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살았어도 그때가 좋았어라 -소의 귀를 닮았다는 전남 신안, 우이도
휴대폰 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빛의 밝기는 게으른 나를 질책하는 듯 했다.
“여보세요?”
그러나 휴대폰 저쪽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고 한번 더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침묵. 잡음만 들리는 휴대폰을 접으려는 순간 미세하지만 청명하게 들리는 소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잡음이 아니라 파도 소리였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고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내는 맑은 물소리.
“예쁜 파도 소리 듣고 좋은 하루 시작하라고...”
“어딘데?”
“파도 소리 들리지?”
“어디냐고?”
“...안녕. 뚜뚜뚜...”
나는 다시 배낭을 꾸렸다. 바다로 가기 위해서, 섬으로 가기 위해서.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던 파도 소리가 그리웠던 것이다. 뭍을 향해 달려왔다가 이내 밀려나가고 마는 파도 소리뿐 아니라 뺨을 스치며 머리카락 틈까지 애무해주는 바닷바람이 그리웠고, 나의 시선을 벨 듯한 수평선이 그리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친구와 내가 동문서답을 주고받았던 이유가
수면과 귓가를 오갔던 그의 휴대폰 주기와 그곳이
어디인지만을 묻던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parkspark.com%2F05lifetavelimages%2Fuido07.jpg)
|
나의 질문 주기가 엇갈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나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 대답이 없어 그냥 적막한 동굴 속에 대고 파도 소리를 들려주는 느낌이라고 했다. 음성 메시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파도 소리를 들려주며 안녕이라는 인사까지 남겼던 친구. 바다보다 아름다운 친구라고 생각했다.
안개에 갇히다
출발할 때는 맑았음에도 목포여객터미널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내창구 직원은 12시 10분에 출항 예정인 우이도행 배가 먼바다에 발효된 폭풍주의보 때문에 결항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기예보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것이 불찰이었지만 매표가 시작되는 11시의 상황을 보고 최종 결정된다니 비바람이 잦아들기만을 바라며 그 사이 아침 요기를 하기로 했다.
역이나 터미널 주변의 식당들 대부분이 뜨내기손님을 상대하다보니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비싸면서도 음식의 질은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여객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서 아침을 먹고 싶었지만 비바람 때문에 그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여객터미널 근처의 한 식당으로 들어가 백반을 주문했고 혼자 차지하고 있는 식탁 위에 하얀 종이가 깔리더니 이내 반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이 전라도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5,000원짜리 백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종류의 반찬들과 맛있는 꽃게찌개. 전라도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역시 행복한 일이었다.
다행히 11시가 되었을 때 매표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졌고 배도 제시간에 출항했다. 배는 목포항을 빠져나가면서 여러 개의 섬들 사이를 지났고 우윳빛과 옥빛을 혼합한 듯한 바다 위로 가끔은 빗방울이, 가끔은 햇살이 내리비추고 있었다. 3시간이 넘어 도착한 우이도의 ‘돈목’ 부두에는 미리 예약한 민박집 아주머니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아주머니를 따라 작은 언덕을 넘으니 20여 채의 집들이 모여있는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소박하고도 포근한 풍경이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parkspark.com%2F05lifetavelimages%2Fuido03.jpg)
|
민박집에 여장은 풀었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때문에 밖으로 나가도 별다르게 할 일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안개까지 자욱하게 끼어있었다. 낮이 되면서 비는 소강 상태를 보였지만 안개의 깊이는 전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시 거리가 20-30미터를 넘지 않는 상황에서 세상이 온통 잠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안개에 갇힌 섬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 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이슬을 머금은 풀잎들은 낮게 누워있었고 방파제 끝에 정박한 한 대의 선박은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을 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풍경은 붉고 파란 몇 개의 지붕들 사이에서 교회의 작은 첨탑이 위치를 표시하는 표석처럼 자리하고 있을 뿐 고요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몇 년만에 바라보는 평화로운 어촌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대로 세상이 멈추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이도의 상징, 모래 언덕
|
다음 날 아침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있었고 섬을 감싸고 있던 안개도 물러가 바다와 백사장과 마을과 산들이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우이도는 그야말로 오지나 다름없는 섬이다. 해안가에 몇 개의 마을이 있지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도로도 없이 산길을 이용해야 하며 따라서 섬에는 차량이 필요하지 않다. 그 흔한 인터넷도 없고 심지어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문명의 이기들과 잠시나마 이별을 할 수 있는 섬이 바로 우이도인 것이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parkspark.com%2F05lifetavelimages%2Fuido06.jpg)
|
우이도에는 몇 개의 해변이 있지만 돈목 해수욕장만이 야영이 가능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1.5km 길이에 300m가 넘는 너비를 자랑하는 돈목 해수욕장의 모래는 매우 부드럽고 밝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아직은 여행자들이 찾지 않는 이른 바닷가를 걸으며 휴대폰으로 들었었던 잔잔한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완만한 해변에 얇은 포말을 일으키며 울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 모래사장 한쪽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아직 안개가 남은 수평선 끝자락을 바라보며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화음을 즐기는 것은 때묻지 않은 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조금 당황했던 것은 해변 한쪽에 밀려온 죽은 돌고래였다. 나의 눈에는 물개로 보였지만 민박집 주인 아저씨는 돌고래라고 말했다. 어떤 연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 생명체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은 우울한 일이었다.
