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과 인연
22년 말 늦게 경산 문인협회에 가입해서 선생님과는 <담양 봄 문학기행>과 <도광의 시인 초청 문학 강연회>와 <연말 총회> <24년도 봄 문학기행> 등을 통해 4번 정도 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저와 개인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곁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배워가는 중입니다.
저는 글과 전혀 다른 길을 35년간 근무 중인 금융종사자로 생활해오면서 이때까지 글과 관련 전공이나 제대로 된 공부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이 오직 야생의 생활 글로 써오다 22년 오랜 인연이 있는 이정식 회장님의 추천으로 경산 문인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새내기입니다.
경산 문인협회의 발자취를 보니 도 고문님께서는 79년 창립 회원으로 입회하여 45년을 넘게 경산 문인협회와 함께해오신 산 증인으로 그동안 스치어 간 선배님은 물론 경산 문인협회가 걸어온 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아직도 깊은 애정을 갖고 참여하면서 후배들을 격려하는 모습에서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시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두 고문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당당하고 떳떳하게 후배들과 어울리고 참여할 열정과 건강이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호기와 배짱과 자기다움을 지키며 살아올 용기와 자신이 있을지 점점 나약해지고 있는 후배로서는 어쩌면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요즘 새삼 경산 문인협회에도 정말 훌륭하고 존경할만한 선배님들이 많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용기가 솟습니다. 두 고문님과 정숙 선생님, 최학, 이동하 소설가님, 박도일 원장님 등 우리가 그동안 책에서만 유명하다고 배우신 본인들 못지않게 쟁쟁한 실력과 경험과 철학을 가시신 분들이 많아 초보자인 저에게는 배울 점이 많아 좋습니다.
특히 구 고문님과 두 분은 건장하게 건강을 관리해오시며 아직도 약주를 드시며 옛날 문인들과 선배들에 대한 추억담을 이야기하시는 것 보니 살아있는 문학관이었습니다. 정말 해박하고 폭넓은 지식과 인적 교류를 보니 후배들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문단의 원로로서 물러나 한 발짝 뒤에서 중심을 잡아주시며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시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됩니다.
저는 두 분이 어쩌면 같이 같은 고향 출신으로 연배도 비슷하시고 신체도 그 당시로는 아주 큰 키에다 수필과 시라는 장르를 달리하면서 글과 삶에 대하여 티격태격하시는 모습이 정말 부럽고 귀-감이 되는 보기 좋은 장면들입니다. 적지 않는 연세에도 술을 좋아하시고 후배들과 글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즐겨하시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후배들과 함께하시려는 열정과 애정에 대하여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두 분의 티격태격을 언제까지 보고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함께 보고 싶습니다.
고향의 대선배님이시자 문단의 큰 거목으로 살아오신 두 고문님의 존재와 의미는 경산 문학의 전통과 뿌리는 물론 큰 버팀목이십니다. 저는 비록 문외한으로 두 고문님을 잘 모르고 살아오다 최근 두 분이 살아온 업적과 경력과 글을 보면서 시대의 어른으로서, 글쟁이들의 선배로서 위상과 영향에 대하여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봄 문학기행을 다녀오시면서 마지막에 저에게 최근 출판한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기에 밥값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어 졸필이지만 과감히 한 번 느낌을 올려 봅니다.
▣ <시집> 고향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을 읽고
▶아궁이 불꽃
火氣를 잠재우는 재를 덮고 화롯불에 담긴 훈기는 온 가족들에 온기가 되고 생솔가지 태울 때 저항하며 풍기는 독한 연기에 취해 기침을 콜록콜록하며 입김을 불어 불을 지피는 가난한 시설의 추억들을 생각나게 하네요
▶어슴푸레하다
어슴푸레하게나마 권선징악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시대를 살아온 선배님과 주위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오늘날 경제적 정신적 富를 누리지 않나 싶어 감사를 드립니다.
