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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
철마북패천(鐵馬北覇天)의 유물(遺物)
대막(大漠)-!
지옥(地獄)의 열사(熱沙)와 무서운 용권풍(龍卷風)이 지배하는
광막한 대지.
콰드득! 콰아!
모래를 휩싸안고 소용돌이치는 용권풍은
강(江)을 옮기고 산(山)을 허물었다.
가공하다 못해 일대장관을 이루는 대막의 소용돌이,
무려 일천 장을 이루는 검은 소용돌이가 쉴 새 없이 모래대지를 훑고 지나갔다.
폭풍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멀리로 사라지는 용권풍!
그 속에서 대막의 하루가 열린다.
"푸우…!"
문득 지면이 들썩거리며 무엇인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모래더미 속에서 한 명의 인물이 일어섰다.
"말로만 듣던 용권풍이 이렇게 지독할 줄은 몰랐군!"
인영은 고개를 내저으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얀 목면을 감싸고 있는 청년,
그는 답답한 듯 손을 뻗어 얼굴을 가린 천을 벗었다.
그러자, 윤기 흐르는 장발에 긴 검흔(劍痕)이 인상적인 준미한 얼굴이 드러났다.
바로 무영(無影)이었다.
뇌정도갑(雷霆刀甲)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그가 마침내 이곳 대막에 이른 것이다.
"그나저나… 말이 죽었으니 낭패로군!"
무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의 모래 속에는 한 필의 말이 죽어 있었다.
용권풍으로 급격히 일어난 모래에 파묻혀 질식해 죽은 것이었다.
무영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별 수 없지. 쿠차(庫車)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으니 걸어갈 수밖에…"
그는 죽은 말의 등에서 물통을 끌어 어깨에 둘러메었다.
그리고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모래구릉을 넘기 시작했다.
* * *
쿠차(庫車)-!
현지 원주민들의 발음으로 쿠차라고 불리는 고차는
천산북로(天山北路)의 비단길 한가운데에 자리한 자리한 번화한 오아시스다.
쿠차의 지하를 흐르는 수맥은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하여
고대로부터 번화한 시진을 이루어왔다.
멀리 전한(前漢)시대부터 도시국가의 형태로 존립해온 쿠차는
신강의 지배세력이 바뀌는 동안 여러차레 파괴되기도 했지만
불사조처럼 되살아나곤 했다.
그것은 믹대한 부를 가져다 주는 행상로의 한가운데 자리한
지리적인 여건과 아울러 쿠차의 풍부한 수맥 덕분이었다.
사막을 횡단하는 긴 여행중에 만나는 오아시스는
여행객들에게는 극락이나 다름 없었다
. 특히 규모가 커서 온갖 편의시설이 다 갖춰진 곳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쿠차가 바로 그런 곳이다!
주루나 객점은 물론이고 마장(馬場)도 성행을 이루고 있었다.
동서로 오가는 온갖 물품이 이곳 쿠차의 시장에서 거래된다.
심지어 인간을 사고 파는 노예시장까지 있어
쿠차는 연일 시끌벅적하게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저녁 무렵,
한 명의 청년이 쿠차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왔다.
피로한 기색으로 천천히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가는 그를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파 속으로 사라졌던 청년은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얼굴에 흐릿한 검흔의 상처가 남아있는 청년, 그는 바로 무영이었다.
그는 일단 객점의 방을 잡아놓고 다시 쿠차의 거리로 나타난 것이다.
무영은 옥문관에서 구해 타고온 건마가 죽어 새로운 말을 사기 위해 나온 길이었다.
말은 낙타와 함께 대막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절정내공을 소유한 고수라할지라도
한 번 길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갈증에 지치고 신기루에 홀려 결국은 죽고마는 것이다.
대막은 그렇게 혹독한 곳이었다.
말은 본능적으로 물(水)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그러하기에, 대막을 여행할 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말이었다.
-신풍마장(神風馬場).
쿠차에서 가장 큰 마장(馬場)이다.
헌데 막 신풍마장으로 들어서던 무영은 흠칫 발길을 멈추었다.
수많은 말들이 우리에 갇힌 채 자신들을 사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한 준마들이었다
. 그 옛날, 한(漢) 무제(武帝)가 구하려 했던 천마(天馬)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데, 그 천마들 사이에 한 필의 보잘것없이 비루먹은 말이 끼어 있었다.
