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중성화 수술, 그리고 너의 매너

[김순희]

발정이 끝난 후 동네 동물병원과 날짜를 상의해 중성화 수술을 하는 날. 이 날을 위해 이동장이라는 것도 난생 처음 구입해서 병원을 찾았다. 수술실로 들어간 2시간 후, 병원 카운터 앞에 놓인 이동장 안에서 막 마취에서 깨어난 땅꼬가 당황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땅꼬와 함께 살면서 새로 열린 세계 중 한 곳이 바로 동물 병원이다. 평생 볼일이 없었던 곳에 드나들게 될 줄이야. 저마다 나름의 아픔을 간직한 개나 고양이를 각종 이동장 , 혹은 품에  소중하게 안고 걱정스런 얼굴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있다보면  아이가 어디가 아픈가, 몇 살인가, 남자애냐 여자애냐, 이쁘게 생겼다, 착하다... 대화가 트이고 편안한 동질감과 오고가는 공감 속에서 그 동안의 고립감이 녹아내리며 안도감이 차오르곤 한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선택을 하면서... - 아니다. 선택했다기 보다는 그냥 불가항력으로 그렇게 되어 버란 것이다 - 또 소수자의 삶을 선택했는가, 나는 왜 늘 이 모양인가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하루하루 피어나는 낯설고 신비로운 감정은 내 가슴에 벅차 올라 넘쳐 흐르고 싶었으나, 누구에게 차마 고일 수 있겠는가? 검열 없이, 결혼과 출산으로 가족이 생겼을 때 쏟아지는 축복을 땅꼬와 나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곳이 그 곳이다. 산부인과나 소아과의 대기실처럼... 

서향의 창으로 길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 병원은 드물게 북적였다. 이동장 안에 눈이 휘둥그레 앉아있는 땅꼬를 둘러싸고 또 대화가 피어났다. 중성화예요? 입양했어요? 아... 길냥이 출신이군요. 여자애에요, 남자애예요? 삼색이니까 암컷이예요. 삼색이는 대부분이 암컷이래요. 이름이 뭐예요?

그런데 누군가 "어머 얘 너무 예쁘게 생겼다!!!" 그러는 것이었다. 

"네? 예쁘게 생겼다고요?"
"네, 미묘네요."

그때까지 나는 땅꼬가 예쁜 고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영리하게 반짝거리지만 고양이는 다 그렇게 생겼다고,,, 그냥 내 눈에 예쁜줄 알았는데. 아... 땅꼬는 미묘로구나. 왠지 소액의 복권에 당첨된 느낌. 

마취가 완전히 깨기 전  3-4시간 정도 이동장에 두라는 당부를 듣고 이동장에 든 땅꼬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가족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잡혀 있어 일산에 가야했다. 시간이 어중간했다. 열어두고 가긴 이르고 다녀오면 너무 늦어지는 거 아닌가... 서둘러 돌아오기로 하고 거실 가운데 이동장을 두고 일산으로 차를 몰았다. 식당이 마땅찮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느라 늦어진 저녁식사 중에 나는 좌불안석이었다. 무슨 고양이 한 마리 가지고 유난이냐고 핀잔을 주는 가족들.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거야."라는 내 말에 언니의 표정이 짠해졌다.

"저런.. 얼른 가봐."

그렇게  맘 졸이며 들어선 어두운 거실 가운데 이동장 안에서 땅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애옹~~~반갑게 부른다. 지난 밤부터 금식을 했으니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플 터였다. 통증도 심하겠지. 낯선 경험에 혼자서 무섭겠지. 서둘러 이동장 문을 연 순간 배에 붕대를 감은 땅꼬가 급한 걸음으로 베란다에 놓인 모래화장실로  달려간다. 수액때문에 오줌이 마려웠던 거였다. 이동장 안에는 병원에서 깔아준 종이 패드가 있었지만 땅꼬는 차마차마 그러지 못하고 문이 열릴 때까지 참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했다. 

붕대를 감은 배를 안고 총총 화장실을 향해 달려가는 땅꼬의 뒷모습. 삭삭삭 모래 파내는 소리 후, 쏴아아~~~오래오래 끊어지지 않는 긴 인내의 뒤끝. 

처음 만난 날,  생글거리는 뒤통수가 그랬던 것처럼 쓰릿하게 내 가슴을 쓸고 지나간다. 

이날 이후부터 땅꼬 몸에 벤 매너에 나는 늘 경탄했다. 

너는 어디서 이런 걸 다 배운거니?  

그날 이후 나는 땅꼬의 엄마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