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학의 정의, 역사 ,발전방향>
2004200568 김정인
전자공학(electronics)은 전기가 발견되고 전기의 성질이 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검증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역사가 짧다. 그러나 다른 공학 분야와 비교하여 볼 때,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새로운 생활문화를 지속적으로 창조해나가는 힘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유무선 통신, TV, 컴퓨터, 자동화기술 등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의 생활문화가 바뀌었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형성되었다.
전자공학(electronics)은 전기의 성질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들고 전송하는 전기공학으로부터 분리되어진 학문분야이다. 전기 에너지를 전송하는 과정에서 신호의 전달이 가능함을 알게 되고 이를 이용한 통신수단이 사용되는 경우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높은 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통신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전기공학은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나누는 강전(high voltage)분야와 정보의 전달수단으로 다루는 약전(low voltage)분야로 분류되었고 강전은 전기공학으로 약전은 전자공학으로 분리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전자공학의 초기에는 전자공학은 곧 통신으로 이해되었지만 컴퓨터 기술이 개발되면서 전자공학의 발전을 컴퓨터가 주도하게 된다. 이후로 통신과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소자들과 응용 기술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전자제품이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전자공학의 영역은 넓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전자공학을 한마디로 무엇이다 라고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영어의 일렉트로닉스는 ‘전자’를 뜻하는 electron에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인 -ics를 붙여서 만든 말이라는 설도 있고, 또 1930년부터 미국의 과학 잡지의 제목으로 사용된 신조어로서 electron techniques의 약자라고 하는 설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 말을 전자공학 또는 전자기술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전자공학은 “ 전자이론을 응용한 물건을 만들거나 이와 같이 만들어진 물건을 활용하는 학문” 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를 기반으로 전자공학의 범위를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이 4C1M의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소자(Components)분야 : 전자공학에서 생산하는 모든 종류의 부품, 소자를 만드는 분야이다. 저항이나 콘덴서로부터 반도체, 각종 세서를 포함한다. 모든 전자제품의 성능이 소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소자분야는 전자공학의 기초분야에 해당되며 나머지들은 시스템분야로 통칭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2)컴퓨터(Computer)분야 :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다. CPU, 메모리, 주변기기(디스플레이, 프린터, CD, DVD 등)로 구성되는 하드웨어 생산에 관련된 분야와 완성된 컴퓨터의 활용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분야를 포함한다.
3)제어(Control)분야 : 기계적인 제어기법이 아닌 전자기술을 이용한 제어를 말한다. 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산업에 사용되는 기계뿐 아니라 가정용품, 보안, 통신기기 등 각종 전자기기를 입력된 명령에 따라 작동하도록 제어하는 기술을 포함한다.
4)통신(Communication)분야 : 정보의 교환에 필요한 기기와 관련된 분야이다. 매체의 종류에 따라 유선과 무선으로 구분되며 거리에 따라 통신의 방식이 달라진다. 전통적인 통신방식에 컴퓨터가 연결되면서 정보통신분야가 만들어졌으며 멀티미디어와 함께 정보기술(IT : Information Technology) 산업을 탄생시켰다.
5)멀티미디어 방송(Multimedia Broadcasting)분야 : 컴퓨터의 등장으로 문자와 그래픽, 음성, 동영상정보가 하나로 묶어서 저장, 전달하는 매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멀티미디어 기술은 실시간 정보전달을 필수로 하는 방송과 함께 발전해왔고 오락 및 여가활용산업에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이들 4C1M기술을 응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크게는 이들 중에 속하게 된다. 4C1M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자분야와 시스템분야로 대별할 수도 있다. 시스템이란 특정한 입력이 주어지면 이에 대응하는 출력이 발생하도록 소자들을 결합하여 놓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컴퓨터, 제어, 통신, 멀티미디어방송의 기술은 소자들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결합하여 구성한 기계를 사용하므로 시스템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시스템이란 말은 꼭 기계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경우도 특정한 입력에 대해 이에 대응하는 일정한 출력을 발생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면 소프트웨어 시스템이라 부른다.