그것은 전신이 칙칙한 검은색으로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형편없는 몰골의 흑마였다.
다만, 그 흑마의 골격은 보통 말보다 한 배 반은 더 크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흑마의 눈빛이 타는 듯 붉은색인 것이 눈에 띄었다.
무영은 첫눈에 그 흑마에게 관심이 끌렸다.
'묘한 놈인데? 못생긴 것이 오히려 눈에 띄는 괴상한 놈이군!'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흑마를 향해 다가갔다.
순간,
푸르르…!
무영이 앞으로 다가서자 흐리멍텅하던 흑마의 눈이 강렬한 빛을 번뜩였다.
그리고 흡사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람같이 무영에게 얼굴을 부비는 것이 아닌가.
"하하! 징그럽지만 애교가 있는 놈이군! 좋아, 너로 결정했다."
무영은 흑마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유쾌하게 웃었다.
이때,
"손님! 그 놈 말고 다른 놈으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잔뜩 기대를 갖고 무영을 안내하던 마장의 마부가 안면을 이지러뜨리며 말했다.
"그 놈은 반 년 가까이 사가는 사람이 없어 곧 도살하려던 놈입니다.
훌륭한 다른 말들도 있으니…"
"이놈으로 하겠네!"
무영은 마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어, 그는 한덩이 금조각을 마부에게 던져 주었다.
순간,
'으헉! 이렇게나 많이...!'
마부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무영이 준 금조각은
신풍마장에서 가장 좋은 명마 열 마리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히힛, 횅재했군! 도살하려던 비루 먹은 말을
천마 열 필 가격으로 사가는 멍청이가 있으니…!'
마부는 입이 헤벌쭉 벌어진 채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헤헤, 감사합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손님에게 덤으로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어, 그는 신바람이나 구르듯 막사쪽으로 달려갔다.
그 때였다.
"당신! 횡재했군요!"
돌연, 무영의 등 뒤에서 한 줄기 맑은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영은 흠칫하며 뒤돌아 보았다.
그의 뒤쪽에는 어느 틈엔지 한 명의 여인이 유령같이 서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온통 검은 천으로 휘감은 신비의 여인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한 쌍의 맑은 봉목 뿐이었다.
한데,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여인의 두 눈은 신비하게도
각기 눈동자가 두 개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순간 무영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것은 전설적인 초마공(超魔功) 유리마강을 익힌 흔적이 아닌가?'
-유리마강(琉璃魔剛)!
마도(魔道)의 전설적 초마공.
그 유래는 겁황일맥(天魔一脈)에서 발원되었다고 하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유리마공이 극성에 이르면 전신이 진짜 유리처럼같이 투명하게 변한다
. 또한, 유리마강에는 두 가지 무서운 점이 있었다.
유리마수(琉璃魔手).
투명파멸안(透明破滅眼).
유리마수(琉璃魔手)!
이는 유리같이 투명한 손(手)을 말한다.
그것에 부딪치면 무엇이든 얼음 깨지듯 박살나고 만다.
투명파멸안(透明破滅眼)!
유리마강의 최후단계로 단지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적(敵)을 산산히 부수어 버릴 수 있다.
공포의 초마공 유리마강!
한데, 그 유리마강을 익힌 징조가 흑의여인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 절정은 아니나 팔구성이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무서운 초고수가 대막에 나타나다니…!'
무영은 흑의여인을 바라보며 내심 경악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가슴 속에 한 가닥 서늘한 한기가 피어오름을 느꼈다.
그때, 흑의여인이 예의 맑은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깝군요! 한 걸음만 빨랐어도 이 철골금강총(鐵骨金剛寵)은
본녀의 차지가 되는 것인데…"
그녀는 아쉽다는 눈빛으로 이미 무영이 값을 치룬 흑마를 바라보았다.
"철골금강총?"
무영은 의아한 듯 뇌까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흑의여인은 의외라는 듯 흘깃 무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중제왕(馬中帝王)인 철골금강총을 모르시면서 대막에 오셨나요?"
-철골금강총(鐵骨金剛 )!
