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文藝思潮」8月號 -양천문학회 회원 특집원고-
<수필> 연애편지 100통 짜리
들꽃산꽃山人:白 英 雄
얼마 전, 나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찾으려고 잡동사니 보관함을 뒤지다가 예전 글을 써두고도 미발표한 원고지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무려 43년 전 4각봉투로 오른쪽 위에는 항공마크가 있고 가장자리엔 빨강, 파랑색으로 마름모 줄무늬가 새겨진 빛바랜 편지뭉치를 발견했다.
우리의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던 피난시절 60년대 초나 될까한 고1 때부터 해외펜팔을 통해서 이국을 동경하기도하고 우표 수집을 하면서 사귀게 된 일본의 秋田(아끼다)市에 살면서 아끼다 여고에 다니던 高橋法子(다까하시노리꼬)라는 소녀가 보내준 사진과 그림엽서에서처럼 너무 아름답게 본 그녀와 주고받았던 편지뭉치에서 한 통을 꺼내 그녀의 예쁜 사진과 함께 글을 읽어 내려가니 옛 추억을 되새기는 생각에 잠겨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하는 동안 잠시나마 즐거웠던 수십 년이 지나버린 세월 속 추억을 더듬어 다시 한 번 그려보면서 이렇게 온유한 상념에 젖어 보기도 처음 인 것 같다.
그 때. 처음에는 영어 회화책이나 펜팔클럽에서 보내준 기본 회화집이나 작문책을 이용하여 영문으로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차츰차츰 日語를 배워가면서부터 나중에는 일어로 편지를 쓰게 되면서 내가하고 싶은 말을 쓸 정도로 실력이 늘어나 좀 더 가까이 감성을 나눌 수 있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외할아버지께서 사주신 천자문으로 익힌 한자와 학교수업시간의 한자 시간이 한자가 많았던 신문을 보게 하고 독학으로 일어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청소년기를 다시 생각을 하자니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그다지 쓸 것도 없었지만 열심히 일기를 빠짐없이 써나가면서 그녀에게서 편지가 도착한 날과 그날 느꼈던 감성을 기록도 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번엔 언제 쯤 답장이 올까하고 날짜를 세고 기다리면서 편지를 쓰게 했고 장년기가 들어서도 등산과 야생화 사진촬영을 다니면서 자연 속에서 보고 느꼈던 모티브를 가지고 마음에 와 닿는 단문이라도 글을 쓸 수 있게 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그 때는, 조금은 글 솜씨가 있었는지 동네 형들의 부탁을 받고 연애편지를 대필하면서 그 형이 어느 누나를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은근히 그 누나를 놀려먹을 때도 있었는데 누나의 얼굴이 도화색이 된 것을 보고 놀려대기도 했으나 누나는 형들의 라이벌이 많았는데 예쁘고 해맑은 순진함이 있어서 그 누나를 좋아하는 형들도 여럿이었으나 그 중에서 누나도 K형을 좋아했다. 그 형은 다른 형들에게 비밀을 지켜 달라고 빵이나 과자로 입막음을 하기도하고 여름철엔 오륙도나 송도해수욕장에 데리고 가겠다고 다독이며 함구케 했던 옛 추억을 생각하자니 어렵던 시절이었으나 먹거리가 생기면 한데 모여서 조개탄 불을 지펴 감자, 고구마를 삶던 일, 가을에는 비바람이 불고 지나간 후에는 산으로 밤을 줍기 위해 먼 산길을 마다 않고 신발주머니에 가득히 채우고 저무는 해를 등 뒤로 풋밤을 까먹으면서 어스름해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청소년시절,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S누나도 사귀면서 아름다운 누나에게 연모의 정을 느끼기도 하면서 즐겁고 소박하게 사춘기를 보낸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학교 미술반에서 서클 활동과 집에서 그림을 열심히 그리던 것이 결국은 공고 토목과를 다니던 것을 팽개치고 인문계로 다시가 그림공부를 한답시고 귀경하여 藝術大를 다니면서 방학이 되면 멀리 떨어진 친구나 펜팔에게 편지를 쓰면서 회답과 동봉해 온 사진들로 이국도 동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 한 때 잠시 큰 집에 머물면서도 편지를 자주 쓰고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곳에서 편직을 짜던 여러 누나들 사이에 하루에도 여기저기서 편지가 여러 통씩 오는 게 차츰 알려지게 되면서 그 때에 연애 편지 100통 짜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다. 이제 와서 몇십 년이 지난 케케묵은 편지를 잠시 읽어보니 한편으로 흥미진진하기도하고 그 때 왜 좀 더 대시를 할 걸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기도 한다. 팔순 길에 가서 이 편지를 다시 읽어 보면 마음만이라도 더 젊어나질까.
<프로필> 평북 신의주 출생, 63년 서라벌예술대학 서양화 수학, 82년부터 야생화 생태사진으로 전업, 한국산악회 편집위원 역임, 록파티산악회 초대회장 역임, 한국생태사진가협회창설 회장 역임, 현재 한국생태사진가협회 고문,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양천문학회 회원 으로 활동하면서 우리의 산하를 찾아 들꽃산꽃을 촬영하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들꽃산꽃을 찾아서」,「달팽이」,「민들레」,「낙엽」,「봄나들이」외 다수.
高橋法子(Dakahasi Noriko) 樣. 이 편지 1통이 이 글을 쓰게 했지요.
|
첫댓글 한데 모여서 조개탄 불을 지펴 감자, 고구마를 삶던 일, 가을에는 비바람이 불고 지나간 후에는 산으로 밤을 줍기 위해 먼 산길을 마다 않고 신발주머니에 가득히 채우고 저무는 해를 등 뒤로 풋밤을 까먹으면서 어스름해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참 아름다운 추억이 많으셔서 부럽습니다.한 번 쯤 옛날로 돌아간다는 일은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뭔가 새각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