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며 한국 현대 경제학의 한 맥을 세우고 한국은행 총재와 경제부총리, 초대 민선 서울시장 등 정계와 경제계를 넘나들며 열정적으로 현대사를 지내온 조순. 강직한 원칙주의자로서 그리고 검소함과 겸손으로 소신 있는 인생을 살아온 그의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1%2F2012%2F11%2F14%2F286%2Fsub_01.png)
저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는데, 동해안에서도 굉장히 아름답고 좋은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었어요. 마을 이름이 ‘학산’이었는데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마을 전경을 다 내려다 볼 수가 있었죠. 지대가 높아서 다소 생활하기에는 불편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기에는 좋은 곳이었어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들 우리 동네가 최고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저희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강릉 시내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 다녔는데 집에서 십 리 이상 떨어진 곳이었어요. 그러니 친구들과 다른 놀이를 할 만한 시간이 별로 없었고 매일 먼 거리를 통학하는 시간이 곧 노는 시간이었죠. 친구들이랑 함께 걸어 다니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요.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와 같은 학자 집안은 아니었지만, 대대로 크고 작은 과거시험에 합격을 해왔던 분들이 많았어요. 위로부터 배운 유학의 전통과 가르침은 대단히 강렬했죠.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늘 모범을 보여주셨고요. 그 영향력이 제가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을 지금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요.
부친은 아주 청렴하고 정직한 분이셨어요. 즉, 성품이 맑고 깨끗하고 재물을 탐하는 분이 아니셨다는 얘기죠. 그리고 한문을 잘 하시면서도 고지식한 면이 없이 아주 현대적인 분이셨습니다. 정말 놀라우리만큼 생각하는 방법이 현대적이셨죠. 또 모친은 아주 꿋꿋하고 의지가 강하셨고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능력이 예민하셔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셨어요. 두 분의 성격이 다르긴 하셨지만 서로의 장점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늘 조화를 이루셨죠. 부모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자랑스러움과 긍지가 느껴져요.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최고였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제가 1928년생이니까 제가 성장할 때는 일제강점기였어요. 일제강점기는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의 시대죠.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고생만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제가 다닌 학교는 일본인들이 다니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선생님들은 거의 일본인이었죠. 교육의 목적은 좋은 일본의 국민이 되게 하는 것이었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일본 선생님들이 무척 잘 가르쳤던 것 같아요. 학생들을 고생스럽게 했던 기억도 별로 없고요. 그때는 학생들이 선생님이라고 하면 굉장히 존경을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요즘과는 다르게 엄격하면서도 인정이 흐르고 사제지간의 정(情)도 깊은 그런 기풍이 있었죠. 특별히 선생님께서 한자도 잘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6학년 졸업을 하니까 대체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한문이 적힌 일본 잡지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실력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도 학창시절을 무난히 잘 지나온 편에 속하는 것 같아요.
케인즈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당시엔 케인즈라는 인물에 대해 듣지도 못했어요. 제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의 전문부를 나왔는데, 전문부의 교육은 순전히 마르크스 경제학이었고 케인즈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르침이 없었죠. 미국으로 떠날 땐 그저 막연히 경제학을 공부하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으로 간 이유는 군대에 있을 때 미군들과 함께 생활을 했는데 그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에게 더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았어요.