천 년에 한 번 난다는 명마(名馬) 중 명마로써
천산(天山)의 명마 천산신추(天山神騶)나
대막제일명마라는 한혈보마(寒血寶馬)를 능가하는 신마(神馬)다.
이는 골격이 무쇠같아 단숨에 천 리를 달리고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
더군다나, 무서운 힘까지 지녀 만근거석도 한 번의 발길질 아래 깨부순다고 한다.
흑의여인은 무영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고 설명해 주었다.
"이 말은 대막삼보(大漠三寶) 중 하나예요! 그것을 당신이 얻은 거예요."
그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나직하게 탄식했다.
본래, 대막에는 세 가지의 보물이 있다고 전해진다.
-금붕(金鵬).
-철마(鐵馬).
-뇌왕혼(雷王魂).
금붕(金鵬)은 대막 어딘가에 산다는 만금지왕(萬禽之王)
대막금붕(大漠金鵬)을 말한다.
그 놈이 한 번 날면 집채만한 바위가 가랑잎처럼 날고
그놈의 발톱은 바위산을 한 번에 으깨버린다고 알려졌다.
철마(鐵馬)는 바로 철골금강총(鐵骨金剛寵)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대막삼보의 마지막인 뇌왕혼(雷王魂)은
무엇인지는 알려져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막삼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뇌왕혼이었다.
대막일대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뇌왕혼을 얻으면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 되어
환우패왕(還宇覇王)이 된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난 무영은 흑의여인의 눈을 주시하며 물었다.
"소저는 뉘시오?"
"본녀는 마왕화(魔王花)라고 해요.
우린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으니… 기억해두는 것이 좋을 거예요.
도수(盜帥)나으리!"
흑의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야릇하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인의 말에 무영은 한방 맞은 표정이 되었다.
도수(盜帥)-!
이 생면부지의 여인이 자신을 한눈에 알아본 때문이었다.
빙글! 무영이 놀라 벙 떠있는 사이에 여인은 원을 그리듯 우아한 자태로 돌아섰다.
'마왕화! 마왕의 꽃이라고?'
무영은 멀어지는 흑의여인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대막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강자(强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야성의 대지가 대막임을 명심하셔야 해요
도둑씨!"
흑의여인의 나직한 전음이 속삭임처럼 무영의 귓전에 들려왔다.
그녀의 전음에 무영은 쓴웃음을 웃었다.
"한 방 먹었는 걸!
나는 저 여인을 모르는데 저 여인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잖아!"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 흑의여인은 어느덧 그의 시야에서 안개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헤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손님!"
막사 쪽으로 사라졌던 예의 마부가
끙끙거리며 몇 가지의 물건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아주 오래 사용한 듯 윤이 반질반질 나 있는 말안장과
일 장이 넘는 한 자루의 철극(鐵戟)을 들고 왔다.
"이것이 말의 전주인이 쓰던 물건입니다!"
마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두 가지의 물건을 내려 놓았다.
그것을 본 무영은 순간, 두 눈이 번뜩 빛을 발했다.
'이것은 예사 물건들이 아니다!'
그는 먼저 철극을 집어들었다.
이 철극은 족히 칠팔십 근이나 나가는 둔중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는데
손잡이 부분은 다 닳아 희미한 글씨만 엿보였다.
<패왕(覇王).>
철극의 손잡이에 적힌 것은 그같은 두 글자였다.
'패왕철극(覇王鐵戟)!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무영의 두 눈이 번뜩 빛을 발했다.
그으이 뇌리로 섬전같이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마부가 해픈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헤헤! 반 년 전 쿠차의 남쪽 화진하(和眞河) 상류에서
한 명의 늙은이가 병들어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
이 말이 그 시신과 이 철극을 지키고 있었습죠!"
"또 한 가지가 있을 텐데…!"
무영은 이미 무엇인가를 짐작한 듯 마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에 마부는 멋적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급히 변명했다.
"헤헤! 감출 생각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는 품 속에서 하나의 녹슨 철부(鐵符)를 꺼냈다.
그 철부 위에는 난해한 고전체의 글이 적혀 있었다.
<철마패왕결(鐵魔覇王訣).
