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작전사 참모장 시절>(‘01.2.20~’03.4.20)
·‘01.2.26.
춘분 날 20 기계화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을 마치고 항작사로 왔다. K 란 보병 출신 지휘관을 모시고 근무하게 되었다.
00.3.9.
항작사 참모장으로 보직된지 20일이 지났다. 부사단장 생활보다 분주했다. 1여단장 근무 때보다는 격이 높으니 보람은 있다.
‘01.4.2.
식목일 ,이 곳에 온지도 1개월이 지났다. 책을 만들고 수필집을 준비하고 .술 버릇이 정말로 고약한 사람을 만났다. 지휘관이 술을 너무 좋아하니 참모들이 어려운데 중간 역할이 필요한데 군에서 상급자에게 어떻게 말하기도 그렇고 ...+
* 지휘관의 지나친 음주로 인하여 많은 참모들이나 주변사람이 어려워하는 것을 보다 못한 나는 육군지에 술에 관한 이야기를 시리즈로 기고를 하기도 했다.
-술과 군인,
-술과 건강,
-술과 인생 이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쳐 시리즈로 게재를 하기까지 하였다. 그 사람이 혹시라도 읽게되면 좀 참고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 후로 그 사람도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회식을 하다가 가끔 첫잔은 폭탄주로 해도 괜찮지? 하고 나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01.4.12.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고 나면 썩어지리라. 아름다웠던 얼굴도 추한 얼굴도 마찬가지다, 아 ! 인생이란 길지도 않는 것. 우리가 그토록 애착하여 붙잡고자 하는 시간은 그렇게무정한 부질없음을 깨닫게되는 날까지쉼 없이 흘러만 가리라. 불쌍한 존재로다. 사람이란 참으로 불쌍한 존재로다. 저 모습이 내가 아니라 다른 이 라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영원하지도 않는 현생의 삶에 애착하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더더구ㅏ 취한 기분을 즐긴다해도 깨고나면 바둑이끝난다음이나 파도가 지나간 해변의 모래밭에 그려둔 연인의 사랑의 맹세처럼 .저 가을 하늘을 날아간 길기 떼의 울음소리 사라져가듯 천년만년 지휘관으로 군림 할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여 그대 아무리 잘난체해도 1~2년이면 끝나고 떠나가리라..왜 그것을 모르는가.
<人生 未 滿 百 , 常懷 千年 憂>
겨우 백년도 다 채우지 못하면서 항시 천년후의 걱정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독고 명대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주더라도 이미 받아들일 수 가 없는 단계에 자신이 도달해 있다는 것을 , 그리하여 그 모든 번뇌로 인한 과오를 스스로 짊어져야 할 그 날이 오고서야 올바른 깨달음이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게 될 것임을...>
‘01.4.26.
1964년 고교 입학시 경주로 이사를 갔는데 37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증조부<세(世)안(安)> 할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
‘01.5.23.
지나치게 예방하는 것은 지나치게 예방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좋다.
‘01.5.31.
301 대대 사고 후유증이 크다. 유가족들의 횡포에의한 영안소를 찾아온 참모총장의 봉변 그것이 어떻게 모두가 참모장의 책임인가 말이다. 경호 소대장과 인사참모부장 그리고 수행부관까지 다 같이 있었는데 영안실 바같에서 대기하던 내가 제지하지를 못했다고 ...
모든 것이 참모장의 탓이라고 하니 기가막힌다.따지고보면 정훈 공보실장이 지금은 가족들이 안정을 찾지못하여 해부대 지휘관이 다녀간 후에 가시는 겟이 좋다고 건의를 했는데도 무시하고 왔던 참모총장의 탓이 오히려크다고 할 것이다.
* 국방부 회의를 참석하고 대전으로 가던길에 참모총장이 올림픽대교 상공의 기념물을 올리던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조종사의 가족들과 친척들이 문상을 왔던 참모총장에게 물을끼얹은 일이 있었음
‘01.6.1.
301사고 후유증,내 생각에는 이모든 것이 지휘관이 매일 술에 취해 흥청거리니 부대의 전 간부들의 기강이 느슨해진 탓이라고 생각한다. 윗사람이 매일 폭탄주에 찌들어 있고,그분위기가 저 말단 대대까지 파급이되어 주말이면 조종사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우후만되면 축구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함성과 군가를 가창하고 ...보병부대씩으로 항공 부대를 지휘하려했던 지휘관의 섬세하지 못한 지휘기풍의 영향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야간 비행을 하려면 조종사들을 오ㅜ 4시경 조기 퇴근을 시킨다음 저녁식사를 하고 부대로출근하여 야간 암조응을 위하여 암실에서 대기한다음 여름청이면 적어도 오후 9시는 넘어야 제대로된 야간 비행훈련이 가능한데 저녁 9시경이면 야간 비행을 끝마치라고 하는 억지는 한마디로 코메디였다. 일광 조건에따라 밤11시나 새벽한시에도 제대로된 야간비행을 하고 다음날은 오전에 취침을 하고 오후 1시경에 출근하도록 항공 부대의 상황에 맞는 지휘가 필수인데 그저 오후만되면 뛰고 달리고 축구를 하고 ..
그렇게 부대운용을 하는 것은 보병부대에는 맞는지 몰라도 전시 항공 장교들의 생존을 위한 효율적인 항공 전술전기를 배양하는 데는 부적절한 조치였다. 그래서 내가 대대장들에게 부대를 중대별로 구분하여 돌아가면서 운동을 하고 야간비행을 하는 중대는 일찍 퇴근하여 야간비행준비를 하라고 했더니 그런 것도 이해를 못한 한심한 지휘관이었다. 그래서 사령부에서의 잦은 회식이 항공 부대이 오랜 전통을 고려하지 못하고 엇박자가 나는 기이한 분위기가 한동안 있었으며 올림픽 대교 상의 헬기사고(CH-47)와 Bo-105 헬기가 비상 훈련중에 일어난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었다. ..이번기회에 지휘관이 자숙하고 전 요원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01.6.4.
폭풍처럼 지나간 5월 29일 CH-47 사고 .5월30일 온종일 수도병원에서 유족들과 협상을 하던중 길형보 총장 방문에 유족들의 난동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01.6.12.
비육사 장교의 투터운 벽과의 싸움,그리고 생존 전략, 위기를 넘기는 방법은 하느님께 기도하고 모두에게 기도 하는 자세로 살아갈 뿐이다.
AH-1S공격헬기 대대가 창설이되는 어느 대 대대장 요원을 육사출신 장교를 보직해야 된다는 육군의 모 보병소장이 있었다.어떻게 그 중요한 대대의 지휘관을 비육사출신이 하느냐고 ...
항공대대의 지휘관은 편제 항공기를 조종하고 운영한 경험이 많고 또한 편제 항공기의 조종자격이 있는 조종사로서 적어도 정조종사이거나 교관조종사 자격을 가진자이라야 항공기를 운영하는동안 부하장교들을 교육을 시키고 조종기량에따른 임무의 난이도를 고려하여 조종사를 편성하는등 그야말로 임무의 성공여부는 물론, 비행안전에도 반드시 고려할 사항인데, 임관구분이 아니라 편제 항공기를 운영관리하는 능력을 고려하여 보직을 해야하는 것이 필수 고려사항인데 육사출신 장교는 축구를 하던 장교라도 정구감독을 시키고 수영을 시켜도 된다는 식의 인식이 잘못된 군의 오랜 인사상의 난맥상이었다.특히 항공 병과의 경우는 전투병과의 장교가 ㅅㄴ발 시험을 거쳐서 항공학교에서 오랜 시간동안을 인력과 장비를 통한 고도의 훈련을 통하여 수억내지 수백억원대의 고가의 장비를 조종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관계로 조종과정을 졸업하고나서도 부대에서 부조종사,정조종사 그리고 교관조종사, 조종평가교관등의 기량을 쌓아가면서도 주간 비행, 야간비행 그리고 야간 N.V.G. Goggle비행을 숙달하려면 10여년을 걸려서 훈련을 시켜도 마음이 놓이지않아서 늘 계층별로 주기적으로 기량을 관리 유지해나가야 하거늘 육사를 나왔다고 보병들처럼 때만되면 착착 진급을 시켜놓으면 중위시절에 그 사람에게 조종기량을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 그 교관이 아직 소령인데 벌써 중령이되었다고 하루 아침에 대대장이라고 보직을 주면 그런 대대가 어떻게 항공 대대로서 안전하게 비행임무를 수행할 것인가 말이다. 비행기량과 비행기의 정비 ,보급, 개별조종사들의 기량까지 훤히 알고 안전하게 항공기를 직접관리 운용하는 항공 대대급의 부대를 지휘를 하려면 스스로 항공기를 타고 운영하면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야지 그렇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서 진급이 된 그런 사람에게 보병부대처럼 지휘관 보직을 준다면, 항공 부대나 기술집약적인 부대는 효율성이나 안전성이 떨어지고 그런부대의 구성원들이 임무수행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군의 고위직 지휘관들이 꼭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01.6.13.수.
가믐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민항기 조종사가 파업을 한다고 ,군인들이 자기희생이 강요되는 삶과 비교하면 큰차이가 난다.
‘01.6.21.
오늘 국회의사당에 다녀 왔다,98년도 헬기관련,민간인들이 사고 소청심의를 제기한 것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01.6.23.
<CH-47사고 유감>
시누크 헬기 사고 가 있었다. 서울시가 준비하고 추진 했던 ‘88올림픽 기념조형물의 상단에 2002월드컵 축구개최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조형물을 올림픽대교 위에 시누크 헬기로 올리는 임무를 마친 헬기가 한강으로 추락을 했다. 인양줄의 길이 선택이 잘못 되었는지 상판위로 흐르는 기류의 탓인지,조종사의 임무 수행간 조종실 내부의 스윗치 조작(인양 호이스트 케이불 분리를 위한) 실수였는지 그것은 조사 중이기도 하고......
순직 조종사의 빈소에 분향을 하러왔던 참모총장이 철이 없어도 한참 없는 유족(전홍엽준위)들이 뿌리는 물을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하고 허겁지겁 떠났다. 그런데 그일로 인하여 돌아가던 차안에서 길형보 총장은 휴대폰으로 몹시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업무를 좀 깔끔하게 하라!”
고 역정을 내고 전화를 끊었다. 개신교의 집사 직책을 지닌 육군의 총수란 사람이 자기 개인의 감정으로 그렇게 화를 낸다는 것이 서글펐다. 이어서 항작사에 감찰 조사를 내 보낸다고 했다. 사령관 김 모 장군도 현장에서 나에게 유족들을 잘 통제하지 못했다고 며칠간 잔뜩찌푸린 인상을 펼 생각을 하지않고 있었다.
5.29일 발생 사고 5.31.영결식. 6.1 안장식 그리고 감찰감외 3명이 조사를 나오고 이어서 105대대 500엠디에 부착된 소화기의 폭발사고가 또 일어났고, 107대대 간부가 회식후에 귀가하다가 뺑손이 차에 치어 죽고, 통신 대대 병사가 사격장에서 유탄을 맞아 수도 통합병원으로 후송을 가고 ,,,103대대에서 다시 BO-105헬기 훈련중 불시착하는 사고 가 발생하고 ,그런데 16일(토)에 식사를 하다가 7번 홀의 소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하는 말을 식사자리에 참석했던 3명이 모두 같이 들었는데, 18일 베어버린 그 소나무를 보고 누가 베라고 해느냐며 자기는 전혀 모르는 듯한 말을 하는 사령관의 변덕에는 혀가 내둘릴 판이다.
