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글입니다. 재미로 읽어주십시오.
*존대 생략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생각해보건데 코로나 창궐 시기에 딱 한가지 좋았던 것이 있다면 바로 회식의 공식적 금지였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참석해보기도 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거절해보기도 하다가 최근에는 나는 회식이 싫으니 참석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매번 나는 회식이 싫어서 참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건만 다음날 동료들은 ‘어제 바빴구나?’ 라던지, ‘요즘 일이 많나봐?’ 하는 말들을 돌려준다. 그리고 다음 회식이 되면 어김없이 통보를 받는다. 오늘 00시까지 00에서 회식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신... 부득이? 부득이한 사정이 없으면 참석해야 된다는 이야기인가? 내 노동에 회식 필참까지 포함되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저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기 싫어서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퇴근 이후의 제 시간을 존중해 주세요. 이렇게까지 말하고 회사 내 공식 싹퉁바가지가 되고 나면 현타가 온다. 나도 참 어지간하다, 그게 뭐라고. 그냥 가면 될 것을.
대체로 이것을 무한 반복하며 직장 내 싸가지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있었으나 한국윤리시간에 풍류사상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그게 뭐라고 그냥 가면 될 것을 이후의 생각을 덧붙여보게 되었다. 지금부터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회식은 풍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반영된 기형적인 관습이며, 우리는 회식의 잘못된 점에 대해 비판하고 진정한 풍류 정신을 토대로 직장 내 올바른 어울림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 이제 생각을 이어가 보겠다. 그게 뭐라고 그냥 가면 될 것을 난 왜 그렇게 회식이 가기 싫은가. 나는 술이 싫은가? 나는 동료들과 어울리기 싫은가? 나는 남의 말을 듣기 싫은가? 혹은 대화가 싫은가? 나는 퇴근 이후의 시간을 타인에게 할애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드벡과 이화주를 사랑하며, 옥상에 설치한 평상에서 동료들과 한잔하며 수다 떠는 것이 즐겁고, 커피 한잔 주세요~ 하면서 특별실의 문을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좋고, 가끔 새벽까지 별을 보며 누워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물음들은 내가 회식을 꺼리는 이유에 대한 답이 되어 줄 수가 없다. 대체 회식에서는 왜 잔을 돌리면서 상대방이 몇 잔이나 마셨는지 확인하는가? 왜 1차에서 끝나는 법이 없는가? 왜 갑자기 반말을 시전하는가? 왜 주제는 항상 누군가의 뒷담이나 TMI인가? 왜 음정 박자 무시한 당신의 땡벌에 탬버린을 흔들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왜 사람이 즐길 줄도, 놀 줄도 알아야지~ 어울릴 줄도 알아야지~ 라고 하는 말로 상대방을 사회 부적응자 취급하는가?
구 남사당패 현 뽀로로의 피를 타고난 자로서 감히 건방지게 단언하건데 즐기는 것(놀이)과 어울림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여기 화엄사의 홍매화가 있다. 우리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화엄사를 방문했다. 이후 누군가는 매화주를 기울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매난국죽을 치고 싶어질 수도(혹은 치는 법을 배우고 싶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오늘만은 퇴계 이황보다 더 매화에 대해 예찬할 수 있는 시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인의 한마디로 시작된 퇴계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를 이황과 기대승 중 누구 편에 설 것이냐로 밤새워 투닥거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 볼 것도 없네. 식당 어디 예약했어?’ 하고 소맥 말아서 돌리는 순간 다 끝인 것이다. 그 자리에는 뒷담과 사생활 TMI가 라떼는말이야에 얹어진 씁쓸한 안주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1차 이후에는 집에 가기 싫어하는 좀비를 터덜터덜 따라가야 하는 사람들이 남을 것이다. 한국윤리사상 교재에서 정의 내린 풍류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요약해 보면, 풍류란 자연의 원리와 인간의 도리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문화양식으로 사심 없이 즐겁게 타인과 더불어 어울리며,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 없이 모두가 즐기는 저속하지 않은 문화로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잘못된 회식은 내 밑으로 다 모여로 시작하여 술은 정신력으로 마시는 것이라며 폭탄주를 권하고, 잔은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이며, 소맥은 숟가락으로 휘저어줘야 하고, 꺽어 마시는 것은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근본 없는 주도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말, 말, 말이 함께한다. 즐거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노는 것이며, 대체 누구랑 어울리고 대화하는 것인가? 자신 혼자 즐겁고, 한잔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로 덮으려고 하는 다음날의 민망함은 선이 없는 방종이며 방탕이다. 이런 것을 풍류라고 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회식문화는 느긋함과 다양성을 갖추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때려 붓고 고주망태의 패턴에서 벗어나서 내 동료들은 밥이 즐거운지, 커피가 즐거운지, 술이 즐거운지도 한번 살펴보고, 어떤 주제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지 혹은 열띠게 만드는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신윤복의 ‘주유청강’처럼 놀 수도 있지만, 김홍도의 ‘단원’처럼 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택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당신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 떼창으로 국뽕을 느끼고, 산행을 술로 마무리하며, 금자씨 같은 영화를 300만이나 보러 가는 나라의 자손으로. 『후한서』 동이열전은 ‘동이족은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잘 노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 제발. 취했으면 집에 좀 들어가세요 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