철마북패천(鐵魔北覇天) 철목극(鐵木克)이 적다.>
그 글을 본 무영은 짐작대로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역시 이것들은 철마북패천(鐵魔北覇天)의 유물들이었군!'
그는 침음하며 환우풍운책(還宇風雲冊)에서 본
한 명의 고독한 패웅(覇雄)의 기록을 떠올렸다.
-철마북패천(鐵魔北覇天).
달리 북마(北魔)라 불리는 인물로서
혹자는 그를 일컬어 저 대원(大元)제국의 왕손이라고도 한다.
그는 대막의 제왕 대막천존과 더불어 대막쌍존(大漠雙尊)이라 불린다.
그는 평생 애마(愛馬) 철골금강총을 타고
그 옛날 자신의 선조들의 영지였던 대막과 대초원을 떠돌았다. 마
치 한 마리 고독한 늑대같이…
백리우혜는 그런 그를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한 십 인,
환우십강(還宇十强) 중에 넣고 있었다.
푸르르…!
그때 전 주인의 유물을 본 철골금강총이 슬픈 듯 고개를 흔들었다.
무영은 그런 철골금강총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너는 전주인에게 최선의 충성을 다했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 너는 내가 돌보아 준다!"
철골금강총은 무영의 손길이 닿자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부벼댔다.
-고맙네 친구!
어디선가 그런 철마북패천의 웅장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평생 말만을 사랑하며 대초원을 떠돌던 한 마리 고독한 늑대였던…
* * *
천인림(賤人林).
쿠차의 남단을 싸고 도는 화진하(和眞河)변에 자리한 울창한 숲이다.
이 천인림은 쿠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은 다름아닌 노예시장이었던 것이다.
각지에서 몰려든 노예상인들이
제각기 자기의 인간상품을 좀더 좋은 값에 팔기 위해 흥정 하고 있었다.
노예의 종류는 실로 각양각색이었다.
색목(色目)의 신비한 눈을 지닌 미녀 노예에서 부터
남만에서 들어온 시커먼 흑인노예까지,
이곳에서는 원하는 그 어떤 종류의 노예도 돈으로 살 수 있었다.
"자! 팝니다 팔아요!"
천인림의 한 고목 아래에서는 한 명 볼품없는 노예가
오래 전부터 자신을 사갈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노예는 이제 불과 열 두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 하지만 노예소녀는 어디를 봐도 도저히 팔릴 것 같지 않았다.
먼저 그녀는 용모에서부터 실격이었다.
추괴하지는 않다고 해도 어느 한 구석 예쁘거나 귀여운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소녀의 안색은 병색이 완연했다
.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전신에는 덕지덕지 부스럼이 난 데다
고름까지 줄줄 흐르고 있지 않은가?
실로 보기에 딱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누가 이렇듯 보잘 것없고 지저분한 소녀노예를 사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어쨌든 노예상인은 노예를 파는 것이 목적이었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래뵈도 이 계집은 서역 산호국(珊瑚國)의 공녀였던 계집입니다!
한 사오 년 기르면 데리고 자는데 전혀 부족함 없는 명물이 될 것입니다!"
디룩디룩 살이 찐 노예상인은
그래도 마지막 떨이인 그 소녀를 팔기 위해 악을 쓰며 외쳐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비겟살이 출렁대는 몸을 움직여 봐도
누구 한 사람 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마침 한쪽에서 치열한 인수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색목(色目)의 미인노예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이천칠백냥!"
"좋아! 그럼 나는 삼천냥이다!"
얼굴도 빼어나고 몸매도 늘씬한 그 푸른 눈의 미인을 차지하기 위해서
회족(回族)의 족장과 대식국(大食國)의 부호가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 보잘 것 없는 노예소녀는
사람들의 관심 밖일 수밖에 없고 소녀의 주인은 울상을 지어야 마땅했다.
한데 어쩐 일인지 그 자의 눈가로 야릇한 득의의 빛이 흘렀다.
마치 자신의 노예가 안 팔려서 다행이라는 듯이...!
'그분들이 오실 때가 되었는데....!'
입으로는 연신 자신의 물건을 사라고 외치면서도
비겟덩이 노예상은 새우눈을 굴려 주위를 훔쳐보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 때였다.
"그 아이는 얼마요?"
