진짜는 사라졌다.

-테르모 필레에서

영화 300의 주인공,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청동상. 남근이 신체에 비해 작다. 이는 조각이나 상을 제작할 때 영웅들의 기품과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축소한다고 한다.

수십 만 개의 화살이 빗발 치던 마지막 전장지, 페르시아 왕은 최후의 일인, 레오니다스에게 무릎을 끓으라고 명한다. '와서 가져가라' 레오니다스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테르모 필레 협곡은 땅에 파묻혔다.

온천 폭포에서 그리스 아재들이 즐기고 있다.

우라나라 같으면 노촌탕을 만들고, 온천탕을 만들고, 휴양지 조성을 했을 꺼다. 여기서는 온천이 시냇물이다.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다. 그리스에선 온천이 특별한 게 아닌가 보다.

-메테오라에서

호텔에서 몇 컷.

호텔 벽의 그림들. 운둔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메테오라 운둔자의 거주지는 길이 없고 접근도 불가능한 곳에 있으며,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여도 지금까지 굳건히 버텨 왔다. 발람Varlaam 수도원이 자리한 계곡 절벽에서 용감한 수행자들은 그물을 타고 오르 내렸는데, 길이가 무려 373미터였다고 한다.

바위 위에 세워 진 수도원들. '원래는 땅 위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땅이 바위처럼 점점 자라나서 점차 공중으로 올려졌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이 있다. 아니다. 수도원은 본디 바위 위에 지어졌다.

메테오라Meteora(그리스어: Μετέωρα)는 '매달린 바위' '공중에 매달린' '하늘 바로 아래'라는 뜻이다. 은둔자와 수행자들은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2세기 말에 수도자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마을과 작은 교회가 ‘하늘의 기둥’에 있는 한 기슭에 들어섰는데, 이곳에는 이미 운둔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정치가 상당히 불안했던 14세기에 수도원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봉우리 위에 조직적으로 건축되었고, 15세기 말에는 그 수가 24개에 달했으며 17세기까지 수도원은 계속 번성했다. 현재는 아기오스 스테파노스Aghios Stephanos수도원, 아기아 트리아스Aghia Trias수도원, 발람Varlaam수도원, 메테오론Meteoron수도원, 네 곳에서 종교 공동체를 수용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스테파노스 수도원이다. 현재 이 곳은 수녀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입장 시 여성은 꼭 무릎까지 가리는 스커트, 또는 보자기를 들러야 한다.

수도원의 입구에는 봉향하는 장소가 있다.

수도원 내부는 사진촬영금지이다. 관광객의 덕목은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것이다.

수도원 바깥에서.

수도원 내부는 그리스 정교에 관한 그림이 가득했다. 수행자들이 고문 받는 모습, 그 중에 살가죽을 벗기는 그림도 있었고 화형을 당하는 모습, 돌에 맞아 죽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신들의 시대가 사라진 유일신 시대의 모습은 또 다른 그리스의 모습이다.

- 다시 아테네로, 마지막 밤.

1896년,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는 이렇게 외친다. "짐은 아테네에서 열리는, 첫 번째 올림픽 개최를 선언하노니. 그리스 만세, 그리스인 만세."

파나티나이코 경기장(Panathenaic Stadium)은 기원전 4세기, 아테나 신께 바치는 파나테나이아 제전이 열리던 곳이다.2세기 경, 아크로 폴리스의 헤로디온을 지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재건했다. 그리스어로 칼리마르마로Kallimarmaro(그리스어: Καλλιμάρμαρο, "아름다운 대리암으로 장식한")로도 알려져 있다. 1896년, 첫 번째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이 거행되었으며 양궁 경기장으로 쓰였다.

물론 이 곳도 관광객의 덕목이 우선 시 되는 곳이다.

아테네 구 시가지에서 바라 본 아크로 폴리스.

아탈로스의 스토아. 아탈로스Attalos는 AD 25년 경의 철학자이며 세네카의 스승이다. 스토아Stoa는 '기둥'이라는 뜻이며, 아틀라스의 스토아는 고대 그리스 유적지 중에서 완벽하게 복원을 마쳤다. 현재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도서관은 13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건축되었다. 아크로 폴리스 북쪽 기슭에 있는 성전이다. 한 때는 '아테네 대학교'로 불리었다고 한다.

아크로 폴리스를 배경으로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식사.

가이드의 말로는 소크라테스의 산책로라고 하는데, 이거, 참. 안 믿을 수도 없고.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가 있습니까? 소크라테스의 절친, 카이레폰은 아테네에서 델포이 신전까지 직접 찾아가 대담한 신탁의 질문을 한다.

질문의 대답은 '없다' 딱 한 마디였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전전긍긍하며 신탁을 확인하기 위해 시람들을 붙잡고 질문을 퍼붓고 상대의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질책한다. 너는 왜 너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무지의 지'를 일깨우는 질책 덕에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당한다.

마지막 술잔을 부딪힐 때 김영자 선생님이 외쳤다. 신들의 부름에 응답하여 건배를! 이 외침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중에서.

플라톤의 일지,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재판관으로 나섰던 아테네 시민들을 꾸짖고 당신들이 나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라며 다수의 횡포를 비난한다. 끝내 나를 살리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며 다그친다. 사형이 확정되자 소크라테스는 담담하게 작별의 말을 고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시민법정에 올려 진 노구의 입에서 나온 작별의 말에서 신탁에 대한 믿음이 느껴지고, 그만의 평생의 철학이 온전히 느껴졌다. 내가 그리스를 좋아하는 절반은 소크라테스 때문이다. 제우스가 신들의 왕이라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왕이었다. 신들의 시대를 제우스가 만들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시대를 만들었다. 철학의 옴팔로스, 소크라테스.

독서토론회에서 그리스 여행을 계획할 때, 프로젝트의 명을 정했다.

'신들의 초대'

초대에 응답하여 우리는 술잔을 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신들의 메세지를 들을까 하여 델포이의 여사제가 올라 앉은 그 돌판에 고개를 숙였는 지도 모른다. 우리의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이었다.

우리는 진심이었다.

산토리니 호텔에서 와인 샷.

열 번을 댕겨도 켜지지 않는 라이터처럼, 열기가 몽땅 증발해 버린 새까만 숯처럼, 좀 처럼 마음에 불이 붙지 않는 시절이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계기가 필요한 시점에 다녀 온 그리스는 나를 다시 들뜨게 한다. 신들의 호흡과 사람의 호흡이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다.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파르테논의 아테네, 델포이의 아폴론은 어차피 신의 장소였다.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우연히 만난 여신 에오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음에 불이 일었다. 다시 그리스에 관한 책이 많아졌다. 그리스 역사에 관한 책에 자꾸 애정이 간다.

함께 동행하여 주신 김영자, 이정심, 송미선, 허모영,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다녀오고 난 후,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나에게는 신탁의 말씀이었습니다. 꾸벅.

[허모영]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김명훈 선생님께 감동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사랑할 충분한 자격이 느껴집니다.
그리스~
선생님 덕분에 더 의미가 깊어졌습니다.
저도 네분께 감사드립니다!!!

[고마리(이정심)]

그리스. 다시 되새김질 하듯 잘 보았습니다.
그리운 그리스.

[지칭개(조인혜)]

안간 사람도
갔다온 듯 꼼꼼한 정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