특히 최근에 사령부 예하의 전 항공대대 간부들에게 신뢰 할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은 정말 괴롭고 슬픈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장군으로서 상급자인 그에게 이러저러하지 않았느냐고 그 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따져서 그의 과실을 인정시키는 결례를 할 수도 없고,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군에도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덕스러운 장군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국회 국방위에 다녀왔다,, 6,21일 그날 임진출 의원 사무실을 다녀왔는데 귀대하여 BO-105사고 현장에 가 있는데 전화가 왔다. 26일에 들리겠다고 했더니 정기모임을 가지자고 했다. 군인과 야당 정치인의 만남이 모양새가 그렇다. 어떻게 비칠까 생각해 볼일이다.오늘부터 모든 항작사 장병들이 2박3일간 영내대기를 하면서 안전 비행을 위한 대책토의, 정신교육 등을 하기로 했다. 안전을 위한 노력은 지나치는 법이 없을 만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뿐이다.
‘01.7.2.월
< 욕심>
사람들은 모두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한다.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는 말이다. 사실은 공감하고 인정하지 못해도 어쩔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K 그는 중장이다.
지난 5월 29일 헬기 사고 가 있었다. 그 사고 관련 대책위원장이란 임무를 받았던 나는 수도병원 영안실에서 분향을 하려고 왔던 육군 참모 총장에게 가족의 사망소식에 들뜬 유족들이 자기 자식을 살려달라고 떼를 쓰면서 총장을 향해 물을 끼얹는 결례를 저질렀다. 그 것을 보고 어느 기자가 그 사진을 밤새 보도가 되지않도록 노력했던 정훈장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사진이 일부 언론에 공개가 되었다.당일 현장을 떠나면서 총장이 화가 나서 휴대폰으로 나에게 화를 내기까지 했었다.
사실 국방부회의를 마치고 작전사령관들은 오후 합참회의가 있어서 항작 사령관은 오지않았고 오후회의 참석을 하지 않는 총장이 대전으로 가는 길에 문상을 오려고 했을 때 정훈공보관이 지금은 유족들이 흥분한 상황이라서 적절한 때가 아니라고 건의를 했는데도 생각없는 총장이 왔다가 그런 난리를 쳤는데, 자기가 사려깊지 못했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유족들의 결례만 탓하고 덩달아서 현장에서 유족들 통제를 잘 못했다고 나에게 원망을 해대니 말이다.육군 본부에서 유족들의 난동을 조사하기위해 감찰조사를 하겠다고 까지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더욱 가관인 것은 지휘관 k 장근의 태도였다. 부대활동의 모든 책임은 지휘관에게 있다는 것은 소위도 알아야 할 일인데도 현장에 같이 있었단 참모장의 잘못이라는 투의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안타깝게 했었다.
‘01.7.6.금.
<엊그제 5일 아침 11시 40분경 경남 진해시 호미섬 부근 해상에서 헬기가 추락했다고 ..탑승객10명중 6명이 사망 했다고 한다.이 헬기에는 동국제강 회장 일행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H-76헬기인데 최대 11명이탈 수 있는데 신 항만 공사 현장 답사를 갔던 비행기인데 조종사가 두명중에 한명이 중상이고 한명은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망한 조종사가 나와 오랜 세월 같이 근무를 했던 후배였다. 조종사로 근무하는 동안의 삶의 현장에서 항상 접하는 것이 생사의 위험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부대의 참모 생활도 같이했고 얼마전에도 이천에서 같이 식사도 하고 헤어졌던 사람인데 마음이 아프다. 물론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지만 말이다.
‘01.7.13.
< 술을 왜 마시는가?>
13일의 금요일 ,비행기를 조종하는 항공 장교들과 그들의 아내들은 13일의 금요일이 괜히 기분이 좀 찜찜한 날이다.오늘은 창밖을 보니 시정이 1/2마일이고 악시정 경보가 내렸다고 한다. 시정이 Zero라면 항공기 운항은 통제할 기상이다. 무리하면 사고로 이어질 뿐이다.
“술은 왜 마시느냐?” 이질문은 내가 대위시절 군단에 전속부관으로 있을 당시 Lee군단장께서 하시던 질문이다.
<그냥군단장님께서 마시라고 주시니까 마십니다.라고 했더니 그것은 먹는다는 것이고 정말로 마신다는 표현은 다르다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다 성년이 되면 나름대로 인격적인 가면을 쓰고 산다는 것이다.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고 견제하고 ... 그러므로 함께 일하는 조직내의 사람들끼리는 가끔씩 술을 같이 마시면서 서로에 대한 인격적인 가면을 벗고, 진면목을 보여 주면서 술을 마신다면 그 다음부터는 서로간에 업무협조도 잘된다고 하셨다. 포병 소위시절 철원으로 전입을 갔을 때 대대장 오기전 중령이 나의 전입 회식을 하던 날 술을 마시는데 6대 불문율을 이야기 하셨다.그 여섯 가지가 다음과 같다.
.상하 불문
.노소 불문
.청탁 불문
.남여 불문
.현외 불문
.입좌 불문
오래전 소위 시절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요즘도 가끔 술자리가 있으면 골프나 바둑처럼 실력차이를 고려 하지않고 무조건 똑같이 마시기를 강요당하는 경우와 폭탄주를 강요하는 경우에는 좀 곤란하다.지난주 말에도 과음을 했는데 엊그제는 또 감찰 검열을 나온 검열단장과 사령관과 같이 소주 양주 폭탄주를 마시고, 오늘 종일 고통스러워 혼이났다.군의 술 문화 정말 고쳐야 한다. 6.25.발발 전야에 군의 간부들이 육군회관 준공식 기념 회식을 하고 참모총장마져도 술이 취한제 새벽에 전쟁발발 보고를 받았다고 하니 .
지금도 전방 부대에서 주요 간부들이 회식을 하고 만취 상태에서 거소에 있다고 한들 만취상태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01.7.30.
<휴일 뒷날>
비가 내리는 주말은 권태롭다, 어제는 경우가 근무하는 용인에 면회를 다녀왔다.김서방내외와 민희가 왔었다.나는 아내와 서울에 있는 정원이도 대전으로 간다면서 같이 왔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대령, 김중령들과 같이 9홀을 돌았다.지난 29일에는 my life best score를 쳤다. 75타... 지난 하계휴양dmf 다녀오던 길에 남성대 유승일 대령과 황광혁 대령을 남성대 입구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고 나오다가 중고골프채 가게에서 내가쓰던 구형채를 다 팔고 중고 S-yard채를 사왔다.
‘01.7.31.
<군대 예절>
흔히 군인 상호간에 예절을 이야기한다. 특히 간부들간에 상하급자간에 지킬 절차중에는 계통을 밟아서 명령지시가 전파되어야 하지만 계통을 거치지않고 명령지시가 전달 될 경우에는 지체없이 중간 지휘자에게 알려야 한다.그리고 소대장의 과실은 소대원이 보는 앞에서 나무라면 그 중대장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지휘관이 된다. 오늘 아침 K장군의 태도는 수준이하였다.
‘01.8.20~28..
<‘01.UFL연습>
‘69.5.부터 32년 째 군복을 입고 살고 있다. 55년의 인생(’47.9.17~‘91.8.20)중에 제일 중요한 부분을 (22살부터) 군인으로 살고 있다. 오늘 새벽 5시 반에 영외거주자 훈련 소집으로 부대에 들어왔다. 오늘저녁(28)대전에 사는 정원이와 서울에 사는 자윤이가 이천으로 내려왔다. 아내는 어제 와 있고 아내가 52세되는 생일이다. 아들 딸들이 용돈을 아껴서 선물을 마련하고 서울에서 과외가 끝나고 저녁 8시에 집으로 오는 자윤이를 태우러 1003호를 보냈다.금년 10월 3일이면 결혼 25주년이된다 .때로는 아내의 생일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던 날도 있다.알지만 부대 일로 전화로 대신한 적도 많다. 남편이 장군으로 진급을 했지만, 나는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가슴속에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허허롭기도 하겠지.그 많은 세월 동안 싸우기도 하고 원망도 하면서 지난 25년 세월 ..그래도 자윤이 정원이가 잘자라 주었고 건강하니 감사할 일이다.내년이면 대학 4학년이 되는 두 아이들과 함께 조촐하게 아내의 생일 상을 차려놓고 촛불이라도 끄면서 생일 축가를 불러주고 다시 부대로 들어와야 한다.
‘01.9.13.
어제 국정 감사가 합참에서 있었다.사령관 참모들이 감사장에갔다가 미국 무역센터 건물이 태러를 당하는 바람에 무위로 끝나고 왔다.
‘01.10.21.일.
골프 인생 10여년에 비승대 골프장 6번 홀에서 Hole in one을 했다. 고정익 조종 68기 동기생들과 같이 운동을 하다가 2팀이 같이 운동을 했는데 ..언젠가는 나도 홀인원을 한번 해보았으면 하고 소망했는데 ...,다음주 일요일 재편성을 해서 같은 팀끼리 운동을 다시 한번 더 해야겠다 그리고 축하도 받고 축하도 하고 ..
동반자는 이우집,최용복,조성명이었다.
‘01.10.30.
<장군이되기까지>라는 책을 출판 준비 중이다. 그런데 그 3천부가 다 팔리기나 할 것인가 의문이다. 저녁에는 헌병,군수,조찬희 중령과 같이 식사를 했다. 아내가 월화 1박2일간 왔다가 서울로 가고
육군지에 <술과 군인>이란 글을 써서 보내려고 한다 .그사람이 반응이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하다.
‘01.12.7.
선원에 다녀왔다. 책의 출판이 잔손이 많이 간다. 몇 번을 확인해도 오 탈자가나오니 ,인생 백년에 무엇을 이루었는가하는 말처럼, 그런대로 55년의 세월 속에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병생활 속에 떠돌던 나그네 같은 마음으로 하늘 저쪽에 흐르는 구름에 시름을 날려 보내고 오월 하늘에 날아가 버린 풍선을 아쉬워 하며 눈물짓던 소년처럼 텅빈 어머님의 장바구니속의 알사탕을 기다리던 가난한 소년이었던 나, 지금은 항공작전 사령부의 천여명의 조종사들에게 그들의 삶을 지도하고 챙기는 위치에서 그들이 모르는 것을 지도하면서 살고 있다. 책의 탄생을 가슴 두근그리며 책을 수정하고 있다. 몇권이나 팔릴 까? 나이를 먹으면서 여태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일까? 여기저기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는 친구들의 청첩장을 받으면서 나의 자식들을 생각한다. ‘76.10.3. 경주 동광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불국사 로 갔던 일 그리고 조치원,용인,태평동을 거쳐 돌고돌아다니던 일 그 많은 세월 속에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까를 의식하면서 살아온 나날들
이제부터는 나의 삶을 살자고 마음을 다짐해 보지만 그러나 늘 양보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참고 참으면서 아내의 잔소리..침묵으로 일관하며 몇 번이나 맞받아치다가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 결혼 생활은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나 철길처럼 평행하게 나아가는 것인가?
‘01.12.23.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교우 두사람과 식사를 했다. 일생동안 최소한 3권의 책은 쓰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논문집 한권(행정학 박사 학위).