갑자기 누군가의 음성이 노예상인의 귓전을 두드렸다.
비계살의 노예상인은 흠칫하며 돌아섰다.
언제 나타났는지 일인(一人) 일마(一馬)가 바로 그의 뒤에 우뚝 서 있었다.
바로 무영과 그가 빙금 전에 산 철골금강총이었다.
"이… 이 아이를 사시겠단 말씀입니까?"
무영을 본 비곗살의 노예상인은 당황한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영은 그 말에 검미를 찡그렸다.
"당신이야말로 지금 저 소녀를 판다고 하지 않았소?"
그는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노예상인을 노려보며 되물었다.
"그… 그것은!"
노예상인은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모종의 이유로 소녀를 팔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 자는 예정된 인물에게 소녀를 인도하도록 명령받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무영이 소녀를 사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하는 기색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그의 귓전으로 한 줄기 음산한 전음성이 들려왔다.
"혈왕십팔호(血王十八號)! 의심나지 않도록 적당한 가격을 불러 주어라!"
순간, 노예상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살…살았다!'
그는 비로소 안도의 빛을 떠올리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금방 아첨의 웃음을 흘리며 손을 비볐다.
"헤헤! 저 아이는 쉰… 쉰 냥입니다요, 은자로…!"
무영은 흘깃 노예소녀를 주시했다.
"쉰냥이라! 한 생명의 값어치 치고는 너무 싸군."
그는 노예상인의 앞에 한 덩이의 은자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는 성큼 소녀에게로 다가섰다.
"아이야! 이제부터 너는 노예가 아니다!"
그는 소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소녀는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경계와 독기서린 눈으로 무영을 마주 노려보는 것이었다.
마치 잔뜩 독이 오른 새끼 고양이같은 모습이었다.
무영은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좋아 좋아.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 정도의 성깔은 있어야지!
하지만 지금은 나와 함께 가야 한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 이어 그는 큰 손으로 한 줌밖에 안되는 소녀의 허리를 번쩍 들어 철골금강총에 태웠다.
노예소녀가 앙탈을 해보고 어쩌고 할 틈도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푸르르…!
이윽고 노예소녀를 태운 철골금강총은
한 차례 갈기를 흔든 후 무영과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그들은 곧 황혼을 등지고 천인림을 떠났다.
노예상인은 그런 무영의 뒷모습을 살기어린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 때였다.
"잘했다, 혈왕십팔호!"
스으…!
음산한 음성과 함께 사 인(四人)의 인물이 노예상인의 주위로 다가섰다.
그들은 모두 상인의 옷차림에 천으로 깊이 얼굴을 가린 자들이었다.
츳!
하지만 얼굴을 가린 천 사이로는
늑대의 그것 같은 섬뜩한 핏빛 눈동자가 무섭게 번득이고 있었다.
그들이 나타난 순간,
"지…지옥사흉(地獄四凶)님!"
노예상인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굽신거리며 네 사람을 맞았다.
지옥사흉(地獄四凶)!
이것이 사 인(四人)을 일컫는 이름인 듯 하였다.
"이제 네 임무는 끝났다.
대막금붕성으로 돌아가 혈왕일호(血王一號)에게 전해라!
뇌왕혼(雷王魂)은 확실히 인수했다고…
우리 지옥사흉에게!"
사 인 중 누군가의 입에서 다시 음산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 흡사 십팔 층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듯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음성이었다.
"존…존명!"
비곗살의 노예상인은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어, 그는 조심스런 음성으로 덧붙여 말했다.
"하오나… 조심하십시오, 사흉님!
대막천존(大漠天尊)과 대막금붕성 최강의 전사들인
금붕십왕(金鵬十王)이 지척까지 육박해 오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비계낀 노예상인,
즉 혈왕십팔호는 곧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갔다.
"가세나, 형제들! 뇌왕혼(雷王魂)을 인수하러…"
혈왕십팔호가 사라지자 사 인, 즉 지옥사흉도
무영이 사라진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헌데 뇌왕혼(雷王魂)이라면
대막에 전해오는 세 가지 보물 대막삼보의 첫째가 아닌가?
그걸 인수하다니....!
설마 무영이 산 소녀가 바로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비보(秘寶)
뇌왕혼이란 말인가?
