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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의 등대 현황
□ 등대의 역사
1. 등대란?
바다에서 선박들이 위험물을 피하여 안전하고 빠르게 운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육지의 도로처럼 바다에도 선박들이 다니는 항로가 있다. 바다에서는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을 하기 위하여 해도(海圖)라는 바다의 지도를 이용하고 있다. 항로는 육지의 도로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등대(燈臺)는 운항중인 선박이 육지의 위치나, 육지와의 거리, 위험한 곳 등을 확인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운항하는데 도움을 주기위해 섬, 곶, 항만, 협수로 등에 인공적으로 설치한 항로표지이다. 등대는 녹색과 붉은색 등 불빛의 색깔과 등대마다 빛을 발하는 간격을 달리하는 방법 등으로 선박들에게 위치를 알려주어 뱃길을 인도하고 있다.
등대는 항로표지의 일종으로 선박이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항행지표로서 선박의 위치와 항로결정, 위험물과 장애물에 대한경고, 협수로 또는 항로의 한계 및 변침점의 표시등을 위하여 설치되는 항행 보조시설이다. 항로표지 등화, 형상, 채색, 음향, 전파 등을 이용하여 항해자들이 쉽게 식별 할 수 있도록 설치한다.
일반적으로 항로표시 분류는 크게 일반적분류와 목적상분류로 나눈다. 일반적 으로는 광파표시, 음파표시, 전파표시로 분류하며, 선박의 이용목적에 따라 항양표지, 육지초인표지, 장애표지, 항만표지로 분류하고 있다.
항로표지의 일반적인 종류는 광파표시, 형상표시, 음파표시, 전파표시, 특수신호표지가 있으며, 세계 각국의 선박들이 공통적으로 이용하는 공공성을 갖고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기술․형식․기능면에서 통일되어야 한다. 항로표지기술의 발전도모와 기술정보 교환을 위하여 국제항로표지협회(IALA)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항로표시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① 광파표시에는 등대(유․무인), 등표, 도동, 지향등, 등부표, 등주, 조사등, 교량등, ② 형상표시는 입표, 도표, 부도 ③ 음표시는 공기싸이렌, 전기혼, 다이아혼, 무종, ④ 전파표시는 장거리해상무선표시국(Loran-C), 위성항법보정기준국(DGPS), 무선표시국, 선박자동응답장치(RACOM), ⑤ 특수신호표시는 선박통합신호, 조류신호소, 기상신호가 있다.
2. 등대의 역사
등대의 기원은 야간항해의 시작과 때를 같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을 따라서 리비아인이 탑을 세워 불을 붙인 것이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등대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알렉산드리아의 할로스」라 불린 등대는 BC 3세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으며, 그 높이가 135m로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이시스 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 ㎞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선박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파로스등대 모형도
파로스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단한 돌로 된 등대가 무너진 것은 12C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1100년과 1307년의 두 차례의 큰 지진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C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예로부터 지중해 사람들은 선원들을 인도할 수 있는 거대한 기념물을 항구에 세웠다. 주로 엄청난 규모의 거상이나 먼 곳에서도 보이는 신전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그러한 건물이나 거상이 항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선박들이 낮에만 도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밤에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선박들의 선원이 항구를 볼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다
오로지 등대로서의 목적으로 건설된 최초의 등대는 95년 지브롤터해협 동쪽 입구에 건설된 코론나등대로 약 2.8m(9피트) 높이의 석조탑에 유리를 씌운 등롱(燈籠)을 만들어 그 안에서 기름으로 불을 켰다.
오늘날의 등대에 가까운 것은 98년 영국 플리머스항의 에지스턴암초에 건설된 에지스턴등대가 처음이다. 그 밖에 1584년부터 1611년에 걸쳐 프랑스의 가론강 하구에 건설된 코르도안등대가 유명한데, 이것은 등대이자 내부에 예배당과 수도사의 거실을 갖춘 신전이기도 했다.
3. 우리나라 등대 역사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항로변이나 산․섬 등에서 올린 봉화가 등대의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근대 등대의 필요성이 대두 된 것은 1876년「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체결된 이후 개항장(開港場)을 중심으로 서구 제국주의 세력들은 이권다툼을 벌였다.
