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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陸英修/1925~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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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부인.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42년 배화여고(培花女高)를 졸업, 옥천여중 교사를 지냈다. 50년 육군 중령 박정희와 결혼하였다. 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각종 사회·육영사업을 벌였다.
자선봉사단체인 양지회(陽地會) 결성, 전국 9개소에 여성회관 건립, 미망인회(未亡人會) 자활공장 설치 등을 하였으며, 헌혈운동 등 적십자사 활동에도 솔선·참여하였다.
육영사업 일환으로 어린이대공원·어린이회관 건립을 주도하고, 소년소녀 잡지 《어깨동무》를 발간하였다. 불우 청소년들의 직업보도를 위한 정수 직업훈련원(正修職業訓練院)을 설치하고, 서울대학에 기숙사 정영사(正英舍)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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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 구호사업도 활발히 전개하여, 월요경로회(月曜敬老會)를 만들어 노인 위로연을 개최하고, 나환자촌에
자활사업지원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국립극장 단상에서 조총련계 문세광(文世光)에게 저격되어 죽었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집행,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박정희와의 사이에 박지만 (朴志晩)·박근혜(朴槿惠)·
박근영(朴槿映) 등 1남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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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다. 그렇게 가시다니...
1974년 8월 15일 해방 29주년 광복절날 10부터 국립극장에서 거행되는 광복절 기념식전에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여 식순에 의한 대통령의 경축사가 진행되는 순간 10시 23분 아래층 맨 뒷줄 중앙부근에
자리잡고 있던 암살범 문세광(文世光) 이가 뛰쳐 나오면서 쏜 총탄이 뇌에 관통상을 입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애석하게도 이 날 하오 7시에 운명하고 말았다.
자애로운 국모를 잃은 온국민은 눈물이 앞을 가려 말문이 막힐 뿐이다(경향신문 74.8.16)
한나라의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항상 소박하고 성실한 내조자로서의 한국
주부상을 내외에 과시했을 뿐 아니라 삶의 시간 전부를 이 땅의 가엾은 동포들을 위한 사랑과 봉사에
바치다가 간 것이다............(중앙일보 1974. 8. 16)
이 밖에도 모든 도하 신문들은 앞을 다투어 여사를 애도하는 글을 실었다. 평생 남편을 위하여 겨레를
위하여 또한 동포를 위하여 더없이 맑게 타오르던 사랑의 촛불은 조용히 꺼져갔다.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성을 기울여 몸으로서 국민의 흠모와 존경을
받아오던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9일 오전 200만의 서울시민이 통곡으로 마지막 가시는 길을 꽉 메운
통한 속에 국민장으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朴木月著 陸英修女史)