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공주들의 세상사는모습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상이군경화순지회 스크랩 용의기운이 깃듯 용담 문화유적을 찾아서
아빠 추천 0 조회 18 14.03.02 21: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용의기운이 깃듯 용담 문화유적을 찾아서

용의기운이 깃듯 용담해안도로는 제주올레17코스 일부이며

해변풍광이 아름다운 곳! 문화유적을 주제로 숨은 보물을 찾아 길은 나선다.

 

한내(漢川)

한천은 크다라는 의미의 대천(大川)으로도 일컬어지고 있듯이, 제주시에서 가장 크고 긴 내이다.

 

백록담에서 용연까지 한천은 한라산 정상부 백록담의 서북벽과 북벽에서 시작돼 용연으로 이어진다.

제주시내를 관통하는 한천은‘한라산의 혈(穴)’을 이어주는 혈맥으로 회자된다.

한천 주변마을은 오등동과 오라동 및 용담동이 있다.

선인들은 한라산의 혈맥이 한천 상류 장구목과 삼각봉, 개미등을 따라 제주대학교 뒤편 산천단 인근

 삼의양오름에서 한 번 멈춘 뒤 동으로 원당봉, 서쪽으로는 도두봉으로 연결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옛‘제주牧’이 서 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한천 유역에는 상류발원지인 백록담 북쪽 모퉁이의 한라산신제 터를 비롯하여

그 바로 아래를 따라 동쪽에 우뚝 솟은 왕관바위, 육지와 연결수단이었던 연대,

영주십경 중 하나인 영구춘화의 장소 방선문, 조선 순조때 목사 한응호의 선정을 기리는 사대비,

고대탐라국의 제사유적, 영주12경중의 하나로 달밤에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기던

용연까지 많은 역사·문화유적이 산재해있다. 도내 대부분의 하천은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이다.

그런 면에서 한천의 풍부한 용천수는 그래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한여름에도 마르지 않는 이곳 용천수는 용진각물과 용진굴물로 대표된다.

한천의 풍부한 수자원과 사람들의 발길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깊은 계곡은

다양한 식물과 조류가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때문에 한천은 하류의 일부 구역을 제외하고는 생태환경이 매우 안정된 곳이며,

생동식물의 서식지로서 절대보전을 취해야 할 생태공간이다.

 

용연산책로 바닥에 용판을 100번이상 밟으면 좋은일이 생긴다고...

 

용판을 꼭 밟아 걸어 보세요..

 

용판이 있는 용연산책로

 

고시락당

고시락당은 동.서한두기 등 용연부근에 살고 있는 지역민을 신앙민으로 하는 한두기의 본향당이다.

용연구름다리 팔각정에서 남쪽으로 약 30m정도 오솔길을 따라 가다 보면 돌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1평정도로 냇가 벼랑의 바위 아래 조금 평평한곳에 당을 세웠다.

용연 산책로 아래 바위와 나무를 의지하여 그 아래 조그만한 제단을 마련했다.

제단은 시멘트로 조금 바닥을 높여다진 형태이다.

초를 켰던 흔적들은 최근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고시락당

용왕의 말젯 애기라고 하는 용해국 대부인과 여래불도 등 4신위를 모시는 당이다.

모두가 여신으로 어부나 해녀들의 해상안전과 어업의 풍요를 약속하는 신들이다.

용해국 대부인은 생산·물고(物故)·호적· 해녀·어선[어부]을 차지한 신이다.

제일은 아무 때나 길일을 택하며 제물은 메 4기를 올린다.

해녀와 어부들은 바닷가에서 용왕제를 드리고 난 다음 이 당에 와서 바다조업과 항해의

안녕과 해산물의 풍요 등을 기원한다.

그리고 목사가 용연야범의 연희연인 띠뱃놀이를 할 때에도 이 당에 와서 제사를 드렸다.