일본도 청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개항장을 통한 선박 왕래가 빈번해지자 우리나라 연해에 등대나 초표가 설치를 촉구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등대설치 장소 선정을 위한 측량선 출입과 허가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등대 설치에 필요한 경비는 각 개항장을 출입하는 상선으로부터 징수하는 관세로 충당하면 된다는 제의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러시아․영국 등으로부터 요구가 있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海關 燈臺局)을 설치하고, 그 해 5월부터 팔미도, 소월미도, 북장자(北長子) 등대와 백암(白岩) 등표(燈標) 건설에 착수해 1903년 6월에 이를 각각 완공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등대의 효시로 바다의 이정표(里程標)인 등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팔미도등대 모습
이후 많은 등대가 세워졌고, 1962년 국제등대협회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1972년에는 백령도(白翎島)․욕지도(欲知島) 등대의 전원을 반영구적인 태양열발전창치(solar cell)로 바꾸었다. 1978년에 유인등대 44기, 무인등대 168기에서 2001년 현재 유인등대 49기, 무인표지 2,033기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광달거리가 긴 등대는 오륙도등대, 죽도등대, 울기등대 등이며 광달거리가 약 74㎞이다. 또한 가장 높은 등대는 해남곶등대로 높이가 203m이다. 등대를 비롯하여 등표․등부표․도등(導燈)․등간(燈竿)․입표․부표․무선표지․레이콘(racon)․교량표지 등을 합친 항로표지 현황을 보면, 2001년 현재 총 2,082기에 달한다.
□ 부산항 등대 역사
등대는 불빛으로 선박의 뱃길을 알려주는 바다의 교통신호등이자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이다.
부산항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는 1904년 동구 초량동 고관(구관) 앞 부산도 등대가 설치되었지만 앞바다 매립되면서 철거되어 버렸다. 2002년 10월 현재 부산항 일원에는 모두 352기의 등대가 설치돼 있다.
부산항 일원 유인등대로는 영도등대, 오륙도등대, 가덕도등대 등 3곳 뿐이다. 유인등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대한제국시기인 1906년에 설치된 영도등대이며, 1909년에 가덕도등대, 1937년에 오륙도등대가 세워졌다.
무인등대 둥 가장 오래된 것은 1905년 6월 북항의 북방파제등대 앞 암초인 제뢰에 설치된 제뢰등대이고, 가장 오래된 등부표(해상에 떠 있는 등대)는 북항 제1항로 입구 암초에 설치된 거치초등부표로 1911년에 가설됐다.
북항 북방파제 앞 제뢰등대 모습
부산항 일원의 대표적인 무인등대로는 감천항로랜비, 감천항동방파제등대, 감천항서방파제등대, 감천항진도등, 감천항후등도, 남항동방파제등대, 남항서방파제등대, 두표등대, 송도등표, 가담발등표, 고척추등대, 등무다리등대, 소정등표, 조도방파제 서단등대, 오륙도방파제 서단등대, 조도방파제 동단등대 등이 있다.
등대 부속 건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09년 지어진 가덕도등대의 등탑과 복합건물이다. 이곳은 설치당시 원형이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출입구 현판에는 대한제국의 문양인 배꽃이 새겨져 있으며, 등탑과 재래식 화장실가마솥 욕실, 방도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장 높은 등탑은 지난 7월 설치된 가덕도등대로 높이가 40.5m이며, 무인등대 중 최대는 감천항 동․서방파제등대로 높이가 3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
부산항 상징인 오륙도등대는 현상공모방식으로 설계돼, 지난 1998년 현대식으로 개축됐고, 영도등대도 9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2002년 9월부터 개축하여 2004년 9월 준공하였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는 2001년 9월 30일부터 유인등대 체험을 통해서 바다를 좋아하고 해양수산 업무에 관심을 제고시키기 위해 가족 단위, 초·중·고 학생의 유인등대 체험학습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홈페이지 또는 환경안전과(051-609-6547)로 문의하면 된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부산광역시 남구 감만동 연합철강 앞 부산항 신감만부두 끝단에 있는 제뢰등대를 건축미가 뛰어나고 원형 상태도 양호해 역사적 유물로 영구 보존키로 결정했다. 제뢰등대는 1905년 6월 대한제국 정부가 설치하여 95년간 부산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길잡이로 ‘부산항의 역사 지킴이’ 역할을 하여 왔다.
제뢰등대는 붉은색과 검은색 선이 있는 높이 7m의 석조 원형으로 가스등을 사용해 움직이지 않는 백색 빛을 비춰왔다. 제뢰등대는 지난 1998년 부산항북방파제등대로 한차례 명칭이 바뀌었다가 지난 2001년 신감만부두 건설로 등대 위치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등대의 기능이 정지 되었다.