민주국민당을 끝으로 정계를 떠난 조순 박사는 이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을 지냈다. 조순 박사는 공직에 있을 때도 짬짬이 책을 발간했고 공직에서 떠난 이후에는 주로 집필에 몰두해 경제학 관련 전문서적은 물론 인문서까지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제가 유학을 간 곳은 미국의 동북부에 있는 보든 칼리지라는 곳이었는데, 학생 수가 천여 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였지만 유명한 곳이었어요. 교육 내용도 탄탄하고 역대 졸업생들도 훌륭했던 학교였죠. 그 당시 학비도 많이 들었는데 그런 문제는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제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백 불 정도밖에 없었고 단벌신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배짱이었는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결국 그 믿음은 실제가 되었죠.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해결했거든요. 생각해보면 꽤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1차 세계대전 후 혼란이 많았던 것은 모든 것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각국의 정부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금융위기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재정위기가 유럽에서 일어났는데, 그 무너진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응하느냐에 대한 사전준비가 너무나 부족했던 거예요. 그래서 무서운 혼란이 야기된 것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지성인들이 지혜로운 방법과 대안을 모색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느냐가 이 시대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필수적인 조건은 먼저 국가의 리더십이 국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파악한 뒤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그림에 따라서 방향과 전략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 밑에 있는 사람들 또한 금방 알 수 있어요. 마치 아이가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알아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지도력이 중요한 것이고, 그 지도자를 제대로 뽑아야 하는 거죠.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라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요. 또 세계 대세의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하죠.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알고 자신에 대해서 잘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아요. 세상을 잘 안다는 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겁니다. 또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해요. 세계의 대세를 알고, 나라의 형편을 알고, 자신의 능력을 아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또 지도자와 국민이 가까워지고 지도자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한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해요. 국민이 의심하고 신뢰하지 않는 리더는 없는 것과 같거든요. 리더십은 국민의 믿음을 얻는 것이지, 큰 소리를 치는 자리가 아니거든요.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강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반면 좋은 면도 많습니다. 눈물도 많고 동정심도 많죠. 위에서 지휘만 올바르게 해준다면 잘 따라갈 수 있는 국민성이라고 생각해요. 세종대왕이 위에 있다면 세종대왕처럼 좋아지고 연산군이 있다면 연산군처럼 나빠질 가능성이 많죠. 위에서 하기 나름이에요.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2%2F2012%2F11%2F14%2F64%2Fsub_02.png)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의 조순.
미국에서 돌아온 조순 박사는 서울대에서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 등 세계 경제학의 새로운 흐름을 적극 소개하며 경제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정운찬 전 총리, 김중수 전 한은 총재, 박세일 한반도재단 이사장, 좌승희 서울대 교수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그동안 제가 만난 제자들은 경제학 교수로서 만날 수 있었던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저에게는 참 과분했던 학생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자들이 머리가 명석할 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도 대단히 좋았거든요. 좋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우리 모인 곳이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사실 저는 제자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잖아요. 세 사람이 같이 다니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을 가진 그 말이 저는 참 좋아요. 지금도 제자들을 만나면 여전히 배우고 있어요.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주로 케인즈 경제학이었는데 정말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학생들도 공부를 굉장히 잘했기 때문에 성적도 좋았어요. 미국으로 유학도 많이 갔고 유명해지고 성공한 제자들도 많죠. 제자들이 하나를 가르치면 더 많은 것을 깨우쳤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어요. 스승이 말하는 것을 존중해주던 제자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제자들 자체가 저에게는 기쁨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 도움이 되고 서로 자신들의 맡은 몫을 다 했어요. 정말 과분한 제자들이었지요. 퇴계가 율곡보다 35년 연상이었지만 율곡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며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듯이, 저도 후배나 제자들에게 격의 없이 함께 배운다는 동료의식을 늘 가지고 있어요.
순진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그때로서는 절실했어요. 나라가 위급한 상황을 보니까 마음이 안타깝고 급해지더라고요. 제게 탁월한 능력은 없었지만, 저는 생각한 것을 실천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때 당시 우리나라를 보며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7년 IMF가 터졌을 때였는데, 제가 대통령이 되어서 이 나라가 제대로 방향을 잡아갈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싶었어요. 정말 순진했던 거죠. 제 말에 웃으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로서는 절실했습니다. 그렇게 정치에 입문하게 된 거죠.
지금 돌아보면 정치계에서 성공을 하려면 독특한 자질이 있어야 해요. 정치인은 분명한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알려서 믿음을 주고, 또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하고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어요. 정치는 ‘사람 장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을 잘 통솔하고 지휘하고 그들의 호감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저는 그런 능력이 부족한 편이었어요. 그게 학자와 다른 점이죠. 학자는 책을 많이 읽고 연구해서 이치를 깨달아 그것을 잘 정리해서 글로 표현한다면 될 수 있거든요. 저는 그걸 잘하니까 제게 맞는 직업은 학자인 거죠.
사람에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할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주위나 환경의 산물인지라 어떤 흐름에 이끌릴 때가 있거든요. 정치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는 힘쓰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빨리 나타나니까 보람도 컸고 좋았어요.
1997년 당산철교 보수 공사 현장을 찾은 조순 당시 서울시장.
당산철교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이후 일제히 실시된 교량 안전성 검사에서 여러 문제가 드러나 1997년 1월부터 1999년까지 3년간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벌였다.