-수기치인(修己治人)
-나의 어머니 채 마리아
-장군이되기까지.
4권의 책을 인쇄했다. 앞으로도 최소한 수필집 한권은 더 내고 싶다.
*2006년에< 歸園>.2011년에< 아! 연하동>을 출간 했음.
‘01.12.31.
임오년이 다가오고 있다. 신사년이 가고 말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말을 잘 그린다는 화가 한분이 지난 24일 부대에 와서 말 그림을 그려 주고 갔다.
<장군이 되기까지>라는 책이 나왔다. 예상 했던 대로 아내의 반발이 컸다. 그덕에 온가족이 새벽까지 주정을 듣다가 보낸 제야의 종소리도 못듣고 20시에 상승대 비승대 가족들이 모여 미사를 참석하고 아내와 정원이는 미사도 참석 못하고 자윤이와 들이서만 미사후 친목 모임도 가지고 10시반경에 귀가했다. 그 때부터 3시간여를 아내의 푸념을 듣다가 지금 일기장을 대한다. 인생살이가 무엇인가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인가?
·02.1.8.화.
새해가 왔는가 싶더니 벌써 1주일이 가버렸다.지난해 12.29.에 책이 나왔다.일주일동안 아내의 반대의견에 부딫쳐서 신정 연휴가 엉망이되었다. 자식들이 있는데서 행패를 부리는 아내에게 나는 말을 못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임종까지 2개월여의 기간 동안 딸 아들 다 있지만 모든 것을 아내 혼자서 아내의 말대로 <피한방울 들어 있지 않은 며느리로서 모든 힘든 일을 다했다. 하반신 감각이 없으니 변을 못 보시고 비닐 장갑낀 손을 변을 후벼 파서 처리하고 소변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받아내고 ..무슨 원수가 져서 죽을 때까지 며느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고 가시는가 하고 평소 말하던 대로 시어머니는 죽어도 눈물도 안나고 울지도 않겠다던 말대로 그렇게 장례를 치렀다.
나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옳은 이야기라도 포악하게 하는 말은 기분이 나쁘다. 세속에서 살면서 일을 하려면 세속 풍습을 따라서 살고 면벽 수양을 하고 남의 의사는 아랑곳 하지않고 자기뜻대로 살든지 말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렵다. 남편이 아니라 타인이라고 해도 그토록 원하던 일을 했는데 축하의 말을 해 주지는 못할 망정 아이들이 다 있는데서 나의 기분을 여지없이 박살을 내버렸다. 내가 32년간의 군생활의 애환을 다 기록한 것이 그렇게도 창피하더란 말인가 .같이서서 찍은 사진이 창피할 정도로 수치스러울 정도라면,그런 상태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무슨 호의나 애정을 기대 한단 말인가.
‘02.1.17.
< 지휘관의 책무>
“ 以不敎民戰 是謂棄也(이 불교민 전 시위기야)”
훈련되지 않은 백성으로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면 백성들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동양 고전에 있는 말인데 서양의 고전이랄 수 있는 미군 교범에 나오는 말인
"As leader our sacred responsibility is to ensure that no s ever dies in combat because that soldier was not properly trained"
과 너무도 흡사 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자식들에게 세상을 헤쳐 나갈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듯이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에게 임무 스행을 하는 방법을 제대로 교육 시키는 것이 가장 신성한 임무로 여겨야 핮만 그것이 쉽지 않다.
변화 무상.
옛적 우리집 가난하던 시절
어머님 짚으로 봉태기 매고 멍석 만드시어
장에내다 팔아서 온 식구의 끼니를 이어 나가고
못난 맏이는 시험 공부만 하고
가난을 면하는 유일한 길은
큰아들 공부시켜 공무원 만들어서
손톱밑에 흙 안 뭍이고 살도록
노심초사 전전긍긍하시던 어머님
부잣빕 외동 아들 만나 잘도 살던 사촌누이
'언제인지 기약은 못하지만
언제든지 갚기로하고 쌀한말만 빌려다오'
간곡하게 부탁해도 공연히 잘 놀던 아이 귀때기를 때리면서 코대답도 않더니만
어느날 어머님이 독백처럼 하시던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상전 벽해 라던가
울산 대학 나와서 집안에서 놀고 있는지라
40년도 지난 지금 와서 그 아들 직장을 하나 알선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군 부대에는 민간인 취직자리가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면서 그 엣날 서운해 하시던 어머님의 아픈 마음이 지금와서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구나.
아들 딸 잘되기를 금강산 일만 이천봉마다 찾아가서 기원 할 생각하지 말고 오가다 만나는 사람에게 적선을 하라고 하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세월이 가도 잊을 건 잊혀지지만 생각나는 것은 생생히 생각이 나니.. 마음도 생각도 잊을 것은 잊어야 할 텐데 말이다.
‘02.1.18.
<목민관>
벼슬아치가 되어 외로이 우뚝 홀로서 있으면 앉아 있는 걸상이외에는 모두 나를 속이려는 자들이다. 사방으로 눈을 밝히고 귀를 기울여야 하되 스스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제들이나 친지들 모두가 다 조심해야 한다. 자제나 친지 중에 마음가짐이 단정하고 결백한 사람, 겸하여 사무에 능한 사람이 있거든 몰래 민정을 살펴 오도록 하여라 , 자잘한 과실이나 작은 흠집은 용서해 줘라. 샅샅히 밝혀내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가끔 음흉한 자를 밝혀내되 귀신같이 해내면 부하들이 두려워 할 것이다. 좌우에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을 고지식하게 믿어서는 안된다. 한가로운 이야기 속에 다 사사로운 뜻이 들어있다.
옛 성현의 말 중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조직 속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적인 조직의 목적과 자신의 목적이 같다면 가장 이상적인 조직의 모양새 이지만 그게 어디 가능할까 도둑은 부자집 창고를 만나기를 원하고, 신랑은 신부가 아름답기를 원하고 .. 오늘 대전에 회의차 갈 일이 있어서 배제대 학군단장을 만나고 왔다.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 다를 수가 있겠는가. 딸을 시집보낸 다음부터는 신부 부모님께 두손을 잡고 인사를 드린다던 어느 목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나 자신 많은 부하 장병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내 자식을 맡고 있는 그 사람에게는 마음이 더욱 쓰이는 것임에랴 . 옛말에도 자식 키우는 부모는 남의 자식 흉을 보지 말라던 말이 떠오른다.
조국을 떠나 보아야 나라의 중요함을 알고 타향살이 해보아야 부모님 계시는 고향집이 고마운 즐을 알겠지. 겪어보지 못하고 알아차린다면 그 아니 훌륭할까
‘02.1.19.
<욕망>
生(생)은 한조각 구름의 일어남이요, 死(사)는 한조각 구름의 사라짐이라고 했다. 기껏 100년도 못체우고 가는 주제에 뭔가 그리도 무거운 짐수레를 끌며 살아가는 것인가?.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복된 것인가, 짧게 살아도 내실있게 사는 것이 나은지? 부귀공명을 탐한다 해도 등산객이 하산을 하듯이, 필경에는 출발점으로 돌아오듯이, 인생길도 욕심을 내지말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유유자적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오늘은 전화 한통을 받았다. 대구일보 송원호 기자가 고교 선배라는데 신문기사를 스크렙하여 보내 주었다. 관심을 가져 주어 고마을 뿐이다. 경주가면 만나야 할 사람이 또 한 사람 늘어났다.
‘02.1.24.목
3사관 학교 제 1회 병영문학상 모집 공모를 보고 ..자발적으로 인쇄 한 것이 책이 몇권인가
수기치인,석사학위 논문, 나의 어머니 채 마리아. 장군이되기까지...
응모를 해 볼이거나 말거나. 욕심이기도 하고, 한번 도전해 볼만도 하고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의 수필 두 편을 보냈다.
< 소명>
하루 하루는 우리 인생의 축소 판이다. 멋진 나날들이 모여서 당신의 삶이 멋지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관광여행을 떠나는 한 무리의 여행객에 비유한 어느 신부님이 계셨다. 관광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는 곳에 어울리는 사전 준비도 해야 하고 , 계절과 함께 가게 될 일행들과 사전 토의를 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혼자 하기보다는 역할 분담도 하고, 잘 아는 분야별로 나누어서 준비를 하면, 내실 있는 여행준비도 되고 노력을 절약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전날 밤에, 잠은 설치면서도 준비는 제대로 못하는 수가 많다.
차가 도착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 왔는데도 그제서야 이것저것 챙긴다면서 허둥지둥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해놓고 쩔쩔매는 한심한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은 다음 여행에는 반드시 빼버려야 할 사람이다.
만약 우리들 모두가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한체 그날 그날을 하루 살이처럼 내일을 망각하고 순간의 욕망에 사로 잡혀 현실에만 젖어 살아간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렇지않고 뭔가 이 아름다운 지구라는 행성에서 누리게 될 삶을 감사하고 만족한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다면 정말로 축복받은 삶이라고 자랑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먼저 자신이 부여 받은 삶을 명찰하여 짧은 생의 한부분도 낭비함이 없이 살아갈 려면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것을 깨달아 삶의 지향점을 제대로 설정 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의 성공적인 삶을 준비하는데 기본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기본을 구비한 다음 집을 지어 나가듯이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고 지붕을 올리고 ...
나는 가난한 시골 에서 자랐다. 12살에 아버님 별세하시고 초등학교 졸업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그런 형편에도 내 삶의 지향점은 꿈꾸며 살았다. 성웅 이순신이나 나폴레옹처럼은 못되드라도 비포장 도로위로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짚차를 타고 달려가는 선글라스를 폼나게 쓴 육군 장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국가가 보장하는 신분의 삶을 살고 싶었다.
제비호를 타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만화의 주인공처럼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 적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한 무리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백마탄 기사처럼 말이다.
" 모두에게 봉사하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보수를 받지 못한다. (He that serves every body is paid by nobody)
충신은 효자 집안에서 구한다지만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국에 충성을 제대로 하려면 고향에는 자주 가지 못하리라
한 직업에서 전염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보수가 많은 곳을 기웃 거린다면 그런 직원을 거느린 회사도 불행하지만 방황하는 그 개인도 딱하다. 아무리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친구는 바로 우리가 죽어 뼈를 묻을 나의조국 산하가 아닌가
그 한 대상에게만 봉사한다면 모든 다른 사람으로 부터는 보수를 받지못한다 해도 되는 구원의 대상이 바로 허리에 철띄를 두른 체 반세기를 이어온 우리의 조국이다.
나는 장교가 되기위해 4번이나 도전을 하였다. 그 것은 나의 의지라기 보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소명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등병 에서 상병까지 근무했던 동해 바닷가의 소대장이 되어 그들과 땀흘리며 애환을 나누면 서 살고자 했던 꿈이 나를 불렀다.
작은 분초에서 밥을 짓고 오징어 찌개를 끓여 먹으면서 밤새 짠 바닷바람속에 촉촉하게 젖은 방한복을 벗어던지고 총기를 녹쓸지 않게 딲으면서, 소대원들과 둘러앉아 동해에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면서 아침 식사를 나누고 젊은 이들과 함께 의리와 전우애를 나누고 출렁대는 동해의 푸른 파도가 마냥 즐겁고 신명나던 그 추억이 나를 끊임없이 장교가 되고야 말겠다는 끌림이 샘처럼 솟아오르게 한 그것이 바로 소명이었다, 그런 끌림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삶이 가능 했을까?