아니면 그녀가 지닌 무엇인가가 뇌왕혼이란 말인가?
실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스으 스으…!
어느 덧 황혼도 지쳐 사그러 들고 쿠차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뜨거운 환락과 뿌리 깊은 음모(陰謀) 속에…
* * *
"아얏!"
콰당탕--!
외마디로 갈라지는 여인의 비명과 함께
한 명의 여인이 욕실 문을 박차고 뛰쳐 나왔다.
"무슨 일이오?"
녹슨 철부위에 새겨진 철마패왕결(鐵馬覇王訣)을 읽고 있던 무영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곳은 무영이 머무는 객실이었다
. 지금 김이 무럭무럭 피어 나오고 있는 욕실 문 앞에는
한 명 여인이 잔뜩 낭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여인의 나이는 삼십 전후,
아주 풍만한 몸집을 지닌 이 여인은 바로 객잔의 여주인이었다.
헌데,
'푸흡!'
무영은 여주인의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녀의 전신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으며
여기저기 할퀴고 꼬집혀 우스꽝스럽기가 말이 아니었다.
찢어진 그녀의 저고리 사이로는 투실투실한 유방이 털렁이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녀는 잔뜩 화가 난 듯 연신 우람한 젖가슴을 벌렁이며 무영에게 떠벌려 댔다.
"손님! 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그 쥐방울 만한 노예계집이 얼마나 사나운지
제 몸에 손도 못대게 하니 어떻게 목욕을 시키냐구요?"
무영은 사정을 이해하고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뒷처리는 제가 할테니 그만 나가보십시오!"
그는 일어서서 은자 한 조각을 여인의 손에 집어 주었다.
그리고는 여인이 투덜거리며 방을 나가는 것을 보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은 제법 널찍했다.
한 쪽으로 뜨거운 물이 가득한 대리석 욕조가 뽀얀 수증기 속에 잠겨 있었다.
한데 그 욕조 옆,
예의 노예소녀가 한 마리 독오른 고양이같이 몸을 웅크린 채
무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 우리 얘기좀 해볼까 아가씨?"
무영은 소녀의 앞에 팔짱을 끼고 섰다.
"행여 그런 일이야 없어야겠지만 말야,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면… 슬픈 일이지만
나는 너를 다시 그 비계덩어리 노예상인에게 넘겨 주어야 한단다."
순간,
부르르…!
노예상인이란 말에 소녀의 교구에 경련이 스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무영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작자에게 꽤나 지독한 일을 당한 모양이군!'
이어 그는 다시 설득하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너를 도와 주려는 것이다! 그러니 너도 나에게 협조해야 한다."
그는 소녀의 앞에 마주 앉았다.
소녀는 어떤 두려움에 바들바들 교구를 떨었으나 달아나지는 않았다.
그런 소녀를 무영은 그제서야 찬찬히 살필 수 있었다.
소녀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던 무영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흠! 이거 이상한데…?'
그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아혈이 제압되어 있었으며 놀랍게도 얼굴과 피부,
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 역용약이 발라져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교묘하여 눈에 띄지 않는 깜쪽 같은 수법이었다.
하지만 역용술에 있어 환우제일인 무영의 눈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이 고름과 부스럼도 가짜다!'
그는 단번에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이어 그는 예리한 눈으로 소녀의 가녀린 팔뚝을 쥐어 살펴보았다.
"이리 오너라! 내가 씻겨 주마."
그는 소녀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소녀는 무영의 협박이 먹혀든 탓인지 순순히 그가 하는대로 몸을 맡겼다.
이내 소녀의 몸에 걸쳐 있던 누더기가 모두 벗겨졌다.
소녀는 몸은 지저분하던 겉모습과는 달리 발육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그 나이에 이미 젖가슴은 살풋 부풀어 올라 있고
미끈한 다리 사이의 둔덕에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돋아 있었다.
알몸이 되자 소녀는 부끄러운지 작은 두 손으로 치부를 가리고 섰다.
아직 어리지만 여자로서의 본능적인 수치심을 느낀 탓이리라.
무영은 인형같은 몸매의 소녀를 가볍게 안아
따스한 물이 가득찬 욕조에 집어넣었다
. 이어 품속에서 몇 가지 약물을 꺼내 욕조에 풀어 소녀의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과연!'
