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탐석을 다니지 못하여 읽을거리를 올리지 못하였는데 참수석 고정 팬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오랜만에 돌 하나와 대화를 시작해본다. 오늘 이야기를 나눌 돌은 석명 '눈 오는 달밤'인 그림 돌이다.
세상의 모든 과학과 기술 그리고 생활과 규범에 대한 관점은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이러한 것들을 편의상 하나로 요약하여 문화라고 해보자. 문화는 하나의 흐름이다.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이런 변화가 불편하여 한 곳에 머물겠다고 하면 역사의 흐름에 계속 저항을 받는다.
이럴 때는 흐름을 타는 것이 자연스럽고 차라리 편하다. 자동차 운전할 때와 비슷하다. 비록 흘러가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그때 좀 힘들더라도 장애물 넘기를 하는 것이 그다음이 편하다. 이런 장애물을 넘지 않으려고 한 곳에 멈추어 버티면 그 순간은 편해도 계속 피곤하고 항상 뒤에서 흘러오는 흐름과 부딪치며 마찰을 빚게 된다.
이것은 세상의 일도 그렇고 좁게는 개인적인 생각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흐름을 타며 미래 지향적인 생각과 관념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개인의 성장에도 좋다. 흐름에 그냥 자연스럽게 생각을 맡기면 저절로 함께 흘러가게 된다.
수석의 지식은 상당히 광범위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심지어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선배들은 이야기한다. 특히나 역사가 오래된 경석과 형태석의 경우 명문으로 되어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많은 노하우들을 오래된 선배 곁에서 배우는 것이 지름길이다.
문양석의 경우에는 그에 비하면 조금 역사가 짧다. 그러다 보니 석륜과는 비례하지 않고 문양석(그림돌)을 오래 하신 분들이 더 많이 문양석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필자도 나름대로는 빨리 배우고자 하였지만, 선견지명이 있어서 꽤 오래전부터 하신 분들이 있어 자연 그런 분들에게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해석의 발전과 함께 문양석의 다양한 연구와 보급으로 지금은 문양석의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고 해석에서는 문양석이 대부분을 점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문양석의 전성기다. 그래서 문양석도 해석이 강한 남쪽이나 해변에서는 폭넓게 추상(비구상)으로까지 발전하였고 강돌이 강한 내륙 쪽에서는 아직 강돌의 구상(풍경화, 산수화와 같은 사실적 그림, 수석에서 닮은 그림, 축경 그림)이 강한 편이다.
이런 폭넓은 강돌과 해석 그리고 문양의 구상과 추상의 사이에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인가. 월간 수석지를 보다 보면 간혹 이것도 수석인가? 하는 의문이 때때로 들게 된다. 수석이라 하면 '희귀하고 아름다운 돌'이란 개념이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공감이 되지 않는 그러한 돌도 있다.
좋은 수석은 '이러한 돌이 수석이야'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며 보지 않아도 그냥 느낌이 아름답고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이것이 참다운 수석이다. 이러한 수석은 소위 우리가 명석이라고 하는 돌들로 너무 귀하다 보니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뜻 있는 분들은 수석계의 침체를 막고 활성화를 위하여 지속해서 수석을 연구하고 범위를 새롭게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선의의 노력에 아무도 거스르지 못할 것이고 그분들의 수석계 미래를 사랑하는 헌신적인 노력에 곁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뜨거운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면 징그러울 것이다. 우연히 같은 복장을 한 사람을 만나도 겸연쩍다. 그러니 생각이 모두 같을 수도 없지만 같다면 정말 재미없는 세상이다. 돌도 또한 모두 똑같이 생겼다면 수석취미 금방 시들해질 것이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돌들이 산출되는 만큼이나 취향 또한 개성만큼 다 다르다. 수석뿐만 아니고 모든 분야가 매한가지다.
다양화는 흥미를 유발하고 적절한 긴장을 유지해주는 삶의 활력소다. 매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민주주의 기간이 짧아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참을 수가 없다. 똑같이 만들거나 반대파라면 말살하여 씨를 없애야 속이 풀린다. 독재시대의 획일화 문화에 아직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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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다른 견해를 갖은 사람과 대화를 하여 합의를 이루고 비록 일치되지 않아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주며 공정한 게임을 즐기며 공존할 줄 아는 그런 민주주의 다양화 시대에 맞는 성숙한 사고방식을 갖추어야 한다.
반대자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 겸허히 받아들여 개선 보완하며 자신의 장점을 살려 나가면 점차 우세해질 것이다.
그와 반대로 지적을 빌미 삼아 적대시하고 반목으로 반대자의 의견을 뭉개고 투쟁으로 말살하려 한다면 갈등은 심화되고 자신의 단점도 전혀 보완되지 않아 점점 열등화 되어 갈 것이다.