고된 여름날의 집단 구보, 2KG의 모래주머니를 양쪽 발목에 매달고 자갈밭을 누비던 그곳-사동저수지 ,단포천, 수중 낙하훈련으로 생쥐같이 젖은 몸으로 오리걸음을 하면서도 젊은이의 끓는 가슴을, 파도 넘실거리고 북극성이 돌고 도는 모래 벌의 그 지루한 야간 근무 끝에도 새벽은 돌아오고 교대 근무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즐거운 모래위에서 연무선을 그려놓고 태권도 , 총검술을 연습하며 지세는 밤, 초저녁에 가져나간 건빵하나를 입에 넣고 녹여가면서 잠을 달래고, 무사히 야간 근무가 끝나고 내가 담당한 구역으로 단한명의 적도 올라오지 않고, 하루저녁이 지나 보람과 자부심으로 아침을 맞이하던 그 기분으로 힘든 교육훈련을 견디어 내고 5만 촉광의 소위 계급장을 다는 날, 어머님과 함께 내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준 친구는 지금도 용마산을 같이 오르는 바로 그 오원장이다. 철원에서 포병 소위로 근무하면서도 주말 외출이 가능할 때마다 어머님이 계시는 경주가지 가지 못하고 수원까지 가서라도 토요일이면 그의 기숙사에 잠을 자고 눈에 덮힌 수원 서호를 거닐면서 우정을 다지던 그였다.
철원 110 OP에서 바라다보던 백마고지. 냉정 리 , 아이스크림 고지-1950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여름 전장에 찾아온 고위 미군 장군이 한 미군 병사에게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했을 때 미군 병사 하나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는 일화로 인하여 작은 산 이름이 아이스크림 고지가 되었다고 함-유도탄 부대 교육파견을 가지 않도록 해주신 대대장님의 뜻을 감사하기도 했는데 다시 또 정훈장교 전과 반 교육 명을 받고 나는 그 곳을 떠났다. 정훈 장교가 되어 찾아간 전선에서 전방 철책 선을 넘나들며 GOP 에 근무하는 병사들을 대상으로 10월 유신의 필요성을 교육하러 다니던 나는 부대가 신산 리 지역으로 이동한 어느 날 육군본부 인사운영감 앞으로 항공 장교가 되겠다고 응시원서를 보내었다. 그리고 항공 장교가 되어 다시 문산 지역으로 가서 근무를 하다가 군단 비서실 에서 근무를 2년여 하고 고등 군사반 교육을 받고 다시 또 도미유학 장교 시험을 치고 행정학교에서 5개월간 영어 공부를 하고 도미교육을 다녀왔다. 귀국하여 항공 학교에서 군사영어, 항공 영어, 계기비행, 항공교통관제라는 과목을 가르치다가 헬기로 기종 전환을 하고 다시 계기비행 교관을 하고 ,행정처장을 하다가 다시 육군 본부 항공 감실 행정 실장으로 갔다가 육대를 졸업하고 다시 화천, 용인으로 가게 되고 ...대대장 시절에는 야간 RMT 비행을 전담하는 부대장으로서의 임무를 준비하면서 특전사령부와 함께 정말 어렵고도 힘든 임무를 준비하면서 비행기를 짧은 기간에 주간 비행, 야간비행, 그리고 N.V.G. goggle 비행을 많이도 했다. 수많은 야간 비행훈련 중에 위험한 고비도 많이 겪었으나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원하지 않았지만 ,상급지휘관의 명에 의하여 간 곳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가고 싶어 하던 항공 감실 기획과, 예산을 담당하는 소용장교, 장기전력증강 계힉을 수립하는 기획장교,사령부 작전 참모, 전발 부장 ,연합사 항공 처장, 교수부장, 야전군 항공 과장, 육본 항공 과장을 거치고 항공 여단장을 하게 되었고, 기계화 보병사단 작전 부사단장을 거쳐 지금 이곳 항공 작전 사령부 참모장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창밖으로 멀리 마국산(痲 國 山(마국산) 정상에서 이착륙 훈련을 하는 시누크 한대가 산정 이착륙 훈련을 하는 것이 보인다.
지나간 삶을 회상해보니 장교로서의 꿈을 지니고 꾸준히 살아 온 나의 삶의 결과가 나를 이등병에서 포병 소위 정훈 중위 항공 장교가 되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장교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나의 삶은 조국이 나에게 부여한 소명(mission)이라고 생각한다.
‘02.1.29.
< Golf>
세상사 무슨 일이든지 잘 하려면 준비가 필요 하고 ,멋있게 하려면 멋을 알아야 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그 것을 지켜가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주 최 부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9대 진사 12대 만석지기..욕심 부리지 않고 흉년에 재물 늘이지 말고 ...
많은 운동 중에 나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잘 안 되는 것이 golf라고 생각한다. 잘하려면
첫 째로 남의 경기에 간섭 말고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는데 흔히 신출내기 골퍼들은 자신은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남의 경기에 지나칠 정도로 간섭 하려는 광적인 현상을 보이는 이가 많다.
두 번째는 또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함에도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의 경기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 인생살이에도 통하지만 말이다. 엄격한 규정과 절차대로 자기의 스코어를 관리하고 타인의 경우에는 관대하게 하는 아량이 있어야 선수로서 크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세 번째는 공이 놓여 있는 데로 경기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골퍼들은 좋은 위치로 고쳐서 play 하려 한다. 그렇게 하면 성적은 좋겠지만 맛이 없다, 어려운 가운데서 스코어가 좋아야 더욱 멋(맛)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반드시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간에 정직하게 최선을 다 해야 즉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play 하는 그런 골퍼가 되어야 진정한 골퍼로서 멋이 있다. 그리고 잘 못치고 나서 핑계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려 말고 염습을 열심히 해야 크게 발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마치 우링 인생에서의 모든 원리와도 통하는 원리라고 생각된다.
‘02.1.30 수.
< 人 間 事(인간사)>
사람이 사는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K사령관이 코 수술을 한다고 어제 저녁 수도통합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그 가족은 남편의 부하 가족들을 데리고 골프를 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생각이 여러 가지로 떠오른다. 매사는 본인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아내라는 사람이 남편은 전신 마취로 수술을 하기로 하고 입원을 했는데 아내가 골프를 치고 있으니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저녁에 병원에 가 볼 것인가 여부는 다시 생각해 본다. K 그는 비록 별로인 사람이지만 부하들 보기에 그냥 넘어가기는 그렇고 마음에 없드라도 병문안을 다녀와야겠다.
(결국 본인의 뜻대로 참모들은 가지 않고 가족들만 가기로 했다.)
‘02.1.31. 목,
<위 나라 재상 田文(전문)>
위나라에서 재상을 임명 할 때 전공이 많은 오기(伍 起)를 임명하지 않고 田文(전문)을 임명 했을 때 오기가 불복한 나머지 전문에게 말 했다.
“ 어디 한번 당신과 내가 누가 더 공이 많은지 논해 보고 싶소”
전문이 말하길
“좋소”
“ 3 군의 장수가 되어 사졸들이 즐거이 죽게 해서 적군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한점에서 당신과 내가 어느 편이 나은가?”
전문이 말하길
“당신만 못하다.”
“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친근하게 하고 국고를 충실하게 한 점에서 내가 당신보다 못한가?”
전문이 말하길 “ 내가 당신보다 못하다.”
“서하를 지킨 진이 감히 동쪽으로 못나오게 하고
한, 조를 복종하게 한 점에서 당신과 내가 어느 쪽이 나은가?”
전문이 말하길 “ 내가 당신 보다 못하다.”
“ 당신이 이 세가지 점에서 모두 나만 못하다면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다는 것은 어쩐 일인가?”
전문이 말하길
“임금이 나이 어려 국내가 불안하고 대신들이 안정되지 못하고 백성들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 이런 때를 당하여 재상자리를 당신에게 맡길 것인가? 나에게 맡길 것인가?”
오기는 잠시 묵묵 부답으로 있다가
“ 역시 당신에게 맡겨야 겠다.”
전문이 말하기를
“그 것이 즉 내가 (당신 보다 못한 )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유다.”
오기는 이에 자신이 田文(전문) 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용서는 나를 위해서>
용서를 한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이자. 그것이 진정 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말이다. 잊어버리자. 기억하기 싫은 일은 말이다.
--책을 읽다가--
육본에 근무하는 동기 K 가 있다. 그는 나와 같은 중대에서 같이 소위가 된 동기생인데
“ 술은 적게 한 번만 먹으면 된다.”고 했다.
고마운 말이다. 역시 그 답다 는 생각을 해본다. 옳다고 여기면 그 말을 따르는 것이 또한 중요하고 내가 한 때 그(k장군)의 음주 행각에 대하여 너무 격분한 나머지 글을 보내기는 했으나 아내의 권고(?)도 있고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忍 一時 之 怒, 免 百日之 憂也(인 일시지 노면 면 백일지우야)
‘02.2.4.
< 계획>
軍(군) 생활동안 있었던 일화를 중심으로 글(수필)을 써 보기로 한다면
.기적 1,2,
.총기 휴대 탈영병 사건
.면회를 온 학부형의 이야기
.연애편지를 대필하던 상병의 이야기
.논산 훈련소 대민지언 이야기
.장흥 오덕 초등학교 싸리비 이야기
.102.110.op 이야기
. 우미 다방 마담 이야기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이야기
.중대장 고대위 이야기
.임진각 이야기
.도형이와 영미 이야기
.고왕산 GP와 김혜수 목사
.R.M.T 이야기
.대성산 적근산
.해안 경비대대 근무
. 누나의 결혼식에 ..
.기계화 보병 사단 작전 부사단장.
. 신 구운몽
.나의 삶나의 인생-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무명선사
. 정비석의 여인 열전이나 김만중의 구운몽을 새로 구상해보면..
...
어제는 골프 끝나고 동곡 김정묵사장과 조남수 사장과 식사를 했다.
‘02.2.5.화.