우이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돈목 해변에 면해 있는 모래산이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사구(砂丘)로서 33도를 전후하는 경사도에 80m 높이로 이루어진 이 언덕은 우이도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경사가 가파른 이 언덕을 좀더 쉽게 오르기 위해서는 정면보다는 성촌마을을 끼고 돌아서 반대편 큰대치미해변에서 올라가야 한다.
사구의 정상에 올라서니 한쪽에는 돈목해변이, 반대편에는 큰대치미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도심에서 혼탁해진 시력이 말끔하게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들릴 듯 말 듯 아련한 파도 소리와 손등과 뺨과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바닷바람. 멀리 언덕 아래 초지에서는 방목 중인 흑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일정한 높이를 갖고 있는 마을의 지붕들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소의 귀를 닮아서 우이도라 불린다지만 그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해변, 마을, 산세 어디에서도 소의 귀를 닮은 구석은 없었다. 심지어 지도를 통해 보았던 섬의 전도에서도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금의 이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마을
산에 올라보고 싶었다. 바다에만 머물렀다 떠나는 것이 아니고 섬에서도 산에 한번 오르고 싶었다. 돈목에서 우이도의 또 다른 마을인 ‘진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하고 두 번째 산을 넘기 전 샛길로 들어서면 우이도에서 가장 높은 상산봉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산을 오르면서 물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등산로를 연상시킬 정도로 제법 넓은 산길은 정상에서 끝이 났고 내리막으로 이어지면서 길이 급격히 좁아졌다. 더욱이 풀들도 많아서 길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에 이대로라면 상산봉에 오르기 전에 풀숲에 길이 묻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을 조금 더 내려갔을 때 멀찍이 나타난 마을의 모습이 아늑해 보여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산과 산 사이에 형성된 구릉지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에 도착하고서야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그 마을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마지막까지 살고 있던 유일한 분이었으나 지금은 진리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염소를 방목하기 위해 매일 2시간을 걸어서 이곳까지 오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금은 사라진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예전 이 마을에만도 20여 가구가 살았으며 주민만 100여 명이 넘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나마 예닐곱 채만이 가옥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뿐 대부분은 집터만 남아있는 이 마을도 한때는 사람들로 붐볐던 것이다. 하기야 지금은 우이도 전체 주민을 합쳐도 100명이 넘지 않으니 세월은 무심히도 흐른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지금 살고 있는 진리에서 염소를 방목하고 싶어도 모두 땅 주인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살던 마을까지 매일 산을 넘어와야 한다고 했다. 매일같이 걸어야 하는 왕복 4시간의 거리는 결코 젊은이에게도 짧지 않은 거리다.
할아버지는 말씀 중에 ‘없이 살아도 그때가 좋았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이웃집에서 나눠주고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갚아주며 살았기에 그 가난한 세월도 잘 살 수 있었다고 하셨다. 염소를 살펴본 후 할아버지는 진리로 돌아가기 위해 산길을 되돌아 가셨다. 상산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할아버지를 따라가야 했지만 나는 그 길을 포기했다. 자식이라고는 결혼한 딸 하나가 전부인데 서울에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우이도는 그렇게 섬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삶의 뒷모습까지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절뚝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천천히 산을 넘어 되돌아왔다.
글과 사진/박동식
tip
우이도 가는 길: 목포항 여객터미널에서 하루에 1대(출항시간 12:10/061-244-0005)의 배가 운항한다. 섬에는 차를 가져가도 도로가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목포까지는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만 만약 자가용을 이용했을 경우에는 여객터미널 옆 무료주차장에 주차하고 우이도에 들어가면 된다.
우이도의 해변: 우이도에는 3-4개의 해수욕장이 있지만 돈목만이 야영을 위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민박을 한다고 해도 돈목해수욕장과 큰대치미해수욕장만이 마을이 있기 때문에 돈목부두에서 하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박집: 우이슈퍼민박 061-261-1863 / 한승미민박 061-261-1740 / 모래산민박 061-261-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