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참판공(參判公) 휘 녹석(祿錫)이시고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로 5형제 중 셋째이다.
[자는 택우(宅于)이고 호는 남은(南隱)이다.
중종(中宗) 무술년(戊戌年 1538)에 태어나셨다.
신유년(辛酉年 1561)에 무과에 올라 벼슬이 달성판관(達城判官-종5품))에 이르렀다.
백성을 다스림에 은혜의 마음을 베풀고 공무를 집행함에 빠지는 바가 없었다.
임진년의 난을 당하여 글을 유촌(柳村) 박종남(朴從南)에게 보내어 지사(志士)의 기운을 충동시켰고 집사람들을 이끌고 안동 금곡(安東金谷)으로 들어가 적을 맞아 싸웠다.
선조(宣祖) 기해년(己亥年 1599)에 돌아가시니 향년이 62세 였다.]
○ 배는 밀양 박씨(密陽朴氏) 운환(雲煥)의 따님으로 기삼, 연희, 기수 등 3형제를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장자 참군공 석림→ 차자 세영→ 면→ 장자 참판공 녹석→ 3자 판관공 인광으로 이어진다.
● 27세 부정공(副正公) 홍간(弘幹)
아버지는 참판공(參判公) 몽기(夢麒)이고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도안 이씨(道安李氏)로 형제 중 장남이다.
[자는 직경(直卿)이고 융경(隆慶) 경오년(庚午年 1469)에 태어나셨다.
임진왜란 때에 창의하여 공이 있어 조산대부(朝散大夫) 제용감 부정(濟用監副正-종5품)을 제수 받았다.]
○ 배는 영인(令人) 김해 허씨(金海許氏) 인수(麟壽)의 따님이시며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의 외손이시며 시훈, 만훈 두 아들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차자 군수공 원림→ 찰방공 광증→ 장자 병사공 승형→ 차자 참판공 몽기→ 장자 부정공 홍간으로 이어진다.
● 27세 동고재공(東皐齋公) 후근(厚根)
아버지는 참의공(參議公) 몽성(夢星)이시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 군자감정(軍資監正) 덕란(德鸞)의 따님으로 3형제 중 장남이다.
[자는 득배(得培)이고 호는 동고재(東皐齋)이다.
만력(萬曆-명 신종) 기묘년(己卯年 1579)에 태어나시고 영력(永曆-청 세조) 기해년(己亥年 1659) 11월에 돌아가셨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군공(軍功)이 있어 음성훈도(陰城訓導-종9품)에 제수 되고 수직(壽職-관직 80세)으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이 일이 동경지와 화왕산 동고록과 임란 의사록에 있다.]
○ 배는 숙부인 웅천 주씨(熊川朱氏) 참봉(參奉) 사웅(士雄)의 따님으로 지훈, 원훈, 형훈, 이훈 등 4형제를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차자 군수공 원림→ 찰방공 광증→ 장자 병사공 승형→ 3남 참의공 몽성→ 동고재공 후근으로 이어진다.
● 27세 양무공(良武公) 언춘(彦春)
아버지는 충효재공(忠孝齋公) 안국(安國)이시고 어머니는 경주 최씨(慶州崔氏)로 양무공은 차자로 태어났으며 위로 수문장공 형 휘 승춘이 있다.
[자는 언지(彦之)이고 호는 동계(東溪)이다.
선조조(宣祖朝)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에 이르고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켜 공이 으뜸에 이르렀다.
임금이 이를 가상히 여겨 증직으로 훈련대장(訓練大將)을 제수하고 선무원종 1등 공신에 올렸다.
시호는 양무공(良武公)이며 충묘각(忠廟閣)에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였다.
실기(實記)가 세상에 행하고 이 일이 동경지에 실려 있다.
병오년(丙午年 1546) 5월15일에 태어나시고 기유년(己酉年 1609) 3월16일에 돌아가셨다.]
○ 배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아들 상립(尙立)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차자 군수공 원림→ 찰방공 광증→ 차자 진형→ 장자 충효재공 안국→ 차자 양무공 언춘으로 이어진다.
자료 :
자는 언지(彦之) 호는 동계(東溪)이다.
신라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의 후손이며 한성판윤(漢城判尹) 지대(之帶)의 7세손으로 훈련원정(訓練院正) 안국(安國)의 아들이다.
명종 원년(1546) 5월 15일 지금의 경주시 동천동(東川洞)에서 태어나 유년기부터 판단력이 출중하였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담력이 남달랐다.
선조 25년(1592) 임란(壬亂)이 발발하자 당시 마을 훈장이었던 공은 장정들을 모아 창의(倡義)하여 이시랑을 좌령장으로, 아들 상립을 우령장으로 조직하여 의병조직을 지휘하였다.