□ 부산항의 유인등대
1. 가덕도등대
가덕도등대(加德島燈臺)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2003. 9. 16)로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산13-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가덕도 등대는 1909년 12월에 대한제국 등대국(燈臺局)에서 건립한 것으로 전국의 41개소의 유인등대 중에서 하나이나 불행히도 건설과정에 대한 기록은 현재로서 찾을 수 없다.
가덕도 등대의 시설로는 광파표시 기종은 항공식HY 610m/m로 섬백광 12초 1섬광(FL W 12s)으로 광달거리는 지리적 22마일, 광학적 35마일, 명목적 21마일이다. 음파표시 기종은 전기흔으로 취명주기는 매50초에 1회 취명(취명 5초, 정명 50초), 음달 거리는 5마일(약9.2Km)이다.
대부분의 등대건축이 등탑과 부속사를 별개의 동으로 건립하는 것과 달리 가덕도등대는 등탑과 부속사를 단일 건물로 구축한 경우로서, 8각형의 등탑을 부속사의 중앙에 기초로부터 9.1m 높이로 올려 세운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평면은 정사각형(11m×10m)에 가깝게 구성하고 정면 중앙에 현관을 설치하여 좌우로 사무실과 온돌을 두었으며, 그 후방으로 각기 부엌과 화장실, 다용도 공간, 욕실 등을 설치하였다.
가덕도등대 정면 모습 가덕도등대 측면 모습
기초와 기단부는 콘크리트로 시공하였고, 벽체는 현재의 벽돌규격과는 일치하지 않는 적벽돌 치장 쌓기로 시공했으며, 등탑은 동체를 콘크리트로 쌓은 위에 원형의 철제 점등실을 원형 철제지붕과 유리로 제작하였다.
지붕은 적벽돌 벽체 위에 목조 트러스를 걸어서 완만한 경사의 4모지붕 형식으로 올리고 함석으로 시공하였으며, 입면은 외벽을 적벽돌로 치장 쌓은 다음 백색 페인트로 마감하고, 네모서리 우각부와 각 입면 가운데는 1~3개소의 버팀벽(버트레스)를 설치하였다.
상부 난간벽(패러팻)은 적벽돌로 쌓아 올리고, 버팀벽의 상부를 더 높게 올려서 고딕건축의 첨탑(피나클)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수평의 난간벽과 그 사이에 낸 일정한 개구부, 적벽돌 모서리를 돌출시킨 수평 돌림띠(코오니스), 수평의 상․하인방을 설치한 외벽 창호 등에서는 중세 성관(Chateau)건축에 사용된 르네상스 풍의 의장수법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배면 개부에는 적벽돌 원형 아치쌓기 수법도 보이는가 하면, 정면 현관 캐노피의 지붕은 고딕건축의 첨탑식 지붕에 한국 전통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두와 접시받침이 있는 기둥을 세우는 등 동․서양의 의장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현관 캐노피 상부 페디먼트에는 창덕궁 인정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오얏꽃으로 추정되는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당시 일제가 조선황실의 문양사용을 종용했던 사실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덕도 등대를 제외하면 수차례의 개․보수를 거쳐서 원형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등대는 거의 없는 상태이고, 그밖에 도심에 건립된 초기 근대건축물도 대부분 훼손․철거되거나 크게 변형된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덕도 등대는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하고, 건축세부를 통해서 당시의 건축기법과 조영의도 등을 고찰할 수 있는 소중한 유구라고 판단된다.
특히, 평면, 입면의 구성방식과 근대적 양식건축에서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철, 시멘트, 콘크리트, 적벽돌, 유리 등의 건축재료 사용, 의장수법 등은 부산지역의 근대건축 도입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일 뿐 아니라 한국근대건축사의 서술에서 결코 소홀하게 취급될 없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가덕도 등대의 연혁으로는 1909년 12월 초점등, 1945년 8월 해상운송부에서 이관, 1947년 2월 조선해양경비대에서 이관, 1948년 1월 4일 교통부 해운국에서 이관, 1952년 6월 13일 해양관측 업무실시, 1955년 2월 20일 석유등을 전등으로 개량(수은등에서 프리즘렌즈), 1963년 12월 30일 무신호 업무 취명개소, 1968년 12월 9일 마산지방해운국에서 이관, 1971년 12월 27일 부산지방해운국에서 이관, 1972년 1월 25일 무선전화업무개소(SSB), 1977년 8월 24일 등명기 개량, 1980년 5월 6일 부산항건설사무소 이관, 1983년 6월 마산지방해운항만청 이관, 1989년 7월 부산지방해운항만청 이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덕도 등대는 대한제국 시대에 건립된 여러 유인등대와 같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서 건설되었지만,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단적으로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덕도등대의 건축이 차지하는 한국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덕도 등대는 근대 서구건축의 양식과 건축재료, 의장수법 등이 최초로 사용되던 건물들 중의 하나였으나 당시에 건립된 여러 등대들이 대부분 이후의 개․보수로 원형이 크게 훼손된 데 반해서 가덕도 등대는 오늘날까지 상당 부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또는 건축사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돋보이는 문화유산이다.