본풀이에는

“고시락당 용해국 대부인은 은 밤의 용연물에서 띠뱃놀이를 때에 제주목사 신디 뱃고소를 받아 먹곡

수다 많은 단궐에 소망일게 하여주는 용왕국 말젯 애기”라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제주목사가 연희의 안전을 위해서 혹은 지역민의 안녕을 위해서 유교식 의례와 시락당에 제를 지내는

무교식 의례의 이중적인 제례를 올린다고 한다.

한편 내왓당본풀이에서도 시락당 용해부인이 언급되고 있는 점과 내왓당과 같이

한내(한천)에 자리잡은 점으로 미루어보아 내왓당의 가짓당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영주십이경(瀛洲十二景)중 11경 용연야범(龍淵夜帆)

 

용연야범은 제주시 용담동 해안에 위치하는 한천 하류 계곡

용연에서 여름철 달밤에 뱃놀이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한천은 건천(乾川)이지만, 이곳만은 호수를 이루며, 지하수가 풍부하게 솟아

바다에 연해 있으면서도 담수이다.

용연계곡은 너비 약 20 m이고, 양안의 주상절리가

 물 위 8m 높이로 드러나 있는데 암벽 위에 상록수가 짙푸르다.

가뭄 때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며, 풍류객들은 달밤에 이곳에 배를 띄웠다고 한다.

 

용연야경

 

용연선상음악회 2011년 : http://blog.daum.net/airport99/797

                     2013년 : http://blog.daum.net/airport99/1492

 

용연의 명물 구름다리인 '현수교'

 

현수교 야경

 

현수교밑 '용연암굴'

이 천연동굴은 비지정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으며 출입구는 잠겨져있다.

 

다끄내물

다끄내물 또는 양원수(養源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근처를 물동산이라 불렀으며, 물동산에는 돌새미라는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2개의 샘물이 있었는데 이 물을 중심으로 다끄내마을이 생겼다.

다끄내물은 주민들에 의해 1935년에 마련하였다. 『증보탐라지』에는

제주읍 용담리 수근동에 있는 다끄내물은 조류와 서로 통하여 그 맛이 조금 짜다고 하였다.

다끄내포구 확장공사로 예전보다 규모가 많이 줄어 들었다.

먹는물, 야채씻는 물, 빨래와 목욕하는 물이 칸칸이 구분되어 있는

다끄내물에는 남성전용목욕탕과 소에게 물을 먹이던 곳도 따로 있었다.

다끄내물은 얼음처럼 차가워서 여름철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에

이물로 만든 냉국은 맛이 최고였다고 한다.

 

다끄내물은 2012년 주변정비와 함께 설치된 물레방아

 

 주변정비와 함께 설치된 흔들의자와 해녀상

 

원형을 상실한 다끄내 도대불 누게 대가리에서 맹그라신고?

 

뱃길을 밝혀주는 도대불

도대불은 마을어민들이 직접 축조하고 관리하는 민간등대를 말한다.

도내에 남아 있는 도대불의 시설물이나 터는 17군데 있다.

다끄내 도대불은 1957년도에 다끄내 포구를 조성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시설하였다가

2004년 7월 방파제를 확장하면서 헐어 없어졌다.

다시 2007년 8월에 다끄내 도대불은 제주시 해양수산과에서 다끄내포 구의 상징물로 원했다.

도대불은 원뿔형으로 쌓아 올리다가 윗부분은 둥글게 마무리되

어 있다. 연료로는 솔칵, 생선기름, 석유등피를 사용하는데 1970년대 전기가 들어오면서 전등으로 바뀌었다.

생선기름에는 비근다리지름과 구린지름을 사용했다. 비근다리지름 은 비께상어의 기름을 말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신김치와 생길이(무말랭이)를 넣고 지져도 먹었다고 한다.

구린지름은 각종 생선내장을 썩힌 다음 끓여서 만든 것이다.