전자공학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기공학에서 출발하여 여타의 분야들과 접목하면서 오늘날과 같이 사회전반에 걸쳐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자공학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변환을 이루어낸 기술과 이론을 중심으로 전기의 발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자공학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겠다.
전기가 인간에 의해 처음으로 인식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일이다. 그것은 장식품으로 쓰이고 있던 호박이 작은 물체를 끌어당기는 현상을 발견했을 때의 일이다. 호박과 종이 혹은 유리와 털과 같은 다른 두 종류의 절연물을 서로 마찰시키면 양자 간에는 전하의 이동이 생겨 서로 다른 전기를 띠게 되는데 이런 종류의 전기는 물질을 마찰해서 발생하므로 마찰전기라 부른다.
16세기 말 영국의 의학자 길버트(William Gilbert 1540-1603)는 양의 전기와 음의 전기가 끌어당기는 마찰전기를 실험적으로 증명하였고 이 현상에 관해 자신이 주장한 가설이 정확하였다는 것을 보여 이 현상을 학문적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1600년에 이 마찰전기를 저서 “De Magnete"에서 'Electrica'로 명명하였다. 그 후 1646년에 영국의 브라운은 자신의 저서에서 전기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이 말이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 전달되어 현재 쓰이고 있는 전기하는 용어로 남게 된 것이다.
그 후 프랑스의 쿨롱(Charless Augustin de Coulomb 1736-1806)은 양전기와 음전기가 끌어당기는 현상이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과 비슷한 현상이라 가설을 세우고 그 타당성을 확인하였다. 이것이 바로 쿨롱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의해 그때까지 확실치 않던 마찰전기가 이론적으로 통일되었다.
1777년 독일의 리히텐베르크(Georg Christoph Lichtenberg 1742-1799)는 절연물의 표면상에서 불꽃방전을 일으키는 실험을 하여 기괴하고 아름다운 방전도형을 기록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은 절연물 표면상에서 불꽃방전을 일으킨 후, 우연하게도 황의 착색분말이 절연물의 표면상에 떨어져, 그 표면상에서 방전이 진전하는 과정이 색 도형으로서 기록된 것이다. 이 실험에서 절연물의 표면상에는 양극성의 불꽃방전이 생기고, 그 표면상에는 양극성의 전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전기가 물질의 표면을 흐른다는 사실을 증명한 세계 최초의 실험이었다. 이 관측방법이 리히텐베르크 도법이다.
고대인들은 우레가 뇌신이 인간에게 노여움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민고 있었으나 1752년 미국의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706-1790)은 연날리기 실험에서 자연현상인 우레(천둥)가 실험실에서 생기는 불꽃방전과 같은 현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1792년 이탈리아의 의학자 갈바니(Luigi Galvani 1737-1789)는 개구리 해부 중 그 주변에서 불꽃방전이 생기면 그 불꽃의 발생과 동시에 개구리의 다리가 움직이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이것은 개구리 체내의 신경에서 전류가 흘러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전류를 발견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는 전류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갈바니 전기라 했다.
1799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 볼타(Count Alessandro Volta 1745-1827)는 현재 우리들이 이용하고 있는 전지와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전기의 발생장치를 발견하였다. 구리와 아연 금속판을 황상수용액에 담가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각각 +와 -전하를 분리시켜 전류가 흐르도록 만드는데 성공함으로써 화학전지를 발명하였다. 전원을 자동으로 만들어 이동하며 사용 가능하게 만든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 결과 전류를 연속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고 동전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후 흡입작용과 반발작용에 지배되는 정전기현상과 전류에 의해 지배되는 동전기현상을 총괄한 전기현상을 전기로 부르게 되었다. 맥스웰은 1864년 다음과 같은 전자파 방정식을 발표하여 전파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지적하였다.
맥스웰의 기본 전자 방정식 :
1873년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에 의해 그 이전에 알려져 있던 여러 가지 잡다한 실험적 사실과 입증이 끝난 가설이 이론적으로 통일되었다.