▶드들강
노들강보다는 덜 익숙하지만 그래도 센강(물살이 빠르고 거침)보다는 돌이 많은 강을 드들강이라 하니 정감이 가네요.
▶고향 동강리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의 寶庫이지요. 어릴 적 아름다운 첫사랑의 감정이 싹튼 곳, 당시에 같이 생활했던 여학생들에 대한 동경, 고향 산천과 더불어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과 인격 형성에 밑거름이 되어 준 고향 덕분에 세상이 살맛 나게 하지요. 마을 이름도 서강보다는 뭔가 따스하고 공감이 가는 동강이란 아름다운 고장의 느낌이 드네요.
▶손수건 한 장
손수건 한 장에 얽힌 연정과 애틋한 감정이 평생으로 이어지며 추억과 영원한 노스텔지어로 남네요.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 추억이 없는 것보다 남아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고 아름답지요.
▶시의 日誌
시와 시인이 지켜야 할 마지막 정신과 소리는 저항이라고 한 점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네요. 준엄한 가르침 새기겠습니다.
▶비슬산 참꽃
엽서, 손 글씨, 붉나무 등 옛것이 그립고 情이 가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온 흔적과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싱아
어릴 적 군짓하길 할 것 없던 시대에는 싱아, 까마중, 감꽃, 송-깃, 홍시, 오디, 산딸기, 으름, 머루, 다래, 보리수, 밤, 고욤, 밀-싸리, 감자, 고구마 등 간식이었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그저 추억 속에 남이 있는 기억의 먹거리들이죠.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이라 맛있고 기억에 남지만, 요즘 맛있는 것과 다양한 종류의 간식이 많아 먹어보니 맛이 별로 없고 먹을 것도 없어요.
▶비파(枇杷)나무
가난한 시설 母情은 언제나 눈물과 애처로움의 샘물 같은 존재이죠. 사랑이 안 그리울 때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어머님의 기대에 어긋나게 한 행동들이 지나고 보면 제일 불효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요. 대를 이어 전승되어 오는 아들들의 거의 공통적인 숙명이지요. 공감하고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월광수변공원(月光水邊公園)
세월이 나이를 먹고 누워있다. 멋진 표현과 상전벽해의 옛 지명들 얽힌 역사를 보면 많은 추억과 세월이 파노라마같이 스쳐 가지요. 월광수변공원도 최근 엄청나게 많이 변한 곳 중의 하나이지요.
▶동구(洞口) 앞에서
어릴 적 동네 마을풍경을 두 가지 사실로 당시 풍경과 부모의 사랑이 잘 담겨 있네요. 간결하면서도 상징성 있게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이것 시는 정말 묵은 장맛같이 오랜 인생의 경험과 잘 묵혀 우려내는 노시인만이 할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사초(莎草) 가는 잎들
여자의 음모를 사초 가는 잎으로 표현하면서 야생 동물들의 본능적인 야합이 오히려 통제된 인간의 욕망보다 더 자연스러운 표현인 것 같아 공감합니다. 인간도 동물의 한 種이지만 고급스럽고 격조 있는 표현으로 인간의 본능을 솔직하게 대담하게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노들강변 봄버들
젊고 힘 있을 때는 천지를 모르고 날뛰다, 힘없고 병신 되어 조강지처를 다시 찾아오는 철없고 어리석은 남정네를 그래도 따뜻하게 품어 주고 기댈 마지막 보루로서 부모와 고향은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법이지요.
▶대구 박훈산 시인
대인답게 호탕하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오지 않으신 당당하고 풍류를 아시는 호기가 부럽기는 하네요. 문정인 시인인 말한 요즘 남정네들은 다 누렇고 힘없는 갈퀴 빠진 늙은 호랑이와 같지만, 그 옛날 그래도 휘날리는 야생마와 같은 호기를 부리는 시인과 대인들이 더러는 있었지요. 그런 사람이 사라진 난쟁이들이 사는 현대의 사나이들이 반성을 좀 해야겠지요. 저도 대인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움이라는 이름
사랑을 잃은 강변 노을에 여인이 서서 바라보는 풍경에 시를 그려 넣었네요.