도대불은 해질 무렵 일나가는 어부들이 직접 불을 켰고, 아침에 배가 들어오면서 껐다.

나간 배들이 전부 들어오기 전에 불이 꺼지면 어부 가족들이 다시 불을 켠다. 그

리고 마지막 배가 들어오면 불을 껐다.

지금은 도대불 맞은편의 빨간 현대식 등대가 어부들의 뱃길을 밝혀주고 있다.

 

다끄내 좀녀(海女)와 어부들이 모시는 海神堂은 다끄내 포구 입구에 있다.

 다끄내포구 포구가 들어설 수 없던 조건에서 주민들이 돌을 쌓고, 바위를 쪼개서 만든 아주 작은포구이다.

 

 당외부를 둘러싼 돌담에는 손바닥선인장과 돈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해신당(海神堂) 다끄내 갯당

다끄내 포구내 약 180cm정도의 시멘트를 바른 사각형 돌담안에는 海神之位 새긴 碑石  세워져 있다.

빗돌 옆면에는 단기4294년(1961. 3. 3) 진흥회장 金亨洙가 세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끄내 좀녀와 어부들이 모시는 갯당으로 어부들은 배를 띄울 때 돼지발과 돼지머리를 제물로 바친다.

또한 초하루 보름 뱃코사를 할 때에도 당에 먼저 가서 돼지머리를 올리고 기원한다.

예전에는 어영, 다끄내 마을에서 따로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를 지냈고, 포제를 전후해서 이당에도 다녀갔다.

과거에는 굿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바다에 나간 배가 파선하는 예가 잦아지자 영등신이 떠나는 날만이라도

영등굿을 벌이자고 하여 굿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음력 2월 영등달 14일에 영등굿을 벌인다. 이 날은 건들개 칠머리당에서도

영등송별제를 지내는 날이라 심방을 구하기가 힘들다. 심방을 빌리려면 칠머리당굿을 하는

오전9시 이전에 굿을 마쳐야 하므로 대체로 새벽1시경부터 7시경까지 굿을 한다.

도젯상에는 메를 10그릇 이상 올린다. 제물로는 돼지고기도 쓴다.

개인적으로는 제물을 따로 올리지 않는다. 3헌 절시킴때에는 해녀회에서 3헌을 맡는다.

계원이 아닌 사람은 개인적으로 비념하며 용왕제를 올리고 지를 드린다.

이 때는 용왕과 자신의 몸, 그리고 바다에서 죽은 영혼의 몫으로 메를 여럿 올린다.

 

 

수근동유적비(修根洞遺蹟碑)

 '다끄내 마을'은 이두식으로 표기하여 '수근동'(修根洞)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1985년 제주국제공항이 확장되면서 다끄내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다끄내 포구 입구에는 修根洞遺蹟碑가 세워져 있는데, 당시 고향을 떠나는 주민들이 아쉬워

愛鄕에 마음을 비석에 새겨놓은 것이다.

 

수근연대(修根烟臺)

수근연대(修根烟臺)는 레포츠공원서쪽 200m 지점, 해안로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연대서쪽 어영마을 사람들은 큰연디 또는 어영연디 라고도 부른다.

어영마을이 생기기전의‘다끄내[수근동]’지명을 따서 수근연대라고 한 것 같다.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로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조선시대 제주도내에는 봉수 24개소, 연대 38개소가 있었다.

 

제주도 해안선 곳곳에 돌로 쌓아 만든 연대는 모양이 각진 네모꼴을 이루고 있으며,

한편에는 계단을 두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제주성에 소속되었던 수근 연대는 1978년에 보수하였는데 높이 2.9m이다.

제주성에 있는 장군 6명과 봉수군 12명이 배치되어 3교대로 나누어 24시간 지켰다.

 동쪽으로 별도연대, 서쪽으로 조부 연대와 신호를 주고 받았다.

