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년대 세계에 대공황이 닥쳤을 때 경제학사에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영국 출신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당시 공황에 무력하기만 했던 고전파를 밀어내고 이른바 '케인즈 이론'을 경제학의 주류로 확립한 겁니다.
대공황 전까지 경제학의 주류는 고전파였지요. 고전파 이론가들은 평소 경제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시장 수급에서 불균형이 생기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저절로 불균형이 해결되는 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고전파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 널리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 학자 세이의 이론에 따르면 물가란 수요와 공급에 따라 탄력성 있게 움직이는 법이므로 수급 불균형은 설사 생길지라도 일시적인 것일뿐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게 됩니다.
이론은 그렇지만 현실은 반드시 세이의 법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 말 대공황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요. 1930년대 중반 유럽과 북미의 실업률은 20~25%로 치솟았고 경제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각국 국민들 사이에선 정부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불황과 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러시아나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혁명이 일어날 기운마저 감돌았지요. 그런 상황에서 케인즈가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1936년에 출간한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 그것입니다.
장기불활을 설명해낸 케인즈의 이론
이 책에서 케인즈는 경제가 자동 조정된다고 보는 세이 등 고전파의 이론이 잘못됐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시장에 초과수요나 초과공급이 생길 때 물가는 고전파 이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사리 균형점으로 재조정되지 못합니다. 가령 시장에 초과공급이 생겼을 때 고전파 이론대로라면 물가는 곧 떨어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그렇게 쉽사리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면 그만큼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테니까요.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 수준도 마찬가지로 초과공급에 비해 비탄력적입니다. 케인즈에 따르면 임금 수준이란 본래 좀처럼 내리지 않는 특성이 있는데 그 이유는 노동자들이 임금의 실질 구매력보다도 주로 명목임금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임금이란 물가가 오르면 오르는 만큼 구매력이 떨어지게 되어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명목임금만 내리지 않음 설사 물가가 올라 구매력이 떨어져도 좋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업주가 명목임금을 내리려 하면 노동자들은 이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쳐서 저항하게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임금 수준을 끌어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임금은 상품 생산비의 주요 부분을 결정합니다. 만약 임금 수준을 내리지 않는다면 상품 생산비도 내리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임금 수준을 못내리면 상품 판매가격도 내리기 어렵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래저래 임금이나 물가는 신축적으로 조정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상품 수급의 불균형이 생겼을 때 물가와 임금은 제때 탄력적으로 조정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때 시장 수급 불균형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수요 부족이 공급 부족을 불러와 실업을 늘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어나는 실업이 수요 부족을 부채질하다 보면 공급도 더 줄어 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논리로, 케인즈는 자본주의 경제에 총수요 부족 현상이 나타난 다음 해결되지 못해서 경기가 장기 침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전파의 논리대로라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나 수급의 균형을 맞추기 때문에 심각한 수요 부족이 발생할 리 없지만, 케인즈가 보기에는 분명히 그러한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현실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 자본주의 경제에 장기 불황을 야기할 정도로 심각한 수요 부족 사태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요?
케인즈는 저축과 투자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케인즈가 설명한대로 여기 가계와 기업이 딱 1개씩만 있는 단순한 경제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기업은 원료와 노동력 등 생산요소를 사들여 상품을 생산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한 가계에는 소득이 생기는데, 이 가계가 소득을 모두 써 버린다고 해봅시다. 그럼 이 경제에서는 수요가 공급과 고스란히 일치할 겁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어느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생산 활동을 통해 얻는 소득을 몽땅 상품 구입에 쓴다면 그 나라의 총수요는 총공급과 정확히 일치하게 될 겁니다. 이런 경우는 고전파 경제학자 세이가 말한 대로 '공급이 그 자신의 수요를 만들어낸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현실 경제는 이렇게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보통 가계는 벌어들인 소득을 즉시 다 쓰지 않고 일부는 저축합니다. 가계는 저축을 금융기관에 맡기고, 기업들은 금융기관에서 이 돈을 빌려 생산활동에 투자합니다. 만약 저축과 투자의 크기가 같다면 국민경제 전체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겁니다. 하지만 만약 저축이 투자보다 크다면 총수요가 총공급에 비해 부족해지겠지요. 그럼 경기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낸다'는 세이의 법칙은 저축과 투자의 크기가 늘 같은 상황일 때만 성립할 수 있는 논리입니다. 문제는 현대 경제에서 저축과 투자의 크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이의 법칙은 깔끔하게 성립하지 못하며 나라 경제는 총수요 부족으로 불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겁니다. 케인즈는 이런 이치로 당시 대공황도 총수요가 현저하게 부족해져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효수요이론의 탄생
그럼 대공황 같은 불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케인즈는 수요를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유효수요', 즉 소비할 의사와 능력(돈)을 겸비한 수요를 늘려야 하고, 유효수요를 늘리러면 정부가 각종 공공사업을 벌여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여 걷는 식으로 수요를 부추기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렇게 불황 타개를 위해 유효수요 창출을 역설한 점에서 케인즈의 이론은 '유효수요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케인즈 이론은 당시 불황의 원인을 명쾌하게 설명해냈습니다. 그래서 학계와 정부에서 '불황의 경제학'으로 대접받으며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그 이후 불황의 원인을 수요 부족에서 찾는 것은 경제학계의 상식이 됐지요.
그보다 먼저 케인즈 이론은 고전파 이론이 주류였던 당시 경제학을 뒤엎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습니다. 세이의 법칙은 총공급의 크기가 총수요의 크기를 결정하므로 총공급과 총수요는 언제나 일치하고 늘 완전고용이 달성된다는 논리였지요. 하지만 케인즈는 그와 정반대 논리로, 총수요의 크기가 총공급을 결정한다는 '유효수요의 원리'를 주장했습니다. 불황의 원인이 수요 부족에 있다는 사실을 공급 측면을 중시했던 고전파가 주목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측면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유효수요이론은 '케인즈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주류 경제학 이론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이후 케인즈는 경제학사에서 현대적 의미의 거시경제이론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출처 [저는 경제공부가 처음인데요]-곽해선 1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