▶내내월(來來月)이 돼야
모든 것은 다 세월과 때가 있는 법이지요. 여름 강냉이에도 봄과 비와 햇살이 버무려져 만들어진 결과물이지요. 강냉이 한 자루에 얹힌 세월과 흔적이 담겨 있는 것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고향 소월리
치자꽃, 국화, 꽈리가 심어진 소박한 고향 집 화단은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의 애잔함이 서려 있지요. 고향과 부모님의 화단이 비록 소박하지만 화려한 궁전이 부럽지 않은 것은, 그만큼 오랜 세월 흔적과 情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요.
▶분홍 강물
술을 좋아하시는 선생님의 에피소드가 외상술에 얽힌 지난날 인연들과 추억들이 분홍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네요.
▶엉겅퀴꽃 피던 고개
그리움과 사랑을 찾아 헤맸던 염소와 여자의 말로가 비록 씁쓸하게 끝나 안타깝지만 사랑도 그리움도 세월과 함께 엷어지는 법이지요.
▶부박함이 늘어날수록
부박함이란 단어가 이럴 때 쓰이네요. 마음이 들뜨고 경박함이란 뜻의 浮薄함은 신중하게 행동하게 살아가야 할 때 새겨야 할 단어인 것 같네요.
▶날도래와 까치
짧은 생을 사는 미물에게도 나름으로 안식처가 있는 법, 쓰르라미와 날도래, 까치가 공존하는 자연에 저마다 사는 방법이 있듯, 제 위치에서 각자 살아가는 법을 자연이란 스크린을 통해 예민하게 관찰한 시인 것 같습니다.
▶파꽃
옛날 흔히 먹었던 주위의 채소들은 꽃잎 피기 전 거의 다 食用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진작 꽃은 잘 보지 못하지요. 부추꽃, 파꽃, 감자꽃, 감꽃, 고구마꽃 등, 특히 고구마꽃은 귀하지요. 채소밭에 핀 꽃들이 우리 부모님의 사랑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사람과 고향을 지켜주는 먹거리요 화단이지요.
▶까치봉에 눈 그친 밤
그 옛날 한겨울 춥고 차가운 새벽 밤, 소변보기 위해 화장실을 나서면 따라나서는 초승달, 하늘은 총총 쨍쨍 맑고 투명한 밤하늘에 걸린 달, 추움과 무서움과 외로움이 짓누른 어릴 적 밤이 생각납니다.
▶북구 국우동
만취해 돌아가는 집 풍경을 자작시로 쓴 것 같네요. 詩로도 눈에 선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밤 풍경과 곤궁한 시골 생활이 보이네요. 보름달을 데리고 마실만큼 취기로 호기를 부리는 大家의 뒷모습을 감상해봅니다. 비록 곤궁했지만 꿈과 사랑만큼은 만-땅인 시절이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고 인생이지요.
▶못물에 묻어오는
고향 산천이 그려지면서 고향 향수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지난날 스쳐 간 고향의 풍경과 사람과 추억들을 엮어 요람기라도 하나 쓰고파집니다.
▶예쁜 화장실
여자와 행복은 멀리서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제일 좋다지요.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더 정감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가 봅니다. 몸종 앞에 영웅이 없듯 사람도 사랑도 너무 가까우면 데는 법, 멀리하면 느낌과 온기가 없기에 여자와 난로와 화장실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가 봅니다.
▶복사꽃 화사한 몸
저도 복숭아꽃에 나비가 훨훨 찾아오는 4월이면 하늘나라로 보내는 어머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선생님에게 할머님의 생전 지혜를 한마디로 전하며 떠나신 복사꽃 피는 봄날이 그립고 많이 생각나시겠지요. 봄은 다른 계절보다 더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하는 것 같습니다.