 

어영마을 표석

수근연대가 있는 주변을 '어영마을'이라 하는데, 용담동의 서쪽 끝자락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날 어영이 무슨 뜻인가? '어영'은 '어염'이 변형해 생긴 말이라고 전해진다.

어영 일대에 바위 위에서 주민들이 소금을 만들었던 염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어영연딧당 돌담 옆 조그만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움막은 예전에 해안경비대가 보초를 섰던 곳이다.

까마귀쪽나무 숲 사이 군데군데 자연석으로 만든 제단과 돌담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던 흔적들이 보인다.

최근에 사람들의 찾아왔던 흔적은 없다.

 

 어영연딧당

어영연딧당은 어영마을로 시집오는 사람들은 친정 지역의 당신들을 이곳에 모셔서 섬긴다고 한다.

가지 갈라온 당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따로 제일(祭日)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각자 택일하여 다닌다.

당에 갈 때는 메를 3~4그릇 가지고 간다.

당신은 주로 일뤠할망이라고 하는 산육·피부병신으로 한 집안의 수호신이며 조상신이다.

그래서 어영본향 또는 어영중산처라고도 한다.

 

아낙들의 친정 당신을 모시는 '어영연딧당'은 수근연대 서쪽,

어영마을 해안가 까마귀쪽나무(구름비낭 제주어) 숲속에 있다.

 

찾는이 없어 외로는 어영연딧당 입구에는

계절을 망각한 염주괴불주머니 꽃만 외롭게 바람에 춤을추고 있다.

 

  어영연딧당은 앞바다

 

 어영연딧당은 앞바다 가마우지와 괭이갈메기

 

 어영바다 전망대

 

 어영바다 전망대 쉼터

 

 갈매기때 넘나드는 어영앞 바다

어영소공원 앞바다는 수심이 매우 깊고 마을 주민들이 낙배를 저으면 그곳에서만

맴돈다고 할 정도로 물살이 세다. 또한 낚시포인트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오징어, 볼락, 참돔, 갈치, 멸치 등 다양한 어종이 낚인다.

특히 낚시꾼들 사이에선 오징어 낚시의 최고 포인트라고 소문난 곳이다.

 

어영마을의 용천수 동물 과 섯물

제주도는 화산암반 빌레사막으로 물이 아주 귀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을은 샘이 솟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어영마을에는 해안가를 따라 단물이 솟아나는 크고 작은 용천수가 많다.

그리고 단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는 민물장어들이 곧잘 잡히기도 한다.

서쪽에서 나오는 물은 섯물이라 하고 동쪽에서 나오는 물은 동물이라 하였다.

섯물이 여성들의 목욕탕이라고 하면, 동물은 남성 전용 목욕탕으로 사용되었다.

여탕에는 칸을 나눠 제일 위쪽은 먹는물, 두 번째 칸은 야채 씻는 물,

셋째 칸은 목욕하고 빨래하는 물로 구분지어서 사용해왔다.

지금은 전망대 아래 가려져있 아쉽게 한다.

 

 어영바다 사자바위

 

소금빌레(바닷가 너럭바위)

 

소금빌레

제주도는 섬이면서도 바닷가가 모두 암초와 여이기 때문에 소금밭을 만들 만한 곳이 매우적다.

소금은 바닷가 너럭바위인‘빌레’위에 바닷물을 가두어 물을 증발시켜서 만들었다.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후문 앞 바다의 몰머리소금빌레와 어영마을 버스정류장

서쪽바닷가 어영소금빌레에는 소금을 만들었던 돌 소금밭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어영마을 소금빌레는 소금 때문에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어영공원까지 뻗어 있었는데

해안도로 확장과 제주시에서 쓰레기를 매립하면서 거의 없어졌다.

소금빌레는 거북등처럼 선이 나 있다.