시민을 잘 이해하려면 접촉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그럴만한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 가능하겠다 싶었죠. 나름대로 시찰도 많이 다녔습니다. 이를테면 당산철교가 문제 있을 때는 현장으로 직접 가서 확인을 했어요. 항상 직접 보고 접촉하려고 노력했죠. 그래야 시민도 ‘저 사람이 이런 걱정을 하고 있구나,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겠구나’하는 기대를 하게 되고, 저 스스로도 시장으로서 본분을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시민들 곁에 가까이 서서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모든 사람과 다 소통할 수는 없었죠.
언젠가 전직 대통령 중 한 분이 현직에 계실 때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로부터 집무실을 옮기시죠?”라고요. 청와대는 국민들과 너무 떨어져 있잖아요. “국민들과 가까운 곳으로 오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게 굉장한 차이를 가져올 겁니다” 라고 말했죠. 남미에 가보면 나라의 지도자가 사는 곳이 시민이 머무는 시내 안에 있지 우리처럼 먼 곳에 있지 않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지도자는 물리적으로도 국민과 가까워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소통이란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능해요. 국민이 소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렵거든요. 그러므로 국민이 소통을 필요로 한다면 그 곁으로 가까이 가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해요.
편지는 대부분 격려의 내용이었어요. 시민들이 저에게 많은 기대를 해주었고 친절히 대해주기도 했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 당시 시민대학이란 것을 만들었거든요. 얼마나 많은 분들께서 호응을 해주셨는지 몰라요. 시민대학에 등록하려고 새벽 4시부터 와서 순번을 받아 기다려주셨어요. 참 감사했죠.
제가 시민들에게 받은 편지 중에서 잊을 수 없는 편지가 있었는데, 무슨 내용인가 하면 “민주당을 잊어버리고, 가족을 잊어버리고, 조순을 잊어버리고, 오직 시민을 위해서 일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아서 벽에다 붙여놓았죠. 아직도 집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거예요.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주 좋은 조언이었죠. 그 편지를 제 스스로 해석했는데 ‘무지한 시장이 되지 말라’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죠. 어느 누구라도 공직에 있을 때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민들을 위해 일하면 성공할 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소신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생각에서 멈춰버리는 것은 안돼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일상생활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 이게 포청천의 가장 큰 덕목이죠. 생활이나 생각이 같아야 하고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해요. 사람이 백 프로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항상 정직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고 청렴에 힘써야 합니다. 의지도 강해야 하고요. 청렴, 정직, 용기, 그리고 인내가 있어야 포청천이 될 수 있어요. 소신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내는 거예요. 그게 소신이에요.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만큼의 몸가짐이 있어야 해요.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말아야 해요. 사실 저는 그런 유혹에 별로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내긴 했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유혹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유혹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죠. 가령 돈을 준다든지 청탁을 한다든지 그런 일들이 여러 번 있었어요. 청탁을 하려면 무언가 따라오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넘어간 적은 없었죠. 아주 높은 사람이 와도 청탁은 무조건 거절했어요.
제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어떤 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어요. “시장님께 딱 한 가지 죄송한 게 있습니다. 제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언젠가 청탁을 드렸지 않습니까? 시장님께서 받아주시진 않았지만요. 그것이 두고 두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청탁을 함으로써 저를 어렵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이었죠.
사실 유혹은 누구든지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러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절대로 그것을 용납해서는 안 돼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판단이 된다면 그 유혹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전부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깨끗하게 살 수 있어요.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건 본인의 능력과 훈련에 달려있는 거예요.
1960년대 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경제라고 하면 항상 성장 위주였습니다. 그 성장의 주역을 맡은 사람들은 재벌이었고요. 사실 정부가 국민보다는 재벌부터 도와준 거예요. 국민과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재벌이 앞장서서 이뤄낸 것이 성장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가 생긴 거죠.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것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경제성장을 해서 소득 4만 달러가 돼야 선진국이 된다는 구호는 공허한 도식이에요. 그런 정책은 양극화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거든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국민들이 알게 하고, 정부와 기업과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방향을 알고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낡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소모적인 논쟁만 하면 성장 잠재력을 기를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은 성장에 못지않게 고용이 중요해졌어요. 양극화가 심해졌는데 그것을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된 겁니다.