<군단장님 전화좀 바꿔 주세요>
강원도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날도 군단 사령부에서 참모장 주관하에 직할 대장 주간 회의를 참석하고 있었는데 회의 중간에 군단장이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회의장을 나갔다가 들어온 참모장이 “ 항공 단장은 회의를 마치고 참모장 실로 잠시 들렸다 가라”
고 하여, 회의후에 들렀더니 한병사 의 인적 사항(계급. 성명,군번등..)을 주면서 그 병사가 군단장 실로 전화를 하여 군단장과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면서 참모장이 대신 전화를 받았는데 애로 사항이 있다면 단장에게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주었다고 했다. 항공단에 근무하는 병사가 맞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부대에 돌아와서 확인을 하니 내가 지휘하는 예하대대의 병사였다. 내가 주간회의에 참석중일 때 그 병사가 군단장실로 전화를 하여 군단장님께 하소연을 하려했는데 전속부관이 참모장을 연결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참모장이 그 내용을 나에게 조치하도록 말했다고 한다. 그 병사를 내 사무실에 오도록 불러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그 병사의 사연인즉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 두명과 같이 삼남매가 살았다고 한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동안에 큰누나가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부대에서 휴가조치를 해 주지 않아서 참석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작은 누나가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중대장과 대대 인사장교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말도 되지 않는 말이라면서 일축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부대는 전원이 대 간첩 작전이 진행중이라서 영내 대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훈련소에 있을 동안 어릴 때부터 부모님처럼 자기를 키워주고 돌봐주던 큰누나의 결혼식에 도 참석을 하지 못했던 일도 가슴아파했는데 ,그 병사의 입장에서는 작은 누나의 결혼식에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관련자들이 부대의 상황만 이야기하고 자기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으니 대대장이나 다른 상급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작은 누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려고 군단으로 전화를 시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단 비서실에서 군단장 대신 군단 참모장을 연결해 주었다고 한다. 병사의 심정이 이해는 갔지만, 전 부대가 대간첩 작전이 진행중인 때라서 모든 장병들이 외출, 외박과 휴가가 중지된 상황이었다. 어떤 조치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나는 군단 인사참모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휘관이 조치할 사항이라고 했다. 중대장도 그 병사의 말을 듣고는 지금작전이진행중인데 어떻게 휴가를 가려고 하느냐고 말해 주었다는 것이다. 단 인사 참모는 오히려 부대의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군단으로 전화를 한 그 병사를 징계를 해야 한다고 건의를 하였지만, 나는 그 병사에게 일주일간의 청원휴가 조치를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절차를 밟아서 건의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단장실로 보고를 하도록 당부를 했다. 그 병사는 휴가기간을 다 채우지도 않고 귀대를 하여 수송부에서 성실하게 근무를 하다가 제대를 했다.
부대의 중대장, 대대장을 건너띄어 군단장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했던 그 병사의 행동은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두 명의 누나 결혼식에 모두 참석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절박한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니 부대의 상급자들을 믿지 못 하겠다고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했지만 처벌만 할 것이 아니라 부대 지휘관의 입장에서 해 줄 수 있는 범위내에서 조치를 해준 것이 지금 생각해 보아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02.2.8.금.
Yesterday it was not a ordinary to me. I met a friend who I knew for a couple of month. but the relation was in official only. we have kindhearted feeling only. Yesterday late evening we met drove for a one hour and exchange kiss and had a time talking each other about variety of items of both of us .Both of us were eager to do it, but we did not break out the dead line though we want to do it. but felt very sorry.
“ 화났어요?”
“ 나도 같은 마음이었답니다.”
그렇다 인간은 모두 같은 상황에서는 느끼는 감정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다만 용기가 없어서 일 뿐이다. 깊게 멀리 깊은 산 계곡에 자라난 아름다운 약초, 그 꽃은 누가 소문을 내지 않아도 찾아오는 이의 발길 때문에 길을 만든다고 했던 옛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융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에는 표면과 내면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페르소나(persona) 정신의 표면- 인간의 사회적인 가면
.아니마( anima)와 아니무스(animus)는 정신의 내면인데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女性性(여성성)인 아니마가 있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남성은 여성에게 끌리고, 여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男性(남성)性(성)이 아니무스인데 이것 때문에 여성도 남성에게 끌린다고 한다. 그러니 장성한 남녀가 서로 다른 이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 된다.
'02.2.14.목.
구정 연휴가 끝나고 ~~~
인생의 길을 가다 보면 중도 보고 소도 보고 .. 그 말이 꼭 맞다고 생각된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탐하는 그런 삶을 살면 되겠는가? 이익에는 물질적인 이익과 명에욕 ,권력용, 등등 많지만 물질적인 욕심이야 촌 머슴들이라도 배가 부르면 먹던 밥도 그만 먹게 되는데 욕심의 한계가 없는 것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얼마나 자율적 한계내로 축소하여 제한함으로서 자신이 능력에 벅차지 않게 가볍고 힘들지 않게 -자기의 능력 범위 내에서 지니고 향유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아침에 k장군의 정찰 비행에 관한 이해 부족에 대하여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비전문가를 가르치는 경우가 바로 항작사의 경우인 것을 어쩌랴..
인과응보라 우리 선배들이 잘못뿌린 업보인 것을 탓 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2.2.15.
505 대대에서 지난 2월 4일 훈련 출동중에 7.62미리 실탄 300여 발을 유실하였는데도 보고를 않고 있다가 어제 저녁에 신고를 받고서야 보고를 하고 ... 뉴스 미디어에 <군부대 유실 물 추정..>하고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수도권에 집중된 선호 부대에 근무하는 간부들의 의식에 긴장도를 더 할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감찰 참모를 팀장으로 하여 즉시 505 대대를 대상으로 조사 보고지시를 하달하였다.
‘02.2.16.토,
오늘 mono rail 준공 기념 운동과 식사가 있었다.I've got a present from a lady who live in this area ,also she sent a package of chocolate basket, in it various ..and I share it to many staff officers who visit my office.
Some one said if we want to live more lively and actively ,try to fall in love with some pretty girl, then our life change more beauty and joyful. anyway I feel so so .Nowadays every morning I have a chance to talk to with her ....Since I knew her. But the problem is like this,for instance, yesterday evening I have it with wife .during it her face was overlaped wife's face .oh,no.....
we need to try to live more happily anytime any condition....during our staying here in this world.
'02.2.21.목.
<朝 聞道 夕死 可(조 문도 석사가)> 어릴 적에 논어를 읽다가 공자가 한 말이라는 것을 ...
이 세상에 살면서 무슨 기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좋아서 죽겠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도 미워 죽겠다 고 극단적인 말을 사용하여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려고 한다. 죽어도 좋을 만큼 ...하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역시 공자는 성인답게 道(도- 그것이 삶의 길이든 돈벌이의 길이든 아니면 골프의 길이든) 를 들으면 곧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인생의 가장 짧은 단위인 하루 중에 24시간도 아니고 겨우 12시간(아침에서 저녁까지)만 살드라도 도를 듣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만큼 도에 대한 욕구가 강했을 까?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것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런 문제가 있는데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스페인의 어느 불우 어린이단체의 수용 시설에 관한 보도를 티브이에서 보면서 정말 멋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02.2.23.토.
< 골프>
“골프공을 하얗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지만 골프장을 파랗게 만드는 것은 神(신) 만이 할 수 있다.”
“ 인내는 미덕이지만 느림보 플레이는 미덕이 아니다.”
“ 골프는 아침 이슬이 촘촘히 내리는 아침이나 황금빛 노을이 깔린 저녁에 보드라운 잔디를 따라 걸으며 불현듯 우리가 찾는 탁구공만한 하얀 공이 아니라 자연과 골프가 하나가되는 순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주머니에 최소한 2~3개의 공을 넣지 않은체 Tee에 올라서서는 아니된다. 두 번째의 공이 필요할 때 그 공을 가지러 골프 가방으로 가야 한다면 다른팀원 모두를 기다리게 만드는 무례한 행동인 셈이다.
아버지는 연습 스윙을 경멸했고 나는 장군이나 정치가들과 어울려 골프를 많이 쳐 보았고 그들은 명예와 조국에 대한 의무를 주제로 아름다운 연설을 해댔지만 골프공을 옮겨 놓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공은 있는 그대로 쳐라.늘 있는 그대로 치는 게 골프야. 골프는 협력. 존중, 명예, 규칙과 훈련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미덕의 집합체이다.“
‘02.3.4.
<착각 속의 삶>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제일 큰 착각은 뭐니뭐니 해도 죽음에 대한 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재물에의 집착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있는 사람은 더 무섭게 부의 축척을 위해 노력하고 ,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집착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행복한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는 부부 관계에도 서로에 대하여 결혼을 결정할 때도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를 하고 아름답고도 슬픈 약속을 했지만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겹씩 위선의 탈이 벗겨지고 박씨 부인처럼 위대한 장점이 나타나기보다는 결점이 자꾸 나타나기 때문에 때때로 부부간에 다투기도 할 것이다. 그 반대로 설사 싸우지 않고 사는 부부라도 상대방에 대한 연민으로 인하여 참고 있을 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아주 괜찮은 상대로 평가를 잘 받고 있기 때문에, 가정 상황이 영위 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이해로 임해주는 상대방으로 인하여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데도 남녀 간에 모두 자기가 상대방에게 흡족하게 잘해서 그런 줄 알고 있는 수가 많기도 하다. 군 조직에서도 지휘관과 부하 간에 모두 다 자기만은 상대방으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보다는 많이 다른 모두가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더구나 지휘관직에서 기껏 1~2년 만에 다른 곳으로 떠나갈 것이고 언젠가는 모두 다 전역을 하는데도 자기 자신만은 전혀 전속을 가거나 전역을 하지 않을 것으로 착각을 하고 행동하는 그런 지휘관들이 아주 많다.
‘02.3.8. 금
국방일보 에 나의 책< 이등병에서 장군이 되기까지>이 소개가 되었다. 이천 설봉 신문에서부터 대구 일보, 영남일보.. 책을 사서 보겠다는 사람도 있고 책을 보내 달라는 사람들도 있고 ....
‘02.4.19.금.
<눈은 능히 2가지 것을 함께 보면서 밝지 못하고, 귀는 능히 2가지를 함께 들으면서 밝을 수는 없다.> 옳은 말이다. 실속을 따르면서는 명분과 이치를 따를 수가 없고 명분과 대의를 따르면서 개인적, 사적인 욕망을 다 갖추어 나가기가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다.지금 햇빛 비치고 아직도 내 스스로 가라 ,서라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 등잔에 기름을 치지 않으면 불이 꺼진 다음에 기름집으로 달려가는 어리석음을 면키 어렵다. 오늘 간담회시에 체력 단련장의 그린 조성, 심정 등 시설 투자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를 토의를 했는데, 참모들은 하나같이 다 쓰고, 돈을 복지금으로 써버리는 쪽으로 말했다. 그러나 듣기 싫더라도 지금 당장 손해만 본다고 생각되는 ( 멀리 보면 손해가 결코 아닌데도 ) 일이라도 멀리 역사의식을 가지고 보면 그것이 바로 큰 것을 얻게 되는 사소취대의 길이란 것을 건의 했다. 그는( 김00장군) 내가 하는 말은 잘 듣지 않으려 한다. 여러번 회의나 건의를 했지만 그렇다. 그릇이 좁다. 몹시 성깔이 편협하고 술 그 자체만 좋아하고 술도 제대로 마시는 게 아니라 부하들을 골탕먹이는 방향으로 마시지 결코 술과 함께 인생을 논하고 세상 이치를 논하는 그런 술꾼은 못된다. 그냥 술고래(?) 일수는 있어도 .. 체력 단련장에서 나오는 이익금도 크게 멀리 내다보고 사용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 근시안적 안목에서 돈을 썼다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02.4 .22. 월
< 記錄에 관한 小考(기록에 관한 소고) >
<...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양만춘의 그 후 행적이나 인품 등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일세의 명군이던 당태종도 고구려 원정의 실패로 恨(한)을 품고 4년 후인 649년 5월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645년 고구려 보장왕 4년에 고구려 원정을 왔으나 실패했다고 함) 후일 당 고종이고구려를 멸망 시켰을 때 안시성을 모두 불태우고 주민을 죽이고 성을 폐쇄 해 버렸다. 그 아비가 당했던 ( 당태종이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쏜 화살을 눈에 맞고 그 후휴증으로 죽었다고 도 함) 골수에 찬 원한을 풀려는 속셈에서였다고 한다. 안시성도 양만춘도 지금 우리에게는 말이 없다. 화려한 업적과 용맹을 전할 길이 없어 황량한 만주 벌판에 서 모래 바람처럼 사라져간 우리의 조상들의 웅혼한 기상과 상무정신을 그리어 하며 다만 추축해 볼 뿐이다. 후일 발해가 만주의 강국을 형성하고도 남아있는 史(사)實(실)이 없어서 유령의 왕국이 되고만 아쉬움을 음미할 때 역사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
우리들의 삶의 흔적 그 자체도 시간이 흘러가면 사라져 가겠지만 , 그래도 기록이나 유물을 만들고 후손에게 물려 주려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하겠지. 개인에게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 하고 조직에서는 업무 일지를 기록하여 뒷날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믾은 세월 동안의 업무 경험을 통하여 체득한 일들이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래서 공적인 면에서 우리들은 모두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지휘관이 된 자가 개인의 기호나 본성에 의하여 행동한다면 그와 다른 성장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할 까.K 장군은 정말 no.10이다. 그렇게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 할까? 정말 딱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때로는 싫어지기도 한다. 지금나이에 술을 그렇게 폭탄주로만 마시다가 軍(군)사회의 고쳐야 할 악습 중에 술잔돌리기와 폭탄주인데 꼭 고쳐야 할 것 중에 하나이다.
