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인 '여린(가명)'이는 무척이나 귀엽게 생겼고, 어린 아이 같은 말투를 하며, 엄마와 동생을 무척 좋아하고 아낀다. 하지만, 여린이는 마음이 아프다.
어릴 때부터 아빠의 폭력으로 힘들어했고, 중학교 때는 우울증으로 신경정신과 약을 1년 정도 복용한 경험이 있었다. 칼로 손목을 긋는 자해도 여러 차례 시도했었다.
여린이는 아빠를 무서워했고, 미워했고,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냥 엄마랑 동생이랑만 살고 싶어했다. 아빠가 자신을 때릴 때를 대비해서 칼을 간적도 있다고 한다. 벽지에는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문구로 거의 도배 할 정도라니 아빠에 대한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상담을 시작하며 아빠가 여린이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 자신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삶을 살았는데, 딸이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화가 나 미칠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고, 자신 때문에 딸이 아프고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여린이에게 전달했고, 아빠의 기질적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자, 아빠의 진심을 알게 되었는 지, 조금씩 마음 문을 열게 되었고, 부녀사이는 많이 좋아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여린이 어머니로부터 갑작스런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여린이 아빠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순간, 머릿속에 여린이 얼굴이 스쳐지나갔고, 다음 상담시간에 여린이를 어떻게 위로해야하나 참으로 걱정되었다. 그런데 정작 여린이는 상담시간에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들어왔다.
상담자가 슬며시 건넨 말에 “웃으며, 저는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정말 괜찮은 걸까? 저 어린 것이 아빠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너무 슬펐다. 그리고 아빠의 죽음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는 것 같아, 억지로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다음에 맘 편할 때 이야기 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새벽에 여린이로부터 자신이 위험해 지려는 것 같아 무섭다는 문자 한통을 받고 다음날 급히 상담일정을 잡았다.
그때는 이미 손목에 20개의 칼자국을 낸 상태였다. 심각성을 느낀 상담자는 아빠의 죽음에 대해 여린이의 감정을 다루기 시작했다.
여린이에게 타로카드 한 장을 뽑게 했는데, 여린이가 뽑은 카드는 ‘5번 교황’카드였다.
“왕이 신하들의 말을 안 들어주고, 나아가는 느낌. 뭔가 혼자 일을 스스로 하는 것 같은데요? 기분은 안 좋아 보이네요."
나는 물었다. "만일 여린이가 화가가 되어 이 그림을 지금보다 보기좋게 그린다면 어떻게 그리고 싶니?" "음..이그림을 바꿔본다면 왕이 신하들을 봐 주고, 웃는 표정으로 바꾸고 싶어요”. 계속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만 하는 여린이의 감정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린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슬프다, 유감이다, 걱정스럽다, 무섭다, 쓸쓸하다, 괴롭다, 실망스럽다, 답답하다”라고 그림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요즘 아빠랑 사이가 좋았는데,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기 괴로웠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서 걱정했고, 아빠의 인생을 생각하며 슬퍼했다. 또한 자신이 그동안 아빠에게 보여준 태도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다. 여린이가 그림을 보며 왕 밑의 '신하'라고 표현했던 두 사람은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며 그림에 투사하고 있었다. 여린이가 타로 그림을 리딩한 내용을 좋합적으로 피드백해주며, 아빠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강조했고, 앞으로 슬퍼하고 괴로워 하기 보다는 남은 가족을 봐 줘야 하고, 웃는 얼굴로 씩씩하고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린이에게 타로카드 한 장으로 깊은 마음을 들여다 보고, 위로하고 격려 할 수 있어 좋았다. 싹(SSAC) 심리상담센터 소장 이 성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