1874년 아일랜드의 스토니(E.J.stoney)가 처음 전자(Electron)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영국의 화학자 데이비(Humphery Davy 1778-1829)는 전기를 물질 속을 이동할 수 있는 양의 전하 및 음의 전하라는 요소를 사용하여 설명하였고 전기에 두 종류가 있고 전기에 흐름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그렇지만 그 당시 전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전기가 흐르는 방향을 정하는 기준이 없었다. 데이비의 제자인 페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전류는 양의 전하가 양의 전극에서 음의 전극으로 이동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실험적 연구를 하여 전기분해의 법칙, 전자기 유도 등 많은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였다.
전기를 전선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보고 전기를 보냈다 끊었다 하면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1837년 모르스(Samuel Morse)는 전기 신호를 송수신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모르스는 간단한 조작 키를 개발했는데 이는 타자기의 키와 유사한 것으로, 이 키를 누르면 전기 회로가 연결되어 먼 곳에 있는 수신기에 신호 두루마리 위의 점과 선이 도드라지게 새겨졌다.
벨(Bell)은 1876년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전달하는 기구인 전화를 고안하여 특허를 취득하였다. 음성통신의 시작을 알리는 전화기의 개발은 정보 전달 속도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었다.
전자가 하나의 독립된 입자라는 것을 전기를 이용하여 백열전구를 발명하고도 20년이 지난 1879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톰슨이 증명하였다. 톰슨은 전자가 음의 전하량(
1887년에 독일의 헤르츠(H.R.hertz)가 유도코일을 이용한 스파크 방전실험으로 전자파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1894년 전파를 감지하는 코히러(coherer)가 발명되었고, 그리고 나서 1896년 이탈리아의 발명가 마르코니가 전신신호를 전파를 통해 3km 거리에서 송수신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이후 마르코니는 1901년에 대서양을 건너 모르스 부호를 전송하는 무선방식을 완성함으로써 라디오, TV, 무선통신의 기틀을 만들어냈다.
전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1897년 영국의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이 진공상태인 공간에 전자를 흐르게 하여 이 공간에 자기장을 가함으로써 밝혀냈다. 이것이 음극선 실험이다. 이 실험으로 전자의 진행방향과 자력에 의해 휘어진 전자가 이동하는 거리의 관계를 전자의 존재를 가정한 가설에 의해 계산했고, 그 가설이 정확하다는 것이 실험에 의해 확인 됐다. 이 실험은 전자의 존재는 실증할 수 있었으나, 전자의 질량과 전하량까지는 밝힐 수가 없었다.
1897년 독일의 브라운(Brown)이 브라운관을 발명하였다. 브라운관은 유리로 만든 진공용기와 전자를 방출하는 전자총, 방출된 전자의 진행방향을 결정하는 편향코일, 그리고 전자가 부딪혀서 빛을 만들어낼 표시부인 형광면으로 구성된다. 브라운관은 오실로스코프, 레이더, TV의 디스플레이 등으로 사용되어 전자기술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젠 LCD 등 새로운 표시 방법들이 개발되어 점차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1904년 영국의 플래밍(J.A. Fleming)이 2극진공관을 발명하였고 1906년에 미국의 드포레스트(Lee De Forest)가 진공관 검파기인 3극진공관을 발명하여 연속전파발생과 변조장치의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3극진공관은 2극진공관보다 다양한 기능을 갖는 진공관이다. 제어 그리드라고 부르는 세 번째 전극을 부착시킴으로써 포레스트는 제어가 가능한 증폭을 실현시켰다. 3극관은 정류와 증폭을 겸하게 되므로써 나중에 텔레비전이라고 불리게 되는 라디오 방송 혹은 무선을 발달시켰다. 1905년 음성방송과 음악방송을 실험하기 시작했고, 1907년 라디오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910년에 포레스트는 엔리코 카루소의 노래를 전송했는데, 이것은 라디오 방송의 선구자적인 업적이었고 나중에 포레스트는 국제적으로 라디오의 아버지로 추앙 받게 된다. 그 후 진공관은 증폭을 중심으로 개량되어 진공관 내의 전자의 운동을 분석 연구한 것을 토대로 하여 제4,제5의 전극(그리드)을 가지는 것이 나타났는데, 이것이 4극관, 5극관이다. 이렇게 진공관은 컴퓨터 등 각종전자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어 전자회로 구성의 기초를 만들었다.