그 선을 따라 찰흙으로 폭과 높이가 약 15cm 정도의

둑을 쌓아 그 안에 바닷물을 길어다 놓는다. 햇볕에 물을 증발시키면서 소금을 만들었는데

곧바로 소금을 만들지 못한 것은 일정한 장소에 따로 보관해 두었다.

제주소금에는 햇볕으로만 물을 졸여 만든 돌소금과 어느 정도 소금기가 짙은 물을

솥에 서 달여 만든 은소금이 있다. ‘ 쏨다’는‘삶다’의 제주어이다.

품질은 물론 돌소금이 우수 하였다고 한다.

 

로렐아이 요정상

제주시는 2009년 11월 28일 독일 로렐리이시와 국제우호도시 협약을 맺으며

양 도시간 우호증진을 위해 제주 돌하르방을 기증하였고 로렐리이시는

로렐라이 요정을 기증받아 여기에 세웠다.

 

용담해안도로

용담동 해안도로는 제주도내에서 가장 먼저 개설되었다.

최근에는 이색조명이 설치되면서 카페촌, 레스토랑과 함께 새로운 분위기의

풍경을 만들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길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

용두암에서 시작된 도로는 서쪽으로 도두동의 도들오름(도두봉)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다끄내포구와 도대불, 해신당, 용담레포츠공원, 방어유적 수근연대, 어영개, 어영연딧당,

용천수인 동물과 섯물, 어영소공원, 빌레 위에 바닷물을 가두어 소금을 만들었던 소금빌레 등

사라져가는 제주인의 삶과 문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제주국제공항의 건설과 해안도로는 옛 마을들의 삶터와 일터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리고 개발의 바람 앞에 하찮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생물들의 터전도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을 기억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곳곳에 숨겨져 우리들의 곁에 남아 있다.

 

용담서해안도로 방사탑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기가 약하다고 믿는 곳을 보호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탑 위에는 사람이나 새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올려놓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거욱대, 거욱, 거왁, 극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주도 방사탑은 1995년 8월 26일 제주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제주전역에 38기 방사탑이 남아있고 그중 17기가 민속자료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방사탑은 마을의 안녕을 보장하고 수호하여 준다는 신앙이 있다.

2009년 희망프젝트사업으로 이 지역주민들의 염원을 모아서

대형 2기 소형 3기 방사탑 5기를 새롭게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돈은 하영들영 맨들어 꼬라마는 지세가 ?고? 맨드컬랑 제대로 만들주 ㅉㅉ~"

 

잃어버린 몰래물 마을 연자방아

1979년 제주공항 3차 확장공사로 구사수동 철거 결정되어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몰래물 주민 16가구가

신성마을, 제성마을에 이어 동성마 등을 설촌해 이주 해 갔다.

 

잃어버린 마을 몰래물 올레는 잡풀만 무성한 흔적만 남아 있다.

 

밭담이 아름다운 잃어버린 마을

 

몰래물 쉼터 '고향'시비

몰래물 마을이 없어지면서 이 지역에 거주했던 주민들의 꿈에도

고향을 못잊어 고향의 꿈동산이란 이름으로 쉼터를 만들었다.

 

몰래물 향우회창립기념비와 몰래물 애향비

 

 사수천수리기념비는 흘러간 세월에 글자가 씻겨 지고 있다.

 

몰래물(沙水洞)은 물이 있는 곳에 모래가 있다는 사수(沙水)의 의미인 설과,

모래나 자갈이 있는 곳에 물이 솟아나오니 몰래물 이라는 설이 있다.

 

엉물

몰래물마을 남쪽에 있는 물동산 아래 바위 밑에서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철 이 물속에 5분만 들어가도 뼛속까지 시원해진다.

밀물때는 돌담높이 반 이상까지 바닷물이 차오른다.

 

용다리물

바닷가에 자리 잡은 용다리물은 예전에는 인근 용천수 중

제일 깨끗하고 맛도 좋다고 소문이 났었다고 한다.