약물이 섞인 물로 소녀를 목욕시키던 무영의 두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그는 경이의 표정으로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무영의 손길이 닿는대로
보석같이 찬란한 소녀의 본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 백옥같이 뽀얀 피부,
인형과도 같이 귀엽고 뚜렷한 윤곽을 지닌 얼굴,
그리고 앙증맞은 가슴의 융기까지
실로 놀랍도록 아름답고 어여쁜 소녀의 실체가 껍질을 벗고
무영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앞족의 이어 소녀의 등을 밀어주던 무영은 흠칫했다.
소녀의 등에 칠해진 두터운 역용약물이 벗겨지자
한 폭의 문신이 신기루같이 그녀의 작은 등에 떠오른 것이었다.
그것은 한 마리 뇌룡(雷龍)이 벼락을 토해내는 뇌룡벽정도(雷龍霹霆圖)였다.
무영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내심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대단한 현기(玄機)가 숨겨져 있었군!'
문신은 실로 정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또한 그 중에는 심오무비한 현기가 천겹의 구름같이 감추어져 있었다.
뇌룡(雷龍)의 비늘 하나하지만 하늘을 찢는 발톱 하나하나에까지
엄청난 현기가 숨어 있는 것이었다.
무영은 그 심오막측한 현기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무공비결(武功秘訣)같기도 하고 어떤 곳을 가리키는 지도(地圖)같기도 하고…!'
그는 내심 신음하며 뇌룡의 문신을 자세히 주시했다.
찰박 찰박!
무영이 손을 멈추자 소녀는 제법 긴장을 푼 듯 자기 손으로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실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한데, 그 때였다.
뇌룡벽정도에 홀려있던 무영은
돌연 찌르는 듯한 살기에 흠칫 몸이 굳어졌다.
'적(敵)이다!'
그의 두 눈이 번득 빛을 발했다.
'이 아이를 노리는 자인가?'
하지만 기이한 일이었다.
살기가 일기는 하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다가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자는 일부러 살기를 흘리고 있다!'
무영은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끼며 식은 땀을 흘렸다.
그렇다. 무영을 노리고 있는 자는 충분히 살기를 감출 수도 있는
절정고수이면서도 일부러 살기를 흘리며 무영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것은 무영의 감각을 혼돈시키려는 고도의 심리수법이었다.
무영은 머리칼이 곤두서도록 바싹 긴장했다.
'만만치 않은데? 혈왕과 싸운 이래로 최강의 적수일지도 모르겠군!'
그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진땀이 배였다.
그는 즉시 모든 감각을 총동원 했으나
적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도무지 감지되지 않았다.
찰박 찰박!
그것도 모르는 채 소녀는 욕수의 온기를 즐기며 몸을 씻고 있었다.
무영은 느릿느릿 일어서며 오른손을 소매속에 집어넣었다.
튕겨져오르기 직전의 용수철처럼 긴장한 그의 손에
한자루 달처럼 휘어진 칼의 손잡이가 서늘한 감촉으로 만져졌다.
무영은 소매속에 숨긴 칼을 움켜쥐며 눈을 감았다.
적의 향배를 모르는 상태에서 오감(五感)을 모두 개방한다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는 오직 한가지의 감각, 청각(聽覺)에 온 신경을 쏟아넣으며
상대가 공격을 발동하기를 기다렸다.
일단 적의 공격방향만 알아차리면 반드시 거꾸러트릴 자신과,
또한 실력도 그에게는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물장난을 하는 소녀의 물소리와 몸짓을 배경으로
터질 듯한 긴장감이 욕실을 짓눌렀다.
그리고 드디어 어느 한 순간,
퍼-억!
예의 살기가 돌연 백 배 증폭되며
천정으로부터 한 자루 칼이 꿰뚫고 나와
벼락같이 무영의 정수리를 쪼개왔다.
그 자르기란 가히 형언을 불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거의 동시에,
번- 쩍!
무영의 왼쪽
믿어지지 않는 쾌도일섬(快刀一閃)이 마주 그어올려졌다.
한자루 휘어진 피빛 도신(刀身)의 칼이 가장 빠른 궤도로 그어진 것이다.
