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 닥칠 때마다 힘 모아 위기극복 노력 백성들 염원 담아 문수산 신령에 단비 기원해 문수사 창건 유래와 수려한 풍광 노래한 시도
▲ 문수산에 자리잡은 문수사 전경.
문수산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의 서북쪽에 위치한 해발 599m의 산으로 웅촌면, 범서면, 삼남면 등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청량산·영취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예로부터 문수보살이 사는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 왔고,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여기에서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문수사(예전에는 문수암이었음)는 이 산의 7, 8부 능선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신라 원성왕 때 이곳에서 수행하던 고승 연회(緣會)가 국사(國師)로 초빙되었으나 사양하려고 도망하자 문수보살과 변재천녀(辯才天女)가 출현해 그를 말림으로써 결국 국사가 되었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산과 사찰은 불교에서 매우 뜻깊은 의미를 지니는 성지임을 알 수 있다. 이 설화는 연회 스님이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만난 곳이 ‘문수점(文殊岾)’이 되고, 불법을 노래하는 여신인 변재천녀를 만난 곳이 ‘아니점(阿尼岾)’이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문수산 기우문> 박시무 저 깎아지른 문수산은, 큰 신령이 사는 곳이니 그 광채를 크게 뿜어내며, 이처럼 흡족히 은혜를 베푸네. 기도하면 문득 감응하여, 우리 남쪽 지방을 윤택하게 하는데 지금 이곳은 가뭄이 한창이라, 한발의 위력이 이처럼 혹독하네. 처음에는 거북등처럼 터지더니, 나중에는 물고기가 사는 못도 말랐는데 여러 달 더위가 심하여, 대지는 씻어 버린 듯 깨끗하네. 한 고을의 목숨 가진 이들에게, 어찌 곡식을 줄 수 있다고 하겠는가? 직무를 제대로 행하지 못한 허물이 있기 때문에, 두루 옥그릇을 올리는데 작은 정성이라도 바치지 않으면 신령의 감응은 더 멀어지리. 조용히 잘못을 헤아리자니, 두려움과 움츠림은 더 커지는데 삼가 존엄한 신령을 생각해 보니, 화와 복을 내릴 수 있네. 위엄은 흉년에 더해지고, 은혜는 검소한 음식에서 더해지니 제단을 깨끗이 쓸고, 깨끗한 몸으로 간절히 축원 드리네. 부디 밝게 감통하는 은혜를 베풀어, 흡족하게 단비를 내려 주소서.
박시무(1828~1879년)의 이 기우제문은 영험한 문수산 신령에게 가뭄에 단비를 내려주기를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수산의 신령은 큰 은혜를 베푸는 존재인 만큼, 전답이 거북등처럼 터지고 못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백성의 안타까운 처지를 긍휼히 여기고 감통의 은혜를 베풀어 단비를 흡족하게 내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제문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문수산의 신령을 감동케 하여 비를 내리게 하려는 간절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하여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고을 백성 모두가 고통받는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를 당했을 때 지경 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성을 한 군데 모음으로써 그 위기를 합심하여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기우제문과 같은 축문은 수많은 백성의 염원을 담은 기원의 표현이었으므로, 그들을 대표하여 축원하는 사람은 이 글에서 보듯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정성을 다하여 진심으로 천지신명이 감동하여 감통하는 은혜를 베풀기를 바라는 진정을 진솔하게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수암에서 짓다> - 이양오 옛 부처가 날아온 곳에 신라 때부터 세월이 이어지네. 나그네는 붉은 수풀을 뚫고 들어오는데 승려는 흰 구름 속에서 잠자네. 돌은 늙어서 살펴보니 그림 같은데 누각은 높아서 앉으니 배인 듯하네. 동해의 봉래산(蓬萊山)이 가까이 있으니 참으로 날아다니는 신선을 옆에 끼고 싶네.
古佛飛來地 新羅歲月綿 客穿紅樹入 僧臥白雲眠 石老看如畫 樓危坐似船 東臨蓬海近 政欲挾飛仙
이양오(1737~1811년)의 이 시는 문수사의 유래와 주변의 빼어난 풍광에서 오는 상쾌한 느낌을 형상화하고 있다. 수련(首聯)에서 석가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던 인도의 영취산(靈鷲山)을 옮겨온 듯 동명(同名)의 영취
▲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산(문수산의 다른 이름) 자락에 있는 이 사찰은 신라 때부터 세월이 이어져 온다고 하여 그 연원이 매우 오램을 밝힌 다음, 함련(頷聯)에서는 나그네가 붉게 물든 단풍 숲을 뚫고 이곳을 찾아오지만 승려는 한가롭게 흰 구름 속에서 낮잠을 잘 정도로 한가로운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경련(頸聯)에서 주변의 돌은 늙어서 그림처럼 문양이 생겨나고 누각은 높아서 배를 탄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 뒤, 미련(尾聯)에서는 동쪽 바다에 신선이 산다고 하는 봉래산이 가까운 만큼 참으로 날아다니는 신선을 옆에 끼고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 의하면 봉래산은 왕래가 어려워서 날아다니는 신선(飛仙) 만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우리의 삶이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다함이 없음을 부러워하여 하늘을 나는 신선을 옆에 끼고 마음껏 날며 노닐고 싶네.(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遊)”라는 대목을 변용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곳이 별세계로 인식될 만큼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