전자공학의 개념은 진공관 기술이 발전한 결과 태어난 것이므로, 그 시발점은 진공관의 발명이라고 하여 앞서 설명한 플래밍의 2극진공관의 발명을 시발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생각은 2극진공관이 전자공학의 모태가 되었다는 뜻에서는 타당성이 있으나 2극진공관 자체는 무선수신기의 검파기로 사용된 데 지나지 않고, 지금과 같이 전자공학이 급속히 발전하는 데 기여할 요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1910년 미국의 물리학자 밀리칸(R.A.Milikann 1868-1953)이전자 1개의 전하량을 측정하는 데 성공하였다(전하량:
1925년 J.버드가 런던에서 못 쓰는 가구로 기계식 TV를 만들어 영국왕립학회에서 50여명의 과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선을 보였다. 베어드는 24개의 작은 구멍이 뚫린 원판을 1분에 600번 회전시켜 이를 통과한 빛을 전기적인 신호로 바꿔 영상을 만들었다. 이후 브라운관을 이용한 전자식 TV가 개발되면서 영국은 1936년에, 미국은 1939년에 TV방송을 시작하였다. TV방송은 라디오방송과는 달리 영상을 실제로 보여주는 정보전달 매체로써 다른 매체에 비해 신뢰도와 오락성이 높아서 이후 새로운 문화의 주역이 된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라디오 방송을 가능하게 하였고, 또 미국의 즈보리킨에 의한 아이코노스코프의 발명(1933)은 텔레비전 방송을 실현시켰다. 즉, 광전효과를 이용하여 광전관이 만들어지고, 또한 광전 물질 면에 생긴 영상의 전기상을 전자빔으로 주사하는 활상관의 발명으로 발전하여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1946년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에니악(ENIAC : 전자식 수치적분계산기)컴퓨터를 진공관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사용된 진공관은 1만 8000개인데, 현재의 소형, 고성능인 것에 비하면 능력도 떨어지고, 거대한 것이었다. 에니악의 계산 속도는 1초에 2000번의 덧셈이 가능했으며 프로그램은 계산기 전면에 있는 배선반의 배선을 조작하여 입력하였고 명령을 해독해 내는 속도는 10분정도였다.
1947년 벨연구소에서 쇼클리(Shockley), 바아딘(Bardeen), 브래튼(Brattain)은 진공관을 대체할 고체로 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였다. 진공관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과 깨지지 않는 안정성, 빠른 처리속도, 작고 가벼운 트랜지스터의 개발은 이후 집적회로(IC)의 개발을 통해 컴퓨터의 성능뿐 아니라 가전제품의 보급에 혁혁한 공헌을 하였다.
1952년 MIT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제어되는 NC 선반기계를 선보였다. 이후 공장의 생산기계 자동화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지면서 1954년 최초로 프로그램이 가능한 로봇이 만들어졌고 1962년 GM에서 로봇을 생산라인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NC기계와 로봇의 등장은 이후 공장자동화를 통해 대량생산의 길을 열었고 저렴한 가격의 공산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1960년 미국의 메이만이 최초로 만든 레이저는 단색의 강한 빛을 발생시키는 장치로 빛의 집중에 의해 매우 높은 열을 순간적으로 발생하여 단단한 금속도 녹일 수 있을 정도였다. 레이저란 용어는 유도방출복사에 의한 빛의 증폭(LASER :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라는 의미로 이후 다양한 색상의 레이저가 발명되었으며 통신, 의료, 절단공정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1960년 미국이 molecular electronics의 명칭으로 초소형 기술을 발표하여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 IC)의 시초가 되었다.