 

 용다리물

용다리물은 고이지 않고 조금씩 흘러나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몰래물마을 방사탑 찾아가는 올레

 

몰래물마을 방사탑(동탑)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제8-1호

몰래물 마을에는 2개의 방사탑이 세워져있다. 

마을사람들은 바다가 있는 북쪽이 허하다고 하여 액운이 이쪽으로 들어 온다고 믿어 탑을 쌓았다.

마을 사람들은 탑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동탑 탑 위에 긴 돌이 새가 마주보는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새는 신의 사자로 ‘재앙을 ?는 상징물’인 까마귀를 형상화 하였다고 한다.

 

몰래물마을 방사탑(서탑)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제8-2호

탑위에는 형상이 없으며 일부 무너져 있고 밭담에 같이 쌓아 있는듯 보여 가슴아프게 한다.

제주도민속자료랜 허먼 "무사 영 내부럼신고마씨 호썰만 신경써 쥐시민 좋쿠다!!!"

 

예비검속 희생자원혼 위령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당국의 예비검속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한 원혼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는 용담레포츠공원 주차장입구 200m 안에 있다.

위령비는 2005년 3월 30일 제주도지사를 비롯하여 희생자 유족 등 400여 명이 참여하여 제막식을 가졌다.

제주에는 제주시 지역의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 지역의 제주삼면유족회,

북제주군 한림읍 지역의 만뱅디유족회, 남제주군 대정읍 지역의 백조일손유족회 등이 있다.

당시 예비검속 희생자는 1천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비검속희생자원혼위령비건수기

 

떠나가는자의 소원

양중해선생 시비는 위령비 북쪽에 세워져 있다.

 

제주대학교 사범대학부설 고등학교

 

篤學力行 校訓(학문에 힘써 노력, 정진한다)

제1회 졸업생일동의 건립 하였다.

 

학교 정원에 대한민국이 있다! 없다..

 

그리고 제주섬도 있는데 설문대할망이 만들지 못한 육지와 연결된 다리도 있다! 없다.

 

 궁당은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동북쪽끝에 작은 숲속에 있다.

 

궁당

이 당에 제를 드리면 벼슬도 하고 아이들 피부병에 효험이 있으며,

좌정한 신은 서천국에서 들어온 상 대왕, 큰부인인 중전대부인 불도또, 작은 부인인 정절상군농 3신위이다.

이 신들은 본래 용담2동 한내(漢川)가에 있었다가 고종 19년(1882)에

훼철(毁撤)된 내왓당(川外祠) 신의 일부이다.

 

신화에 따르면 상 대왕은 작은 부인 정절상군농이 임신했을 때 돼지고기를 먹자 부정하다고 내쫓았다.

그래서 중전대부인은 궁당으로 가서 좌정하여 산육신(産育神)의

일을 맡아 하며 쌀로 만든 음식을 받아먹게 하였다.

정절상군농은 궁당의 바깥으로 좌정하여 돼지고기를 받아먹도록 했다.

궁당으로 옮긴 뒤에 정절상군농 은 아기 일곱을 낳아 잘 길렀다고한다.

당에 갈 때에는 제물로 처신의 몫으로 백돌레, 첩신의 몫으로 돼지고기를 각기 따로 올린다.

제일은 따로 없으며, 정월에 택일하여 다닌다.

시멘트로 마무리한 돌담으로 에워두른 당에는 팽나무와 잡목들이 긴바위궤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밑으로 하얀 타일을 붙인 제단이 둘레를 돌아가며 있다.

제단 위와 나뭇가지에 걸린 물색과 제단아래 제물들이

신선한것으로 최근까지도 단골 손님찾는 듯 하다..

 

 궁당에서 본 학교운동장

 

 동자석과 정주목 등이 있는 용담3동 가정집 앞에서

 

 동자석

 

 어느 가정집 앞 동자석

 

용두암 : http://blog.daum.net/airport99/743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