☞ 가덕도등대를 찾아가려면 지하철 1호선 하단역에서 하구언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 58-1번
을 타고 녹산 도선선착장에 하차하여 외양포까지 매표하신 후 대항방면 도 선에 승선하시면 됩
니다. 오전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운행하며 운행시간은 2시간 간격, 소요시간은 1시간이며 선
비는 대인기준 편도 2,500원이다.
외양포에 도착하여 도보로 약40분정도 가면 부산신항만의 상징인 가덕도등대가 반겨줄 것이
다. 등대는 군작전 지역내에 위치하고 있어 반드시 전화로 확인하신 후 등대출입이 가능함을
알려 드립니다.
2. 오륙도등대
오륙도등대(五六島燈臺)는 명승 제24호(2007. 10. 1 지정)인 오륙도(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의 등대섬 정상에 위치해 있다. 1937년 11월에 최초 점등하였고, 기존 등대시설이 너무 열악하여 1998년 12월에 웅장한 모습으로 새로이 만들어 졌다. 등탑 6.2m→ 27.5m로 높이고, 등대 불빛도 밝게 했다.
이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민현상 설계 공모로 만들어진 등대로서 1998년 12월 24일 개축하여 새로운 부산시민의 휴식처 일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변함없는 우리나라의 관문에서 지킴이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부산시민의 마음속에 새겨진 부산의 상징이요, 부산만의 자연조각 품으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빼어난 바다의 명소일 뿐만 아니라 많은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
등대시설 내부에는 우리나라 주요 등대를 살펴 볼 수 있는 사진 전시실이 있고 부산항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이며 자랑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섬 다섯개가 시민들에게 주는 편안함과 자부심은 남다를 것이다.
오륙도등대 모습
오륙도란 이름은 우삭도의 중 허리가 밀물때는 두 섬(방패섬과 솔섬)으로 나누어 지고 썰물일때는 하나로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한다.『동래부지(1740)』산천조에는, 오륙도를 절영도 동쪽에 있다고만 하고 봉만(峰巒)이 기고(奇古)하여 바다 위에 나란히 섰는데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그리 이름하였다고 한다.
조용필의 노래「돌아와요 부산항」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오륙도’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임에 손색이 없다. 해상관광 유람선으로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출발 광안리 해수욕장 이기대공원 그리고 오륙도섬을 관광하면 꿈과 희망 그리고 낭만이 함께하는 자연경관에 오륙도 등대가 우뚝 솟아 있어 부산항을 이용하는 선박들의 안내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오륙도 등대의 시설로는 광파표시 기종은 BGA-500(110V-150W 메탈램프)로 섬백광 10초에 1섬광으로 광달거리는 19마일(35㎞)이다. 음파표시 기종은 전기흔으로 취명주기는 매40초에 1취명하며, 음달 거리는 3마일이다. 등대의 구조로는 대륙의 관문을 상징하는 건축물로서 등탑은 원형 콘크리트조이며 높이는 27m로 부산항 및 오륙도를 상징하는 등대이다.
오륙도등대의 연혁으로는 1937년 11월 초점등(매6초 1섬광 아가식), 1957년 12월 사무실 신축, 1958년 2월 등명기 개량(전기 점멸식 매5초 1섬광)과 신호기 설치, 1971년 7월 등명기 개량(4등급 점멸식 5초1섬광1대) 이후 여러차례 무선전화기와 통신기 개량하였다. 1979년 12월 직원숙소 개축, 1995년 12월 선착장 건설, 1998년 12월 등대건물 개축(기존시설 전부철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륙도 등대는 1937년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시설이 너무 낡아 1997년 일반 시민들의 현상공모 작품을 선정 1998년에 건립한 등대로 암반의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태풍과 해일에도 안전하게 건립된 연면적 125평에 3층짜리 복합건물(업무 및 숙박시설)이며, 옥상은 일반인의 전망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등대 시설 내부에는 세계의 등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 있으며, 바다에 홀로 떠있는 이곳에서 부산항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차 한 잔을 마시면 속세의 모든 일을 잊을 수가 있다고도 한다.