▶복사나무꽃
유토피아를 동양에서 왜 무릉도원이란 했는지를 살아보면서 점점 깨닫고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는 비록 하늘하늘하게 힘없고 여리지만 모이면 화려한 대궐을 만드는 마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꽃인 것 같아요.
▶추위에 얼어도
봄이 오는 길목에 세세한 모습을 자잘하면서도 상큼하게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봄이 시작되었음을 후투티 한 쌍이 사과나무에 앉으면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 에필로그
누구에게나 어릴 적 고향은 그립고 생각나게 마련이다. 새해 첫날 첫 마음으로 다짐하듯 주로 대부분 사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산과 들과 사람과 인연들이기에 적잖은 인격 형성과 감성의 바탕이 되는 곳 고향이기 때문이지 싶다. 진작 성장해서 고향을 찾아가면 옛정서는 이미 변하고 느낌도 다르게 다가오게 마련이지만 그 옛날 흘러간 추억과 기억들은 그대로 생생하게 각자 개인들 머릿속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선생님의 고향 와촌리 동강리 171번지도 이미 많이 도시화하고 사람도 바뀌었지만, 산천은 그대로이기에 옛 추억과 그리움의 원천이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학산에 눈이 많이 내린 날 떠난 분에 대한 첫사랑의 아련함이 늘 그리움으로 시를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을 봐서라도 고향에 얽힌 옛 추억들은 두고두고 우러나는 차 향기같이 한 사람에게 많은 영감과 살아가게끔 하는 용기와 힘이 되는 것 같다.
한자 숙어야 首丘初心이 있듯 인간에게는 더욱더 그런 깊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 같다. 이역만리 외국 땅에 살다가도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향수병을 앓고 있는 많은 이민 1세,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오랫동안 정착해 살다가도 죽을 때는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 사할린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해 살다가도 자식과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마지막 고향으로 돌아가 죽고픈 사람과 사람들.
동물들이야 본능적으로 자기 영역에 살다가 죽는 운명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인간도 자기가 태어나고 자랐던 추억들이 담긴 고향에 일부러라도 돌아가고픈 것은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죽음을 돌아가신다고 표현하듯,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탄생 이전의 곳으로나 아니면 태어났던 원초로 돌아가 다시 無로 환원하고픈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법,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언젠가는 다 가지고 가고 싶은 생각이 깊게 베여있으시다. 비록 가까운 곳에 고향을 두고 있건만 마음속의 고향은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득하게만 느껴져야 두고두고 우러나는 차 향기와 같은 심미적 고향이다. 선생님의 고향에 대한 이미지로는 동네 입구에 키 큰 회나무와 같이 오랜 세월 모진 풍파와 흔적을 안고 묵묵히 스쳐 간 모든 인연에 그늘이 되고 추억을 남겨주는 넉넉하고 푸근한 느낌의 고향이다.