사실 한국의 고도성장 시기는 지났다고 봐요. 이제 우리나라에서 옛날처럼 6~7%이상 성장하는 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그 연령을 지났어요. 나라에도 연령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저성장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됐어요. 저성장에 적응해야 합니다. 내수산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해줘야 한다는 뜻이죠. 그것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방법이에요. 저는 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고용 제일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의 경제정책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용 중심주의로 경제정책의 초점이 맞춰지면 고용을 확보할 수 있는 내수산업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될 거예요. 수출도 중요하지만 길게 보고 내수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으로 가야 해요. 대기업만으로는 고용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대기업과 더불어 중소기업의 내수산업이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해야 합니다. 고용이 많아지면 양극화 문제도, 분배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예요.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조순 박사는 각종 행사에 초대받는 유명 강연자이다.
우리는 IMF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시행되었던 신자유주의라는 것을 믿고 거기에 따라서 살아왔다고 볼 수 있는데, 그로 인해 아직도 과거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몸 속에 가지고 있는 상태에요. 옛날 권위주의 시대 때 가지고 있던 버릇도 그대로 남아있고요. 그러는 과정에서 경제균형이 깨지고 불안정해지니까 공정하지 못한 면들도 드러나고, 그로 인해 국민의 단합조차 깨지는 상태가 되어가는 거예요. 그걸 해결하는 것도 큰 과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우선 지력(智力)이 부족하다면 공부를 넓게 하지 않아서죠. 특히 역사를 잘 알아야 해요. 역사를 모르면 곤란해요. 역사란 그야말로 한국의 과거잖아요. 경제를 맡게 되는 지위에 올라간다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가 머릿속에 들어와 있어야 해요. 더불어서 역사 공부뿐만 아니라 세계 대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자기 수양이 필요한 건 당연하고요. 지력이나 판단력이 그런 것을 통해서 생기는데 경제를 분석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거예요.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할 때 그 사람의 체력이나 전력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환자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처방이 가능하니까요.
덕성(德性)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일을 해내는 능력 혹은 인내심, 추진력을 말하는데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이것들을 길러내려면 평소 공부도 많이 해야 하지만, 그만큼 자기 수양도 필요해요. 수양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해내는 거예요. 성품을 훈련하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은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 위주로 사람을 판단하고 내재된 성품에 대해 경시하는 추세라 그것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풍조에 변화를 가져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큰 위기를 겪게 될 거예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분들은 부모님이었어요. 부모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부모님의 가르침이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면 그 앞 세대의 가르침에서 나왔고, 따지고 보면 결국 공자 맹자의 가르침이었던 것이죠. 나도 아버지를 통해서 공맹의 책들을 다 읽어봤지만 그게 정답이더라고요.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살다 보니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나름대로 제 자신의 위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모든 교육의 기본은 가정입니다. 제일 필요한 선생님은 부모님이에요. 그 다음에 학교가 필요하고 선생님이 필요한 거죠. 부모님이 맡은 역할을 잘 해내야만 해요.
그런데 이 시대의 교육은 전통적인 가정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가정이 파괴된다고 해도 교육의 내용과 시스템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죠. 그러니 아이들은 황량한 광야 속에서 세월을 보내게 되는 형편이 되었어요. 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미국의 가정교육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어요. 미국도 가정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 대체적으로 아이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세계가 변해가고 있어요. 사람의 기본 도리를 잃어버리는 모습으로 말이죠. 우리 사회도 가정이 핵가족화 되면서 많은 가정들이 깨어졌죠. 이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지 안타까움과 난감한 마음입니다.
조순 박사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해 고전에 조예가 깊다. 한국고전번역원 회장을 지냈으며, 짬이 날 때마다 서예를 즐긴다.
국민들에겐 롤 모델이 필요합니다. 어디든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모범은 최고 지도자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이 정답이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가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대통령 한 사람의 역할이 제일 중요해요. 거기서 모범이 나와야 합니다. 대통령이 먼저 모범을 보여준 뒤 지시를 하고 교육을 시켜야 하죠.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해요. 그리고 난 후에 믿음이 회복되는 순서가 맞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더디게 가더라도, 지도자는 정직과 소신 있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믿음과 신뢰를 보내고 그런 가운데서 점차 신뢰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회복될 겁니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간간이 사람들 입에서 ‘조순학파’라는 말이 오르내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학파라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학파를 만들어서 대장 노릇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학생들이 나를 따라주면 그저 좋고 안 따라준다면 그대로도 좋거든요.