1971년 Intel사는 P형 MOS기술을 이용하여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M4004를 만들었다, 이후 반도체기술의 집적율이 획기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TTL기술을 이용한 빠른 프로세서들의 제작이 가능해졌고 오늘날과 같이 2GHz 이상의 클록이 동작하는 32비트 프로세서가 등장하여 각종 가전제품이나 생산기기의 제어기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77년 미국의 두 고등학생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인용 컴퓨터(PC)인 8비트 컴퓨터 애플Ⅰ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대형컴퓨터를 수 백 명이 나누어 사용하는 방식에 익숙해 있었는데 개인별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듦으로 해서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 세상을 만드는 단초를 만들었다.
1996년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에서 1Giga 크기의 DRAM을 만들었다. 손톱 크기의 칩 속에 신문 8천4백면 , 단행본 160권 분향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대용량 메모리인 1Giga DRAM은 멀티미디어 컴퓨터와 전자 제품의 고성능화, 소형화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새로운 형태의 전자제품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2002년 SONY사는 사람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사람의 동작을 흉내 내며 간단한 언어와 주변 환경의 인식이 가능한 로봇인 아시모(ashimo)를 탄생시켰다. 1950년대에 시작한 로봇기술이 50여년 만에 사람형태의 로봇을 만들어낸 것이다. 휴머노이드의 탄생은 로봇이 단순한 자동화기계가 아닌 사람의 생활을 보조하는 동반자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 전자기술이 도입된 계기는 일본이 식민지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1885년 모르스 전신기를 사용한 것이다. 전자기술이 싹트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일제의 강점 하에 있었고 전자산업을 육성할 경제적인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 일본이 식민지통치를 위해 제공하는 수준이상의 기술을 개발할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전자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해방하고도 한참후인 1960년대 초반의 일이다. 독립이 되고나서는 기초생활용품 및 의식주에 관련된 섬유나 화학 산업에 주력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자산업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1960년에 들어서면서 많은 기업들이 전자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라디오와 전화기, 녹음기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가전제품의 국산화가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한 PC가 보급되고 컬러 TV방송의 시작, 전국의 통신망 구축, 무선전화서비스의 개시, 4K DRAM의 생산 등과 같이 컴퓨터, 통신,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이 도입되면서 전자산업의 비양적인 발전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였다. 특히 1995년 CDMA방식의 무선전화를 상용화하고, 고집적 반도체 메모리와 첨단 디스플레이 기기를 생산하면서 전자산업을 국가의 중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발전과정을 살펴보겠다.
1)라디오
라디오 방송은 일제의 강점기인 1927년 2월 경성방송국(JODK)에서 시작되었고, 최초의 민간방송은 1954년의 CBS이다. 최근에는 라디오 방송을 이용하여 생활에 필요한 정보제공 서비스가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라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독립 후임 1959년의 일로,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진공관식 A501형 라디오 80대를 만든 것이 시초이다. 곧 이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생산하게 되었고 라디오가 각종 오디오 기기들과 결합되어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고 있다.
2)TV
텔레비전 방송은 미국의 RCA사에서 1956년 5월 텔레비전방송국을 개설하여 미국 NTSC방식의 전파를 송출한 것이 시초이다. 본격적인 TV방송은 1962년 1월 KBS TV가 탄생하면서부터의 일로 1966년 금성사가 일본의 히타치와 기술제휴하여 국산 수상기를 공급하면서 가능해졌다. 1969년에는 진공관식 수상기가 트랜지스터 식으로 바뀌게 되었고 1979년부터는 IC를 사용하는 TV가 생산되었다. 1980년에는 컬러TV방송이 허용되어 디스플레이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1984년부터는 음성다중컬러텔레비전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3)전자, 반도체부품 생산
1960년대 들어 전화기와 라디오, TV 등의 전자제품을 생산하면서 전자제품의 국산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65년 반도체소자의 생산을 위한 한미합작업체가 설립되면서 정부의 주도로 1966년부터 전자부품관련 연구소들이 설립되었고 반도체부품이 전자기기의 주종을 이루면서 1967년에는 집적회로소자의 조립생산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산업적인 필요성에 의해 각 대학에 전자공학과가 설립되어 반도체 응용부품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1977년에는 전자시계용 집적회로소자가 처음 제작되어 전자산업이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1979년에 선형 집적회로소자와 CMOS 집적회로소자의 양산이 가능해지면서 전자부품산업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반도체부품 산업의 발전음 통신과 컴퓨터 등 전자기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루어졌으며 멀티미디어 통신 수요의 증가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부품의 개발이 요청되고 있다. RAM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세계시장을 장악해오고 있다.