‘02.4.23.화.
< 力 不 如氣(역불여기); 보이는 힘은 보이지 않는 힘(기)보다 못하고
氣 不如 靜(기불여정정);보이지 않는 힘은 고요함만 못하다.
妙生於靜(묘생어정) ; 삼라 만상의 오묘한 힘은 고요함에서 나온다.
조선 말 이장림이란 사람이 자결한 다음 남겨둔 바둑판의 뒷면에 남겼다는 글귀라 함>
세상 사람들은 모두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촛불이 꺼진 다음에 미인과 추녀의 구분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밝은 불빛아래 있을 때가 문제이거늘, 불이 꺼진 침실에서야 얼굴의 미추보다는 방사의 기교나 피부의 부드러움과 귀로들을 수 있는 교성이나 그 모든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끼고 즐기기엔 무슨 문제가 있는가?
눈으로 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사물을 즐기고 감상하는데 있어서는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또한 우리가 소리를 듣는다해도 귀가 밝아서 잘듣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들을 려고 하는 대상의 소리보다 더 크고 시끄러운 소음이 없어야만 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안다면 고요함, 정적이 더욱 중요한 것임을 알수 있으리라. 누가 큰 소리로 짖어대는 토종개를 두려워 하겠는가.크게 짓는 개는 물지않는다는 속담도 있지않는가. 말없이 흐르는 시간은 삼라만상의 생명체가 모두 유한함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아닌가.권세도 체력도 100 미터를 9초에 달렸던 왕년의 육상 선수도 세월이 흐르면 20초에도 달리지 못할 것이고 왕년에 300 야드도 짧다고 큰소리치던 골퍼라도 세월따라 150 야드라도 감격할 것임을 모르는가? 반상에서의 명승부도 누가 집을 많이 지었는지도 바둑알을 쓸어담고 나면 반면만 있음을 알아야 하거늘
萬 事分已定, 浮生 空自忘
(만사 분이정 부생 공자망)
‘02.4.29.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지배자는 자신을 神(신)으로 자처하는 자이다. 김일성이 그랬고 김정일이 그랬고 이제 낡은 짚신 짝이 되어버린 그에게 어찌하여 남한이 이른바 종교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물들과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북의 괴수에게 가서 감격에 벅차 엎드려 落(낙)淚(루) 하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 그들은 진정 악의 화신을 신으로 섬기는 악의 신봉자인가? 아니면 그 역도들의 남침 전도사인가
‘02.5.6.
< 조직 문화>
조직 문화라는 것은 조직 구성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가치,신화, 영웅 이야기 및 상징의 총체로 조직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회적이고 규범적인 접착제이다.
한 조직과 다른 조직을 구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구성원 마음속에 입력되어 있는 기본 전제나 행동 패턴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직문화의 순기능으로는 조직의 경계를 구분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원의 마음속에 입력되어 있어서 자세와 행동에 배어나와 남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착되어 있다.
구성원들에게 동질성 , 저에성을 심어 준다.
소속감을 심어주어 자부심과 단결심을 촉진하고 타조직과 구별되는 의식을 심어준다.
자신의 이해를 넘어 조직의 이해에 몰입하게되어 one for all,all for one 이라는 문화가 생긴다. 조직의 사회적 시스탬을 안정 시켜 주고 조직내 게임 룰을 정하는 기능을 한다.
반면 조직문화의 역기능으로는
.조직 문화가 공유가치와 조직의 유효성과 합치되지 않을 때 직무상 만족과 조직몰입 정도가 저하되고
.강한 조직문화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을 지향할 때 대항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 어떤 조직이든지 리스크와 약점은 있다. 비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 바람부는 날은 바람이 불어서 좋고
=조직문화 판단법;
-1, 귀하는 몸담고 있는 조직의 비젼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마음으로 이해가 되고 또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가
-2.귀하는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권한을 하급자에게 이양하고 마무튼 조직이 성공하기위하여 조직원들을 채근하고 있는가?
-3.귀하의 조직은 정보가 어떻게 획득되고 공유되며 활용되고 변경되고 있는가
-4.조직의 의사소통 경로가 정보를 적시에 직접적으로 정확하게 전달 학 있는가
-5, 귀하는 조직 내에서 지도자의 리더쉽이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건전하고 건강한 조직 문화가 형성 되려면
-구성원들이 조직의 목표와 비젼을 자기 것으로 삼고
-강력한 리더쉽이 발휘되며
-정보가 물 흐르듯이 자유롭게 위 아래로 다른 부서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 조직 문화란?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 ,신념, 전통, 신화, 정서, 행사, 의식구조, 행동 양식등의 패턴으로서 조직 내의 모든 구성원이나 집단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조직과 다른 조직을 구별짓는 가치관 신념 직무 수행스타일 인간관계의 독특한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품질을 창조 하기위해서는 먼저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맥코네-
‘02.5.8.수.
어머니 날이 변하여 어버이 날이 된지가 꽤 된다.
결혼 후에 203 대대장 시절(‘87년)에 상계동에다 보금자리를 틀었다가 10년 후에 신내동으로 (42평)으로 갔는데 3년여 세월 후에 오늘 다시 구리로 집을 계약하고 6월 5일 이천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아내가 혼자 사고 팔고 다하고 나는 사무실에서 듣기만 하고 ..
.
‘02.6.7. 금
< 천장 욕우 지 선습 ( 天將 欲雨 地先濕 )
폐하 욕래 첩 선동 ( 陛下 慾來 妾先動)
하늘이 비를 내리고자 하니 땅이 먼저 촉촉해지고
황제께서 오신다고 하니 첩의 몸이 먼저 동했습니다.
당나라 황제의 寵姬(총희) 양귀비가 나이많은 황제와의 情事(정사)를 앞두고 신하( 안록산)와 정사를 벌리다가 급하게 들이닥친 황제 때문에 방안에 간부를 숨겨두고 황제와의 연속된 행사(?)를 하는중에 그 몸은 이미 흥분이된 상태 였는데 이상히 여긴 황제에게 변명을 했던 말이라고 하니...
위기에 즉각 대응 할 수 있는 그 술수가 가히 천하 절색이라고 할 만하겠다.
‘02.6.11
당번병으로 근무했던 양성욱 병장이 제대를 한다면서 찾아왔다. 인생의 여울 목에서 여단장과 당번병으로 만나서 2년을 무사히 보내고 제대를 한다니 반갑다. 축하를 할 일이다.행운을 빈다.
‘02.6.26.수
술로 지새우려는 듯 K장군의 음주 행각은 끝을 모르고 지속된다, 최형주란 이가 쓴 <예언>이란 책을 읽었다.
“百病生於 心火(백병생어 심화)”모든 병은 마음의 열에의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말이 깊이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된다.
사는꼴이 황폐하고 쓸쓸한 것은 性(성)에 대한 지나친 탐닉 때문이고 몸가짐이 비천한 것은 술 때문이며 번민하는 마음은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이고 일이 복잡하게 되는 것은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
< 정신은 저 구름 너머 은하수 위에 노닐게 하고
걸음걸이는 여린 달빛 아래 익혀라
세상사 묻힌채 살아간다면
헛된 수고로움 뿐 정영 이룰 것이 없으리 >
< 인생에 다섯가지 즐거움>
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고 한다.
1.장수하고 (壽(수))
2.마음씀씀이가 곱고 (美(미) 心(심)術(술))
3.독서를 즐기고 ( 好(호)讀(독)書(서))
4.집안에 재산이 있고 ( 家(가)産(산))
5.사람의 도리를 행하는 것 ( 行(행)世(세))
‘02.6.28.
석이라고 하는 고향 친구가 하나 있다. 그 놈은 늘 하는 말이 실없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길흉사간에 가야 할 곳엔 자주 나타나서 남사스런 일 안가리고 잘도 털어놓는다. 주머니에 돈 좀 있을 때는 밥값도 잘 낼 줄 알고 어느 해 갑자기 2~3년간 소식이 뜸하더니 중국을 상대로 사업을 했다며..나타났는데 그 말도 정말인지 궁금하다. 골프치러 멋쟁이 친구 데리고 온다더니 하루전날 까지도 연락이 없다. 그래도 그놈의 푸념과 핑계대는 것은 실없어 보이는 표정이 궁금해지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 중이라 여겨지네
‘02.6.29.토.
어제는 38년 만에 중학교 동기 두 명이 방문을 했다. 중학교 때 밴드 단장을 하던 멋쟁이 박 춘도 ( 해군 원사,03년에 정년전역 예정.)와 박 상문 ( 중소기업 운영 )이 두 명이다.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주였다. 지난 5월에 고향에 갔다가 연락처를 알았다고 한다.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지난 주에 겨우 되었다고 한다. 부대 내의 항공기를 견학하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가서 매취 순 한잔 술에 지난 40여년의 인생살이를 들었다. 비교적 무난하게들 살아왔고 사업도 잘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특히 상문이의 기사는 사장보다 9살이나 많다는데 18년째 사장의 차를 운전하고 있다고 하니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연 매출도 200~300 억 원을 한다니 ,의류 업인데 전량 주문자 상표로 수출을 하는데 IMF 때는 달러 환율 변동으로 돈도 제법 벌었다고 한다
‘02.7.6.
붉은 물결이 지나간 한반도에 태풍 <자미순>의 냉기가 흐르고 있다. 하느님께서 열기를 식혀 주실려고 태풍과 함께 비를 내려 주시는가 보다. 7.1일부터 5일까지 휴가를 다녀왔다. 1일에는 동기생들과 같이 기지에서 운동을 하고 다음날 공군 수송기를 타고 4부부가 같이가기로 했지만 한명(박장군)만 빠지고 7명이 출발했다. 도착한 다음날 오후에 나혼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태풍과 시국 상황 때문에 논란을 거듭한 끝에 말이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제주도가 태풍의 영향권에 든다고 하여 나만 3일난 귀대하고 다른 사람들도 4일에 올라왔다. 5일날 아침 대구 의료원 원장으로 있는 동구형을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고 장모님께서 임원해 계시는 동산병원으로갔다.5일(음 5.25.)날이 생신이신데 전날 밤에 입원을 하셨다니 기이하기도 하다. 7순을 넘으신 노인이 담낭계통에 이상으로 입원을 하셨으니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시느라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고생하시고 몇시간을 모시고 있다가 저녁에 올라오다가 대전에 있는 정원이에게 가서 저녁을 같이 먹고 늦게 귀대 했다.모든 사람들이 한국축구의 선전이 감독 한사람의 공로라고 하지만 시대와 환경적인 모든 것이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구 의료원장으로 계시는 동구형의 경우도 훌륭한 분인데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견지하고 있는데도 같은 의사들이 기득권에 집착하는 탓에 의료파업이 일어나고 ..그런데도 자기스스로 조직의 잘못을 고쳐 나가려는 그 의지가 존경스러웠다. 軍(군)이나 모든 조직의 경우도 스스로 고쳐야 할 많은 것이 조직원의 게으름과 이기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가는 것이 많을 것이다.