동년 4월 23일 울산 개운포 전투에서 의병장 윤홍명, 이응춘, 장희춘 등과 합세하여 백운암에서 적을 크게 물리쳤다.
동년 5월 19일 울산 달현전투에서 이시랑을 좌대장(左隊長)으로 아들 상립(尙立)은 우대장(右隊長)을 장악케 하고 공(公)은 의병을 총지휘하여 야간공격으로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동 25년 12월 14일 박인국, 이여랑, 류정 등 의병장과 함께 원원사(遠願寺)에 집결하여 화살을 만드는 작업 중에 적의 침입을 받아 접전 끝에 왜적 70여명을 격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동 27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주부에 제수되었다.
동 27년 9월 24일에는 은진 현감 이의(李穀), 방어사 권응수 등이 주도하는 영천 창암(蒼岩)전투에 나아가 유정(柳汀)과 합세하였다.
또 시현(柴峴)전투에서는 좌령장 이시랑(李時良)과 우령장 상립(尙立)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고 동년 12월 10일 재침한 적을 물리쳤다.
동 29년 3월 3일 팔공산 회맹에 참가하고 여러 고을 의병장과 함께 수성(守城-성을 지킴)에 공이 컸다.
동 38년(1605)에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고 양무(良武)의 시호를 내렸다.
기유년(己酉年 1609) 3월16일에 돌아가셨다.
후손들은 양무사(良武祠)를 세워 영정을 모시고 제향(祭享-나라에서 올리는 제사)하고 있다.
자료 : 경주읍지. 임란의사창의록.
● 27세 직장공(直長公) 희춘(希春)
아버지는 충효재공(忠孝齋公) 휘 안국(安國)이시고 어머니는 경주 최씨(慶州崔氏)로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으며 양무공 언춘이 바로 윗형이다.
[자는 원화(元和)이며 벼슬은 직장(直長-종7품)으로 선무원종 공신이다.]
○ 배는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며 아들 우석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차자 군수공 원림→ 찰방공 광증→ 차자 진형→ 장자 충효재공 안국→ 3자 직장공 희춘으로 이어진다.
● 27세 만호공(萬戶公) 용갑(龍甲)
아버지는 참봉공(參奉公) 휘 숙정(淑貞)이시고 어머니 성씨는 미상(未詳)으로 3남중 장남이다.
[자는 운보(雲甫)이고 임술년(壬戌年 1562)에 태어났다.
벼슬은 만호(萬戶-정4품)이다.
임진왜란 때 두 아우 구갑, 원갑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으므로 같이 곽망우당 동고록(郭忘憂堂同苦錄)에 실렸으며 동경지에도 나타나 있다.]
○ 의용, 진운, 여무 등 3형제를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3남 선략공 형림→ 장자 군수 승광→장자 부사공 양근→ 장자 참봉공 숙정→ 장자 만호공 용갑으로 이어진다.
● 27세 판관공(判官公) 구갑(龜甲)
아버지는 참봉공(參奉公) 휘 숙정(淑貞)이시고 어머니 성씨는 미상(未詳)으로 3남중 차남이다.
[자는 명보(明甫)이고 을축년(乙丑年 1565)에 태어났다.
벼슬은 정오품(正五品) 판관(判官)이다.
임진왜란 때에 형 용갑과 아우 원갑 등 3형제가 의병을 일으켰으니 곽망우당의 화왕산 동고록에 실리고 동경지에도 나타나 있다.]
아버지는 참봉공(參奉公) 휘 숙정(淑貞)이시고 어머니 성씨는 미상(未詳)이며 3형제 중 막내이다.
[자는 길보(吉甫)이고 무진년(戊辰年 1568)에 태어났다.
벼슬은 봉사(奉事-종8품)이다.
임진왜란 때에 용갑, 구갑 두 형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으니 이 사실이 화왕산 동고록에 실려있고 동경지에도 나타나 있다.]
아버지는 참봉공(參奉公) 휘 말종(末從)이시고 어머니는 울산 이씨(蔚山李氏) 석수(石守)의 따님으로 제조공은 7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으며 자는 인병(鱗炳)이다.
[가정(嘉靖) 임진년(壬辰年 1532) 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고 수급 수십 겁을 베니 조정에서 특별히 통정대부 사복제조(司僕提調-정3품)를 제수하고 원종공신에 기록하였다.
이 일이 동경지에 나타나 있다.]
○ 배는 능성 주씨(綾城朱氏)로 단, 상 두 아들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3남 선략공 형림→ 장자 군수 승광→차자 양춘→ 참봉공 말종→ 장자 제조공 운룡으로 이어진다.