선생님은 그래도 고향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어떤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도회에서 익혀온 거짓 의상과 속임수들의 몸짓들이 깨끗하고 순진한 고향 풍물 앞에서 발가벗겨져 가는 자기 폭로에서 오는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이라고, 고백하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기에 대시인이 되시지 않았나 싶다. 내가 그리워하고 그리워했던 고향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보듬어주고 마지막으로 돌아가 보고픈 고향이 아니겠는가 하는 老詩人 역설의 지혜를 배워보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세월 시와 함께 생활해오시면서도 수십 번 숙고하시고 다듬고 교정하시어 한 작품 한 작품 엮어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 내신 시간과 열정과 혼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평생을 시와 함께 살아오신 대시인답게 앞으로도 시에 대한 사랑과 후배 문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시고 늘 건강하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책 선물값이라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기타 선생님에 관한 참고 자료
▶ 도광의 시인님에 대한 전체적인 詩評
시는 평이하면서도 정련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자연의 풍경 속에 순박한 인간의 삶 모습을 담아내어 자연과의 친화가 두드러지는 서정시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변화하는 풍경과 세태를 그린 시도 많아 문명 비판적인 요소를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의 시집에서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대하는 관조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 詩觀
도 시인은 팔순의 나이에도 어휘 하나, 시 한 구절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시를 쓸 땐 언어를 갈고 또 닦아 보석처럼 다듬어야 한다. 그러면 시가 달라진다. 자신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는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시를 내놓는 이들이 많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시는 시다워야 한다"라고 했다. "시는 없고, 언어의 특유한 옷차림만 현란하게 펄럭이고 있고, 순진한 아포리즘이 화장하고, 그럴듯한 시로 진열되고 있는 이 시대에 시다운 모습을 가진 시가 드물다"라면서 "훌륭한 시는 참으로 아름답다. 슬프도록 불필요한 언어가 없다. 김소월, 서정주, 김춘수, 황동규의 시는 군더더기가 없다"라고 했다.
▶ 도광의 사단
대구 지역에서 대건고 국어 교사로 일하면서 시인 서정윤, 이정하, 안도현, 소설가 박덕규, 문학평론가 하응백 등의 문인들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문단에 이름을 올린 제자만 20여 명이다.
시인은 200편 정도의 시를 암기하며,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암송을 마다하지 않는다. 소월, 미당(서정주), 김춘수, 박용래, 한성기…. 그는 신문 인터뷰 기사로 적당히 이야기를 풀어내다가도 어느새 좋아하는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들의 작품을 줄줄 읊었다.
빛바랜 면바지에 콤비 재킷, 남색 베레모를 쓰고 새파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그는 영락없는 시인이었다. 숙취를 푸느라 교탁에 주전자를 놓고 물을 들이켜 '금붕어'라는 별명이 있다.
▣ 대표 시
▶ 갑골길
경남 함안여고
백양나무 교정에는
뼈 모양의
하얀 갑골길이 보인다.
함안 조씨, 순흥 안씨, 재령 이씨
다투어 살고 있는 갑골리에는
바람 많은 백양나무 생애로
노총각 한 선생(韓先生)이 살아왔다.
산 까마귀 울음 골짝에 잦아
외길 진 뙈기밭 능선을 이웃하면
함안 조씨, 순흥 안씨 사당들이
기왓골에 창연하다.
명절날 둑길 위로
분홍 치맛자락이
소수래 바퀴의 햇살에 실려 가면
닷새 만에 서는
우시장 읍내에는
건장한 중년들로 파시가 선다.
어쩌다가 높은 둑길 위로
청람 빛 가을이 펼쳐지면
청동색 강이 오히려 외롭다.
우마차 바퀴에 옛날이 실려 가면
함안여고 백양나무 교정에서
사십 대 노총각 한 선생(韓先生)은
유년의 여선생(女先生)을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벼 익은 하늘의 먼 황소울음에 젖다가도
삼천포 앞바다의 편(片) 구름을 바라본다.
▶저물 무렵
산에서 울던 목청 높은 산-꿩이
해 질 무렵엔 무밭으로 내려와
낮은 목청으로 운다.
기우는 햇살이 설핏해지면
입술 퍼런 산그늘이
주막 쪽으로 내려온다.
이 시각 또한 비어 있는 마음들도
주막 쪽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 하양의 강물
하양의 강물은
내 젊음의 꿈이여
맑고 고운 물결은
내 순수한 마음이여
강변의 버드나무는
내 고향의 추억이여
푸른 잎새는
내 그리움의 노래여
강물은 흘러가고
버드나무는 늙어도
내 마음은 변치 않고
내 꿈은 영원히
하양의 강물은
내 인생의 노래여
맑고 고운 물결은
내 희망의 이야기여
첫댓글 좋은 글에 머물다 갑니다.
감사 합니다.
항상 좋은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