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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목요일(3월28일)
참포도나무 가지라, 성령을 보내심, 예수님의 일곱가지 자기 계시
요한복음 15장 1절~26절
예수님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고별 강화 본문인 13:31~16:33절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포도원이나 포도를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특히 이사야서의 "두 포도원 노래"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지 못한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거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1~26절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나는 참포도나무요", 이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계시의 말씀("나는.....이다") 가운데 마지막 말씀입니다. '참'이란 말은 예수님과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조시키며 예수님이 곧 참 이스라엘이라는 요한복음의 주제를 강조합니다. 농부는 이사야의 첫 번째 포도원 노래를 상기시키며 거기서 하나님은 포도는 가꾸었지만 들포도 밖에 거두지 못한 농부로 묘사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의 풍성한 열매는 이스라엘의 열매 없음과 대조됩니다.
이 신적인 농부는 최대한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두 가지 일을합니다. 첫째, 그는 열매 없는 가지는 제거하며 둘째, 다른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합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이는 그와 같은 가지가 상징하는 사람은 참된 신자가 아님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그럴 경우 "내게 붙어 있어"는 스스로는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주장하지만 참되지 않으면
실제적인 중생이나 참된 믿음을 내포하지도 않은 그런 주장을 반영하는, 단지 포도나무 비유를 의미 있게 만드는데 필요한 관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는 요한복음에서 한동안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는 모든 이들이 다 참된 신자는 아님을 보여주는 몇몇 구절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가지들도 "내게 붙어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표현과 유사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들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열매 없는 가지들은 15:6의 "버려져" "불에" 살라지는 가지로 보여 마지막 심판에 대한 묘사로 보입니다. '열매'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유익을 가져다주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진전시킨다는 측면에서 신자의 삶에서 나오는 좋은 결과를 뜻하는 이미지 입니다.
'제거해 버리시고', 헬라어 동사 '아이로'는 어떤 문맥에서는 '들어 올리다'를 뜻할 수도 있으며 어떤 이들은 이런 용례를 사용하여 이는 가지들이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이 열매 없는 가지들을 땅에서 들어올린다는 뜻으로 주장합니다. 가지는 열매가 없는 참된 신자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런 해석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미는 요한복음 15장6절의 열매 없는 가지들이 "불에 던져" 살라지며, 이는 마지막 심판의 이미지므로 개연성이 별로 없습니다.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은 남은 가지들이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몇몇 관심사의 활동을 제거를 묘사합니다.
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 이는 신뢰, 지도, 순종, 기쁨을 특징으로 하는 예수님과의 매일의 인격적 관계를 지속하라는 뜻입니다.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는 명사적인 동사가 구절이지만 아마도 "내가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즉 "내가 너희 안에 계속해서 충만히 거하도록 나와의 관계를 지속하라"는 말을 간략히 줄여서 표현하신 말씀 일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는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활동을 지속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5절).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이 없는 불신자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두 가지 조건이 제시됩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신자들 안에 거하는(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즉 자신의 성품과 일치하게 자신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진정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원할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할 것이며 그 기도는 예수님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과 예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진보를 위해 '열매를 많이' 맺는 제자들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여기서도 열매 맺음은 참된 신자됨, 또는 예수님의 제자됨의 증거입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신자들과 그리스도 사이의 상호 사랑은 이 "거하는" 관계의 또 다른 요소입니다.
순종을 고된 일로 치부해선 안 됩니다. 순종은 기쁨과 관계된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말세의 커다란 기쁨의 시기를 꿈꿨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예수님이 반대를 받는 와중에도 아버지께 순종하는 데서 큰 기쁨을 누렸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순종에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14절에서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는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우주의 창조자이기도 한 분과의 놀라운 차원의 편안한 개인적 교제를 뜻합니다. 구약에서는 오직 아브라함과 암묵적으로 모세만이(출 33:11) "하나님의 친구"로 불립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 특권을 모든 순종하는 신자들에게로 확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가 자신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하는 궁극적 요소는 예수님 자신의 선택임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이는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택하시는 목적은 단지 그들의 죄가 용서받고 그들이 영생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 또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열매와 결심을 맺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불신자들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래로 세상에서 늘 볼 수 있는 패턴을 따르며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세상의 반응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죄가 없었으려니와", 이는 모든 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 안에 임한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를 거부한 특정한 죄,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데서 특별히 드러난 죄를 뜻합니다.