☞ 오륙도등대를 찾아가려면 부산역에서 시내버스 27번을 타고 종점에서 하차하신 후 용호동
선착장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 선착장에서 낚시배를 타고 약 5분정도 가면
오륙도등대에 도착함. 낚시배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운행하며 선비는 왕복 6,000원 입니다.
3. 영도등대
영도등대(影島燈臺)는 명승 제17호(2005. 11. 1 지정)인 태종대(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2동 105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1906년 12월에 설치하였나, 등대 건립 배경에 대한 자료가 없어 자세하게는 알 수가 없다. 부산항이 1876년 2월「강화도조약」체결로 제일먼저 개항된 이후 선박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일제강점 이전 일본군의 군사목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도 등대가 처음 설치된 1906년 12월 당시의 명칭은 목도등대(牧島燈臺)였다가, 1948년 1월 4일 절영도(絶影島燈臺)로, 1974년 12월 31일 영도등대(影島燈臺)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도등대 시설로는 광파표시 기종은 PRB-20(120V-1000W 할로겐램프) 으로 섬백광 18초에 3섬광으로 광달거리는 24마일(44㎞)이며, 음파표시 기종은 에어싸이렌으로 취명주기는 매45초에 1회취명로 음파거리는 5해리이다.
절영도(絶影島)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영도에서 군사훈련용 말을 많이 길렀는데 영도에서 기른 말들은 비호같이 빨라 순식간에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해서 절영도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1881년에는 절영도진이, 1951년 9월 1일 영도출장소가, 1957년 1월 1일 구제가 실시되면서 영도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른다.
영도등대의 연혁으로는 1906년 12월 등대 점등개시, 1926년 5월 무신호 취명개시, 1935년 4월 직원숙소 신축, 1948년 1월 4일 목도등대를 절영도 등대로 개칭, 1957년 발동발전기 설치, 1958년 8월 1일 무선방위신호 업무개시, 1961년 12월 22일 쌍등을 단등으로 개조, 1972년 2월 21일 부산지방해운국에서 수로국부산출장소로 편입, 1974년 12월 31일 절영도 등대를 영도등대로 개칭, 1988년 8월 1일 영도등대를 영도항로표지관리소로 호칭변경, 2004년 8월 4일(2002년 착공) 등대건물 개축 준공하여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도등대 시설은 2002년 5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현재의 노후된 건물을 전부철거 하여 2004년 8월 신축 개관하였다. 영도등대는 해양문화 공간으로 자연과 건축, 건축과 자연이 하나가 되도록 만들고 건물의 안팎과 옥상까지 실제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감상하는 바닷가 전망대로 활용케 조경을 했습니다. 또한 전망대, SEE&SEA 갤러리, 해양도서실, 정보이용실, 해양영상관, 자연사전시실등 자연과 어울리고 해양에 대한 친숙함과 바다사랑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개방적 해양문화공간(전시실, 공연장, 체험공간)으로 재 조성하여, 바다와 낭만 그리고 예술이 공존하며, 시민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해양 명소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주변 환경으로는 영도등대는 부산의 관광명소인 태종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8호(1972. 6. 26)]내에 있다. 태종대의 유래를 살펴보면, 1740년 동래부사에 의하면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성취한 후 활을 쏜 곳이라 하여 태종대를 불리어지고 있으며 태종대의 형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형적인 해안단구가 발달한 융기 파식대의 형태로 존재하며, 한반도가 융기에 의해 생성된 한 증거의 역할을 하고 있다.
태종대에는 1200여종의 수목과 노루, 산토끼 등의 동물 및 60여종의 조류를 볼 수 있어, 부산의 자연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가치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변 유명 파식대인 옛날 신선들이 노닐던 곳으로 전해지는 신선바위는 가장규모가 큰 파식대이다.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과 우뚝 솟은 바위로 모양이 기기묘묘한 태운암 등도 자연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 영도등대를 찾아가려면 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에서 하차하여 영도대교 앞에서 시내 버스
11, 30, 88번을 이용하거나, 자갈치 지하철역에 하차하여 옛 남포파출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30, 8, 8-1, 13번을 버스를 타면 태종대 입구까지 간다.
또한 중앙동 지하철역 하차하여 중부경찰서 앞 버스정류장이나, 부산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88, 101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태종대공원 입구에서 도보로 30분정도 걸으면 도착이 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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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언제한번 등대 만나러 가보렵니다~~~좋은정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