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늬 비닐봉지
윤명수
마트에서 도착하자마자
가진 것 다 털리고 쫓겨났다
빈 몸으로 길바닥을 헤매고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추락할 때는 땅바닥을 쳐야만 비상 한다는
바람의 말만 믿고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건너고 있다
차가 지나는 빈틈을 찾아
꿈지럭꿈지럭 길 가운데로 다가선다
달려드는 차에 움찔 뒷걸음질을 친다
조급한 마음에 그만 덤프차와 맞부딪치고
차바퀴에 제 몸을 휘감고 하늘로 치솟는다
비닐봉지 통치마속에서
어두웠던 과거가 보인다
무 배추 양파 대파 생선
비린내 나는 생을 다 털어버리고
하늘을 날고 있다
나도 가진 것 다 오바이트 하고나면
저렇게 날 수 있을까
까마득히 쳐다만 볼 뿐이다
콩나물 시루
윤명수
콩나물시루 속의 아홉 남매가
머리를 박박 밀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궁벽한 극지라 숨이 막힌다
누울 곳도 없고
발 뻗을 틈조차 없다
머리와 머리가 부딪히고
코밑에서는 비릿한 발 냄새가 난다
선채로 세상 속에 던져질 몸들
까만 이불속에서
시려운 맨발을 삐죽이 내밀고 있다
물 한 방울이라도 서로 먹겠다고
저요저요 하며
쑥쑥 머리를 치켜든다
밑 빠진 독에는 늘 물이 빠져있듯
빈 그릇 속에서는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시끌벅적 하다
오지 냉방에서 부황난 얼굴들이
물배만 잔뜩 내밀고 있다
똥 장군
윤명수
아궁이 재가 싸늘하게 식어 갈 때
여명은 닭을 깨우고
닭은 똥 장군을 깨웠다
꽃샘바람 골목으로
돌 쪽 같은 이빨을 악 다물고
똥 장군은 달렸다
안개 밥을 떠먹는 아침이면
가시 울타리에
참새 떼들이 옹골차게 지졸 거리고
동살이 굼뜬 들판에는
가난의 씨앗이 자라났다
외양간의 누렁소가 여물을 먹고 나면
놋쇠 요령을 흔들며
코뚜레가 된 똥 장군을 몰고
눈알을 부라리며 시태질을 했다
산야에 들풀처럼
땅바닥에 뿌리를 둔 똥 장군은
한줄기 햇살과 한 방울의 물
그리고 한줌의 바람이 키웠다
프로필
경북 영천 출생
연세대 사회교육원 시창작반 수료
월간 문학세계 등단
시집 풀꽃만찬 청개구리가 뛴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광명문학 원고방
광명문학제20호
민무늬 비닐봉지 외 2편
다음검색
첫댓글 프로필 사진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