26~27절에서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보혜사'는 성령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낼", 이는 성령이 성자 하나님께 순종하여 새로운 능력으로 세상 속에 오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이란 말은 성령이 또한 성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오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성부와 성자 모두 오순절에 성령을 새롭게 충만히 세상에 보내실 것입니다.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이는 신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할 때 성령의 그들의 말을 통해 조용히 보이지 않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계시의 말씀>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계시의 말씀이 있습니다. 일곱 가지 자기 계시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와 연결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신적 자기 계시를 발견합니다. 즉 예수님의 일곱 가지 계시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 6장 35절 48절 51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 8장 12절 9장5절
"나는 양의 문이다" 10장7절 9절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장 11절 14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장 25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장6절
"나는 참 포도나무다" 15장1절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하늘로부터 온 참 '떡'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양식일 것이며, 따라서 일시적이고 육신적인 필요만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만나보다 무한히 탁월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35절의 이 "참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은 이 복음서에 기록된 "나는~이다"라는 7가지 말씀 가운데 하나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자양분을 공급하고 그들의 영혼의 깊은 영적 갈망을 만족시킨다는 의미에서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그들의 영적 갈망은 충족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떡', 예수님이 주시는 "떡"은 예수님의 살(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물질적 진리와 영적 진리가 뒤섞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자적인 '떡'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이들의 영적인 배고픔을 그 자신이 해결해 주신다는 의미에서 "살아있는 떡"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서 이 영적으로 만족을 주는 떡이 되시며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이 영적인 떡이 곧 '내 살'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나는 세상의 빛이니",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빛'과 하나님의 '빛'이 임할 것이라는 구약의 약속들을 성취하십니다.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즉 예수님의 양떼) 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가 문이니", '문',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들어가며 나오며'라는 예수님의 표현은 언약적인 용어입니다. 특별히 신명기 28장6절에 나오는 순종에 대한 복을 상기시킵니다. '꼴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보증을 표현합니다.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되는 풍성한 삶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은 풍성한 복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인간의 잠재력을 짓누르는 음침하고 생기없는 불행한 시점이 아니라 풍성하고 충만하며 즐거운 삶, 하나님의 은총과 복아래 하나님의 백성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는 의미 있는 활동이 넘치는 삶으로 부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또 다른 자기계시의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참된 목자이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심판 받을 불성실한 목자와 대조됩니다. 그러나 다윗 또는 다윗과 같은 메시아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선한) 목자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예수님은 이 두 주제 모두의 성취입니다. '양들을 의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에 대한 언급은 양들을 위해 말 그대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어린 다윗을 상기시킵니다(삼상 17:34~37).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는 점에서 다윗을 능가합니다.
요 1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마르다는 예수님의 약속에 완전한 의미를 오해했고 예수님이 단지 최후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부활을 일으키신 것이라거나 부활의 원인이 되실 것이라고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참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과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의 참된 영생은 예수님과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예수님 안에서 구현돼며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믿는" 이란 말은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신뢰를 뜻합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며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제공하실 수 있습니다. 진리로서의 예수님은 구약의 가르침을 성취하시며 참 하나님을 계시하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대한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시면 자신 안에 생명이 있는 생명이시며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참포도나무요", 이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계시의 말씀("나는.....이다") 가운데 마지막 말씀입니다. '참'이란 말은 예수님과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조시키며 예수님이 곧 참 이스라엘이라는 요한복음의 주제를 강조합니다. 농부는 이사야의 첫 번째 포도원 노래를 상기시키며 거기서 하나님은 포도는 가꾸었지만 들포도 밖에 거두지 못한 농부로 묘사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의 풍성한 열매는 이스라엘의 열매 없음과 대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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