동구형과의 인연도 38년의 세월이 흘렀다.1964년 내가 고교 1학년이던 시절 호형호제하기로 한 일이 근 40여년이 지났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02.7.8.월
길게 여겨져던 일주일이 지나갔다. 무궁화 회의가 매년 있어 왔는데 금년에는 서해교전 그리고 정치적인 여건, 월드컵관련 행사등등 이 겨쳐서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군지도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다른 발전 시켜야 할 사항에 노력을 기울일 여력이 없는듯하다. 윗자리에는 스스로 감당 할 만한 사람이 앉아 있어야 그 아래 사람이 자발적인 분발이 가능한데 그렇지 못하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정치적인 배경으로 감당 못할 자리에 있으면 그동안은 조직이나 나라의 입장에서 도 손해이고 불쌍한 것은 그런 지휘관을 만난 조직구성원의 신세이고 그 부모 현제들도 불쌍하게된다. 귀중한 국가재산이 무위미하게 탕진 되는 것은 물론 백년 천년 후를 대비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도 모르고 뭐가 문제인것도 모르고 산다면 본인과 그 주변사람들도 모두 불행하다.
‘02.7.9.화.
새마실에 살고 있을 때였다. 개를 길렀다. 가끔은 새끼를 낳기도 하여 시장에내다 팔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는 2번에 걸쳐 강아지를 아무도 몰래 밤사이에 누군가가 강아지를 가져가 버렸다.그 당시에는 범이 와서 물고 갔다고 생각하고 그후로는 개를 기르면 아니되는 것으로 알고 기르지 않았다. 여단장 시절에 예하 대대장이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았다고 강아지를 두 마리 가져왔는데 키우다가 양평까지 한 마리는 가지고 갔다가 다시 이천으로와서는 본부대로 가져 가도록 했었다. 근 1년여만에 진돗개 새끼를 한 마리 구했다. 황구이고 이름을 진주라고 지었다. 애완견을 기르다가 이유를 모른채 한 마리를 죽어 버린적이 있다. 진도견 한 마리를 기르고 싶었던 차에 한번 길러보아야겠다.
‘02.7.8.
이천 설봉 신문 창간 1주년 기념회가 있었다.설봉 호텔 크리스탈 룸이었다. 17;00시에 시작했는데 18;20분이지나 갔더니 파장이었다. 작은 규모의 지방 신문이엇지만 칼럼위원으로 위촉장을 받았다. 나름대로 몇 번 원고를 제출한 적은있지만 김숙자기자덕에 컬럼위원 위촉장까지 받았다. 국방저녈에 1번,육군지에는 여러번 원고를 제출 했었다.그리고 <장군이되기까지> <수기치인.> <나의 어머니 채 마리아> 등의 인쇄 물을 만들기는 했지만 글로서 나의 생각을 삶을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나타내는 생할도 좋을 듯 하다. 글로써 생각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정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 조금더 할 뿐이다. 청학동 그곳에도 가보고 싶다.
‘02.7.15.월.
지난해 아니 재작년 11월에 20기계화 보병 사단 작전 부사단장으로 가서 몇 개월근무하다가 이곳 항작사 참모장직으로 왔었다.1년여가 지난 는데 그당시 20사단의 신부로 계시던 분이 다른 두명의 신부님을 동반하여 운동을 하러 오셨다.마침 아내가 앞 팀이어서 2바퀴째 같은 팀이 되어 돌고 있는데 2번 홀 그린에서 만났다. 저녁엔 또 회식을 하게 생겼다. 5일째 계속되는 회식이라 건강을 좀 생각해가면서 회식에 참석을 해야 하겠는데 .. 인간사 세옹지마라고 했는데 알았던 사람 다시 만났으니 식사정도는 같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02.7.16.화 .
정원이가 하계 병영훈련을 들어갔다. 가면서 녀석이하는 말이
“ 아버지 교관님들이 저를 불러내지 않도록 하여 주세요!”
제법 철이든 것 같은 말에 기분이 좋았다.
< 人生 길 >
머나먼 그 길을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냥 열심히만 살면 영어단어 외우듯이 ,
한자 공부 하듯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 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책속에 길이 있다고 ,
책상앞에서 조름과 싸우면서 보낸
내 어둡고 지루했던 젊은 날의 그 날들..
풀어도 풀어도 헝컬어진 실타래처럼
뭉치고 엉키고 엉킨 恨(한)과 수심,
아쉬움으로 가득한 나날들 뜬눈으로 지새었던
수많은 밤을 어금니 악다물고 새웠다.
학교 가는 것 12년개근상을 받던 날
<너는 인간도 아니다>라던 사람들에게
맞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가난과 천대속에 살았던 부모님께 설원의 효도를 하는
유일한 길은 보란듯이 우둥상을 타다드리는 것,
수돗물을 먹고 기와집에서 사는 아니들보다
공부 더 잘하는 것 그 것으로 부모님께 기쁨을 드렸네
그날 그날을 알차게 살면서 잊지말고
새로이 결심을 다지고 다져야 했던 날
현덕처럼,노변야화에 눈을 팔아서 좌우로 레일을 벗어나던 날
그 잠깐의 실수가 목표 도달 시간을 지연 시켰네.
그래도 흐르는 탁류속 에서 부지런히
팔 휘저어 강변으로 나오면서 휩쓸리지않고 생존했네
55년의 세월이갔는데 軍服(군복) 속에서 보낸 33년의 세월이
강산을 세 번이나 더변회시켰고 ..
이제 고즈녁히 뒤돌아보면서 조용히 반추하며
무리없이 티없이 정리운동을 하듯 꾸준히
나이찬 암소처럼 질메 매고 끌면서 살아가자
그리하여 군인으로, 장군으로 살았노라고 말하기로 하자.
‘02.8.9.금.
일주일이 빨리도 지나간다. 20세이전 어릴 적에는 미성년자 입장 불가 영화를 빨리 보고 싶어서 20세가 빨리 되었으면 했는데 불혹의 나이가되고 보니 뭔가를 깨치고 있는가? 바둑판이나 골프장의 Fairway처럼14개의 클럽을 각각 사용하여 놓인자리가 제각각인 공을 치듯이 늘 새롭고 어려운 삶의 연속인데 ...신임 소위가 전입을 오면 그들에게 하는 정신교육이 어쩌면 나자신에게 하는 말일 때가 많다.
정원이가 4주간의 하계 병영 훈련을 받고 왔는데 표창장을 받았다고 한다. 나름대로 군인의 길을 잘 적응해 가는듯하여 대견한 생각이든다. 군과 국가에 대한 추엉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나타내기어렵지만 조직내에서 상관이 부여 하는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고 생각한다.
‘02.9.26. 목.
인생은 무엇인가
열심히 한조각씩 벽돌을 쌓아 나가듯
하루 하루를 채워 나가리
군 생활 속에 만나고 경험하는
그 많은 사연 속에
나 지난날의 원망과 후회 모두 털고
산과들 냇물 건너
개근상 받으면서
매일 학교에 가는 것 그것에 삶의
목표를 두고
미움과 원망도 다 버리고
귀한 인연 반가운 만남
버리고 떠날 하산 준비하듯
권세와 영광 다 버리고
인연따라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 하면서
내 지금껏 살아온 거사같이
나아갈 인생도
조심스레 알차게 살아가리
‘02.10.4.금.
서울 구리시 토평동 수택지구 내 대림 영풍 아파트 106동 1804호
(35평형)에 3억 7950만원으로 집을 샀다. 전세 1억8천여 만원에 잔금 2억을
지불하고 한강변이 보이고
인생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던
<태행로>라는 시와 같았다.
‘02.10.11.금.
지난 7,8,9, 3일간 동기생들과 부부동반으로 외박을 같이 맞추어서 golf를 하러,청주,충주로 운동을 하고 왔다.청주에서 운동을 마치고 고교 동기 최상운 회사에들려 견학을 하고 왔다.
‘02.10.24.목.
긴긴 여름날도 가을이 오면 사라지고 봄날의 그 화려함도 여름의 폭염에는 물러날 수 빡에 없으리k장군도 지난 2년간 그토록 마구 퍼마시던 그 폭탄주도 사라져가리
가을 바람에 떨어져 딩구는 낙엽같이 떠나가리
萬 物 皆 有情
저 어리석은 사람들이
공연히 분주 하구나
‘02.10.26.토.
저녁을 Club House에서 먹었다. 김희중 그 악명높던 건달의 마지막 시간이 서서히 다가온다. 오늘로 실질적인 근무가 끝났다. 저녁을 먹고 월요일에 끝나게 되어 있다. 그도 인간이라면 느낄 것이다.2년이라는 세월 오늘 그가 나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잘 가거라 이 거추장스런 인간아. 술에 걸귀들린듯이 폭탄주에 건배에 ,
유유상종자들 술꾼들끼리 모여 살거라 왜 그대가 그토록 배척을 받았는지 생각학 살필 지어다.
‘02.10.30. 수.
그 사람 떠나니 이리 좋을 수가 , 잘가거라 이사람 주정 뱅이야 코가 시뻘겋게 멍들어 딸기코되기까지 얼마나 술을 쳐 먹었으면 그랬겠나 불쌍하고 불쌍한지고 오죽했으면 내가 육본 사제과장에게 음주문화 정착 지시 공문을 잘 내렸다고 칭찬까지 했겠나
‘02.11.3.
상승대에서 합동 미사를 참석하고 왔다. 정원이를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고 왔다.x-ray 결과를 확인하려고 이천 의료원에서 CT 촬영을 하고 다음주중에 서울의 병원에서 재검진을 하고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이렇게 안타깝고 마음이 쓰이는 것인가 예전에도 물론 알기는 했으나 막상 닥쳐 보니 특별하구나
‘02.11.26.
지휘관이 바뀌고 1개월여가 되어간다, 누구나 새로운 위치에 이르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하겠지만 김장군은 정말 방법이 없다. 그는 조폭 구성원 들 같은 놈이었다.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면 항공 부대 구조도 군개혁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건양대 일반 대학원 박사과정에 원서를 작성하여 인편에 보냈다. 3년을 목표로 남은 군 생활 동안에 꿈울 키워 보려고 한다.
‘02.11.30.
세월이 잘도 간다. LTG 오현구 --금전관계가 좀 그렇다. 잘해라 이 사람아. 10원을 탐내면 그대는 10원짜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2.12.15.
서울 아산 병원에 only son 정원이가 입원을 했다. 육군 장교가 되겠다고 지난 2년간 을 열심히 했는데...
