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수] 영화에서 가장 걱정과 논란이 많던 신이다. 말이 필요 없다. 필견(!) 장면이다. 두 배우의 동물적인 연기와 스태프의 고난이도 기술이 만나 예술을 완성한다. 서영희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철종 역을 한 배성우란 배우를 꼭 주목하길 바란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이 장면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와 나도 무척 놀랐다.
2 [철수] 복남이가 태양을 째려보는 장면이다. 뒤에 놀던 할머니들이 “저년이 뭐 하나? 미쳤나?” 하며 쳐다본다. 뭔가 다가올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감자 밭에는 긴장과 적막이 감돈다. 이 장면 찍을 때 서영희가 태양을 째려보지 못하고 자꾸 눈을 깜빡여 NG가 나자 ‘그걸 왜 못하지?’ 하며 내가 한번 태양을 쳐다봤다. 정말 바로 눈을 감았다. 여름날에 태양을 본다는 건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그래서 서영희에게도 태양을 직접 보지 말고 다른 곳을 보라고 했지만, 서영희는 진짜 미쳤는지 태양과 눈싸움을 계속했고, 결국 OK 컷을 찍었다. 그날 난 치매 할아버지 역을 맡으신 유순철 선생님께 많이 혼났다. 배우한테 그런 거 시키면 안 된다고.
[영희] 해를 쳐다보면서 눈을 깜빡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디렉션했다.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눈이 너무 힘들던 것만 기억나는 듯.
3 [철수] 2박 3일 동안 잠 못 자고 찍은 신. 특히 배우들은 분장을 연결하기 위해 피 분장을 뒤집어쓴 채로 있었다는. 실제 파출소로 쓰인 폐건물을 차 타고 지나가다 발견하던 때!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영희] 총 맞는 연기는 처음이라서 민망하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면이다.
4 [철수] 노인을 위한 섬은 없다. 고희를 바라보는 김경애 선생님께 실제로 달려가다 넘어지기를 주문한 신. 대역도 없고, 안전장치도 없었다.
[영희] 할머니 배우 분들이 너무 많이 고생한 장면이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해주셔서 오히려 배운 게 많았다.
5 [철수] 이틀에 걸쳐 나눠서 찍은 신. 모형으로 준비한 플라스틱 낫 세 개는 이미 서영희의 열연 덕에 전부 박살 났다. 할 수 없이 진짜 쇠로 된 낫을 잘라서 이날 촬영에 썼다. 그런데 그만 연기에 몰입한 복남이가 만종의 쇄골을 온 힘을 다해 낫으로 내리 찍었다. 그렇게 맞고도 NG 낼까봐 ‘컷’소리 날 때까지 참은 박정학이란 배우,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스태프들 반응은 살짝 ‘고소하다’ ‘당해도 싸다’는 느낌? 스태프들이 영화에 몰입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복남이가 맞는 장면에서 서영희가 실제로 만종에게 많이 맞았기 때문일까? 하하!
[영희] 이 장면을 무려 사흘 동안 찍었다. 맞고 때리는 장면보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해서 더 힘들던 장면이다.
6 [철수] 복남의 연기를 끌어내기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다. 감정의 연결상 컷을 나누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1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계속 찍었는데 쉽게 OK가 안 났다. 아홉 번째 테이크를 가는데 그동안 눌린 복남의 감정이 드디어 두드러기처럼 올라왔다. 캐릭터의 감정을 가장 설명하기 힘든 신. 감독은 이럴 때 인내심을 갖고 속수무책 기다려야 한다.
[영희] 이 장면을 먼저 찍고, 그 다음에 매니큐어 뿌리는 장면을 촬영했다. 연결 맞추느라 배우, 스태프 모두 어려워했다.
1 [철수] 복남이의 첫 모습. 이러던 복남이가 어떻게 나중에 피를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영희] 복남이가 제일 행복하고 설렌 장면이 아닐까 싶다. 초반에 촬영했는데 그때는 정말 해맑았다는….
2 [철수] 이 장면은 속옷을 입고 있네? 영화에선 그렇지 않으니 실망하지 마시라. 처음엔 속옷을 입고, 젖은 속옷 사이로 비치는 살이 더 야할 거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찍었다. 만족 못해서 세 번째 재촬영까지 해서 겨우 마친 신.
[영희] 촬영을 세 번이나 한 장면. 옷 입은 버전, 벗은 버전, 찍는 중간에 천둥번개까지 쳐서 철수하고 다시 찍은 것까지. 여름이었는데도 너무 추워서 스태프들이 따뜻한 물을 부어줬는데 오히려 김이 나는 바람에 온천물 같아서 기다렸다가 찍고…. 이 장면을 위해 스태프가 샘물터를 만들었다.
3 [철수] 영화의 후반부다. 이쯤 되니 배우들이 알아서 연기해 주었다. 넘어질 때 되면 알아서 넘어지고, 물에 빠질 때가 되면 알아서 빠지고…. 극 중 인물에 완벽히 동일시돼 누가 복남인지 영희인지, 누가 득순지 오용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감독만의 은근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영희] NG 나면 안 되는, 딱 한 번의 기회만 있는 장면이었다. 10년 전 함께 공연한 친구여서 편하게 연기했고, 워낙 상대방이 연기를 잘해줘서 한 번에 OK 난 장면.
4 [철수] 진짜 회칼이다. 이 영화, 다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진짜가 많은지….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데는 돈이 정말 많이 든다. 진짜로 하면, 돈도 안 들고 관객이 피부로 느끼는 감동도 크다. 단지 위험할 뿐이지…. 옛날 영화는 다 그렇게 찍었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된다. 아무튼, 아무 디렉션 없이 서영희가 알아서 한 번에 모든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한 장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면서 이 장면 놓치면 쪼끔 불행한 거죠.
[영희] 촬영할 때는 안 그런 것 같았는데, 이 사진을 보니 내가 엄청 편해 보인다.
5 [철수] 동호 할매와 해원. 많은 부분이 복남에게 할애되어 있지만, 복남과 함께 삼각편대를 유지해 관객의 심장을 폭격하는(너무 자찬인가?) 중요한 두 축을 담당하는 백수련 선생님과 지성원. 두 분이 30년이 넘게 연륜과 경륜의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영화는 첫 작품이라는 것. 감독으로서도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두 분 다 가장 주목받는 올해의 신인 여우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6 [철수] 갈대숲 장면. 섬에 헌팅하러 갔을 때, 유난히 하얀 갈대숲이 눈에 띄었다. 소나무 사이에 덩그러니 떼를 지어 움츠려 있던 대나무가 되지 못한 갈대들. 바람이 불자 갈대들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재잘재잘재잘… 수근수근수근…. “우리가 왜 이렇게 말라 죽은 줄 아니?”
[영희] 이 대나무 숲이 이렇게 예쁘게 나올 줄 몰랐다. 느낌이 삭막한 죽은 대나무. 그리고 무서움에 떨고 계시는 백수련 선생님…. 연기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