문화 속에서도 기술은 항상 첨단을 달리고 법은 대다수 사람에게 공감대가 형성될 때에서야 제도적으로 반영되므로 항상 늦다.
어차피 모든 분야와 해당 각 부분이 일시에 똑같이 갈 수 없다면 앞서가는 생각(혁신적)이든 소신 있는 고정적(소위 보수적)인 생각이든 다양화, 개성화 시대에는 서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시대에 맞추어 공존하며 살아가는 데 적응하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 |
석명: 눈 오는 달밤, 크기:4x7x3, 산지: 울산 |
이러한 복합적인 흐름 속에 수석을 처음 하시는 분들은 주변의 동호인들과 함께 가까운 산지에서부터 배우며 차근히 시작하면 될 것이다. 문양석의 경우 추상과 구상에 대하여서도 각자 말씀이 많겠지만 서로 각자의 취향을 인정하며 공존해가면 될 것이다. 필자의 경우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씀드린다면 추상이든 구상이든 보아서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문양의 서론이 길어졌는데 필자가 오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석명 '눈 오는 달밤'에 대하여 시작해 보겠다. 이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언뜻 그림의 의미가 떠오르지 않아 탐석기에 보니 추상으로 되어 있었다. 실지로 그러했다. 무엇인가 그림의 이미지가 나올 것 같은데 제목(의미)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석은 자연과 소장자가 함께 합작으로 만든 예술 작품이다. 자연의 오랜 세월의 정성 어린 가공과 소장자의 선택과 연출이 만들어낸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다. 미술 전시회에 가면 작품명이 없는 그림은 거의 없다. 작품명이 없으면 호랑이 그림에 눈이 없는 듯하고 사진으로는 초점이 맞혀지지 않은 듯하다.
항상 제목 없는 수석을 보게 되면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계속 돌에 물어보게 되고 제목을 찾아내려고 고심하게 된다. 즉 아직 풀어야 할 과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 돌이 그랬다. 그래도 우리는 감이라는 것이 있다.
형태석이든 문양석이든 돌의 소재는 수석으로서 훌륭한 수석감인데 바로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무엇인가 멋진 수석이 될 터인데 그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경)이 조금 어렵다거나 소장자의 생각이나 경험이 조금 그 분야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 오는 달밤'에서 필자가 가장 막혔던 부분이 月이었다. 좌측 상단은 밤하늘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본 그런 풍경이다. 아랫부분은 비탈진 기슭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늘 푸른 나무 상록수라면 더욱 운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측 상단의 그림이 달로 보기에는 조금 다르고 하여 거기서 생각이 자꾸 끊어지게 되었다.
즉 눈 오는 밤하늘 야경으로 보려니 우측의 그림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보통 달하면 동그래야 하고 또 보통은 보름달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반달 초승달도 많이 등장하고 특히나 초승달에 대하여는 보름달보다 더 생각하여 주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출된 것을 보니 이것이 확실히 상현달로 보이고 달 주변에 구름이 조금 있는지 또는 눈에 의한 듯 달무리까지 밝게 비치고 있는 그런 멋진 달이었다. 이 돌은 해석이라 확실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동안 너무 사실적인 구상 쪽으로 달이 주된 그림임으로 확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반구상이거나 초등학생들이 그림을 그리어 서툴게 상현달을 그릴 수도 있다. 그리하니까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돌의 그림이 이제 한 눈 안에 확 들어오게 되었다. 돌은 작지만 오석이라 의심의 여지 없이 돌 전체적으로 깊고 깨끗한 느낌을 주고 석질도 단단하여 간혹 한씩만 만져 주기만 하여도 되는 좋은 그림돌이다.
작은 돌에 하늘에서 함박눈이 고요히 내리는 달밤의 아름다운 경치, 이런 큰 그림이 들어 있다는 것이 해석의 묘미다. 아직 좌대를 하지 못하였는데 옷 단장을 시켜서 보면 더 볼만할 것이다. 오늘은 모처럼 소품 해석 눈 오는 달밤을 보면서 그동안에 이 돌을 보며 나누었던 생각들을 돌과 대화를 하며 정리를 하여 보았다.
아래 박용철 시인의 눈은 내리네 시를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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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내리네
이 겨울의 아침을 눈은 내리네
저 눈은 너무 희고 저 눈의 소리 또한 그윽하므로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임이여 설은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내리어 우리 함께 빌 때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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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는 아파트 사이 오른 맑은 달을 보았습니다. 돌 그림이 눈 오는 달밤을 나타내고 있군요, 샬롬
아마 이 돌이 울산 석우의 마당에서 줏었던 것 같습니다. 돌은 작지만 그림이 좋더군요. 정의와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