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독하게 가난한 시골 청년에게 시집 갔다. 시댁은 대구 근교였지만 50여년 전에는 깡촌이었다. 천평 정도의 논(닷마지기)과 지적도에도 없는 약간의 밭이 시댁의 전 재산이었다. 요즘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겠다는 사람들 중에 간혹 험지를 택한다는 정치인이 있다. 내게는 그럴만한 배포까지는 아니나, 내 몸이 건강하다면 가난은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노력해서 퇴치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 경험이 나보다는 더 많은 아버지가 허락한 사람이라는 것. 가난이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기는 하지만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퇴치할 수도 있다 라는 내 평소의 소신이 겹쳐진 결정이었다. 이리하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정된 나의 삶이 주어졌다. 내가 결혼할 당시엔 남편은 00 제약회사의 도안사(圖案士)로 일하고 있었다. 시댁에서 우리의 신접 살림을 따로 내어 준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비록 쥐꼬리만한 월급이나마 고정적으로 수입을 창출하는 사람은 남편뿐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말없이 수행하는 것이 도리이자 운명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칠형제 중의 맏이가 남편이다. 딸은 아예 없는 집이었다. 아들만 일곱 명에 아버님을 더하면 팔부자, 이름하여 시댁 택호(宅號)는 팔부자집이다. 아버님은 큰아들에게 제법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큰아들이 승승장구해서 동생들에게 편하고 이익이 많이 발생하는 길로 안내해 주길 바랐을 것이다. 보통의 부모들이 대개 그랬다. 남편은 말이 도안사이지 사내(社內)의 일손이 딸리는 곳이면 여기로 저기로 차출되기 일쑤였다. 누런 봉투에 한 달 분의 노동량이 들어오면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아버님께 봉투를 뜯지도 않고 전액을 드렸다.시동생들이 고등학교 둘은 고학으로 학비를 충당했고, 중학생 한 명, 초등생 두명, 미취학인 다섯 살 먹은 막내가 줄줄이 사탕으로,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로 있었다. 아버님이 7할, 남편이 3할. 그 3할에 나는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렇다고 친정에 손을 내밀 처지도 아니었기에 삶의 질이 말이 아니게 떨어졌다. 나는 시댁의 사노비로 전락했다.
'젊어서의 고생은 일부러 꾸어서라도, 사서라도 한다' 라든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라는 말은 분명 맞는 말이다. 나도 그말을 진리라고 믿었다.그렇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빈말로 들렸다. 남문시장 근처에 있는 헌 책방에서 공무원 전형 수험서 몇 권을 구입했다. 나는 공무원 시험에 지원하려고 남편 몰래 공부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알면 틀림없이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한때 떠돌았는데 바로 내가 그랬다. 그때가 1973년이었다. 국어, 국사, 일반상식 세 과목만(영어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음)공부하면 내 삶에도 싹수가 보일 것만 같았다.
남편이 출근하면 오전에는열 식구(팔부자 + 두 여자)의 설거지와 빨래, 청소, 점심준비로 오전시간은 마치 도둑이나 맞은 것처럼 손실이 컸다. 점심 이후에는 약간의 시간을 마음 먹고 만든다. 시어른들께 어쩔 수 없이 눈치는 보이지만 오전에 부지런을 떨었기 때문에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하며 공무원 전형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는 법이다. 교재와 문제집을 남편에게 들켰다. 남편은 대단한 불온 서적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 칠면조로 변해 있었다. 소 죽 끓이는 아궁이에 조금도 망설임없이 책을 던지더니 불을 당겼다. 제 1차 분서갱유 사건이 일어났다. 갱유까지는 아니지만 분서는 분명하다. 남편의 속셈을 잘 알기에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저항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다. 더 큰 사고를 낼 수도 있기에 말이다.
-내일 (21일) 연속 -
첫댓글 남편의 속셈이 뭔지는 모르지만 남희라면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을 것 같아요.
저는 겁쟁이... 에공 무서워라~
선생님의 팔부자집 탈출기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
지나간 아픔은 추억이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의 선생님은 어마무시한 세월의 승자이신듯요...
인내가 최고의 약이었나 싶네요. 다시 그 길을 걸으라면 단연코 No!
와, 2로 넘어갑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대단해보이십니다!!!
다음 회가 궁금해집니다^^~
이금주 선생님, 어떻게 100날 글쓰기가 제 자서전이 됐네요. ^^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