● 27세 첨정공(僉正公) 남일(南一)
아버지는 참의공(參議公) 휘 학(鶴)이시고 어머니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보(輔)의 따님으로 첨정공은 3형제 중 둘째이다.
[자는 이여(以余)이고 또 다른 이름은 기춘(起春)이다.
무과로 벼슬은 만호(萬戶-정4품)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에 아버지를 쫓아 진중에 가서 언양과 울산으로 들어오는 적을 맞아 격멸하고 잠복하였다가 쫓았다.
조정에 공이 올라오니 임금계신 곳으로부터 훈련원 첨정(訓練院僉正-종5품)을 제수 받았다.]
○ 배는 안동 권씨(安東權氏) 합례(合禮)의 따님으로 후생, 예생 두 아들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차자 진사공 묵→ 차자 인형→ 장자 인서→ 참봉공 자온→ 참의공 학→ 차자 첨정공 남일로 이어진다.
● 27세 첨정공(僉正公) 인수(仁守)
아버지는 문과(문과)에 급제한 휘 정남(井男)이시고 어머니는 경주 김씨(慶州金氏)이시다.
[가정(嘉靖) 무오년(戊午年 1558)에 생(生-태어남)하고 정유년(丁酉年 1597)에 졸(卒-세상을 떠남)하였다..
벼슬은 선무원종 공신이며 훈련원 첨정(訓練院僉正-종4품)이니 이 일이 공신록에 기록되어 있다.]
○ 배는 미상이나 노직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인 아들 득창(得昌)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차자 진사공 묵→ 차자 인형→ 차자 임서→ 현감공 신온→ 차자 정남→ 첨정공 인수로 이어진다.
● 27세 판관공(判官公) 봉수(鳳壽)
아버지는 첨정공(僉正公) 휘 시명(時明)이시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판관공은 3남중 둘째이다.
[또 하나의 이름은 봉수(鳳秀)이고 자는 기옹(岐翁)이며 호는 죽헌(竹軒)이다.
선조(宣祖) 임금 때 한성부 판관(漢城府判官-정5품)으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 적을 토벌하고 공을 세워서 선무원종훈에 기록되었다.
철권(鐵拳-특별 공신에게 면죄부와 전답과 노비를 내리는 일)이 있으니 이 사실이 경주와 울산의 양 읍지(邑誌)에 나타나 있다.
시고(詩稿-시를 지은 원고)가 있으되 판관공의 시문(詩文)과 장적(狀籍-문서 편지 장부 등)이 여러 번 병화를 만나 오직 두어 편만 있다.]
○ 배는 숙부인(淑夫人) 파평 윤씨(坡平尹氏) 부정(副正) 두지(두之)의 따님과 또 한 분 숙부인 경주 손씨(慶州孫氏) 제주판관(濟州判官) 한(漢) 따님으로 기남과 의남 두 아들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차자 참봉공 연→ 3자 신형→ 종려→ 현감공 단→ 첨정공 시명→ 차자 판관공 봉수로 이어진다.
● 27세 선략공(宣 公) 만수(萬壽)
아버지는 첨정공(僉正公) 휘 시명(時明)이시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3형제 중 장자로 태어났다.
[벼슬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장군(宣 將軍)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에 적을 토벌하여 공을 많이 세웠다.
선무원종 공신에 기록되었으며 이 일이 동경지에 보인다.]
○ 배는 청주 한씨(淸州韓氏)로 경남, 춘남 두 아들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차자 참봉공 연→ 3자 신형→ 종려→ 현감공 단→ 첨정공 시명→ 3자 선략공 만수로 이어진다.
● 28세 도총관공(都摠管公) 의남(義男)
아버지는 주부공(主簿公) 휘 희청(希淸)이시고 어머니는 숙부인 경주 최씨(慶州崔氏) 사근(思根)의 따님과 또 한 분 성주 이씨(星州李氏)이가 계신다.
[자는 무익(武益)이며 선조(宣祖) 무신년(戊申年 1568)에 태어났다.
임진왜란의 훈공으로 주부를 제수 받고 기해년(己亥年 1599) 정시(廷試)에 올라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에 이르고 자헌 대부(資憲大夫-정2품)에 올랐다.
증직은 숭정판의금도총관(崇政判義禁都摠管) 선무원종공신이다.]
○ 배는 정부인(貞夫人) 경주 김씨(慶州金氏) 참판(參判) 기남(奇南)의 따님으로 득성 득신 득경 득유 득립 중립 중엽 등 7형제를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장자 참군공 석림→ 차자 세영→ 면→ 차자 언석→ 차자 주부공 희청→ 장자 도총관공 의남으로 이어진다.