하느님께서 보살펴 주신다면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군인으로서 희망찬 삶을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사령부 참모들과 예하 여단장들이 집중적인 교대를 하고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항공부대의 구조도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
‘02.12.16.
건양 대학교 경영행정 대학원 박사과정 면접이 있었다. 3명의 교수들과 오찬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02.12.19.
정원이가 퇴원을 했다. 수술이잘 끝나고 ..소위 임관에 고생스레 힘든과정 하나가 해결되고 ..잘해왔으니 잘 살아나갈 것을 믿는다.
‘02.12.31.
임오년이 가고 계미년이 온다. 금년에는 어둡고 지루한 해였다. 내년에는 크게 도약하는 한해가 되고 싶다. 정원이이 임관과 자윤이의 졸업, 그리고 나의 보직도 변화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육군 본부나 항공 학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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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수.
새벽에 일어나서 신년의 시작을 명상해 본다. 몽불랑 만년필 세 개의 사연...장군진급을 하여 사령부 참모장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인연이 되어 몽불랑 만년필이 2개가 손에 들어왔다. 어느후배가 대대장을 마치고 전출을 가면서 하나를 보내왔고 또 한 개는 ㅎ 중령이 보내왔다. 그는 나의 휘하에서 대위, 소령을 거쳐서 중령까지 근무를 했었다.지난해 10월 28일 사령관이 바뀌었다.전임자는 술을 먹었다면 폭탄주, 건배..술이 무슨 원수라도 진 것처럼 마셔대드니 그는 떠났고 새로 온이는 술은 적게 마시는데 그는 성격이 또 별로다 왜그리 의심이 많고 언행이 점잖지를 못하는지, 03년에는 나도 이 참모장 직책은 면하려나 건양대 박사과정을 마치려나 궁금하고 정원이가 임관을 하게되고 병과 학교 입교아 1년여 근무후에 항공교 입학이되면 좋겠다.책과 명상,가치있고 보람이 있는 한해가되기를 바라본다. 수술후 한동안 칩거하던 아들놈을 데리고 통신 대대에 가서 탁구를 하고 귀가했다. 사령관 부사령관과 기무와 같이 운동을 하고 충혼탑참배를 하고 신년을 축하하는 문자를 많이 받으면서 2003년 첫날을 그렇게 분주하게 보냈다. 지난해 연말에 치른 대통령 선거결과와 국가안보관련 여론이 여러 가지로 분분하다.
‘03.1.2. 목.
신년도 시무식이 있었다. 인간 사회의 호 불호는 구성원의 여론에 의 하여 결정되기도 하지만 조직 리더의 지도력에 의 하여 좌우되는 면이 많다. 종일 분주한 생활을 했다. 안전 실의 근무 형태를 보면 몹시 부족하다.
士爲知己者死(사 위 지기자사) 하고
女爲 悅己者 容(여 위 열기자 용) 이란 말이 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얼굴을 다듬는다는 말이다. 얼마나 절절학 공감이 가는 말인가. 오현구 장군의 지도력에 마음을 줄 수가 없다.
'03.1.4.토.눈이 내렸다.
김ㅇㅇ는 무모하게 왔다가 운동 도 못하고 갔다고 한다. 성질 대로 살게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겠나 가여운 자여
골프하기엔 너무나 추운 날인데 조용히 주말을 보내는 것이 남는 것이리 오현구 장군이 노력과 人間性과 ...
‘03.1.5.일.
아침 날씨가 몹시차다. 소한 땜을 하는가 보다. 人生何處 不相逢(인생하처 불상봉) 이랴
정보 학교장 최경식 장군 내외와 같이 버드나무 집에서 식사를 했다. 40여년 전 홍안의 고교 생시절 3년을 같이 공부를 했는데 천리타향에서 같이 만나 서로 옛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깊은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인생 56년을 지난 세월보다 남은 기간이 더적게 남은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중요한 기간인가 . 2027년이면 80이되는데 -어머님의 삶이 그러했는데count dawn을 하듯이 남은 인생을 알차게 귀하게 보내야 겠다.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명상도 하고 차도 마시고
色卽是空이고 空卽是色(색즉 시공 공즉 시색)이라더니
대한민국의 육군 장군이 되었는데 한계급 더 올라가고 못올라가고 보다 더욱 중요 한것은 한심하게 살지 않을 수 있음이 더 중요 하지않겠는가
路搖知馬力,이요 日久見人心 ( 로요지 마력이오 일구견인심)이라
말이 힘을 알려면 먼길을 달려 보아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오래도록 사귀어 보아야 한다네 ....
‘03.1.11.토,
신년이 가도 너무 빨리 달리듯이 가는구나.금년에는 4월이되면 어디로 가든지 옮겨가게 되리라 . 將軍(장군) 진급이 되면 좀 나으리라고 생각했건만 k 때문에 너무 긴 세월을 허송했다. 영적 수련과 체력적 수련도 하면서 한해 한해를 살아가리라 어제 저녁 홍리원에가서 식사를 하고 왔다. 오늘은 안전실 간부들과 같이 풍년골에서 식사를 하고 왔다. 항공 부대 구조 변경이 어떻게 될 것인가 , 표준화 평가를 어떻게 여단급에 하향 조종하고 안전실의 기능을 보강해 주어야 하는데..
‘03.1.17.금.
72 항정대대 지휘관 이취임식을 주관하고 왔다.귀대길에 가연이란 식당에서 이천 시장,시의 회의장,등과 같이 저녁을 먹고 왔다. 군 생활의 반추라는 글을 통해 나자신이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볼수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지나친 욕심과 큰 과오를 예방 할 수 있으리라,금년 4월 軍(군) 인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추정해 본다.
‘03.1.21.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펠릭스 신검 문제로 대전 병원 흉부외과 과장과 통화를 했다. 군 면제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원이의 경우는 지난 4년을 군인이되기위해 애를 썼는데 이제 임관을 한달 여 남겨놓고 넘어야 할 큰 고개가 있는데 내일 그문제를 잘 처리해야 하는데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길이라면 꼭 넘고 가야 할 것이다. 희 망을 꿈을 가진자에게 는 기회가 올것이다. 희망을 가져라 펠릭스 화이팅
03.1.25.
<人生何處 不相逢(인생하처 불쌍봉)이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원한을 맺으면 좁을 길에서 서로 만나면 피하기가 어렵닥 하니 .. 사람들은 서로간에 어디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행이 달라 질수밖에 없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데도 길을 알려고 하는 젊은이가 없는 지금 그들이 행동이나 생각의 방법이 안타깝다.golf도 마찬가지 자세와 Iron Shot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은데 wood샷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나아지리라.
'03.1.30.
계미년 그믐이 다가오면 양띄인 동생이 생각난다. 90만원을 급히 빌려 달래서 가져가더니 50만원만 부치고 40만원은 여태 안부치니.. 전에도 300만원인가를 가져가더니 그 것도 벌써 오래되었고 차라리 그냥 달라고 했더라면 좀 적게 주었겠지만 바라지는 않았을 텐데, 경주 정서방도 용산회 기금 1000만원을 빚으로 안고 있어서 그 바람에 용산회라는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되었고 누구를 원망하리 다 나의 탓이리니
'03.2.3.
건양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박사과정에 02년 12월 20부로 합격 오늘까지 등록금을 납부하란다. 동료로는 논산 시청 총무국장 이재윤과 의전담당간 박수정이라고 한다.
‘03.2.28.금.
정원이가 R.O.T.C.41#기로 임관을 했다.3,200명의 신임 소위가 탄생했다, 부자 2대가 장교가된 사람들이 사열대 한편을 가득 체웠다.
'03.3.5.
자윤이 근무처의 정원용 박사 일행 4명이 토요일날 골프와 오찬을 하고 갔다.
'03.3.7.
사령관 ㅇ장군의 思考가 심히 급하고 변화가 무상하다. 한결 같지 못하고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지나치다.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모두 좋게 평하지않는데는 이유가 있었나 보다
'03.3.15.
최정원 소위 오늘 유격 훈련을 간다고 잘해라 큰인물이되려면 당연히 거쳐야할 과정이니라, 한주식이가 연립 주택 사업하더니 ..오늘 방문한다고 ,옛친구가 사업이 잘되면 반가운 일이지않은가
'03.3.21.
R.S.O.I. 훈련 3일차-- 한주식이가 전화를 두번이나 했다고 , 급할 때는 바로 오고 일이풀리면 덜 급하고 ..
그 것이 인생이란다. 弼씨여!
진시황제의 천하 통일 드라마가 새롭다. 지금 읽 있는 열국지도 그렇다.
'03.3.23.
R.S.O.I. 훈련의 본래 목적은 전시에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이 증원 별력을 재편성하여 전방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주둔지에 접수, 편성, 전방지역 으로 전개하는 절차를 훈련하는 것인데 슬거머니 변질이되어 한반도의 모든 군 조직을 미군 연합 사령관의 휘하로 종속시키려는 듯한 감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국가가 통치자를 잘 못 만나면 자원이 풍부한데도 무자비하게 당하는 이락의 모습에서 우리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향락가 당파, 집단별 조직 이기주의 에 빠져 있으면.. 자윤이가 다녀갔다. 4월 인사가 다가온다.
1) 항공교
2)육본 사업단
3) 부사령관으로 직을 두고 육본 근무
4) 기타 방안등이 에측이되기는 하는데 1개월 정도가 있으면 결과가 나올 것이니 기다릴 수밖에
'03.4.14.
자윤이 주거 지역 이사 문제도 그렇고 아내가 병원에 다녀왔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
남이 일이아니었구나 산부인가 수술? 건강해야 할 텐데 말이다.
'03.4.16.
오늘 자윤이가 신촌에서 보문 동으로 이사를 하고 ..
'03.4.17.
어제 진급 장군의 명단이나왔다 나의 이름이 없었다. 진급이 되면 2년후에는 정역인데 오히려잘되었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03.4.19.
어제 육본 헬기 사업단장으로 명령이 나왔다.4.25.출발에 4월 28일 부 일변 및 신고일자라고 한다.
'03.4.22.
참모 총장에게 40명의 장군들이 전속및 재보직 신고를 했다. 긴 터널 같았던 참모장 생활을 해왔는데 이제 끝이 보인다. K.M.H 사업과의 운명적 만남일 수도 있다.
‘03.4.23.
육본 전속을 위해 이곳 이천 사람들과 함게 알고 교류했던 사람들과의 마무리를 하는데 며칠이 걸렸다.4월28일부로 육본으로 가게된다.
항공 단장취임도 4월 28일에 했는데 우연의 일치인가 . 지금 가는 헬기 사업단장을 마치고 다음다음 보직에는 다시 이곳 항작사로 올 것을 확신해 본다.
‘03.4.24.
참모들과 복지회관에서 저녁을 먹었다.CG, DC/G는 빠지고 게룡대 입성 내번째인데 그곳에서 근무한다는 것도 나쁠게 없다고 생각한다. 건양대냐 공주대냐 ?
박사학위는 그대로 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국립인가 사림인가도 중요 하다
‘03.4.25. 금
( 항작사 출발 ->육본으로 )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출 신고를 하고 점심은 년륜이라는 일식집에서 코리아2000공사장과 식사를 하고 저녁 8시에는 이천 사람들과 같이 오대양이란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유승우 시장이 와서 도자기 선물을 하나주고 갔다. 강식근, 김성태, 이이선, 황규선씨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