내리꽂히고 위로 그어진 두가닥의 섬광이
찰나의 순간에 나타났다가 역시 찰라의 순간에 사라졌다.
"컥!"
후드득…!
직후 한마디 짤막한 신음성과 함께
무엇인가 둔중한 물체가 욕실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확 번지며
욕실의 바닥에는 피와 끊어진 내장이 물감을 터트린 듯 와락 흩어졌다.
허공에서 한 명 인물이 어깨에서 허리까지 두 조각 난 채
피보라 속에 나뒹군 것이다.
이 돌발 사태에 목욕을 하던 소녀의 교구가
순간적으로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소녀는 끝내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대단한 담력을 지닌 아이다!
저런 담력은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의외로 대단한 내력을 지닌 아인지 모르겠는 걸…'
무영은 그런 소녀의 모습을 흘깃 돌아보았다.
그는 소매 속에서 뽑아 휘두른 월영혈도(月影血刀)를 다시 집어 넣으며
암습자에게로 다가섰다.
한데,
"으으 월영혈도(月影血刀)…!"
그 자는 놀랍게도 아직 살아 있었다.
이미 몸이 두 조각 났는데도 마치 도마뱀같이…
그자는 겉보기엔 보통 상인같은 차림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안색은 칙칙한 회색에다
눈가로는 섬뜩한 핏빛이 흐르고 있었다.
지옥사흉(地獄四凶)!
그렇다! 그 자는 바로 노예상인이 기다리던 네명의 신비인,
지옥사흉중 한명이었다.
그자들 중 한명이 무영을 공격한 것이다.
"으! 월…월영혈막 최강 살인도법…
월영무혼비폭류(月影無痕飛瀑流)를 펼치다니…!
너는 바로… 총단에 잠입했던 도수…"
암살자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잦아드는 낮은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그는 상체가 핏물 속에 누운 채 무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영은 그 놀라운 모습에 가슴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차가운 음성으로 다그쳐 물었다.
"너는 누구냐? 왜 본인을 암습했느냐?"
"크큿! 알… 필요없다! 너는… 어차피 곧 죽게 될 테니까
! 지옥갱(地獄坑)의… 다른 형제들에게…!"
쿵…!
마침내 암습자의 끊어진 상체가 뒤로 넘어졌다.
"지옥갱!"
무영은 경악의 표정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이 자가 혈왕문의 전문살인집단,
지옥갱 소속의 엽살수(獵殺手)였단 말인가?"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신음했다.
본래 혈왕문에는 추적과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공포적 조직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옥갱이었다.
그 자들은 같은 혈왕문내에서도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무서운 자들이었다.
무영은 눈썹을 모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혈왕문에서 저 아이를 노린단 말인가? 이거 재미있어지는데…?'
그는 히죽 웃었다.
이어 그는 아직도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빙긋 웃음이 피어 올랐다.
"자! 꼬마 아가씨, 옷을 입어야겠다.
아무래도 여기는 날파리들이 고여서 잠을 잘 수가 없겠다!"
말과 함께 그는 먼저 욕실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소녀도 벌거벗은 채 지옥사흉의 시신을 빙 돌아
종종걸음으로 무영에게로 다시 다가왔다.
무영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이끌며 중얼거렸다.
"혈왕문까지 대막에 들어왔단 말이지?
이번 대막행은 의외로 재미있겠는 걸!"
그는 무엇이 즐거운 듯 다시 히죽 웃었다.
잠시후,
무영은 소녀의 인형같이 단아한 몸에 미리 준비해둔 새옷을 입혔다.
그러자 소녀의 모습은 몰라 보도록 달라졌다.
노예시장에서의 그 지저분하고 보잘것없던 모습은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 놀랍도록 아름답고 귀여운 그녀의 모습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영은 그런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지었다.
"피곤하겠지만 이곳을 떠나야 한다.
피에 굶주린 지옥의 이리들이 너를 노리고 있는 듯하니…!"
그는 소녀의 귀여운 볼을 손으로 가볍게 톡톡 쳤다.
그러자, 소녀는 살짝 무영에게 안겨왔다.
미약하나마 그녀의 두 눈에는 신뢰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무영을 향한 차가운 경계의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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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잘봅니다..^^
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