* 선조 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된 수문장 언량(彦良)과 병마절도사 부흥(復興),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책록된 대호군 득흥(得興),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책록된 현감 계흥(繼興), 인조 때 진무원종공신에 책록된 의병장 의남(義男-도총관공)이 밀양 당씨(唐氏-고려말 중국 저장성에서 귀화. 개국원종공신) 시조 당성(唐誠)과 더불어‘6공신’으로 유명하다
● 28세 부사공(府使公) 기남(奇男)
아버지는 주부공(主簿公) 휘 희청(希淸)이시고 어머니는 숙부인 경주 최씨(慶州崔氏) 사근(思根)의 따님과 또 한 분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부사공은 4남중 넷째이다.
휘 의남(義男) 도총관공(都摠管公)이 맏 형님 이시다.
[자는 무약(武若)이며 선조(宣祖) 갑신년(甲戌年 1574)에 태어나고 숙종(肅宗) 을유년(乙酉年1675)에 돌아가셨다.
임진왜란 때에 훈공으로 주부를 제수 받고 기해년(己亥年 1599) * 정시(廷試)에 올라 벼슬이 가의 대부(嘉義大夫) 행한성좌윤(行漢城左尹: 行- 현재 품계보다 낮은 벼슬을 가질 때 行을 붙임. 가선대부의 품계는 종2품이지만 좌윤은 종3품이므로 한 단계 낮은 벼슬임)에 올랐으며 선무원종공신이다.
증직은 숭정대부 판의금부사(崇政大夫判義禁府事)이다.
백사(白沙) 휘 항복(恒福) 할아버지의 증시(贈詩-시를 지어 올림)에
'監亂靑春客 還鄕白髮翁 (감난청춘객 환향백발옹)' 이라고 하였다.
'난을 당하였을 때는 청춘객이었으나 환향시(還鄕時-고향에 돌아올 때)에는 백발옹(白髮翁-흰머리의 노인)' 이란 시를 지어 증(贈-바침. 드림.)하였다.]
○ 배는 정부인 성주 이씨(星州李氏) 참판(參判) 원향(元香)의 따님으로 득립, 중립, 중업 3형제를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장자 참군공 석림→ 차자 세영→ 면→ 차자 언석→ 차자 주부공 희청→ 4자 부사공 기남으로 이어진다.
* 정시(廷試)
조선시대에 시행하던 과거의 하나.
나라에 경사나 중대사가 있을 때 실시하는 일종의 특별시험이었다.
처음에는 세자책봉 또는 왕실의 경사가 있거나 중국 황제가 즉위할 때 등에 실시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그 성격이 바뀌어 특정지역의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으로 변모되었다.
선발인원은 일정하지 않았고, 시험은 문과·무과로 구별하여 실시하였다.
문과는 현직관리를 당상관·당하관으로 나누어 시험하거나 일반유생과 성균관·사학(四學)의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으로 분류되었고, 무과는 현직무관과 미입사자(未入仕者)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특별과거여서 응시자가 소수였고 전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 28세 참봉공(參奉公) 계인(繼仁)
아버지는 우후공(虞侯公) 휘 희태(希泰)이시고 어머니 성씨(姓氏)는 미상(未詳)이다.
족보에 [참봉의남종행(參奉義男從行)] 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벼슬은 참봉이시고 휘 의남 도총관공을 따라 행동을 같이 했다는 뜻으로 보아 임란 때 창의(倡義)하였다.
○ 임란(壬亂)에 창의(倡義)한 판관공 휘 여량(汝良)이 또한 아들이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장자 참군공 석림→ 차자 세영→ 면→ 차자 언석→ 3자 우후공 희태→ 계인으로 이어진다.
● 28세 부호군공(副護軍公) 상립(尙立)
아버지는 양무공(良武公) 휘 언춘(彦春)이시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자는 성녀(誠汝)이고 벼슬은 충찬위 부호군(忠贊衛副護軍-종4품)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시 할아버지 훈련원정(訓練院正) 휘 안국(安國)과 아버지 훈련대장(訓練大將) 휘 언춘(彦春) 조자손(祖子孫) 3대가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각각 훈공을 세우고 같이 공신록에 실렸다.]
○ 배는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아들 준엽을 두었다.
○ 세계는 판윤공 지대→ 장자 부사공 점→ 차자 군수공 원림→ 찰방공 광증→ 차자 진형→ 장자 충효재공 안국→ 차자 양무공 언춘→ 부호군공 상립으로 이어진다.
첫댓글 漢城左尹이란 직책은 종 2품 입니다 참고 正2品판윤 종2품에 右尹도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