4)디스플레이 생산
세계시장의 30%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모니터) 산업은 1966년 LG에서 흑백 TV를 생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74년 아남전자에서 컬러TV를 생산하고 1980년 컬러TV방송이 시작되면서 TV는 수출 주력상품으로 부상한다. 특히 1980년대 들어 PC가 보급되면서 모니터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삼성전자 등이 평면 TV 등의 기술개발에 가세하면서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 생산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차세대의 평판 디스플레이로 각광 받는 LCD, PCP, 유기 EL 등의 첨단기술개발도 세계적인 수준을 확보하고 있어 우리나라 전자산업을 이끌러갈 주력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5)컴퓨터 생산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생산의 역사는 1980년대 초부터 중소업체들이 PC를 조립생산하면서 출발하였다. 이후 1980년대 중반 이후 삼성, LG, 삼보 등과 같은 대기업들이 PC 생산에 참여하여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CPU를 제외한 국산화를 이루어 독자적인 PC를 생산해내고 있다.
6)유, 무선 전화 서비스
우리나라애에서 전화의 역사는 1885년 부산포와 나가사키 간에 해저전신선을 설치하고 부산포에 일본전신국개설을 개설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00년에 체신관서에 공중통신용 전화를 개설한 것이 시초이다. 전화기의 국내개발은 1960년대에 본격화되어 1961년에 첫 생산이 이루어졌다. 전화 서비스는 교환기가 있어야 가능하므로 서비스의 확장을 위해 교환기의 개발 노력이 병행되었으며 1957년에 자석식교환기가 개발되고 1964년에 EMD 자동전화교환기가 생산되면서 전화 서비스가 급격하게 확장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반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되었고 1986년에 이르러 통신망의 확대가 가능한 전전자식 디지털 시분할 전자교환기가 상용화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사회의 기반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런 유선전화 서비스의 확대와 사회의 개방화 물결에 발맞추어 특수목적으로만 사용되던 무선전화 서비스가 1984년부터 한국통신을 통해 셀룰라 방식으로 차량용으로 제공되기 시작하여 이동통신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1988년부터는 개인휴대용 전화를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했고 1997년부터 CDMA 방식의 PCS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저렴해진 기기와 사용료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사용할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동전화에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이동전화의 용도는 단순통신 목적이 아닌 멀티미디어 정보전달 매체로서 활용되고 있다.
7)로봇생산
우리나라에서 전자식자동제어기기를 생산하게 된 것은 1970년대 후반 자동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부터이다. 특히 1980년대 초에 자동차산업이 주력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산업용 로봇이 생산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모든 산업분야에서 용접용, 조립용, 도장용, 부품조작용 등의 용도로 생산되어 사용되고 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주로 외국에서 완제품을 수입하였고, 수요의 증대에 따라 국가연구소나 기업부설연구소 등에서 연구개발에 참여하여 생산을 시작하였지만 이때까지도 산업용 로봇의 주요부분인 수치제어장치, 서보모터, 볼스크루 등의 핵심부품을 수입에 의존하여 조립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1990년에 이르러 국내 최초로 수평다관절 로봇이 개발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으로써 독자적인 로봇연구개발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최근에는 원자력발전소용, 심해탐사용 등과 같은 산업용뿐만 아니라 청소용, 감시용과 같은 가정용 로봇에 관한 연구 개발 노력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청소용 로봇인 스스로 청소하는 청소기는 현재 널리 보급되어져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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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인아~ 요약숙제는 KOC(koc.khu.ac.kr)로 제출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