“내가 대장이니 따라와라!”라고 한다면 모여들 사람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태도나 그런 식의 모임을 좋아하지 않아요. ‘조순학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나 제 제자들은 변함없이 저를 잘 따라주고 있죠. 제자들과 잘 지내는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그저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겉으로 나타나지 않게 도와줍니다. 단지 그것뿐이에요. 학생들을 많이 대하다 보면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눈에 보여요. 자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 필요한지 아버지가 아는 것처럼 말이죠. 아버지와 자녀 사이 같은 제자와 스승의 관계! 제가 생각해도 편하고 좋은 사이죠. 저는 제자들이 참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자식만큼요.
실패라고 한다면 2002년에 민주국민당을 만들었다가 대패한 거예요. 그것조차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 동료들 가운데 한국 정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제가 당에서 나오겠다고 하니 붙잡더라고요. 좋은 시대가 오니까 포기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저는 제가 있던 대표 자리를 물려주고 나왔죠. 굉장히 빨리 제 자신에 대해 파악한 거라고 생각해요. 국민과 정계에 대해서도 말이죠.
고궁을 거닐며 망중한을 보내는 조순 박사. 앞으로 세계 경제 흐름과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대응법을 정리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자료는 모아 놓았지만 힘에 부쳐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살아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후회는 없어요. 후회를 해 봤자 소용이 없죠. 지금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때보다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그때마다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하고 위기를 맞았을 때 이겨내는 방법은 자신의 소망과 희망과 의지입니다. 사람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추진한다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어요. 다만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동떨어져 있다면 문제가 돼요. 세상을 알고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해요. 쓸데없는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계속 반복합니다만,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인 거죠.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자녀들이 성장할 때 저 혼자 미국에 오랜 시간 머물렀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 정신적으로 살펴주지 못했어요. 그게 지금도 미안함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많은 것을 받았지만 제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못해준 거잖아요. 또 제 아내에게도 짐을 혼자 지게 해서 미안하죠.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 엄격한 사람은 아니에요. 가족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데, 늦은 게 아닌가 싶어요. 자랄 때는 미국에 있어서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했고, 애들이 좀 더 커서는 제가 교수 일을 하고 책 쓰느라 못했어요.
저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전부 아들이에요. 제 아이들이 다 괜찮은 편이에요. 자기 몫도 잘 해내고요. 특히 제 며느리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집이 평화롭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의 것을 발휘할 수는 없거든요. 제가 부모님께 본받은 좋은 것이 더 많았으니 제 자녀들도 그대로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조순 박사는 젊은이들이 좌절하지 말고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와 신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인내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며, 원칙을 지키며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자신도 그렇게 살아왔노라고 강조한다.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와 신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생명을 포기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어야 해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고통이 있으면 참아내세요. 인내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에요. 그리고 근검 절약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아요.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을 알아준다는 사실을 믿고, 자기의 삶을 개척해 나갔으면 해요. 자신을 제대로 알고 쓸데없는 욕심을 갖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자기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에요. 성공은 큰 지위를 얻는다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관리할 정도로만 얻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주희(朱熹)가 공자를 가리켜 한 말인 ‘계왕개래(繼往開來)’라는 사자성어가 있어요.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서 후세에게 가르쳐 전한다는 뜻인데, 이 말은 단순히 과거의 지식을 계승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는 의미죠. 미래를 열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미래를 열더라도 단절이 돼선 안 된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유행만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물정에 밝지 않고, 사람들과 관계하는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 집에서도 항상 가족들이 저더러 숙맥이라고 말해요. 저도 인정해요. 정말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누구에게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요. 손자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고는 하죠. 이렇게 저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하고 싶어요. 왜냐면 제 나름대로의 원칙과 희망을 가지고 바라는 것을 향해서 한발자국씩 내디디면서 많은 것을 이루어 왔거든요. 중간에 좌절감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을 한 적은 없었어요.
이제 앞으로 남은 날 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어요.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이나 그것에 따른 우리나라의 대응방법 등을 풀어낸 책을 한 권 내고 싶어요. 현재 자료는 많이 모아놨는데, 굵직한 글씨체로 150페이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이 따라줄 지 모르겠어요. 특별한 병은 없지만 나이가 드니까 힘이 좀 부칩니다. 근력이 약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책을 집필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 제가 해야 할 남은 과제라고 생각하니까요.
첫댓글 진정한 된사람의 일대기를 읽은 느낌이 듭니다
부운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